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한경면 판포리 191번지
비문 : 〈앞면〉漢城府尹金近漢 貞夫人密陽朴氏 之墓
〈뒷면〉공은 가락국 태조 수로왕의 60세손이시며, 신라 삼국통일의 위대한 공을 이룩하신 흥무왕 휘 유신 장군의 48세손이시고, 삼현파의 중조 유학을 진흥시키는 등 국가에 많은 공을 세운 版圖判書公國子師 諱 管의 11세손이시다. 또한 절효선생 휘 극일, 濯纓선생 문민공 휘 馹孫, 삼족당 휘 대유 3현의 후예이시니 文章과 절행이 만고에 탁월하시었던 문민공 휘 馹孫의 6세손이시다. 이와 같이 유구ᄒᆞᆫ 역사상에 거룩한 자취를 남기신 조상님들의 연면한 혈통을 이어받으시어 서기1578년 3월 17일 탄생하셨으며 정부인 밀양박씨와의 사이에 子 통정대부 휘 聲遠(近東)을 두시었다. 공은 어려서부터 영민하시고 널리 시화에 통하였으니 일찍이 문과에 급제 한성부윤에 오르셨다. 그 후 山水의 詠吟으로써 경세하시던 차 瀛洲 風致의 절승함을 들으시고 산천이 수려한 제주에 入島, 이곳 판포리를 새 삶의 터전으로 삼아 정착하시던 중 서기1628년 5월 2일 향년51세로 서거하시니 판포경 馬羅伊員에 乙作으로 장례지내시다.
공의 후예들은 나날이 융성발전하여 제주 전역과 국내외의 각계에서 국가와 사회에 크게 공헌하고 있음은 매우 欽快한 일이다. 무릇 인간의 발전은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알아 이를 닦아 나아가는 것이며 조상을 알고 섬기는 것은 우리 민족의 훌륭한 미풍양속이요, 도덕의 근본이라 할 것이다. 이에 숭조경종의식을 드높이고 천추만대에 후손들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하며 이 비를 세우다.
〈뒷면〉숭조위선사업에 평소 성의를 다하시던 11세손 창우 12세손 만용이 서기1941년 5월 5일 숭모비를 세웠었는데 광복후 년기가 바뀌고 묘비 규모를 일신하여야 한다는 의론이 있어오던 바 12세손 중림 외 9명의 독지로 제족들의 합의에 따라 이에 정성을 모아 새로이 개건한다. 서기1984년 4월 15일 김해김씨삼현파부윤공(근한)종친회 근수.
김근한은 선조11년(1578) 한양에서 출생하여 일찍이 문과에 급제한 후 검교(檢校)를 거쳐 광해군12년(1620)에 한성부윤으로 있다가 어지러운 국정을 바로잡기 위해 상소를 올린 것이 화근이 되어 벼슬에서 물러나고 명리(名利)를 떠나 제주에 낙향하여 한경면 판포리에 정착하였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김해김씨 삼현파 인터넷 족보에서 확인되는 바는 다음과 같다.
宣祖一六○八年戊申三月十七日生自幼性敏局量寬弘博通詩書常以山水之咏吟爲築得聞濟州十景之好遊覽次浮海累日到泊于濟州道西門外板浦里子孫始居焉○墓翰林邑板浦境馬羅伊乙坐有碑
配淑夫人密陽朴氏. 墓雙墳
족보에 따르면 그는 참판공 김맹(金孟)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순경(舜慶), 할아버지는 치삼(致三)이다. 치삼의 할아버지가 대장(大壯)이며, 대장의 아버지가 일손(馹孫)이고 할아버지가 김맹이다. 근한의 아들 이름은 근동으로 인조7년(1629) 수원리(수원리 36번지 속칭 ‘집근알’)로 이주·정착하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인터넷 족보에서 확인되는 이름은 성원(聲遠)으로 휘 근동이라고 한다. 인근(판포리 186-1번지)에 조상을 모시는 숭현사(崇賢祠)라는 사당이 있다.
《작성 2026.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