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유산 외 1편
오성인
창문을 통해 누군가 자꾸만
나를 엿보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 한시도 마음을 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꼬리도 없는데 꼬리뼈가 욱신거려
불안한 아버지는 창문을 없애고
공기만 겨우 드나들 정도의
틈새만 남겨 두고 방문을 열고 닫았다
한낮에도 볕이 들지 않아서 아버지 방은
언제나 어둡고 서늘했는데
아버지는 숨는 데 자주 실패했다
얘야, 저기 문에 귀가 붙어 있으니
얼른 떼라 시간이 뒤죽박죽되어
없는 죄가 씌워지기 전에 올가미에
발이 걸려 거꾸로 매달린 산짐승처럼
옴짝달싹 못 하기 전에
유서 깊은 잔혹극이 막을 내려야 할 텐데
그늘진 표정의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려줄 것이 겨울밖에 없어서 미안하다고
나를 밀어내려 애썼지만 나는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고 오랜 겨울을 살고 있는
아버지에게 뿌리보다 깊고 질긴
심장을 밀어 넣었다
녹지 않는 눈사람
얘들아 일어나렴 어서 세상이 온통 하얗다
이른 새벽, 키를 훌쩍 넘는 폭설에 묻히는
꿈에 깊이 빠진 우리를 깨우며
엄마는 눈사람을 만들러 나가자고 했다
눈은 녹아 버리잖아요 여름에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를
간신히 일으켜 세웠는데 다시 녹아서
사라져 버리면 어떡해요 안 나갈래요
안 나가겠다고요
한사코 버티는 나에게 그러면 녹지 않게
하면 된단다 내가 몸을 만드는 동안
너희는 봄이 오고 여름이 와도
사라지지 않는 얼굴을 만들어라
엄마의 말을 듣고 동생과 나는 눈밭에서
몸을 더욱 잘 숨길 수 있는 그늘을 찾아
헤매느라 고단한 아버지와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떨고 있는 삼촌의 표정을
찾아다녔다 두렵고 불안한 표정을
뭉쳐 만든 얼굴을 엄마가 만든 몸통에
붙이자 녹지 않는 겨울이 완성되었다
엄마와 우리가 처음 만든 눈사람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 오성인 시집, 『이 차는 어디로 갑니까』 (걷는 사람 / 2023)
오성인
광주 출생. 2013년 《시인수첩》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푸른 눈의 목격자』. 대산창작기금과 나주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