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권 문협 수필분과 회장] “뒤집어 보는 思考”
요즈음 시내 모 대학에서는 『反文化운동』이라는 구호 아래 세상만사를 한번 뒤집어서 생각해 보자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즉, 젊은 학생들로 하여금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논리를 모색함으로서 창의적인 자기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 이 운동의 근본 취지라고 한다.
얼핏 보기에는 기존질서와 권위에 도전하여 투쟁적 저항으로 파괴도 불사하는 듯한 인상이 풍겨 일반 국민들로서는 적잖은 불안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정작 대학당국의 책임자는 『기성 질서에 대한 再考와 도전은 미래를 준비하는 대학생들의 발전과 창의를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다』라고 전제하고 파괴적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면 학교당국으로서는 간섭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하니 과히 염려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굳이 변증법적인 논리를 빌리지 않더라도 사회의 발달과 변천과정에서는 모순대립관계의 순화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어제는 분명히 옳았다고 생각했던 논리도 오늘에 와서는 수정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을 것이고, 또한 오늘 절대진리로 믿었던 것이 내일은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날 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주관이나 지식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순과 오류를 믿고 있을 때가 많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無不通知의 석학이라 하더라도 그가 알고 있는 것 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이며 속성이다.
언젠가 매스컴에 발표된 것을 보니 우리 인간에게는 대개 15억개의 뇌세포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이중 1할 가량만 활용하고 9할이상은 그대로 사장을 하고 있으며 아인슈타인과 같이 평생 동안 연구에만 몰두한 사람일 경우에도 뇌세포 활용도는 겨우 15퍼센트를 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자기능력의 1할 정도 밖에 발휘하지 못하는 인간이 그 어찌 우주의 신비와 진리를 다 터득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물 안의 개구리같이 자기가 보고 있는 지식만을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러할 때 우리는 기존의 생각을 뒤집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선 친구간에 오해가 생겨 서로 소원해 졌을 때, 자기 입장만을 고집하지 말고 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 한다면 그간에 쌓였던 오해는 금세 풀릴 것이다.
또한 현재 아무리 心身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도 자기보다 더 고통을 받는사람의 처지를 진정으로 생각하게 되면 자기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심리적 변화를 맛보게 될 것이다. 저 수많은 기독교인의 순교정신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음미해 보면 쉽게 이해 될 것이다. 『고통도 뒤집으면 기쁨이 된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우리 인간에게만 깨우침을 준 신의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얄팍한 지식으로 마음의 벽을 쌓지 말고 늘 새로운 상념을 북돋우면서 부단히 자기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만과 아집에서 물러서서 겸손과 포용으로 대하면 모든 것이 새로운 悟性으로 다가온다.
사물을 이해하는 능력을 오성이라고 할 때, 이 오성이 풍부한 사람은 話術이 풍부하고, 또 화술이 풍부한 사람은 사교와 통솔력에서도 남보다 뛰어나게 마련이다.
원래 헤겔의 변증법 이론도 對話術에서 비롯되었다. 즉, 논리적인 대화, 설득력 있는 화술을 위해 고안해 낸 것이 正反合의 원칙이요, 변증법적 이론이다.
따라서 필자는 일부 학생들이 주창한 『뒤집어 보는 思考』가 아무리 話法을 장식하는 재치 있는 이론이라 하더라도 자기 존재마저 부정하는 위험한 사고로 轉倒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미리 경고해 둔다.
모름지기 역설적 화법이나 뒤집어 보는 思考는 그것이 진리탐구를 위한 창의적인 動因으로 승화될 때만이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