곡강 언저리로
학년 초 개천절과 주말 사이 금요일은 재량휴업으로 정해진 날이다. 지난여름 광복절도 그런 경우였는데 그때는 수업이 진행되어 거제에 머물렀다. 광복절도 태풍 영향으로 우리 지역 비가 오다 그친 날이었다. 나는 광복절 아침나절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을 찾았다가 모노레일로 계룡산 전망대로 올랐다. 운무가 시야를 가린 속에 정상으로 가다가 되돌아온 그날 진드기에 물렸다
이제 계절이 바뀌어 가을이다. 어제 개천절 아침 태풍 경로를 따라 무궁화호를 타고 밀양을 거쳐 청도로 올라가 봤다. 시월 태풍이 할퀴고 지나 강에는 황톳물이 넘실거리고 곳곳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남겼다. 수확을 앞둔 벼가 쓰러지고 과일이 떨어졌다. 산사태로 인명 피해까지 있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다. 대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이 한없이 나약함을 여실하게 보여준 태풍이다.
개천절 이튿날 시월 첫 주 금요일 아침 낙동강 수산교 근처 강변으로 산책을 나섰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으로 나가 1번 마을버스를 탔다. 대기 중 습도가 높고 일교차가 큰 때라선지 안개가 자욱했다. 주남저수지를 거쳐 대산 들녘을 지났다. 가술과 모산마을을 지나 제 1수산교에서 내렸다. 거기가 내 일일 도보 여정의 기점이었다. 강둑으로 오르니 안개 짙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다.
너른 둔치는 창원시민들에게 상수도로 공급되는 강변여과수취수정이었다. 4대강 사업 때도 포클레인이 남겨둔 모래밭은 갈대와 물억새가 무성한 곳이다. 고라니나 꿩들의 낙원이다. 뽕나무나 돌복숭나무도 자란다. 난 초여름에 그 열매를 따 온 적이 있다. 이제는 갈대와 물억새는 이삭이 패어 가을 정취가 물씬하다. 낙동강 중하류에서 일동 강변여과수취수정 일대가 가장 운치 있다.
태풍으로 낙동강 중상류 수계는 비가 많이 내려 강물이 너울너울 흘렀겠지만 안개가 짙어 확인할 수 없었다. 4대강 사업으로 강변 농경지는 잠기지 않아 다행이었다. 강바닥 퇴적층을 준설하고 저지대는 배수장이 잘 갖추어서져다. 대산정수장을 지나 본포를 향해 느긋하게 걸었다. 안개가 걷히길 기다야야 하기에 서둘러 걸을 일이 없었다. 자전거 라이딩을 나선 이들이 간간이 지났다.
본포에 이르니 안개가 걷혀가기 시작해 넓은 강폭을 차지한 황톳물이 너울너울 흘러감을 볼 수 있었다. 강가에는 내수면 민물고기를 잡는 거룻배가 줄지어 묶여 있었다. 학포로 건너는 본포다리 교각은 희뿌옇게 보였다. 본포 벼랑 취수장으로 돌아가는 생태보도교는 강물이 불어 잠겨 있었다. 4대강 사업 이후 자전거길로 이용되는 생태보도교가 잠긴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을 테다.
나는 1킬로미터 가량 되는 본포다리를 건넜다. 아마도 본포다리를 걸어 건너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교량에서 강폭을 쳐다보니 안개 속에 황톳물이 가득 흘렀다. 학포로 건너가 청도천 샛강에 놓인 반학교를 건너갔다. 초동 반월과 부곡 학포 사이에 놓인 다리라고 반학교라 불렸다. 반월로 건너가니 짙은 안개가 서서히 걷혀갔다. 아까 수산다리 들머리부터 걸은 지 세 시간이 지났다.
반월 들판엔 익어가던 벼들이 쓰러져 드러누워 있었다. 둔치에 가꾼 코스모스는 불어난 강물에 잠겨 안쓰러웠다. 안개가 걷히자 본포에서 수산 사이 너른 강폭 흘러가는 강물 수위를 알 수 있었다. 평소보다 강물이 많이 불어 갯버들은 잠겨 가지 끝만 드러났다. 강둑 길섶에 먼저 피었다가 저문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씨앗을 몇 줌 땄더니 덤불 속에 몸을 숨겼던 고라니가 놀라 사라졌다.
차월에서 성북을 지나 곡강을 거쳐 서편으로 갔다. 곡강까지가 초동면이고 서편은 하남읍이었다. 국도라 차량 통행이 제법 되었다. 둑길을 걸은 지 다섯 시간 지나니 지치기도 했다. 찻길 모롱이를 돌아가다 추어탕집으로 들었다. 근동에서 알려진 맛집이라 손님들이 많이 붐볐다. 추어탕으로 점심 요기를 하고 아까 건넌 본포다리보가 더 긴 수산다리를 걸어 건너가 1번 마을버스를 탔다. 19.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