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 는 도계 중학교의 밴드부의 이야기인데,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순박한 도계 사람들을 생각했다.
도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착한 도시다. 나의 작은 글, ‘체게바라를 아십니까’ 는 그런 도계 역 앞의 중국집 부부의 이야기다.
도계는 강원도 산골의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석탄으로 오염되지만 않았다면 지리산 만큼이나 전국적인 여행지가 되었을 것이다.
도계역에서 태백역으로 넘어가는 기차 길에는 스위치백이라는 철로 구역이 있다.
지금은 터널이 생겨 이용하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 누구나 이용하던 곳이었다.
일본놈들이 석탄을 도둑질해서 묵호항까지 운반하기 위해 생긴 것이 영동선 철도다.
군산항은 쌀을 도둑질해서 일본으로 실어나르기 위한 항구였고, 묵호항은 석탄 도둑질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스위치 백을 만든 것이다. 도둑질을 위해서.
뉴라이트의 대부 안병직은 일제 강점기를 우리나라 근대사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일본 지바 대학에서 유학하고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를 하는 그의 역사에 대한 시각은 서양사에 머믈러 있다. 대학 교과서로 착각되어진 경제학 원론을 쓴 조순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근대사를 서양사로만 이해하고, 그것으로 우리의 역사로 날조한 것이다.
그래서 도둑질의 역사를 우리의 근대사로 전 국민들을 가르치려 하는 것이다. 통탄할 노릇이다.
일본놈들이 도둑질 하기 위한 스위치 백은 기차를 타고 지날 때마다 열 받았지만, 도계 터널은 더 열 받게 한다.
도계 터널은 십여년 이상의 공사기간과 함께 수조원의 엄청난 건설비를 들였다. 지역 경제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대기업 건설사는 지역 건설사에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하청을 주었고, 터널 건설 과정에서 부도가 난 지역 업체도 있었다.
도계 터널은 대기업의 배만 불려 준 셈이다.
비록, 일본놈들이 도둑질을 위해 만든 스위치 백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관광의 목적이 될 수도 있다.
빨리 가기 위해 터널을 뚫었다는 이유도 이해 하지만, 오히려 천천히 즐기면서 도계에서 태백으로 올라가면서 태백산맥의 자연과 동해바다를 내려다 보면서 가는 게 더 멋있지않은가.
뭐가 그리 급한가. 일본놈들이 도둑질한 장물을 보면서 보면서, 과거의 일본놈들을 비웃어 주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그런데, 서울대 나온 안병직과 경제학 원론을 쓴 조순에게는 더 열받는다.
서울대 나왔다고 잘 난건 알겠는데, 왜 그렇게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보수가 세련되어서 뉴라이트가 된 건 아는데, 안병직이 대부가 된 것은 도무지이해가 안간다.
“그렇게, 겨울은 길기만 했다.
교향악단 연주자를 꿈꾸었던 미래는 어둡기만 하고, 현실의 벽에 부딪쳐 떠나 보내야만 했던 사랑하는 연희는 주위를 맴돌며 아프게 했다.
트럼펫 연주자 현우에게 인생은 언제나 겨울일 것만 같다. 하지만, 나무는 고요히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우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강원도 도계 중학교 관악부 임시 교사로 부임하게 된다.”
오래 전, 보았던 최민식 주연의 영화 ‘꽃 피는 봄이 오면’ 이 생각나는 날이다.
도계의 검은 색과 하얀 눈이 대조를 이루었던 영화였다.
실제로 도계중학교 관악부는 1989년 창설 되어 전국 대회를 휩쓸었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가 영화 속 곳곳에 흐르고 있었다.
최민식은 트럼벳을 실제로 배운 것 이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을 것 같다.
그 영화는 도계가 만들어 주었다. 철부지 관악부 아이들과 도계의 검은 색 석탄과 하얀 눈이 만들었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면서 엉뚱한 생각을 했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던 산업혁명이었다.
한국의 산업혁명은 강원도 도계를 비롯한 탄광촌에서 시작되었다.
비록 일본 놈들이 전쟁을 위해 석탄을 캐서 묵호항에서 실어 갔지만, 우리의 산업혁명은 아쉽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두고, 뉴라이트들은 일본이 한국 자본주의를 도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절대로 자본주의는 자발적이어야 한다.
일본놈들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진 산업화와 자본주의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그것의 여운으로 625가 벌어지고 우리 민족은 지금도 큰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는 우리의 아픔을 표현한 것이다.
무너지는 탄광촌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도계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도계중학교 관악부 아이들 중에 한 명이 지금 묵호 지구대 경찰로 근무하고 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 는 도계 중학교의 밴드부의 이야기인데,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순박한 도계 사람들을 생각했다.
도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착한 도시다. 나의 작은 글, ‘체게바라를 아십니까’ 는 그런 도계 역 앞의 중국집 부부의 이야기다.
도계는 강원도 산골의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석탄으로 오염되지만 않았다면 지리산 만큼이나 전국적인 여행지가 되었을 것이다.
도계역에서 태백역으로 넘어가는 기차 길에는 스위치백이라는 철로 구역이 있다.
지금은 터널이 생겨 이용하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 누구나 이용하던 곳이었다.
일본놈들이 석탄을 도둑질해서 묵호항까지 운반하기 위해 생긴 것이 영동선 철도다.
군산항은 쌀을 도둑질해서 일본으로 실어나르기 위한 항구였고, 묵호항은 석탄 도둑질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스위치 백을 만든 것이다. 도둑질을 위해서.
뉴라이트의 대부 안병직은 일제 강점기를 우리나라 근대사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일본 지바 대학에서 유학하고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를 하는 그의 역사에 대한 시각은 서양사에 머믈러 있다. 대학 교과서로 착각되어진 경제학 원론을 쓴 조순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근대사를 서양사로만 이해하고, 그것으로 우리의 역사로 날조한 것이다.
그래서 도둑질의 역사를 우리의 근대사로 전 국민들을 가르치려 하는 것이다. 통탄할 노릇이다.
일본놈들이 도둑질 하기 위한 스위치 백은 기차를 타고 지날 때마다 열 받았지만, 도계 터널은 더 열 받게 한다.
도계 터널은 십여년 이상의 공사기간과 함께 수조원의 엄청난 건설비를 들였다. 지역 경제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대기업 건설사는 지역 건설사에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하청을 주었고, 터널 건설 과정에서 부도가 난 지역 업체도 있었다.
도계 터널은 대기업의 배만 불려 준 셈이다.
비록, 일본놈들이 도둑질을 위해 만든 스위치 백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관광의 목적이 될 수도 있다.
빨리 가기 위해 터널을 뚫었다는 이유도 이해 하지만, 오히려 천천히 즐기면서 도계에서 태백으로 올라가면서 태백산맥의 자연과 동해바다를 내려다 보면서 가는 게 더 멋있지않은가.
뭐가 그리 급한가. 일본놈들이 도둑질한 장물을 보면서 보면서, 과거의 일본놈들을 비웃어 주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그런데, 서울대 나온 안병직과 경제학 원론을 쓴 조순에게는 더 열받는다.
서울대 나왔다고 잘 난건 알겠는데, 왜 그렇게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보수가 세련되어서 뉴라이트가 된 건 아는데, 안병직이 대부가 된 것은 도무지이해가 안간다.
특유의 박자에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가끔 엇박자가 되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하고 빨라지기도 하고 지루박이 되기도 하고 디스코가 되기도 하고 왈츠가 되기도 하고 편안해진 마음이 춤을 추고 싶다가, 어느새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듣는다.
역무원의 명령으로 노래 듣기를 멈추고 다시 눈을 감았다.
어느새 도계다. 20 년전 방문했다가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소주를 마시고 짧은 글 하나를 쓴 적이 있다.
“또 눈이 내리길래 횟집을 하루 문을 닫았다. 그날, 모처럼 하얀색 기차여행을 작정했다. 같이 가자던 선배는 일 때문에 합류가 되지 않았고, 혼자 떠나게 되었다.
강릉 역 앞 작은 가게에서 막걸리 두병과 안주를 샀다. 기차는 평형을 유지하기에 술 마시는 여행으로는 그만이다. 묵호 역을 지나서 두 병을 전부 마셔버렸다. 그리고는 온통 하얀색 뿐이었다. 막걸리의 하얀색이 세상으로 취하고 있었다.
어느 새 도계역에 내려, 역 앞의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육십대 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부인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무얼 그리 열심히 쓰세요?"
"아, 한자요.....이번에 2급 시험 볼려구요."
"아! 대단하시네요."
퇴색된 탄광촌 기차 역 앞의 허름한 중국집에서 한자 공부를 열심히 하는 늙은 여자는 상큼했다. 주방에서 열심히 짜장면을 만들고 있는 늙은 여자의 남편 얼굴에 붙어 있는 귀걸이도 그러했다. 역시 여행은 다른 삶과의 만남이었다. 내 삶을 잠시 떠나서 다른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 도계역 앞은 그것을 충실하게 도와주었다.
게다가, 더욱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아주머니, 저기 저 사람 누군지 알아요?
"아, 저 사람, 체게바라요.....공산주의자, 혁명가 말이죠?"
소주 반병 정도 마시고 취기가 오르자, 나는 컴컴한 중국집 벽에 붙어 있는 그 사람 얼굴을 아무 기대도 없이 그녀에게 물어보고야 말았다. 설마 그녀가 그를 알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 물음은 순전히 술주정에 다름 아니었다.
"아주머니가 저 사람을 어떻게 아세요?"
"아.....개업할 때 호랑이 그림 주문하니까, 저 사람 사진이 따라왔어요. 그래서 사람이 하도 잘 생겨서 누군가에게 물어 보았더니...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녀를 얕잡아 본 것이 미안했다. 역시 이 쓰러져가는 시골 구석 중국집에서 아무 쓸데도 없는 한자 2급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하는 그녀가 아니던가.
어쩌면, 체게바라는 얄팍한 좌파 지식인의 서재보다도, 시꺼먼 탄가루가 날리는 이곳 강원도 오지에서 더욱 빛날지도 모른다.
나는, 그곳 도계역 앞 중국집에서 당연히 체게바라를 만나야 했던 것이다.”
도착해서 별로 갈 곳이 없었다.
중국집은 없었다. 역 앞에 부채찌게가 있어, 들어가서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여주인은 도계 출신인데 성남에 살다가 왔다고 했다.
도계의 검은색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나른함만이 남아 있다.
아! 문득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 이 생각났다.
도계 중학교 밴드부가 생각 나서, 도계 중학교에 가볼려고 하다가, 역 앞의 플랭카드에 써 있는 졸업생의 수상 소식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묵호로 오는 길은 기억이 안난다.
역무원이 깨워서 겨우 일어나 택시를 타고 원룸에 도착했다.
나의 휴게실에 텃밭의 애용자 부부와 어머니가 손짓을 한다.
술을 마시면서 어머니와 묵호 어판장 이야기를 했다.
천자봉 건어물 여자가 암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며, 전설적인 나의 대게 매출이며, 등등.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술이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