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배달은 상징찾기이다 / 채필녀
주소가, 안성군 대덕면 소현리 122리로 되어있는 우리 집은 전화도 혼선 없이 걸려오고 번지수 없이 편지도 잘 들어 오지만, 유독 자장면 배달만은 애를 먹는다 전형적인 시골 풍경인 우리 동네는, 읍내와 통하는 길이 넓게 뚫려 가끔 자장면 배달을 시키는데 거기 위치가 어디쯤이냐고 물을 땐 앞이 캄캄할 정도로 난감하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몇 번 설명하다 보면 이골이 나 뺄건 빼고 보탤건 보태가며 요령이 생길 텐데 이건 갈수록 더듬거린다.
우리 집은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첫 번째 집도 아니고 수령 이백년 된 은행나무집도 아니고 마을회관 옆이나 뒤도 아닌 평범한 나무대문집이다 대문 안에 들어서면야 커다란 사철나무가 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열 가지가 넘는 붓꽃이 자라고 있지만 자장면 배달은 대문 밖의 일이다 이름이나 번지수가 아닌 표시를 대라고 성화다, 아직 신이 오르지 않아 깃발도 꽂지 못하고 아들이 없어 농구대도 세우지 못한 나는, 우리 집 지도를 그릴 길이 막막하다 길이 없다
비 오는 날, 대무 밖에 나가 무슨 깃발처럼 두 팔을 흔들어 배달된 불어터진 자장면을 먹으며 내가 누구에게든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마전초등학교 애국조회 / 채필녀
내가 사는 경기도 안성군 보개면 상삼리 마전초등학교는 월요일마다 애국조회를 선다 교문 밖 양버즘나무 까치집에만 올라가도 손바닥만한 운동장에 차돌맹이 아이들 여남은 명 세워놓고 웬 목청을 그리 돋우는지 새로 부임하신 교장선생님 마이크 볼륨을 있는 대로 높이고 목이 터져라 말씀하신다 일찍 일어납시다 거짓말하지 맙시다 전기를 아낍시다 이웃 산동네까지 쩌렁쩌렁 울린다 날이라도 흐리면 교장선생님 말씀은 더 가까이에서 들려 침이 다 튈 지경이다 상삼리 하삼리 마전리 사람들은 어느 덧 지루한 애국조회에 허리를 꼬기도 하고 군대항 사생대회에 나가 상을 타온 4학년 김경미에게 박수도 치며 마전초등하교 어린이가 되어 살아간다
젊은 우체국장이 있는 풍경 / 채필녀
우체국이 새로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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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淸韻詩堂, 시를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