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낙낙하니 웃었다 외 1편
조성국
딸애가 넹택없이 바라는 걸 일거에
무찔러 버렸더니
밥 안 먹는다고
땅바닥 나뒹굴며 뒈지게 울며불며 뗑깡을 부린다
글다가 달게는 사람이 통 없으니까
이리저리 둘러보며 아무도 없어 보이니까
바른 손등과 손바닥을 번갈아서 눈두덩 쓱 문질러 닦고는
흙 묻은 옷자락 탈탈 털며
지 혼자 밥 먹는 것을 넌지시 훔쳐보며
해낙낙하니 웃었다
좀벌레 슨 외투와 같이
좀벌레 슨 겨울 외투를 하복과 같이,
군데군데 갉아 먹힌 남방을
동절기 피복인 양 걸친 어르신이 오그리고 앉아 계신다
종종 문화예술회관 정문 육교에서
삶의 방식이나 된 듯
길바닥 밥줄 삼아 빈 깡통 내려놓고 멀뚱멀뚱 쳐다보고 계신다
가끔 은빛 동전이라도 짤랑거리는 땐 쾌재의 눈빛을
초롱초롱 치뜨기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먼 산 보듯 그냥 지나친다
운암동 재래시장 돼지국밥 먹고 남은 거스름 동전조차
베풀지 못한 주제에 이맛살만 잔뜩 찌프린다
어쩌다 불 꺼진 광주전남작가회의 화장실
몰래 숨어들어 양치하고 대걸레처럼 떡져 있는 장발 헹구고
변기통 물로 때 닦듯 목욕하다 들킨, 들켜서 죄지은 양 팬티 차림으로
냅다 도망치는 뒷덜미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모쪼록 청탁 온 시구절이나 만들어 볼 요량으로
한 구절 두 구절 사이의 빈 데를 채워 보는데
다 쓴 치약 칫솔 손잡이로 꽉꽉 눌러 짜듯 밤늦은 길고양이
새끼 울음과 같이
배불뚝이 재활용 종량제 쓰레기봉투 할퀴어 뒤지듯이
안 나오는 어미 젖 억지로 빨아 대듯 이 꼭지
저 꼭지 옮겨 대는 입주둥이처럼 파고들길 마다하지 않던
내가 하등의 어르신보다
더 나을 게 없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해 본다
― 조성국 시집, 『해낙낙』 (시인의일요일 / 2023)
조성국
전라도 광주 염주마을 출생. 1990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수배일기」 연작 6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슬그머니』 『둥근 진동』 『나만 멀쩡해서 미안해』 『귀 기울여 들어 줘서 고맙다』, 동시집 『구멍집』, 평전 『돌아오지 않는 열사 청년 이철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