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이야기
노래란 말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어디서 생긴 말인지는 모르겠다
놀다란 동사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논다는 말에는 음주가무가 포함되는 거 같다
술마시고 먹고, 노래부르고 춤춘다는 말이다
우리 한민족이 음주가무를 좋아한다고도 한다
어느 민족은 그러지 않겠는가?
하긴 요즘 K-Pop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어려서는 학교에서 음악시간에 노래를 불렀다
학교엘 들어가면서부터 음악을 접하게 됐다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어려서 우리 동요로 알았던 노래들이
독일노래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이 노래도 독일노래였다
떴다 떴다 비행기는 미국노래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 집에 전축이 하나 생겼다
텔레풍켄이라는 상표가 새겨진 멋진 전축이었다
검정유리판에 금박으로 Telefunken이라고 박혀 있었다
앞에는 양쪽으로 열리는 문짝도 달려 있었다
왼쪽 반은 라디오가 있었고, 오른쪽 반은 전축이었다
전축 판 돌아가는 곳에는 빨간 전등이 들어왔다
아래쪽 반쪽에 스피커가 두 개인가 달려 있었다
스테레오 전축이라고 했다. 쿵쿵 소리가 참 좋았다
모양이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했다.
문짝의 크기가 양쪽이 똑같았고 손잡이가 양쪽 끝에 동그랗게 세로로 붙어 있었다. 그리고 양쪽 다 미닫이였다.
다리는 동그란 원추형으로 길이가 훨씬 짧았고 끝에 금속이 붙어 있었다. 전축의 키가 훨씬 더 작았다.
아래쪽 스피커 부분은 가로 나무장식이 없이 그냥 미색의 천이었다. 전체적으로 좀더 붉은색이었다.
전축이 귀했던 시절
작은 집의 사촌형이 친구들과 함께
클리프 리챠드의 더 영원즈 라는 레코드판을 들고
우리집에 와서 판을 틀어놓고 춤을 추기도 했다
아버님도 SP, LP판을 꽤 여러 장 사서 모으셨다
고복수, 황금심, 명국환, 박재란, 등의 판이 여러 장이었다
동네 아주머니들도 우리집에 오셔서 노래를 들으셨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하모니카가 생겼다
잠자리가 그려진 일제 톰보우라는 상표였는데
하모니카 독습서를 하나 사서 열심히 불었다
동요도 있었고 유행가도 있었고 팝송도 있었다
자주 하모니카를 분해해서 소제를 하고 그랬다
어머니는 수시로 "님께서 가신 길은~~"하는 노래를
흥얼거리시기 일쑤였다. 나도 속으로 가사를 읖조렸다
아버님은 한 잔 거나하게 걸치시면 늘 부르시는 노래가 있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꿈에본 내 고향이었다
우리 부모님 고향이 황해도 평산이시다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 나서 시간이 남을 때
친구들과 함께 유행가를 배웠다
빨간 구두 아가씨, 밤안개 등을 뜻도 모르고 따라 불렀다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맨발의 청춘도 불렀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기타를 하나 샀다
한복남 기타 독습서를 하나 사서 연습을 했다
삐꾸라는 삼각형 플라스틱 쪼가리로 열심히 기타를 뜯었다
오기택의 고향무정도 뜯고, 옛날 노래도 뜯었다
기타맨, 샹하이 튀스트 등의 팝송도 배웠다
대학교에 들어갈 때쯤 통기타가 유행했다
통기타를 하나 사서 삐꾸대신 손가락으로 뜯었다
박인희, 양희은, 튄 폴리오, 송창식 등의 노래를 뜯었다
이런저런 코드를 잡고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불렀다
야유회를 가거나 하면 기타를 들고 다녔다
군대 갈 때쯤해서 유행가를 배웠다
배호의 누가 울어, 마지막 잎새가 18번이 됐다
나훈아의 해변의 여인, 물레방아 도는데도 불렀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박경희를 좋아하게 됐다
따라 부르지는 못했다. 노래가 너무 어려웠다
사회에 나와서는 박경희가 출연하는 업소에도 다녔다
영등포시장에 있던 콜럼비아라는 곳이었다
키 작은 난장이가 기도를 봤다
박경희가 너무 일찍 사망해서 매우 애석했다
2004년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잘 모르겠다
남편도 이미 사망한 뒤였다고 하는데 후손은 없다고 알고있다
한 때는 박경희 테이프를 차에 꽂고 다녔다
아들래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내 생일선물로 준 테이프
처음엔 박경애의 곡예사의 첫사랑을 사왔다가
박경희라고 하니까 가서 바꿔왔다
집안 식구들도 여러명 와 있었는데
아들래미 한 마디에 모두 배꼽을 잡았다
"아빠 이거 바꿔달라고 하니까
아저씨가 저 아래쪽에서 꺼내서 먼지를 털어서 주시더라
그러면서 500원 깎아 주셨어"
아마도 박경애의 테이프가 더 인기가 많았었나 보다
여하튼 그 테이프가 닳도록 차에서 노랠 들었다
그냥 그 가수의 노래가 참 좋았다
요즘도 어쩌다 노래방엘 가서 노래를 부르게 되면
배호나 나훈아의 노래를 부른다
예전에 접대하느라 룸싸롱 같은 델 가게 되면
쟈니리의 뜨거운 안녕을 자주 불렀다
김정수의 당신, 편승엽의 찬찬찬도 자주 불렀다
분위기 띄우는 노래라고 그랬던 거 같은데
최근에는 그럴 일이 거의 없다보니
노래를 불러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그 때 그 시절
열심히 노래 부르던 시절이 생각난다
새벽에 잠이 깨어 갑자기 그 시절 생각이 났다
두서없이 주절거려 본다
첫댓글 시대별로 되짚어 주시니 지난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혼자
미소지어 봅니다.
감사합니다 ~^^
누구나 다 비슷하겠지요
감사합니다 ^^*
박경애 님이 돌아가셨군요.
노래가 어렵지만
깊은울림을주는 노래가 참 인상적이었는데.소설 제묵같은 곡예사의 첫사랑.
양희은노래.,클레식이 유행할때
황금심노래중.. 외로운 가로등이란 노래
노래에 대한 글을보니. 저도 마구쏟아지네요. 추억들이요
박경애가 아니고 박경희입니다
네 노래가 아주 어려웠던 가수지요
듣기는 좋지만 따라 부르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많은 가수분들이 있었지요
요즘은 이상한 이름의 K-Pop가수들이
세계를 주름잡고 있지요
상전이 벽해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경애,박경희 안타깝죠.
박경희 머무는 곳이 그어딘지도 몰라도와
저꽃속에 찬란한빛이..주옥같은 노래였었죠
선배님과 함께 노래 여행 잘하고 갑니다^^
박경희도, 박경애도 안타깝습니다
박경희는 대형가수였지요
감사합니다 ^^*
비슷한 시기를 살아서 즐겨 듣던 노래도 비슷비슷하군요.
글을 참 잘 쓰십니다.
그러시군요
동시대를 산다는 것도 인연입니다
아이고 저는 글쟁이가 아닙니다
그저 생각나는대로 끄적거리지요
늘 격려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
나도 박경히 노래 무척 좋아해서 카세트 테프 사서 듣고 했지요 따라 부르기도하고요
머무는곳 그어디인지 몰라도 등 등
잘생긴외모에 약간 외국인 티도 나고요 그때당시 사망 뉴스에 얼마나 놀랬던지...
박경희를 좋아하셨군요
1951년 6월생이더라구요
또래입니다
대형가수로 가창력이 아주 좋았었지요
너무 일찍 갔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배호 님의 '영시의 이별'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추억만 남겨놓은 젊은 날의 불장난"
영시의 이별 좋은 노래지요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인데...
감사합니다
배호의 안녕을 좋아 합니다 완벽한 저음이 정말 가슴을 파고 드네요 중딩때 잘사는 친척집에서 문짝달린 전축을 보구 부러워 했었지요 우리집 트랜지스터에서 듣던 배호노래가 생각이 나네요 참 불운한 가수 였지요 30대 초반에 저세상 사람이 됐으니 얼마나 아까워요 박경희 가수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거리 라는 노랠 불렀지요 너무 미인이라 박명했나 보네요
그러시군요
배호가 너무 일찍 갔습니다
박경희도 그렇구요
가인박명이란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이제 나도 70대 중반으로 달리네요
세월이 무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