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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2: 10 어떤 사람에게는
고전 12: 10 어떤 사람에게는 -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
‘예언함’은 하나님의 뜻을 대언(代言)하거나 미래의 일을 말하는 것이며, ‘영들 분별함’은 사람의 생각을 분별하는 것을 가리키며, ‘각종 방언 말함’은 다른 나라의 말을 하는 것이고, ‘방언들 통역함’은 그 말들을 통역하는 것을 가리킨다.
1]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이 은사는 '믿음'과 '병 고치는 은사'와 본질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지체(肢體)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연의 법칙을 초월한 기적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도록 하여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게 한다(C.P.Wagner).
이 은사는 '병 고치는 은사'보다 더 포괄적인 힘을 지닌다. 이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갑작스런 죽음(행 5: 1ff.), 박수 엘루마를 소경으로 만든 일(행 13: 11)등과 같이 마귀를 대적하며, 그 추종 세력을 축출하는 데 사용되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 행함으로 나타나는 기적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방편이 되며(Calvin) 동시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하심을 계시하는 수단이 된다.
이것을 기적의 은사라고도 말한다. 성령은 때로 인간의 상식을 넘는 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영적 능력을 은사로 주시기도 한다. 성경에 보면 그런 경우가 있다. 예수께서 물 위로 걸으셨다. 무서운 파도를 향하여 호령하셨다.
사도 바울이 독사에 물렸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원주민은 바울을 신으로 섬기려 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일으켰다. 선교사들이 때로 원주민 선교를 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선교사는 원주민 추장 아들의 병을 기도하여 고쳤다. 그때 부족 전체가 세례를 받는 일이 일어났다.
한국 선교 초기에 그런 능력이 많이 나타났다. 이 같은 능력 행함의 은사는 전도 초기에 많이 나타난다. 아직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곳에 처음 복음이 전해질 때 이 같은 능력의 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보면 이런 기적의 모습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기적을 행하는 일은 참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른다. 그런 능력이 나를 통해서 나타난다면 얼마나 신기하겠는가? 그래서 때로는 믿음이라는 구실 하에 시험이 들기도 한다.
어떤 동네에서 예수를 믿는 분에게 동네 사람들이 전도할 때마다 “뭔가를 자꾸 보여 달라“고 했다. 보여주면 믿겠다고 했다. 그때 이분이 “믿는 자에게는 독약을 마셔도 죽지 않는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농약을 마셨다. 이것이 믿음의 시험이다.
농약을 마시면 죽는다. 이것은 상식이다. 때로 동네에서 사람들이 보여 달라 그러면 믿겠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보여주면 하나님도 좋고 나도 좋고 사람들이 전도되어서 좋고 누구도 손해 볼 일이 없다.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다.그래서 농약을 마시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김익두는 시장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발견했다. 그때 기도로 고쳐볼까 생각하고 혹시 못 고치면 사람들이 비웃을까 생각되어 그를 골목으로 데리고 가서 안수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그때 마음에 그것도 믿음이냐 하는 가책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장날 보란 듯이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뜨겁게 기도하여 그 앉은뱅이가 일어났다. 그 일이 있은 후 김익두는 굉장치도 않은 인생을 살았다.
2]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예언함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페테이아'(*)는 하나님의 계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은사로 하나님에 의해 수여된 통찰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단어는 '말을 토하여 내다', '미리 경고한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말한다'는 의미를 가진 '프로페튜오'(*)와 같은 어군으로 미래에 일어나리라고 예측되는 상황과 현재 일어난 사건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뜻이다.
바울은 '예언'을 하나님께서 교회를 가르치기 위해서 베푸신 가장 큰 은사 중의 하나로 보았다. 예언은 교회를 신앙의 기초 위에 세우며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말씀을 설명해 준다. 신약 성경에서 '예언'이란 구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계시가 완결된 현재에 있어 '예언'이란, 예언의 말씀인 성경을 바로 이해하여 가르치며 현재의 삶에 적용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 계 1: 3 -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내용을 읽고 듣고 지켜야 한다. 옛날에는 책이 귀하므로 한 사람이 읽고 나머지 사람들은 들었다. 그래서 읽는 자(단수명사)와 듣는 자들(복수명사)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감사하게도 모든 사람이 누구나 원하면 마음껏 읽을 수 있고 또 들을 수도 있다.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고 듣고 지켜야 한다. 지킨다는 말은 성경 말씀을 보수(保守)하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하나도 버리지 말고 다 보수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 특히 계시록을 통한 복은 환난을 대비함과 인내와 위로의 복이다.
* 계 13: 10 -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 계 14: 12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성도가 환난과 죄악을 이겨 마침내 천국과 영생에 이르는 복이다.
* 계 22: 5, 17 –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책인 성경은 그것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에게 참으로 복되다. 계시 된 내용은 긴급한 일들이다. “[마지막] 때가 가깝다.” 성도에게는 항상 종말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오늘날은 더욱 그러하다. 지구의 종말이 가깝다.
본서와 성경 다른 곳들에 예언된 세상 종말의 징조들인 많은 거짓 목사의 출현, 교회들의 배교(背敎), 전쟁, 기근, 전염병, 지진, 핍박, 세계 복음화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연계에도 자원 고갈, 환경 오염, 생태계 파괴,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현상 등 이상 징조들이 많이 나타나 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깝다고 본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계시의 책에 주목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해석하기 어려운 책이지만, 우리가 덮어두어서는 안 될 중요한 책이다.
말씀의 축복 : 이 예언의 말씀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복에 대한 영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 예언의 말씀'은 본서가 예언서임을 나타낸다.
* 계 10: 11 -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 계 22: 6-7, 10, 18-19 – 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10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본서의 말씀이 예언의 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영적, 윤리적 권면과 권고를 포함한 현재적 경고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Johnson).
성경은 3시대의 사람들에게 복이 있음을 기술한다.
(1) 구약의 복
창조의 복은 충만의 복이다.
* 창 1: 22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노아 이후의 복은 선택적인 복이다.
* 창 9: 1 –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 창 12: 2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2) 신약의 복 - 예수님의 가르치심.
신약의 복은 영적 복이다.
* 마 5: 3-12 –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3) 말세의 복 - 계시록에 나타난 7복
말세의 복은 실천적 복이다.
* 계 1: 3 - 읽는 자, 듣는 자, 지키는 자의 복. -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 계 14: 13 -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은 자들. -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 계 16: 15 -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않는 자들. -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계 19: 9 -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 -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 계 20: 6 -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 -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 계 22: 7 -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 계 22: 14 -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 -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3]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영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톤'(*)은 악한 영들을 의미하며, '분별함'의 헬라어 '디아크리세이스'(*)는 '구별', '인식', '가려냄', '심판' 등의 의미를 지닌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거짓 선지자가 많았으므로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기 위해 그릇된 가르침을 분별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 요일 4: 1 -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하지만 당시에는 기록된 말씀이 없었으므로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가 필요했다. 이 은사는 교회를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으로부터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발로(發露)였다.
영들을 분별하는 은사는 어떤 현상의 이면에 있는 정신적인 영향력을 간파하는 능력으로 특수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졌다. 사도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 '거짓말하는 영'이 들어 있는 것을 알았고(행 5: 1-10), 마술사 시몬의 마음이 '악독하고 불의한 영'에 얽매여 있는 것을 간파하였다(행 8: 23).
이러한 은사를 활용한다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하는 어떤 행위가 신적인 것인지 혹은 인간적인 것인지, 아니면 사탄으로부터 나온 것인지를 확실히 식별할 수 있다.
영 분별
본문에는 “어떤 사람에게는 영 분별하는 능력을 주신다“고 했다. 이 영적인 부분 특히 예언이나 계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분별하기가 참 어렵다.
이 영적인 문제로 인해서 많은 문제들이 야기된다. 그래서 영을 분별하는 은사가 주어지기도 한다. 이 영 분별의 은사는 지금 주어진 영적인 역사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인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사탄에게서 나온 것인지 확실하게 알게 하는 능력이다.
때로 사탄의 영을 분간하지 못해서 유혹에 깊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가장 좋은 예가 몇 군데 있다. 역대하 18장을 보면 아합왕 시대에 우상 숭배를 많이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합 왕을 심판하기로 작정 하셨다. 마침내 전쟁이 일어났다. 그때 아합 왕은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에게 나가서 싸우랴 말랴 하고 물었다. 시드기야는 “나가 싸우소서, 반드시 이기리라”고 계시하셨다고 말했다.
아합 왕은 하나님의 선지자 미가야에게 물었다. 그때 미가야는 “이번 전쟁에 나가면 반드시 죽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이 두 선지자의 예언 중 누구의 예언을 믿어야 합니까? 계시는 이렇게 분별하기가 어렵다. 미가야는 사탄의 영이 거짓 선지자의 입에 들어가 지금 거짓 예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뺨을 때리면서 “언제 하나님의 영이 너에게 말씀하시더냐”고 따졌다. 그때 미가야가 말하기를 “네가 골방에 들어가 기도할 때 그 음성을 들으리라”고 대답했다.
왕상 13장에 나타난 사례가 또 있다. 하나님이 남 유다의 한 젊은 선지자에게 “네가 가서 북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에게 죄를 외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라, 그러나 그가 주는 물도 선물도 향응도 받지 말고 돌아오라, 만일 네가 먹고 마시면 죽을 줄 알라”고 계시를 주셨다.
이 젊은 선지자가 북 이스라엘로 가서 여로보암 왕에게 주신 계시대로 준엄하게 죄와 우상 숭배를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다. 그러자 여로보암이 저 놈 잡으라고 소리칠 때 그 손이 그만 굳어 버렸다. 여로보암 왕이 잘못했으니 기도해서 회복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래서 기도하여 고쳐주었다. 그때 여로보암이 이 젊은 선지자에게 선물을 주고 향응을 베풀려고 하니까 “나는 향응이나 선물이나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겠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하고 돌아왔다. 아주 당당하고 자신 있게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때 북 이스라엘의 한 늙은 선지자가 그 소식을 듣고 생각해 보니 참 창피했다. 자기가 할 일을 하지 못하니까 남 유다 선지자가 이곳까지 와서 죽음을 무릅쓰고 우상숭배를 당당하게 지적하고 돌아갔다니 자기도 선지자인데 얼마나 창피한 노릇입니까. 이 늙은 선지자가 창피했으면 더 기도하고 그 시대를 향해서 준엄하게 책망하고 죄를 지적해야 하는데 그 젊은 선지자가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자 재빨리 말을 타고 그 선지자가 돌아갔다는 길로 쫒아가서 그 선지자를 만나서 내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내 집으로 가서 음식을 먹고 이야기 하자“. 그때 이 젊은 선지자가 “나는 북 이스라엘에서 향응은 물론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겠다, 하나님의 명령이다”하고 자신 있게 거절했다. 그러자 이 늙은 선지자가 말했다. “나도 선지자요, 간밤에 나에게 당신을 접대하라 계시하셨소.” 이 말을 듣고 이 젊은 선지자는 아무 의심 없이 그 집으로 따라가서 먹고 마시고 향응을 받았다. 그가 한참 먹고 마실 때 이 늙은 선지자가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당신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소, 향응도 받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했는데 당신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소.” 그때서야 정신이 난 이 젊은 선지자는 짐을 챙겨 서둘러 돌아오다 산속에서 사자를 만나 찢겨져 죽었다.
영 분별이 이렇게 어렵다. “나도 선지자요” 이 말에 그만 의심 없이 무장을 해제하고 말았다. “간밤에 나에게 당신을 대접하라는 계시가 있었소” 이 말에 의심 없이 다가갔다. 그러니까 “며칠 몇 시에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니까 모두 집 팔고 직장 그만두고 쫒아가는 일이 나타났다. 이단은 성경에 대해서 더 잘 알고 더 열심이다. 병을 고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몰려간다. 사탄도 병을 고칠 수 있다. 모세가 애굽에 가서 많은 기적을 행할 때 애굽의 박사들도 그 기적들을 다 행했다. 문제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다. 그러므로 영 분별하는 은사를 주신다고 했다.
4]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각종'에 해당하는 헬라어 '게네'(*)는 '혈통', '민족', '종류' 등을 의미하므로 방언의 종류가 여러 가지임을 가리키고 각 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였음을 시사한다.
방언은 고린도 교인들이 가장 자랑으로 삼았던 은사 가운데 하나로 교린도 교회에서의 방언의 형태는 각기 다른 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뿐만 아니라 어떤 종교적 흥분 상태에 이르렀을 때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로 하는 것까지도 포함하였다.
성경에서 방언은 외국어를 가리킨다고 본다. ‘방언’이라는 원어(글로싸glw'ssa)는 ‘언어’라는 뜻이다.
* 행 2: 11 –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 하고
* 계 5: 9 -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 계 7: 9 -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 계 10: 11 -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 계 11: 9 -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 계 13: 7 -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 계 14: 6 -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 계 17: 15 -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오순절에 약 15개 지역에서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은 각각 자기 지역의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했다.
* 행 2: 6, 8, 11 –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 하고
또 성경에 ‘방언들’(복수명사)(행 10: 46; 19: 6), ‘새 방언들’(막 16: 17), ‘다른 방언들’(행 2: 4)이라는 표현들과, 방언을 알아들을 수 있다든지, 그것을 기도와 찬송에 사용한다든지, 또 그것을 통역한다는 것 등도 방언이 언어임을 보인다.
5]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통역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르메네이아'(*)는 '번역', '해석'을 뜻하며, 이 단어는 신약에서 본 절과 본서 14: 26에만 나온다.
이 특별한 방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경우에 이 방언에서 유익을 얻고자 한다면 이 방언을 통역할 사람이 있도록 성령의 통역 은사를 구해야 할 것이다(14: 13). 그런데 바울은 방언이 그 자체로는 교회에 유익이 되지 않으므로 자제할 것을 권면한다(14: 28).
본 절에서도 방언의 은사와 함께 통역함의 은사가 언급되는 것은, 은사가 교회에 유익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함을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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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모습은 눈에 남고, 멋진 말은 귀에 남지만
따뜻한 배려는 가슴에 남는다고 합니다.
오늘도 따뜻한 사랑 나누며 즐겁고 행복한 날 되십시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