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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짧고도 감동이 긴 이야기
1. 용서받아야 할 인간
어느 날 존 웨슬레는 사람들에게 용서에 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에 그 자리에서 설교를 듣고 있었던 아주 거칠고 난폭하기로 소문난 한 장군이 웨슬레 앞에 나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그러나 나는 죽어도 나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사람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때 웨슬레는 그 장군에게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장군님, 그렇다면 장군님은 앞으로 죽어도 죄를 짓지 마셔야 합니다.”
또한 존 웨슬레가 길을 가다가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웨슬레는 그 친구가 오랫동안 어떤 사람과 원수로 지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웨슬레가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아직도 그 사람을 미워하고 있는가?"
그러자 그는 “그럼!"하고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웨슬레가 이제 그만 그를 용서하고 화해하기를 권면했지만 그 친구는 죽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좋네. 그럼 계속해서 그 사람을 미워하게. 하지만 자네가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네. 앞으로 자네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을 짓을 해서는 안되네. 혹시 그 상대가 자네처럼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일줄 누가 알겠나?"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로새서 3: 13
2. 모두가 축복받는 용서
존경받는 그리스도인이었던 아브라함 링컨(Lincoln, Abraham) 대통령은 언제나 그를 붙들고 늘어지면서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수모와 욕을 안겨주는 정적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사람들에게 “여러분, 우리는 고릴라를 보기 위해서 아프리카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일리노이의 스프링필드에 가면 오리지널 고릴라를 볼 수가 있습니다.”라며 링컨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스프링필드가 링컨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고 링컨의 생김새가 고릴라 같았기 때문에 빗대어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링컨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내각을 조직하면서 가장 중요한 국방부장관 자리에 바로 이 사람을 임명하였습니다. 모든 참모들은 링컨의 이런 개편에 충격을 받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참모들이 링컨에게 어떻게 당신의 적을 그런 중요한 자리에 앉힐 수 있냐고 물었더니 링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제 그 사람이 적이 아니지 않소. 나는 적이 없어져서 좋고, 그가 나를 돕게 되었으니 내가 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서 좋지 않소. 내가 이 사람을 용서하고 중요한 자리에 임명한 것으로 인해서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잃었단 말이오?”
복수는 복수하는 사람과 복수 당하는 사람 모두를 파멸시킵니다. 그러나 용서는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축복합니다. 복수를 해서 승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용서함으로 링컨은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잠언19: 11
3. 사람을 변화시키는 용서
어느 날 영국의 웰링턴 제독이 자기의 병사 가운데서 구제불능인 병사 하나를 사형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너를 가르치려 했지만 너는 그 가르침을 받지 않았고 다시 너를 징계하여 고치려 했지만 그 징계도 너의 삶을 돌이키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너를 감옥에 가두기까지 했지만 너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았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너를 사형하는 길이므로 사형을 집행한다.”
이때 그 병사의 친구가 갑자기 뛰어 들어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웰링턴 제독님, 하지만 제독님이 저 병사에게 안한 것이 꼭 한 가지 있습니다. 각하께서는 저 친구를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친구의 말에 제독은 마음에 감동을 받아 사형을 취소하고 그를 용서했습니다. “용서한다. 내가 조건 없이 너를 용서한다.”
그 다음부터 이 병사는 완전히 달라져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용서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18: 35
4. 아내의 기도
제 아내는 저보다 마음이 넉넉하고 관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때로는 많은 인간관계를 통해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을 텐데 저는 한 번도 아내가 남을 비판하거나 욕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당신은 어떻게 남에 대해 흉을 보거나 하지 않소? 싫은 사람이 한 명도 없나보오.”
“왜 저라고 없겠어요. 저도 사람인데요. 하지만 싫은 사람이 있거나 저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생기면 먼저 하나님께 그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느 날 외출을 하고 돌아왔는데, 아내가 울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저는 지난번 아내와 나눈 대화가 생각이 나 ‘누구를 위해 기도할까’하고 살며시 다가가서 기도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 제 남편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립보서 4:5
5. 토마스 모어의 최후 진술
‘유토피아’(Utopia)를 저술한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사형 언도를 받고 마지막 재판관 앞에서 최후 진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모어, 당신은 최후의 진술을 할 수 있소.”
“재판관님,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천국에서 당신과 친구로서 만나고 싶다는 것이오. 당신은 지금 내게 사형을 집행했을지라도 스데반을 죽인 사울이 하나님을 만나 바울이 되어 스데반과 함께 천국에서 만난 것처럼 나도 당신을 만나길 기대합니다.”
재판관은 토마스 모어의 말에 의아하다는 듯이 물어봅니다.
“어찌, 당신은 내게 그런 호의적인 말을 하오. 난 당신에게 사형을 내린 사람이오.”
그러자 토마스 모어는 “주님이 내게 그렇게 대해 주셨기 때문이라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일서 4:11
6. 하나님의 긍휼
유대인들에게는 중요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우화적인 이야기를 담아 놓은 책이 있습니다. 이 책 속에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기 직전에 먼저 천사들을 창조하시고 그 천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천사인 ‘의의 천사’라는 이름을 가진 천사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창조하고 그 세상에서 가장 으뜸 되는 피조물로 인간을 창조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의의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인간을 창조하지 마십시오. 그 인간들은 온갖 불의로 이 세상을 더럽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천사인 '거룩의 천사'라는 이름의 천사 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거룩의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인간을 창조하셔서는 안 됩니다. 그 인간들은 이 세상을 더러움으로 가득 채워 놓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 천사인 ‘빛의 천사’를 불러 또 다시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빛의 천사는 “하나님, 절대로 인간을 창조하셔서는 안 됩니다. 인간들은 이 세상을 어두움으로 만들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번째 천사인 ‘긍휼의 천사’를 불러서 또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인간을 창조하려고 하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긍휼의 천사는 다른 천사와는 전혀 다르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인간을 창조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 이 세상은 불의하고 더러워지고 어두움에 잠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 불의와 더러움과 어두움 속에 있는 인간들에게 저는 기어이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새로워지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사람들이 되도록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과 긍휼로 돌보시며 아직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상대하고 싶지 않은 그 사람까지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를 향해서 다가오시고 기다리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디도서 3: 5
7. 반으로 줄어드는 고통의 비결
미국 인디애나 주의 어떤 시골마을에 브레인 튜머(brain tumor)라는 병을 앓고 있는 15세 소년 브라이언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병은 뇌종양과 비슷한 것으로 브라이언은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수술을 받은 후에 그는 방사선 치료 때문에 머리가 다 빠졌지만 조금씩 회복되어 학교에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학급에 20명 정도 되는 시골학교였는데 드디어 브라이언이 학교에 가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브라이언이 학교에 오기 전, 반 친구들은 그가 머리털이 하나도 없는 모습으로 오리라는 것을 알고 서로 연락해서 중요한 결정을 했습니다. 그 결정은 그들의 사랑하는 친구인 브라이언이 자존심을 다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브라이언이 고통 속에서도 당당히 학교에 계속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반 아이들 전체가 머리를 모두 밀기로 한 것입니다.
브라이언의 수업 첫날,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보니 브라이언뿐만 아니라 반 학생들 모두가 머리를 밀고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머리를 깎은 이유를 알아차린 선생님은 교단에 서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친구들도 같이 울었습니다.
고난의 현장에서 나눌 수 있는 최대의 위로는 바로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고린도후서 1: 7
8. 이심전심(以心傳心)
미국에서 아주 괴팍한 성격을 가진 여류 문학가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주 큰 사업가였는데 이 여인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늘 집안에서 글만 썼습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유일한 위로는 글 쓰는 것과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사랑하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귀한 외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에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그 충격으로 더욱 고립되어갔고 깊은 슬픔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부유해서 별별 치료를 다 받아보고 여행도 떠나 보았지만 그녀는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녀는 글 쓰는 일에도 더 이상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그 여인의 병이 치료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아들과 같이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죽은 친구의 어머니를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생을 외부세계와 단절하고 살았던 이 괴팍한 여류 문학가가 처음으로 문을 열어서 이웃을 받아들였을 때 그녀는 회복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궁금해서 여인에게 물었습니다. “그 죽은 친구의 어머니가 무슨 말을 했기에 갑자기 당신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냥 나를 끌어안고 울더라고요. 나도 같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회복되었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냥 같이 있어 주고 같이 울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린도후서 1: 4
9. 주를 향한 무디의 순종
이 이야기는 D. L. 무디(D. L. Moody) 목사님이 하나님께 얼마나 순종하는 마음을 갖고 그의 일생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어느 날 무디 목사님이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이자 동역자인 R. A. 토레이 목사님과 함께 시카고의 높은 빌딩 위에 올라갔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높은 곳에서 시카고 전경을 내려다보며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여보게 토레이, 나는 하나님이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명하시면 지금 당장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네.”
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무디의 말에서 주님을 향한 깊은 순종과 애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신명기 1: 36
10. 절대적인 순종
어느 날 한 청년이 성 프란시스 형제 회에 가입하고자 수도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형제회 위원들에게 수도원에 들어가 함께 수도하며 전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위원들은 이 열의가 가득한 청년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고심했습니다. 그러던 중 프란시스는 마지막으로 그 청년에게 한 가지 과제를 주었습니다.
“젊은이, 저기 배추가 한 포기 있는데 저 배추를 한 번 거꾸로 심어 보겠는가?”
프란시스가 이런 엉뚱한 과제를 준 이유는, 청년이 상식에 맞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에 합하지 않는 요구라 할지라도 영적인 스승의 지시에 그대로 순종하는 자질이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삶을 지배했던 가장 중요한 가치관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6: 16
11. 말 없는 순종
영국 런던에는 영국 성공회에 속해있는 성 바울 대성당이 있는데 그 성당이 세워진 경위는 이렇습니다.
1600년 후반에 런던에서 대화재가 일어나 런던 시내가 모두 잿더미가 되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때 런던 시민들은 물론이고 영국 국민 전체가 침체되어 절망과 낙심에 빠졌습니다. 이런 상황이 닥치자 영국 여왕은 국민을 위하여 새로운 용기를 북돋아 주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멋진 예배당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여왕의 이런 마음을 알게 된 영국의 한 유명한 건축가는 자신의 평생 사역으로 그 일을 자원했습니다. 그 건축가의 이름은 크리스토퍼 랜(Christopher Wren)입니다. 이런 뜻깊은 의미의 성당이 건축된다는 소문이 영국 전역에 퍼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성당의 일꾼이 되겠다고 자청했습니다. 그 성당은 무려 35년간에 걸쳐서 세워져 드디어 1710년에 성 바울 대성당을 헌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은 여왕이 그 성당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 했습니다. 특히 이 성당을 설계하고 공사를 감독했던 크리스토퍼 랜은 여왕의 반응이 몹시 궁금했습니다. 여왕은 그 완성된 성당을 보자마자 입에서 “정말 놀랍군요.”라는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말 한마디에 크리스토퍼 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35년간의 모든 수고가 가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성당은 나의 설계와 감독 때문에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나와 함께 열망을 가지고 35년간 그대로 따라준 이름 없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순종이 있었기 때문에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에베소서 6:5
12. 피난처인 예수님
제가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기내를 돌아다니는 꼬마 한 명을 발견했습니다. 대여섯 살 정도 된 아주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였는데 아빠는 미국 사람이고 엄마는 한국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그 여자아이는 아주 활달한 성격 탓인지 비행기 복도에서 춤을 추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쳐다보고 만져 보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도 와서 얼굴을 만지더군요. 순식간에 이 여자아이는 비행기 안의 마스코트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엄마, 아빠도 잊어버린 채 뒷좌석에 탄 사람들과 웃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여기 저기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명랑하던 아이가 순간 기류가 이상해지고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쏜살같이 엄마의 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고통 받으면 가야 할 품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고통을 만날 때 달려갈 수 있는 품이 있고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사랑과 긍휼이 풍부하신 하나님 앞에 나와 자신의 심정을 내어놓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는 자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 하시는 자시로다 -시편 144: 2
13. 나보다 한 수(手) 위이신 하나님
제가 전도사 시절, 용인의 어느 시골 교회에서 부흥회 초청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와 말씀을 준비하였고, 드디어 부흥회를 인도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날부터 비가 와서 예배실 이곳저곳에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여러분, 비가 곧 그치도록 기도합시다. 여호수아가 하늘을 향해 태양아 머무르라 했을 때 태양이 머물렀던 것처럼 우리도 열심히 기도하면 이 비가 그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비가 멈출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라고 믿음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비는 그칠 기미도 보이지 않고 기도하면 할수록 더욱 거세게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러다 비가 더 오면 체면이 말이 아니기 때문에 중간에 기도를 슬쩍 바꿨습니다. “여러분, 비가 계속 오더라도 부흥회에 지장이 없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살짝 도(度)를 낮춰 기도드린 것입니다.
기도가 끝난 후, 설교를 막 시작하려는 데 이상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비가 그치기는커녕 더욱 세차게 몰아치고 있는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성전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그 교회 전도사님과 성도님들도 이 광경에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그때가 농번기라 동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니까 비를 피해 성전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밤 그 마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기도한 대로 응답되지 않아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모든 것이 선하게 응답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 28
14. 피할 수 없는 하나님
제가 수 년 전 어떤 한 교회에서 새생활 세미나를 인도했을 때 일입니다.
사흘째 되는 저녁에는 도덕적인 자유에 대한 강의로서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인간과 인간,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화목에 대한 중요성을 설교하였습니다. 그때 집을 가출한 한 자매가 저의 설교를 들었는데 여러 해 동안 자기 부모를 원망하며 멋대로 인생을 살았던 자매였습니다. 그런 인생을 살았던 자매에게 인간 사이의 화목이 중요하다는 저의 설교는 그녀의 마음에 찔림을 주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해도 기도가 나오지 않았고 자기의 죄악 된 생활을 회개할 용기도 없었습니다. 더욱이 집으로 돌아가 부모와 화목할 마음도 없었기 때문에 고민만 하다가 교회 출석을 중단하였습니다. 그래도 양심에 찔림 때문에 다른 교회로 출석을 하기 시작했는데 제가 또 그 교회에 나타나 우연하게도 똑같은 도덕적 자유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던 것입니다. 제발 그 내용만은 설교하지 않기를 바랬던 그 자매는 그 설교를 듣고 더욱 괴로워져 다시 교회 출석을 중단하고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방황하던 중 그녀의 친구가 불광동 수양관에서 열리는 젊은이들을 위한 수양회에 초대하여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강사로 저를 또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 자매는 같은 설교를 들으며 마음에 찔림으로 번민하면서도 집회는 끝까지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수양회에 돌아와서도 끝까지 용기가 없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계속 낙심 중에 세월을 보냈습니다.
1년이 지난 후 우연히 친구의 권유로 자매는 새 생활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다시 저의 강의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제발 그 설교만은 안 하길 기대했지만 그녀는 또 한 번 그 말씀을 듣고는 결국 더 이상 하나님을 피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자기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털어놓았습니다. 비로소 그녀는 하나님께 항복을 선언하고 자기의 인생을 완전히 맡긴 후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씻음 받았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그 자매에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녀는 오랜 세월 원망했던 부모를 찾아가 눈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 후 그 집안이 모두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한 자매가 저에게 전화로 그 기쁨을 알려주었을 때 저도 함께 울었습니다. 그분은 어느 곳에 있든지 우주를 뒤져서라도 우리를 찾아 오셔서 “거기는 바른 길이 아니란다. 바른 길은 여기 있으니 이 길로 돌아오라. 그리고 이 길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 -이사야 30: 21
15.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영국의 유명한 찬송 작가인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는 서른두 살이 되었을 때 인생이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느낀 나머지 이런 인생을 계속 살기보다 차라리 인생을 포기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에 뛰어내릴 작정으로 마부에게 테임즈 강을 향해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의 표정을 수상하게 여긴 마부는 청년을 내려놓고는 그를 지켜보고 있다가 그가 강에 투신하려는 순간에 붙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이 청년을 향해 이렇게 격려하고 돌아갑니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가 이런 일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 용기를 가지고 굳세게 사십시오.” 그 마부 때문에 그의 첫 번째 계획은 실패합니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음독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 우연히 그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가 아직 숨 쉬고 있음을 확인하고 해독제를 먹여서 살려 냈습니다. 두 번째 자살에도 실패한 그는 ‘내가 이래서는 죽을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하여 이번에는 면도날을 가지고 손목의 동맥을 끊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놀랍게도 면도날이 부러지는 바람에 세 번째 시도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네 번째는 꼭 성공하리라 결심하며 목을 매달았습니다. 그러나 목을 매단 순간 또 이웃집 사람이 와서 매달려 있는 그를 발견하고는 곧 끈을 풀어 병원으로 데려가 살렸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어렴풋하게 ‘아, 나는 죽을 수도 없는 운명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신적인 상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피폐해져 정신병 징후에 시달렸고 계속해서 정신적인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사랑했던 이웃들의 배려와 손길을 통하여 교회로 초청 받았고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님을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에게 가장 도움을 주었던 분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찬송가405장)을 작사했던 존 뉴톤 목사님이었습니다. 존 뉴톤 목사님은 그의 친구가 되어 늘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며 상담해주고 격려하면서 그의 믿음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목사님처럼 시적인 재능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양육해준 목사님을 따라 그도 자기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위해서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쓰여 진 찬송 시 중에는 찬송가가 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불리고 있는 곡이 무려 67곡이나 됩니다. 그 중 우리 찬송가에 세 곡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샘물과 같은 보혈은”(190장)입니다.
그가 쓴 찬송 시 중 그가 죽지도 못하고 다시 살아난 자리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했을 때 쓴 찬송시가 있는데 “주 하나님 크신 능력”(80장)입니다. 한국 찬송가는 곡조에 맞추다보니 원 작사자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지 않는데, 가사를 다시 번역하면 이런 내용의 찬송 시입니다.
“하나님은 신기한 방법으로 섭리하시는 도다.
그분은 경이롭게 일하시니 바다에 그분의 발자취를 남기며
폭풍우 위로 걸어가시는 도다.
저 깊고 깊은 생각 위에 내가 알 수 없는 신묘한 기술로써
자신의 밝은 계획을 높이 세우고 그 분의 주권 적인 뜻을 이루시는 도다.
내 부족한 판단으로 주를 판단치 말지니 은혜로우신 그 주님을 의뢰할지라.
그분의 오묘한 섭리 뒤에 자신의 미소 짓는 얼굴을 숨기시는 도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 -시편 18: 19
16. 불행이 곧 행복
배 한 척이 파선하였는데 선원 중 한 명이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극적으로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인도에서 살아나기 위해 땀 흘려 나무를 모아 거의 한달 만에 살 수 있는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만들었습니다. 이 오두막집이야말로 무인도에서 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피난처이자 안식처였습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깊은 숲에 들어갔다가 해질 무렵 다시 자기 오두막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자신이 애써 지은 오두막집이 불 길속에 휩싸여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이 고독한 섬에서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안식처인 집이 불타는 광경을 보면서도 그는 어떠한 대책도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큰 좌절과 쓰라림으로 무너져 내려 그 자리에 그냥 멍하니 주저앉았습니다.
땅거미가 진 후 그는 나무 잎사귀들을 모아 해변 가에 가서 임시 잠자리를 만들어 잠을 청했습니다. 오랜 날들을 땀 흘리고 애써서 만든 하나밖에 없는 안식처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절망적인 가슴을 안고 깊은 고통 속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새벽녘쯤 갑자기 인기척 소리가 들려서 잠을 깼는데, 눈을 떠보니까 놀랍게도 배 한 척이 도착해 사람들이 막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영원히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갈 줄 알았던 그는 배와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고 기쁨의 소리를 지르며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그들은 이 섬 앞을 지나가다가 불타는 집을 보고 ‘누군가 구조 요청을 하고 있구나’하고 이 섬에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소중한 집이 불타는 것은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이 불행한 사건 뒤에 이 사람을 살리기 위한 극적인 하나님의 섭리가 내재되었다는 사실을 이 이야기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 -잠언 5: 21
17. 종 된 자의 삶
교회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모두 자기가 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종 의식은 교회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장관도 대통령도 모두 국민의 종이라는 사상은 기독교 사상에 근거한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민의 종노릇을 해야지 지배자가 되려고 하면 독재가 되어 나라가 잘못됩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주의 종을 잘 섬겨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그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이것은 유교적 영향을 받은 우리 한국 사회 구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말 때문에 목사를 ‘주의 종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호칭에서 ‘주’에는 ‘님’자가 안 붙고 ‘종’에만 ‘님’자가 붙어있어 늘 부담스럽게 들립니다. 사실 정확한 호칭으로 맞는 것은 ‘주님의 종놈’(?)입니다.
종은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인 것처럼 목자가 양을 섬기는 것이지 양이 목자를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목회자와 제직들은 종으로서 교우들을 잘 섬기도록 세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종은 종으로서 잘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18. 섬길 수 있는 자만이 다스릴 수 있다
미국의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은 예수님을 알기 전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있다가 거듭난 후 교도소 전도자로 다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이 쓴 책에 미국 의회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순간은 인도 캘커타의 고인이 되신 테레사 수녀가 미국 국회를 방문하여 연설했던 때라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 연설 때 연설자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테레사 수녀가 연설을 마치자 그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더랍니다. 오히려 침묵만이 감돌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숨 막히는 감동과 전율이 그들의 가슴과 목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박수를 칠 여유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지막 테레사 수녀가 던진 한마디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섬길 줄 아는 사람만이 다스릴 자격이 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립보서 2: 3, 4
19. 황금률
어느 날 나의 일상생활 속에서 ‘황금률이 진리다’라는 것을 체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쯤,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이 반말하는 것이 화가 났습니다. “아빠, 이리와, 이것 좀 줘”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녀석들이 건방지네. 왜 우리 아이들은 무례하고 건방질까?’하는 생각에 “너 뭐라고 했어? 왜 아빠한테 반말해?” 그랬더니 단번에 “왜 못해?”라고 되묻습니다. 그때 황금률이 생각났습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래서 순간적으로 전락을 바꿨습니다.
“아니에요. 미안해요 사실을 내가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그러자 “뭔데요? 아빠”하고 되돌아 왔습니다. 남을 높이며 대접하면 나에게 높이는 대접이 돌아오고, 남을 무시하는 말을 하면 나에게 무시하는 말이 돌아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누가복음 6: 31
20. 하나님의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감리교 운동의 창설자인 존 웨슬레(John Wesley)는 그 당시 영국과 세계에 신앙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신앙의 무대에 강력한 라이벌로서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라는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신학적인 입장에서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있었고 설교에 관한 한 사람들은 조지 휫필드를 더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외부에서는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웨슬레에게 찾아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천국에 가서 조지 휫필드 목사님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웨슬레 목사님은 뜻밖에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마 만나지 못할걸요?” 질문을 던진 사람이 “그렇지요. 목사님께서는 조지 휫필드 목사님의 신앙관으로는 천국에 못 간다고 생각하시는 거지요?” 그러자 웨슬레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말을 오해하셨군요.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운 종인 조지 휫필드는 천국에 가면 하나님의 보좌에서도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감히 그 분 곁에 가까이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웨슬레는 신학적인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큰 가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립보서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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