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땅' DMZ 속으로] [1부] 긴장 흐르는 현실
본지, 언론사상 첫 내부 취재
[1] 파주~고성 248㎞ 항공촬영헬기가 돌풍을 일으키며 떠올랐다. 비무장지대(DMZ)와 그 너머 북한 땅이 한눈에 들어왔다. 헬기의 굉음이 고막을 찢을 듯했고 열린 문 사이로 들이닥친 찬바람에 안경과 볼펜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남방한계선에) 너무 가까이 붙었다" "아니다, 아직 안 넘었다"…. 길 안내를 맡은 선도헬기 조종사와 취재팀을 태운 UH60 헬기 조종사 간의 실랑이가 헤드셋을 통해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때였다. 갑자기 '펑!' 소리와 함께 폭죽 같은 것이 솟아오르더니 바로 눈앞에서 번쩍 터졌다. 폭죽은 붉은 연기 꼬리를 남기고 사라져갔다. 아슬아슬한 우리 헬기의 비행을 지켜보던 경기도 연천 부대의 GOP에서 월경(越境) 위험을 경고하는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이다.
6·25전쟁 이후 60년 동안 감춰져 있던 DMZ를 조선일보 특별취재팀이 헬기로 횡단한 것은 지난 2월이었다. 헬기는 한반도의 서쪽 끝 경기도 파주 금촌비행장을 이륙, DMZ의 남쪽 경계선인 남방한계선을 따라 동쪽 끝 강원도 고성까지 248㎞를 날았다. 북한을 1~2㎞ 지척에 둔 채 남방한계선 상공을 비행하는 것은 순수 군사목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취재헬기는 '○시 ○분 ○사단 ○○지점을 지나겠다'는 꼼꼼한 비행계획이 DMZ 경계를 맡은 11개 사단에 일일이 통보되고 승인이 난 뒤에야 비로소 시동을 걸 수 있었다.
이번 항공촬영은 조선일보와 국방부·육군본부가 6·25 60주년을 맞아 함께 추진하고 있는 'DMZ 종합기록물' 제작사업의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다.
- ▲ 남·북방한계선, 그 뒤에 금강산댐 한반도를 가로지른 비무장지대(DMZ). 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풍광 속에 숨죽인 동족의 긴장이 웅크리고 있다. 멀리 금강산 봉우리가 보이고, 그 아래 금강산댐이 머금은 푸른 물, 북방한계선과 북한 최전방 경계소초(GP), 그리고 오른편 아래쪽에 우리의 GP가 외롭게 서 있다(Canon 1D Mark Ⅳ 70~200㎜ 촬영). /DMZ 특별취재팀
하늘에서 내려다본 DMZ는 예상 밖으로 한반도에서 가장 평화로운 곳이었다. 고라니가 물을 마시고 두루미가 철책을 넘어 날고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적막만이 흘렀다. 57년 전 멈춘 전쟁, 그러나 57년간 계속돼온 전쟁의 한복판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였다. "DMZ의 평화가 깨지는 순간 한반도 전체의 평화도 끝장나기 때문에 DMZ는 늘 평화를 가장(假裝)해야 하는 곳"이라고 취재팀을 안내한 정훈장교는 말했다.
정지비행(hovering)하던 헬기가 고도를 높이자 멀리 북한 땅 임진강 상류에 시퍼런 물줄기를 막아선 하얀 둑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9월 무단 방류로 우리 국민 6명의 목숨을 앗아간 북한 황강댐의 실체가 최초로 확인된 순간이다. 강물은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남을 향해 흐르고 있었고 어른 키보다 높은 세 겹의 철책은 그 힘을 막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다.
강을 건너면 낮은 구릉들이 죽 연결되는 긴 능선과 너른 들판이 강원도 철원까지 펼쳐진다. 6·25 당시 최고의 격전지였던 백마고지·김일성고지·오성산 등 철원평야를 둘러싼 크고 작은 봉우리들은 유난히 흙이 붉고 능선이 구불구불했다.
- ▲ 펀치 볼 전경… 가운데가 움푹 파인 모양이 화채그릇을 닮았다 하여 6·25전쟁 당시 미군들이‘펀치볼(Punch Bowl)’이라 이름 붙였다는 강원도 양구군 분지(盆地). 해발 1100m가 넘는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이곳은 6·25 격전지였다. (Canon 1D Mark Ⅳ 16~35㎜ 촬영). /DMZ 특별취재팀
철원 풍천원 벌판엔 1100년 전 궁예가 도읍을 정하고 세운 도성과 6·25 전까지 서울~원산을 잇던 경원선 철도의 흔적이 또렷했다. 궁예도성 성벽이 지나던 자리엔 키 큰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거나 돌무더기가 군데군데 놓였고, 경원선 철도가 놓였던 높은 둔덕은 DMZ를 지나 멀리 북쪽으로 뻗어가고 있었다. 깨끗한 환경이 보존돼 겨울 철새의 낙원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재두루미 수십 마리가 헬기 소리에 놀라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평지를 곧게 달려오던 철책은 강원도 화천 산악지대로 접어들면서 거친 산등성이를 S자로 타고 돌며 올라갔다. DMZ 전체에서 산림은 75%를 차지한다. 초지가 20%, 농지와 습지가 각각 3%, 1%쯤 된다. 장엄한 산세가 거대한 파도처럼 출렁거렸고 뾰족한 산꼭대기마다 GP와 일반전초(GOP)가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각각의 GP에서 남방한계선 통문까지를 잇는 수색·보급로는 마치 긴 뱀 꼬리가 엉켜 있는 듯했다. DMZ 안 남한 GP에서 북을 향해 놓인 추진철책(군사분계선 쪽으로 더 전진시켜 놓은 철책)과 북한 GP에서 남으로 설치한 추진철책이 아슬아슬하게 맞닿은 곳도 있었다.
- ▲ DMZ 특별취재팀이 탑승한 헬기의 항로를 인도하고 있는 선도 헬기. /DMZ 특별취재팀
단장의 능선, 피의 능선 등 양구에서 인제를 지날 때 보이는 산봉우리들은 하나같이 수많은 사람이 피 흘려 죽은 6·25 격전지들이었다. 헬기가 남방한계선 위로 이동했기 때문에 민통선 지역인 펀치볼·용늪·향로봉 등은 DMZ 반대쪽인 남쪽에서 보였다.
창공을 날아오던 헬기는 백두대간에 들어서면서 산속으로 비행했다. 사천리계곡·고진동계곡·오소동계곡을 넘어갈 때 헬기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스치듯 날았다. 그만큼 봉우리는 높았고 골짜기는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공중에서 보이지 않을 만큼 깊었다. 산의 꼭대기가 지붕처럼 길게 연결된 뾰족한 선을 따라 철조망이 말의 목덜미에 난 갈기처럼 돋아 있었다. 거기서부터 천길만길 아득한 골짜기 아래까지를 잇는 수천 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경계근무를 서느라 무릎 관절염에 시달린다는 병사들 얘기가 실감이 났다.
☞ 최전방 경계소초(GP·Guard Post)
DMZ 안에서 상대편 동향을 감시하는 곳. 한국은 80여개, 북한은 280여개를 설치해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일반전초(一般前哨·GOP·General Outpost)
남방한계선에 설치된 소초. 소초(小哨)는 적은 인원으로 경계 임무를 맡은 부대, 초소(哨所)는 보초를 서는 장소를 뜻한다.
☞ 군사분계선(MDL·Military Demarcation Line)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당시 만들어진, 남과 북을 가르는 경계선. 서해안 강화부터 김포·파주·연천·철원·화천·양구·인제를 거쳐 동해안 고성까지 길이 155마일(248㎞)이다.
☞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
MDL로부터 남과 북으로 각각 2㎞ 떨어진 남방한계선~북방한계선 사이 폭 4㎞의 완충지대. 적대행위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정전협정 당시 설정했으며 군대 주둔·무기 배치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 민통선(CCL·Civilian Control Line)
남방한계선에서 남쪽으로 5~20㎞에 군사작전·시설보호·보안유지를 목적으로 만든 민간인통제구역 구분선. 농사·개간 등을 위해 민간인 출입통제를 완화한 마을들(통일촌 등)이 있다.
첫댓글 조중동은 어쩐지 신뢰가 가지 않아서, 소인은 두배로 살핍니다. 그 진정성을! 그러나 대표님의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