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허돌과 비비추
 
 
 
카페 게시글
동산*문학관* 스크랩 자장면 배달은 상징찾기이다 외 / 채필녀
동산 추천 0 조회 5 16.05.21 23: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자장면 배달은 상징찾기이다 / 채필녀

 

 

  주소가, 안성군 대덕면 소현리 122리로 되어있는 우리

전화도 혼선 없이 걸려오고 번지수 없이 편지도 잘 들어

오지만, 유독 자장면 배달만은 애를 먹는다 전형적인 시골

풍경인 우리 동네는, 읍내와 통하는 길이 넓게 뚫려 가끔

자장면 배달을 시키는데 거기 위치가 어디쯤이냐고 물을

앞이 캄캄할 정도로 난감하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몇

설명하다 보면 이골이 나 뺄건 빼고 보탤건 보태가며

령이 생길 텐데 이건 갈수록 더듬거린다.

 

  우리 집은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첫 번째 집도

니고 수령 이백년 된 은행나무집도 아니고 마을회관

옆이나 뒤도 아닌 평범한 나무대문집이다 대문 안에

들어서면야 커다란 사철나무가 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 가지가 넘는 붓꽃이 자라고 있지만 자장면 배달은

대문 밖의 일이다 이름이나 번지수가 아닌 표시를 대라고

성화다, 아직 신이 오르지 않아 깃발도 꽂지 못하고

아들이 없어 농구대도 세우지 못한 나는, 우리 집 지도를

그릴 길이 막막하다 길이 없다

 

  비 오는 날, 대무 밖에 나가 무슨 깃발처럼 두 팔을 흔들

배달된 불어터진 자장면을 먹으며 내가 누구에게든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마전초등학교 애국조회 / 채필녀

 

 

내가 사는 경기도 안성군 보개면 상삼리

마전초등학교는 월요일마다 애국조회를 선다

교문 밖 양버즘나무 까치집에만 올라가도

손바닥만한 운동장에

차돌맹이 아이들 여남은 명 세워놓고

웬 목청을 그리 돋우는지

새로 부임하신 교장선생님

마이크 볼륨을 있는 대로 높이고

목이 터져라 말씀하신다

일찍 일어납시다

거짓말하지 맙시다

전기를 아낍시다

이웃 산동네까지 쩌렁쩌렁 울린다

날이라도 흐리면

교장선생님 말씀은 더 가까이에서 들려

침이 다 튈 지경이다

상삼리 하삼리 마전리 사람들은 어느 덧

지루한 애국조회에 허리를 꼬기도 하고

군대항 사생대회에 나가 상을 타온

4학년 김경미에게 박수도 치며

마전초등하교 어린이가 되어

살아간다

 

 

 

 

 

 

젊은 우체국장이 있는 풍경 / 채필녀

 

 

우체국이 새로 생겼어요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
신호등은 없지만 무단횡단이 가능하죠
주.정차도 할 수 있어요
빨간 우체통을 한 백개쯤 붙여놓은 건물이에요
나는 엽서를 사러 들어갔어요
커다란 우체통 속으로 미끌어지듯이요
문을 여는 순간 꽝!
가슴에 스탬프가 찍혔어요
젊디 젊은 우체국장이 앉아있지 않겠어요?
어서 오세요!
샘 솟는 목소리, 그는 뱃속에 샘물이 있어요
책상이며 화분, 액자, 모든게 새거였고
휴지통엔 휴지가 하나도 없었어요
온도 습도가 알맞아
동양난이 촉촉하게 피어있어요
나는 주소불명의 편지처럼 어리둥절했어요
젊은 우체국장이라니,
뜻 밖의 소포 같은,
축하의 전보 같은,

젊은 우체국장이 있는 우체국에 오시지 않겠어요?
그대, 한장의 엽서가 되고
그리운 편지, 소중한 선물이 되어
어디든 속달로 날아갈 거에요
수취인 불명, 거부, 상실, 부치기 힘들 때, 어서 오세요!
젊은 우체국장과 물결과 바람이
새파란 빛살로 차오르겠지요?
너무 멀다구요? 밤에는 봄이 안오나요?

(근처에 다른 구경거리 없냐구요? 있죠, 우체국에서 2분만 가면
대덕면사무소가 있는데 뜨락의 국화, 우표 전시장처럼 다양하고
벌떼들 잉잉거림, 관람객의 탄성이지요)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