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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되신 주님 (막31)
찬송 :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본문 : 막6:48-56절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요즘 엄청 차를 타고 다닌다.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고 소중한 분들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하고 이런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인생은 동전의 양면처럼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많이 느낀다. 오늘이란 소중한 시간의 성직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내가 잘 못하는 것도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어제 누군가 7월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른다고 하였는데 많이 공감하였다. 정말 어찌어찌하다 보니 벌써 7월 24일 ... 휴....
오늘은 어제에 이어서 예수님께서 즉시로 보낸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가다가 갈릴리 호수 한 가운데서 폭풍을 만나 힘겨워 하시는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 바다위를 걸어오셔서 제자들을 건지시고 게네사레 땅에 도착하여 사역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으시고 늘 자기에게 속한 제자들과 백성들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묵상하게 된다. 오늘 본문의 백미는 바로 이 구절이다. 48절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이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예수님은 지금 사람들이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는 유혹을 이기고 산에 올라 기도하시고 계셨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의 것들을 다 내려놓고 아버지와의 깊은 관계속에서 쉼을 가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감정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순간에도 그 시간이 밤 사경 즉 캄캄한 한 밤에도 제자들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음이 큰 울림이 된다.
길도 배도 없지만 오직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신 예수님은 밤 사경에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신다. 오늘 이 주님의 시선이 나를 춤추게 한다. 감사로 하루를 시작했지만 차를 타고 이리저리 다닌 내 몸은 피곤하고 밀려있는 일들은 산적하다. 주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 이렇게 힘겹게 노 젓는 모습을 주님이 보시고 밤 사경에라도 길이 없으면 바다 위를 걸어서라도 달려오시는 주님의 시선을 느낀다면 어찌 춤추지 않을까?
시선이란 찬양의 가사가 생각난다.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겠네 내 작은 마음 돌이키사 하늘의 꿈, 꾸게 하네.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때 내 삶은 주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물론 이 찬양의 초점은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두라는 찬양이다. 그러나 주님의 시선을 느끼며 우리의 시선이 주님께로 향하는 것이기에 같은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자신을 위한 시간에도 제자들을 향한 시선을 멈추지 않으신 주님은 이들을 향해 바다 위를 걸어 오셔서는 배를 지나가시려 한다고 한다. 이게 무슨 뜻인가? 주님의 사랑은 일방적이 아니라 항상 인격적으로 우리의 반응에 의해 이루어짐이 참 감사하다.
힘겹게 노 젓는 제자들을 홀로 두실 수 없어 급히 바다위를 밤 사경에 달려오신 주님은 그들의 배를 가까이 지나가신다. 이것은 마치 아버지가 아들과 숨박꼭질을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반쯤 보여주면서 찾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발견되기로 작정하셨다. 다만 강제로 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찾아내도록 하시는 것이다.
아직은 어리기에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을 만나 힘겹게 노 젓는 제자들을 사랑하는 주님은 이들에게 찾아오시지만 오늘도 인격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들로 자신을 찾고 부르도록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시선이 주님을 볼 수 있도록 주님을 느낄 수 있도록 당신이 친히 찾아와 주신 것이다. 그러나 풍랑에 눈이 어두워진 제자들은 주님을 또 한 번 실망시킨다. 몸을 반쯤 보여주어도 찾지 못하는 아들처럼 이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 49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사람이 바다 위를 걸어서 오니 그것도 밤 사경에 그런 일이 있으니 제자들이 놀라고 못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유령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이들을 향해 소리쳐 주신다. 50절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아빠가 아이와 숨박꼭질을 하다가 발견되도록 숨었는데 발견하지 못하고 울어버리니 아빠가 뛰어나와 ‘아빠 여기 있다.’ 하며 안아주듯 주님은 자신을 보고도 발견치 못하는 제자들을 향하여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주님이 맡기신 일을 감당하는 것은 때로 갈릴리 호수 한 가운데서 폭풍을 만나 힘겹게 노 저어야 하는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 순간에도 주님의 시선을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 어떤 순간에도 주님은 달려오실 수 있다고 말이다. 어떤 장벽도 길도 만들어 오신다고 ...
주님은 길이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다. 밤 사경에도 주님은 길이시라 오실 수 있고, 폭풍이 불어 배도 못가는 그 길을 주님은 길이시라 오실 수 있으시다. 그 주님을 믿고 볼 수 있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하신다.
오늘은 길 되시는 주님을 묵상한다. 주님이 명하신 길이 폭풍에 막혀 버려 모든 힘을 다 쏟아 부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을 때가 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사단은 어찌하든지 이런 폭풍으로 우리 사명의 길을 막아서려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길이시다. 폭풍으로 배가 나가지 못해도 주님은 길이시라 오신다. 밤사경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나침판이 없어도 주님은 길이시라 오신다. 그 어떤 사단이 방해를 해도 주님은 사단의 세력을 이기신 분이시라 모든 것을 길로 삼아 오신다. 아멘. 아멘. 아멘.
오늘 이 말씀이 큰 은혜가 된다. 시선이란 찬양의 가사처럼 내게로부터 눈을 들어 주를 보기 시작할 때 주의 일을 보는 것이다. 주님을 볼 때 모든 시선을 주님께 드릴 때 우리 삶에는 주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나같이 아둔하여 주님이 한 순간도 나를 향한 시선을 멈추지 않고 바라보시며 힘겹게 노 젓고 계실 때 모든 상황을 길로 만드시고 내게로 향하여 달려오심에도 깨닫지 못하고 유령이라고 외치는 자에게도 주님의 시선은 주님의 길되신 능력은 여전히 일하시고 나를 안아주신다는 사실이 오늘 큰 감동이다.
시편의 말씀이 생각난다. 시121:3-4절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아멘.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주님은 오늘도 그 시선을 내게로 향하여 드시고 주목하고 계심이 느껴진다. 힘겹게 노 젓는 내 모습을 보시고 계신 주님을 향하여 오늘도 손을 흔들며 일어나리라. 내 시선도 주님을 향하여 고정시키며 풍랑을 향했던 멈춰선 배에 향했던 시선을 바꿔 주님을 보리라. 아멘.
어떤 상황에도 길을 만드시고 찾으시는 주님을 신뢰하고 이제 나도 주님이 허락한 능력으로 길을 만드는 사람으로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가리라.
주님, 오늘도 이 종을 향하여 시선을 거두지 않으시고 막힌 담 같고, 어둔 장막 같은 저의 삶에 길을 만드시고 찾아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종도 주님을 향한 시선을 고정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길되시는 주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으며 길을 만들어 가는 종이 되겠습니다. 이 종을 격려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시선이 그 능력이 조금도 제한되지 않고 함께함을 인정하며 오늘도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