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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윤경 칼럼]기초수급 채무자 법원 출석 안했다고 수감
제출할 재산 없는 취약층에 법원 출석 명령
과잉금지 원칙 위반인데도 헌재 합헌 결정
제윤경 사회적기업 에듀머니 이사
기초생활 수급자 김모 씨는 법원으로부터 통지서 한 통을 받았다. 고령의 김모 씨는 법원의 통지서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두려운 마음부터 들었다. 3년 전 동네 지인의 권유로 휴대폰을 2대 개통했는데, 그로 인해 본인은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갚으라는 빚독촉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김모 씨가 받은 법원 통지서는 재산명시 기일에 출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뤄진 감치결정문이었다. 감치결정이란 의무 위반자에 대해 법원의 명령에 따라 일정 기간 유치장, 교도소 또는 구치소에 가둬두는 것을 말한다. 감치제도는 흔히 법정 내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법원의 소환장을 받은 증인이 특별한 사유없이 출석하지 않을 때 법원의 직권으로 이뤄지는 결정이다. 이러한 감치제도와 관련해 민사집행법에서는 채무자 감치 조항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김모 씨가 법원으로부터 감치결정문을 받은 이유는 민사집행법 68조에 근거해 재산명시 기일에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치 결정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재산명시 기일에 출석하지 않았다는 사유는 더 이해하기 어렵다.
20여만 원 채무 연체로 아이 앞에서 연행당한 여성
좀 쉽게 정리해 보면, 재산명시라는 것은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가 법원에 출석해 재산목록을 제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채권자의 신청에 의해 법원의 결정으로 이뤄지는 절차이다. 감치제도가 도입될 당시 목적은 빚을 갚을 여력이 있는데도 갚지 않는 악성 채무자들의 상환을 촉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금융사와 대부업체 등 채권자들은 채권 추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이 제도를 남용하고 있다. 김모 씨의 경우처럼 기초생활 수급자로 법원에 제출할 재산 목록이 없는 것이 뻔한 채무자들에게도 재산명시 신청이 이뤄진다. 대부분의 취약계층은 법원의 통지서를 이해하지 못해 출석을 하지 못한다. 이후 불출석을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감치결정이 이뤄지고, 채무자가 거주하고 있는 주소지의 경찰서장을 상대로 ‘감치결정 등본, 집행명령, 집행장이 발송된다. 상담사례 중에는 늦은 시간에 경찰이 찾아와 아이가 보는 앞에서 소위 연행을 당했다는 경우도 있다. 한부모 여성이었던 당시 채무자는 10여 년 간 상환과 연체를 반복하면서 겨우 20여만 원의 채무를 연체 중이었다.
채무자 입장에서는 의도적으로 재산을 숨겨 부채 상환을 회피하는 것이 아님에도 구치소에 갇힐 수 있다는 것은 공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취약계층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재산명시 명령과 감치 결정은 심각한 인권 침해로 해석함이 마땅하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 시절 채무자 감치제도에 대한 위헌소송이 제기된 바 있으나 합헌으로 결정이 났다. 당시 헌법 재판소는 재산명시기일에 출석하고 선서만 하면 감치 제재를 면할 수 있고, 감치 기일이 최대 20일을 초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하면서 취약계층 채무자도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거리에 붙은 카드대출 안내 스티커. 2023.8.22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에 숨길 재산이 없거나, 채무 원금이 겨우 20여만 원뿐인 채무자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이 제재조치가 과잉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정이 어떻든 법원에 출석해 갚을 재산이 없다는 것을 선서로 증명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구치소에 감치하는 것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과연 정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전후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출석하면 되지 않느냐는 헌법재판소의 기각결정 사유는 ‘빵이 없으면 고기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망언과 다르지 않다.
법원을 통한 가혹한 빚독촉이 만드는 수원 세 모녀 비극
채권자들은 재산명시 신청을 추심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추심 관련 블로그나 카페에는 채무자를 압박할 수단으로 이 제도를 추천하고 있다. 한 블로그에는 “채무자가 법원에 출석하고, 선서하는 것 자체가 창피를 주고 번거롭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제도 활용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지독한 추심수단이 남발되면서 빚독촉을 피해 주소지와 다른 곳에서 거주하는 주소불명의 채무자가 상당하다. 지난해 수원시 한 다세대 주택에서 생활고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수원 세 모녀 사건 또한 거주불명이 비극의 원인이었다. 거주지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긴급 생계 지원이나 의료비 지원 혜택, 기초생활 수급 등의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다. 이렇게 주소불명으로 사회안전망에서 밀려나는 국민이 전국적으로 24만 명이 넘는다. 생계난에 빚을 갚지 못해 주소불명까지 감수하며 살아가는 상당수 국민들의 고통을 대한민국의 법원은 외면하고 있다.
출처 : 통신 요금 300만원 미납이 만든 현대판 장발장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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