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중심은 내가 아니다" 몰몬교 장로가 말한 신앙 핵심
중앙일보
입력 2022.11.17 00:26
업데이트 2022.11.17 13:36
업데이트 정보 더보기
지면보기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구독
백성호의 현문우답
구독중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길을 가다 보면 하얀 셔츠에 검은색 명찰을 단 외국인 선교사를 만날 때가 있다. 두 명씩 짝지어 다니는 그들은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몰몬교)의 선교사들이다. 대부분 20대 젊은이다. 그렇다고 성직자를 꿈꾸는 이들도 아니다. 늘 궁금했다. 그들은 누구이며, 왜 한국 땅에 온 걸까. 그들의 실제 생활은 또 어떤 걸까.
10일 서울에서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의 제임스 알 레스번드(59) 장로를 만났다. 그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ㆍ몽골ㆍ괌ㆍ마이크로네시아를 관할하는 북아시아 회장단 1보좌를 맡고 있다. 그 역시 젊은 시절 한국에서 선교사 생활을 했다.
레스번드 장로는 미국에서 천연 자원법 분야의 저명한 법학자다. 그는 "선교사 생활은 자신을 광야에 세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선교사로 왔을 때 몇 살이었나.
“스무 살이었다.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휴학했다. 그때 한국에 와서 1982년부터 18개월간 선교사로 지냈다.”
40년 전의 한국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당시 선교지가 한국이 될 줄 알았나.
“몰랐다. 개인적으로 프랑스로 갔으면 했다. 제 아버지도 프랑스에서 선교사 생활을 했다. 그래서 저는 고등학생 때 라틴어랑 프랑스어도 공부했다. 그런데 선교지가 한국으로 결정됐다.”
선교지는 누가 결정하나.
“교회에서 결정한다. 개인적 희망은 있을 수 있으나 교회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한국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놀랍기도 했지만 흥분되기도 했다. 아시아 국가라 언어와 문화 등 아주 새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와서 보니 어땠나.
“40년 전에는 지금만큼 아파트가 많지 않았다. 가가호호 문을 노크하며 방문했다. 한국 오기 전에 이스라엘에서 교환학생으로 6개월간 지냈다. 키부츠 농업공동체에서 생활하며 공부했다. 중동에는 미국인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국은 달랐다. 친절했다. 사람들이 잘 웃고 유머러스했다. 문을 두드리면 이렇게 말했다. ‘교회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 않지만, 들어와서 뭐라도 좀 드시고 가세요.’ 그게 놀라웠다.”
왜 놀라웠나.
“낯선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고 음식을 권하는 유교적 전통이 미국에서는 흔한 게 아니다.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수박이나 귤, 초코파이 같은 걸 내주었다. 그래서 교회 회원이 되진 않더라도 친구로 지내는 한국 사람이 많았다.”
스무 살의 레스번드가 1982년 서울 강남의 영동에서 2인 1조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의 강남과 너무 다른 풍경이다.
경기도 성남에서 선교 봉사를 하며 만난 아이들과 함께했다. 오른쪽이 스무 살의 레스번드 장로다.
레스번드 장로가 선교사 시절 서울의 고궁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제임스 알 레스번드.
20대는 청춘의 황금기다. 2년 가까운 시간을 뚝 떼어내 이국땅에 가서 선교사로 산다는 게 쉽지는 않다. 언어도 낯설고 문화도 낯설다. 선교사 기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까. 20대 초반은 한창 자기 꿈을 꿀 때이니 말이다. 이 물음에 레스번드 장로는 이렇게 답했다.
“선교사 기간이 나에게는 한 마디로 ‘광야’였다. 광야를 경험하기 전과 광야를 통과한 후의 나는 달라졌다.”
어떻게 달라졌나.
“광야를 경험하기 전에는 이 우주의 중심이 나였다. 나를 중심으로 이 세상과 우주가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선교 봉사를 하기 전의 제 관심사는 주로 학업과 여자 친구, 스포츠와 음악 등이었다. 내가 반에서 1등을 할 것인가. 무슨 음악을 들을 건가. 어떤 경기를 볼 건가. 이번 주말에는 어떤 재미있는 일을 할까. 모든 걸 나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했다.”
광야에 서보니 어땠나.
“선교사 생활은 달랐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 다른 사람과 함께 친구가 되고, 함께 지내는 법을 배워야 했다. 점점 더 나 자신에 대해 덜 생각하게 되더라. 그때 깨달았다. ‘아, 이 우주의 중심이 내가 아니구나!’ 그리고 또 하나 크게 배운 게 있다.”
그게 뭔가.
“사람들이 저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고, 그게 틀린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가령 선교 활동을 하다 보면 불교 신자도 만나게 된다. 그분들은 신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더라. 그게 또 제게는 도움이 됐다. 많은 종교의 교리들이 복잡하고 심오한 의미가 있었다. 동시에 나만의 종교적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게 감사하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레스번드 장로가 테블릿에 담아둔 자신의 선교사 시절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백성호 기자
백성호의 현문우답 다른 기사
이전 법륜 스님 "갖가지 위기 봉착한 지구촌...궁극적 원인 딱 하나"
다음 김형석 교수 "정말 사랑한다면 자녀의 '이것' 소중히 여겨라" [백성호의 현문우답]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선교사들은 2인 1조로 움직인다. 그들은 서로 “동반자”라고 부른다. 방도 함께 쓰고, 밥도 같이 먹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늘 같이한다. 그게 규칙이다. 바깥에서 한 사람이 공중 화장실을 간다면, 동반자는 입구에서 기다려야 한다. 해외 선교지마다 정치ㆍ사회적 상황이 다르다. 선교사의 안전을 위한 내부 규칙이기도 하다.
동반자와 거의 24시간 함께 지내야 한다. 마음이 맞으면 좋지만, 안 맞으면 힘들지 않나.
“그게 또 하나의 ‘광야’다. 그걸 맞추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성장한다. 제 동반자 중에 부산 출신 한국인이 있었다. 당연히 동반자가 저보다 한국어를 잘했다. 그러니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동반자에게만 말을 걸었다. 저는 그게 아쉬운 거다. 동반자랑 식사도 늘 같이한다. 가령 미국식 팬케이크를 구웠다. 나는 버터랑 시럽을 뿌려서 먹는다. 그런데 제 동반자는 팬케이크를 김이랑 김치에 싸서 먹었다. 그런 차이를 경험하면서 결국 내가 크게 성장하더라.”
그건 어떤 성장이었나.
“선교 봉사를 떠나기 전에 나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같은 대학에 다녔다. 선교사 생활 동안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는 않을까. 솔직히 말해 당시에는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그 사람이 지금은 제 아내다. 그런데 배우자라 하더라도 취향과 관점이 다 똑같지는 않다.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차이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항상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결혼 생활에서 그건 아주 중요하더라. 저는 그걸 선교사 생활에서 이미 배웠다. 나와 의견이 다를 수 있고, 그게 틀린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런 식으로 광야는 나에게 많은 삶의 지혜를 주었다.”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의 선교는 자발적이다. 선교사 기간 사용하는 비용도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학생들은 아르바이트 등으로 저축을 한 뒤 선교 봉사를 떠난다. 한국 서울 선교부 배동철 회장은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의전세계 선교사 수는 현재 6만여 명이다. 예전에는 10만 명까지 있었다. 현재 한국에는 250여 명의 선교사가 와 있다”며 “전문 성직자를 꿈꾸는 이들이 아니다. 선교 봉사를 마치면 대학 복학 등 자신의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간다”고 말했다.
선교사 생활 이후에 당신 삶의 무엇이 달라졌나.
“뭐랄까. 좀 더 수월해졌다. 더 쉽게 봉사를 하고, 더 쉽게 다른 사람을 돕고, 더 쉽게 청소를 하게 됐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가서 돕는 일도 예전보다 수월하더라. 아마도 덜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방식을 선교사 생활 때 익힌 것 같다.
레스번드 장로는 "순수한 종교라면 복잡할 필요가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레스번드 장로에게 ‘가장 가슴에 담아두는 성경 한 구절’을 물었다. 그는 신약성경 야고보서 1장 27절을 꼽았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이 구절은 순수한 종교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첫째 고아나 과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라. 둘째 세속에 물들지 말고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라. 순수한 종교라면 그렇게 복잡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저는 이것이 종교의 핵심이라고 본다.”
◇제임스 알 레스번드 장로=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 북아시아 회장단 제1보좌를 맡고 있다. 미국 브리검 영 대학을 나와 하버드 대학 로스쿨을 졸업했다. 로펌 변호사를 거쳐 브리검 영 대학 학술 부총장을 역임했다. 천연 자원법 분야의 저명한 법학자다.
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18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