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우스 아탈란테

[자수정]

오르페우스, 아탈란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은 음악가들이 작곡의 주제로 삼았을 만큼 널리 알려진 그리스 신화다. 그리스 북동부의 트라키야 지방에서는 오르페우스 신앙이 있었을만큼 역사성을 띈 신화였다 한다. 트라키야 지방은 디오니소스 신앙과도 인연이 깊은 곳인데, 오르페우스는 그 트라키야 지방의 왕이었던 오이아그로스와 음악의 신인 뮤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오르페우스의 음악성과 시인으로서의 기질이 뛰어났기 때문에 아폴론의 아들이었다는 설도 있다 한다.

오르페우스가 노래를 부르고 비파를 뜯으면 산천초목과 짐승들이 넋을 잃고 귀를 기울였을 정도였으며, 황금 양모피를 탈환하기 위한 '아르고스 원정대'에 가담해서 콜키 스로 향할 때도 거친 파도를 음악으로 달래고 선원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한다. 아름다운 노래로 지나가는 선원들을 황홀하게 한 후 배가 바위에 부디쳐 난파되게 하는 세이렌이라는 새들의 노래소리도 오르페우스의 음악에 밀려서 맥을 쓰지 못했다 한다. 황금 양모피를 지키던 콜키스의 용을 잠들게 하는 데도 오르페우스의 음악이 한몫 했다.

아르고스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고국 트라키야로 돌아온 오르페우스는 숲의 님프 중 하나였던 에우리디케와 결혼하여 서로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에우리디케가 친구인 님프들과 함께 숲속에서 노는 모습을 본 꿀벌치기이자 양치기였던 아리스타이오스가 에우리디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아리스타이오스를 피해 도망치던 에우리디케는 그만 독사를 밟고 그 독에 의해 죽고 만다.

사랑하는 아내를 졸지에 잃은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죽음으로부터 되돌리기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며 지하의 세계로 내려간다. 죽음의 강 스틱스도, 지하세계의 문지기인 케르베로스도 오르페우스의 슬픔을 담은 음악에 감동되어 그를 통과시킨다.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와 왕비 페르세포네도 오르페우스의 신비한 음악과 아내를 향한 사랑에 감동되어 에우리디케를 지상의 세계로 데려가도록 허락한다. 그러나 지상에 완전히 도달하기까지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캄캄한 동굴을 지나 지상의 세계가 저만치 휘뿌연 빛으로 보일때까지 두 연인들은 서로의 무사함을 목소리로 알리며 잘 올라올 수 있었다. 동굴을 막 빠져나오려는 순간 오르페우스는 이제는 됐으리라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고 만다. 그러나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는 아직도 동굴의 어두움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만 도로 지하세계로 끌려가고 만다.

오르페우스의 슬픔은 그가 살아있는 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처음에는 오르페우스를 동정하던 숲의 님프들, 죽은 에우리디케의 친구들은 오르페우스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오직 죽은 에우리디케만 생각하며 비탄에 잠겨있는 오르페우스를 미워한 나머지 오르페우스에게 창을 던져 그를 죽이려 한다. 그러나 오르페우스의 구슬픈 음악이 들려오는 한 창들은 더 이상 날아가지 못하고 오르페우스 앞에서 땅에 떨어지고 만다. 그러자 님프들은 디오니소스 신에게 복수를 맹세하며 포도주에 취해 오르페우스 사냥에 나선다. 자기들이 노래를 크게 불러 오르페우스의 음악소리를 분산시키며 창을 던진다. 오르페우스는 마침내 디오니소스의 신앙에 취한 님프들에 의해 갈갈이 찢겨 죽고, 그의 머리와 그의 비파는 강에다 집어던졌는데 강물을 따라 흘러가면서도 슬픈 음악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오르페우스의 비파는 아폴론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제우스 신은 죽은 오르페우스를 데려다가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류 우주인들의 고향이라고 하는 거문고자리다.

 오르페우스의 비극은 무엇을 위한 교훈일까?

죽은 아내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을 굳게 가져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아내가 비록 죽었지만 신들의 도움에 의해 광명의 세계를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르페우스가 음악과 시(詩)의 달인이었고 아폴론 신의 아들이었다는 설은 오르페우스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아폴론은 빛과 의술과 예언과 음악과 궁술의 신으로써 하늘이 정해 놓은 천자(天子)다. 그리고 태양이 동쪽에서 뜨듯이 마지막 시대의 아폴론은 동양에서 태어날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인 오르페우스가 슬픈 최후를 맞는다는 것은 아버지의 태양마차를 잘못 몰다가 땅으로 추락한 또 하나의 아들 파에톤을 연상케 한다. 다이달로스의 아들인 이카로스도 너무 높이 날다가 태양열에 날개가 녹아 바다로 떨어졌다. 모두가 중용(中庸)을 가르치는 동양의 덕을 따랐다면 그런 최후를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오르페우스의 신화에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마지막 시대의 이야기들은 3차원 지구가 4차원 지구로 탈바꿈하는 시대를 위한 이야기다. 4차원으로 승격될 마당에서 3차원적인 것들에 미련을 두어선 안된다는 뜻일 것이다.

다음은 죽어서 한 쌍의 사자가 된 사랑하는 연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아탈란테는 마치 사냥의 여신 알테미스 처럼 평생을 처녀로 살기로 맹세하고 사냥에만 열중했다 한다. 신전에 가서 자기의 운명을 알아본 결과 결혼을 하면 죽을 것이라는 신탁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아탈란테의 아버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 어머니는 미니아스의 하나인 클리메네였다 한다. 미니아스는 테살리아 지방에 살았던 부자(富者)의 일족이었는데, 그 딸들이 디오니소스 신앙을 거부하다가 혼이 난 나머지 박쥐가 되었다고 한다. 아탈란테의 어미니 클리메네는 그들의 자매였던 것이다.

아탈란테는 여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용맹스럽고 그렇다고 남자라고 하기에는 그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서 뭇 남성들의 구혼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평생을 처녀로 살기로 작정한 그녀는 귀찮은 수많은 구혼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조건을 내걸었다 한다. 나와 결혼하고 싶다면 나와 무술을 겨루되 내가 지면 당신의 아내가 되겠지만 당신이 지면 당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와의 겨루기에서 진 남자들의 목숨을 가차없이 빼앗았다고 한다.

그렇게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시합이었건만 그래도 아탈란테의 매력을 포기할 수 없었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었다 한다. 그리고 그 목숨을 건 청혼의 경기에 심판관으로 나선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결국 아탈란테의 사랑을 얻은 히포마네스였다. 처음에 히포마네스는 그런 목숨을 건 시합에 뛰어드는 뭇 남성들을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이냐고 비웃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시합에 임하는 처녀 아탈란테의 힘차고 아름답기까지 한 모습에 점차 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 시합의 심판관이 되면서 그녀의 날랜 몸놀림과 용맹성과 무술이 만만치 않음을 두 눈으로 잘 보았으니 선듯 구혼자로 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궁리 끝에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신전에 찾아가 신탁을 물어본다. 아프로디테는 키프로스 섬의 자기 신전에서 자라는 사과나무에서 열매 세개를 따다가 히포마네스에게 준다. 경기 도중 그것들을 하나씩 던지면 시합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히포마네스는 아탈란테에게 청혼함과 동시에 자기와 달리기 내기를 하자고 한다. 달리기에도 자신이 있는 아탈란테는 그러나 속으로 신에게 빈다. 저 현명하고 잘생긴 젊은이가 자기와의 내기에 져서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그렇다고 해서 이 청혼을 받아들이면 결혼을 해야 되고 결혼을 하면 자기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니 아무리 용감무쌍한 처녀 아탈란테도 잠시 고뇌의 빛을 감추지 못한다. 이윽고 경주가 시작되고, 두 사람은 넓은 들을 질풍같이 달린다. 처음엔 히포마네스가 앞섰으나 아탈란테가 곧 따라잡는다. 히포마네스는 가지고 있던 아프로디테의 사과 중 한 개를 얼른 던지자 아탈란테는 그 사과를 줍기 위해 잠시 주춤한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녀는 다시 히포마네스를 따라잡아 바로 뒤에서 달려오고 있다. 히포마네스는 또 하나의 사과를 던져 그 위기를 모면한 후 다시 있는 힘을 다해서 달린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탈란테는 그 사과를 주운 후 또 바짝 따라잡는 게 아닌가?!!

히포마네스는 이번의 사과가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잔뜩 긴장하며 그 남은 사과 한 개를 옆으로 멀리 던진다. 꼴인 지점은 얼마 안 남았건만 아탈란테는 역시 그 마지막 사과도 줍기 위해 그쪽으로 달렸기 때문에 꼴인 지점에 먼저 도착한 것은 히포마네스가 된 것이다. 그녀가 사과를 탐냈기 때문인지 아니면 히포마네스에게 지고 싶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짝을 만난 아탈란테와 히포마네스는 얼마 동안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들의 행복에 취한 나머지 그 시합에서 이기게 해 준 아프로디테 여신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다. 그러자 골이 난 아프로디테는 제우스의 어머니인 레아 여신의 화를 돋구게 하여 이제 막 행복을 맛보기 시작한 아탈란테 부부를 사자로 만든 것이다. 레아 여신은 청혼하는 뭇 남성들의 생명을 무참히 빼앗은 아탈란테의 죄를 물어서 암사자로 만들고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잊고 감사할 줄 몰랐던 히포마네스는 숫사자로 만든 것이다. 그 둘을 자기 옆에 두고 경호원으로 삼았기 때문에 레아 여신을 그리는 그리스의 그림들은 항상 두 마리의 사자가 레아 여신의 곁을 지키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한다.

아탈란테는 황금 양모피 탈환을 위한 아르고스 원정대에 참가하기를 원했지만 뱃사람 속에 여자가 끼면 안된다는 속설 때문에 가담하지 못했다 한다. 그녀가 신들의 거처인 올림포스 산에 가까운 테살리아 태생이고 부잣집 후손이었으며, 또 기독교적 신앙의 부흥을 의미하는 '아르고스 원정대'에 참가하기를 원했다는 것, 또 아탈란테와 히포마네스가 사자로 변신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녀, 혹은 그녀들의 정체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