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란 무엇일까. 술의 원료인 에탄올은 화학식으로 보면 C2H5OH이며 술의 주성분으로 주정(酒精)이라고도 부르고 술을 먹고 자기 제어가 안 되는 사람이 하는 행동은 주정(酒酊)한다고 한다. 음식이지만 술만 먹고살 수는 없다. 알코올의 어원은 아랍어인 알쿨(كُحول, Al Kuhl)에서 왔는데 처음 발견한 사람은 아바스 왕조 과학자인 페르시아 의사이자 연금술사이자 화학자인 알 라지(본명은 무함마드 이븐 자카리야 알 라지/854~925)다.
한국에서 술은 명가의 음식이었다. 명문가일수록 그들만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술이 대를 이어 내려왔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의 술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나마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은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명맥을 이어가려는 전통주의 고향과 몽고가 일본을 침공하기 위해 전략기지로 활용했던 안동이나 진도 같은 곳이다. 오랫동안 그 전통을 지켜왔지만 전통주의 한계로 인해 여러 제약이 있어왔다. 그러나 몽고가 고려를 침략하면서 전파된 증류법에 의해 술은 획기적인 개선을 이루게 된다.
일제강점기 당시 전국에 술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법을 시행하면서 면단위 지역마다 술을 만들 수 있는 면허를 부여했다. 그리고 양조장은 그 면의 이름을 따서 제조를 시작했는데 이는 일본의 관리 전략이었다. 이런 양조장의 구조는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어 왔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대인들의 입맛이 변하면서 전통주를 제조하는 양조장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상당수가 폐업을 했다. 당진에 있는 신평양조장은 1933년에 창업하여 당진의 쌀로 만든 다양한 전통주를 만드는 곳이다. 새롭게 생겨난 평야라는 이름의 신평에서는 하얀 연꽃이라는 백련의 향을 담은 술을 만들고 있었다.
술 빚는 것은 첫째도 정성이고 둘째도 정성이다. 마음으로 빚는 술은 성난 마음으로 빚게 되면 백발백중 거친 맛이 날 수밖에 없다. 과거 쌀이 부족했을 때 술의 재료를 고구마나 당밀같은 것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한국인의 술맛은 쌀에 있다. 쌀 구조를 보면 그물망으로 되어 있는데 물에 불리면 그물망에 수분이 담겨 있다가 열을 받으면 팽창하면서 구조가 파괴되고 효소가 침투되게 된다.
비교적 가장 쉽게 술을 담글 수 있는 방법은 단양주인데 정성스럽게 여러 번(30분) 씻은 쌀을 고두밥을 찌기 위해 쌀 중심부까지 물을 충분히 흡수하는 침미(90분)과 쌀이 수분을 머금고 표면의 수분을 제거하는 절수(60분)를 거친 쌀과 1:1의 물, 약 1/9 정도 량의 누룩과 효모를 넣으면 된다. 알코올 발효의 원리는 누룩의 곰팡의 효소들이 호홛된 전분을 먹이로 당을 생성하고 이 당을 먹이로 하는 효모는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드는 데 이과정이 알코올의 발효다.
고두밥이 제법 잘 쪄졌다. 알코올의 최초 발견은 연금술사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강화도 전등사의 창건에 원숭이 술의 전설이 전해지는데 보름달이 뜰 때 원숭이들이 바위나 나무둥치의 오목한 곳에 잘 익은 산포도를 넣어두고 다음 달 달 밝은 보름달에 찾아와서 마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누룩 사용 이전에는 전분 당화 방법으로 가장 원시적인 곡물주를 만들기 위해 십어서 술을 빚었다고 한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 보면 '처녀들이 만든다 하여 미인주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지방에 있었던 유구국에서 처녀들이 모여 사탕수수 줄기로 이를 닦고 바닷물로 입솔을 가셔내고는 쌀을 씹어 술을 빚었다고 한다.
고두밥만 잘 쪄져 있으면 그 후의 과정은 비교적 쉬운 편이다. 밥과 물, 누룩, 효모를 넣고 살포시 쌀을 쥐어잡듯이 하면서 잘 섞이도록 해주면 된다. 원래는 뚜껑을 꼭 닫아주어야 되겠지만 이 플라스틱은 숨을 못 쉬니 살짝 열어주어야 한다. 쌀이 술의 기본이라면 한국인의 술의 시작은 누룩이다. 누룩이 없다면 전통술을 만들 수 없다.
앞서 방법으로 만들어진 막걸리다. 막걸리는 생막걸리가 있고 생막걸리를 다시 후처리 한 것이 있다. 그리고 후처리 한 것을 다시 정제하면 막걸리의 텁텁한 맛이 없어지면서 깔끔한 맛을 낼 수도 있다. 보통 한국인들은 막걸리의 다양한 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입안에서 다양한 잔 맛이 남아 있는 막걸리를 선호한다.
일본의 사케나 위스키 등에 밀려 한국의 전통주는 예전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하지만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하여 경쟁력을 얻는 곳들이 차츰 생겨나고 있다. 발효주는 최대 19도를 넘지 못하는데 이는 제조와 보관, 유통과 관련하여 제약과 애로사항이 있었다. 고려시대까지 증류법을 몰랐던 사람들은 몽고의 침략으로 인해 새로운 술의 제조법을 발견해낸다. 상류층 사회에서는 완성도 높은 소주 제조법이 유행처럼 퍼져나가 오늘날 그 명맥을 이어오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술로 안동소주와 진도 홍주 등이 있다. 청주를 증류할 때 세 번의 증류를 거치는데 초류, 중류, 후류로 가마솥의 온도가 88~90도 사이에서 물과 에탄올이 분리되면서 알코올이 나오는데 이것이 중류다.
순수 에탄올의 주정으로 끓이면 78.3도에서 끓지만 밑술로 사용하는 청주를 만들 때 물을 보태기 때문에 온도가 올라간다. 90도보다 더 온도를 높이면 에탄올과 물이 같이 섞여 나오는데 이때 술 도수를 맞추게 된다. 증류는 불로 온도를 조절하여 증류주를 만드는 상압식과 압력을 낮춰서 에탄올의 끓는점을 맞추는 감압식이 있다.
페르시아에서 최초로 만든 에탄올은 그곳을 점령한 칭기즈칸 군대가 방법을 배워왔고 이는 중국과 고려에 전파되었으니 세계는 아주 오래전부터 하나로 이어진 것이다. 과거 금주법이 시행되었던 미국에서 시작된 칵테일은 맛없는 술을 맛있게 먹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술을 마시는 방법으로 정착했다. 신평양조장의 다양한 막걸리와 재료로 칵테일을 만들었더니 제법 먹을만한 새로운 술이 만들어졌다.
술은 음식이며 지방의 문화이다. 일본에서 사케는 자율적인 경쟁 아래 지역의 맛을 만들며 발전해왔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 1973년에 정부는 소주 시장의 과다 경쟁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한 도에 소주 업체를 한 곳만 허락했다. 경남의 무학, 대구의 금복주, 부산의 대선, 대전의 선양, 광주와 전남의 보해, 충북의 충북, 제주의 한라산 등이 그것이다. 1996년 헌재의 위헌 판결로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지역 사람들은 지역 소주를 가장 많이 마신다.
시대가 변했고 사람들의 입맛은 10년 전과 달라졌고 10년 후에도 달라질 것이다. 신평양조장 같이 명맥을 이어오는 곳은 단순히 술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을 더하고 경험하고 체험하는 문화를 통해 100년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