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2. 4. 큐티
예레미야 42:1 ~ 6
유다 잔류민들이 진로 결정을 위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하다
관찰 :
1) 유다 잔류민들이 예레미야에게 나아와 여호와의 예언을 요청하다
- 1절. “이에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나아와”
a. 예레미야는 유다의 초대 총독이 된 그다랴를 중심으로 유다의 재건을 시도했다는 사실과 이스마엘이 그다랴와 성전 순례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기록한 40:7 이후에 모습을 감추었다가 본 장에서 남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예언을 전달하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b. 예레미야는 당시 느부사라단의 구출을 받은 직후 미스바로 가서 총독 그다랴에게 나아가 그와 더불어 지낸 것으로 봅니다. 이스마엘에게 예레미야는 적대시되는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가 죽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연이 아니라 요하난에게 유혹 당하여 애굽으로 망명하는 길을 선택하는 유다 백성들에게 유다 땅에 남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리시고자 이스마엘의 칼날에서 예레미야를 구하신 것입니다.
c. 요하난은 바벨론 왕이 세운 유다 총독 그다랴를 암살한 이스마엘을 잡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다랴의 살인 사건에 대한 책임 추궁을 당할 것을 두려워웠던 요하난은 남은 백성들을 데리고 베들레헴 근처 레롯김함에 피신해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하난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은 바벨론의 보복을 피해 애굽으로 가야 할지 아니면 미스바로 돌아가야 할지를 묻기 위해 하나님의 선지자 예레미야 앞으로 모두가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백성들이 바벨론 왕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애굽으로 가야한다는 주장과 하나님의 명령대로 유다 땅에 머물러야 한다는 주장으로 의견이 나뉘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 2절.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a. 남은 백성들은 자신들의 기도가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께 전달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그러한 태도는 43장에서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고자 예레미야에게 나아와 간곡한 청을 한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애굽으로 가고 싶은 자신들의 소망을 선지자 예레미야가 용납해 줄 것을 이런 형태로 표현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b. 요하난을 비롯한 유다의 남은 백성들은 참된 기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간절함만 부각시켰을 뿐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마음은 없었던 것입니다.
c.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찾아온 유다의 남은 백성들의 기도와 태도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어떻게 일하실지를 궁금해 한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기도의 응답이 자신들의 생각에 맞지 않거나 자신들의 유익과 상반된다고 판단되면 언제라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이를 순종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예레미야가 거짓을 말했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댔습니다(43:2).
d. 유다의 남은 자들은 자신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이고, 예레미야가 여호와 하나님의 참선지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들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 3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a. 이스라엘 유민들이 갈 길과 할 일을 보여달라고 한 것은 그들이 유다 땅에 남아야 할지 애굽으로 떠나야 할지를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할 바른 기도였습니다.
b. 그러나 그들이 기도한 바에 대한 응답이 주어졌을 때 이에 대하여 순종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본심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예레미야가 기도할 것과 하나님의 신탁을 전할 것을 약속하다
- 4절.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말하리라”
a.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시드기야 왕에게 전했다가 구덩이에 빠져 죽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환란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요하난과 남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b. 메신저의 역할은 메시지를 받는 자들의 입장에서 메시지를 조작하여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보낸 이의 온전한 의도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임을 예레미야는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유다 잔류민들이 여호와의 신탁에 순종하기로 다짐하다
- 5절.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을 행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a. 요하난을 비롯한 유다의 남은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갈 길과 행할 일을 보여주시면 그대로 따르겠다고 약속했고(3절), 이제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조금도 감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예레미야가 전달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가 아닌 하나님의 참 선지자로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b. 그러나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애굽으로 가지 말 것과 만약 갈 경우에는 재앙을 내리겠다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하자 그들은 그 즉시 이에 대하여 바룩의 사주를 받은 예레미야의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이게 됩니다(43:2-3). 즉 자신들의 뜻과 생각에 일치하지 않는 예언을 전달하자 예레미야를 배척합니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약속과 맹세가 거짓이었음을 보이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방근 스스로 한 말에 대해서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번복해 버리는 완악한 자들이었습니다.
c. 유다의 남은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지키겠다고 교만하게 호언장담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말의 진실성을 보장하기 위해 신실하신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웠습니다. 만일 유다의 남은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겠다는 말을 진실로 한 것이었다면 굳이 경외의 대상인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여 서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6절.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a. 유다의 남은 자들은 예레미야를 하나님께 보내는 이유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라는 의미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목적이 기도하는 사람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기보다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대로 순종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유다의 남은 백성들의 말은 올바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후에 행해진 그들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이 무책임한 공수표를 남발한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이러한 호언장담은 허울 좋은 맹세에 불과했고,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죄에 더하여 위증과 기만의 죄까지 더한 것이 되었습니다.
b. 유다의 남은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통해 듣기 원했던 것은 애굽으로 가도 좋다는 말, 하나님의 뜻이 애굽으로 가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유다 총독 그다랴가 살해 당한 일로 발생할지 모르는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애굽으로 가도 좋다는 하나님의 응답은 바벨론 왕의 보복을 피할 수 있으므로 좋은 것이고, 유다에 남으라는 하나님의 응답은 바벨론 왕의 보복을 받게 될 것이므로 좋지 않은 것이라는 판단 기준을 이미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정말 하나님께서 어떤 결정을 내리시든 그 분의 뜻을 따라 순종하려는 성숙한 신앙이 있었다면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좋고 나쁨의 판단조차도 미루어 놓았어야 했을 것입니다.
가르침 :
1) 유다의 남은 백성들은 의견이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다랴 죽음의 책임을 지기 싫으면 애굽으로 가자는 의견과 하나님이 명하셨으니 애굽에 머물자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이들은 참 선지자 인정을 받고 있는 예레미야에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에게 자신들을 위해서 기도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겠다는 그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뜻대로 될 경우라는 전제가 붙어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는 자의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기도를 요청할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아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가고자 그것을 간구하는 것이 참된 기도입니다.
2)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기도를 하는 경우 더욱 기도는 잘 응답됩니다. 하나님의 응답하심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강단이 있는 기개로 주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메신저의 역할은 메시지를 받는 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메시지를 손보아 좋은 말만 골라서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성경의 참된 메시지를 청중이 싫어할지라도 바르게 전달하는 메신저가 많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고 하고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니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는 자들은 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5)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스라엘이 수천 년간 유리 방황하는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민족이 그 말씀이 원하는 삶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함으로 유리 방황하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결국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했습니다. 그리고 참된 회개가 없었습니다.
6) 주님의 말씀을 맡는다는 것은 너무나 귀하고 위대한 책무이지만, 그 말씀에 합당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한다면 저주스러운 책무가 될 것입니다.
적용 :
1) 예레미야가 끝까지 고수했던 것과 같이 말씀을 그대로 증거하는 메신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이 나의 원함과 달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습니다. 그것이 메신저가 되는 것보다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목사라는, 선교사라는 직책에 속지 말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바르게 세워지는 것에 더 집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