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광 보호구역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 종일 전쟁놀음에 미쳐 진흙으로 대포를 만들고
도토리로 대포알을 만드는 전쟁광들이 사는 마을
줄줄이 새끼줄에 묶인 흙인형 포로들을
자동콩소총으로 쏘아 진흙밭에 빠트리면 무참히 녹아 사라지고
다시 그 흙으로 빚은 전투기들이
우타타타 해바라기씨 폭탄을 투하하고
민들레, 박주가리 낙하산 부대를 침투시키면 온 마을이
어쩔 수 없이 노랗게 물드는 꽃 피는 전쟁터
논두렁 밭두렁마다 줄맞춰 매설한 통깍지 지뢰들이 픽픽 터지고
철모르는 아이들이 콩알을 줍다가 미끄러지는 곳
아서라, 맨발로 달려간 할미꽃들이 백기를 들면
흐뭇한 얼굴로 흙전차를 타고 시가행진을 하는
무서운 전쟁광들이 서너 너댓 명 사는,
작은 전쟁광 보호구역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감상
처음에 시의 제목을 보고 6·25전쟁을 겪어본 분이 쓴 작품인 줄 알았다. 그러나 반칠환 시인은 49세, 즉 1964년생이셨다. 예상과 달리 시의 내용 역시 전쟁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꽃 피는 마을의 풍경(?)을 나타낸 것이었다. 표현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 전쟁이란 말을 사용한 것일 뿐. 이 시를 보면 건담로봇이나 장난감 비행기를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가 떠오른다. 그리고 '천방지축', '귀여움'이란 단어가 연달아 생각난다. 그만큼 순수하면서도 정겨운 느낌을 주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