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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행의 진미는 상고대와 설산이며 추위와 싸울 때인데, 연인산 명지산을 종주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상고대에 감탄을 자아내며 즐겁고 넉넉한 산행을 만끽했다
대한민국 산림청 지정 100대명산 순례 91회 차 명지산은 경기도에서 화악산에 이어 2번째 높은 산이며 연인산과 함께 종주산행이어야 한다는 것에 쉽지가 않았고 일정과 체력 준비 등 모두 갖춰야만 했기에 이제 끝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100명산도 이제 얼마 남지가 않아서 카운터다운에 들어가는가 싶다
그래서인가 겨울산행에 탄력이 붙는 거도 같고 혼자 가기에 부담이 되는 겨울산행에 엠티산악회라는 곳을 알게 되어 가고자 하는 산의 공지가 잘도 올라오기에 일정을 맞추기도 좋았다
다음의 산행 또한 기대는 되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농장을 해야 하는 영농의 계절이 점점 다가오고 있고, 새로운 창고를 지어야 하나 마나 갈등도 하고 있고,
동서형님의 창고 이전에 일손도 필요하기에 도와 드려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 계획했던 산행을 차질없이 진행을 해야 한다는 마음도 변함이 없고,
그래서인가 이래저래 생각도 바쁘고 몸도 바쁘고 작년 한해 못했던 기타 등록을 해서 기타도 쳐야하니 내가 생각해도 인생 참 바쁘게 산다.
겨울철 남은 2월말 까지는 남은 휴가도 있고 해서 최소 3곳을 더 가고 싶다.
그러면 100명산 완등에는 6개가 남아 잘하면 올해 안에는 끝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100명산을 도전한답시고 자그마치 12년 세월이 흘렀는데 그 놈 주말농장 때문에 여태 못한 것이 한심하지만 놀고 먹은 것이 아니기에 그냥저냥 스스로 위로를 하기도 한다
지난주 운문산에 이어 처가 일행과 함께했다
다리에 쥐가 났던 처남댁 대신에 그 멤버들을 인솔하는 최영수 산행대장이 자리를 메웠다
간간이 함께하는 멤버들이지만 다소 힘든 산행에 함께하는 것이 부담이었지만 B.C코스가 있었기에 무조건 가자고 했다. 잠순이 아내는 시큰둥했지만 콧바람을 쏘이고 싶은 처형은 두말이 필요 없었다
늦게 예약을 한 탓에 모두가 이산가족이 되어 명지산행 버스에 올랐다
운문산행 리딩 대장이었던 창곡천 대장님이 옆에 앉아서 구면이었고 산행 또한 계속하게 되었다. 대행이도 날씨가 춥지 않아 등산하기는 좋았다. 마치 봄 날씨를 연상케 할 정도로 포근했으며 낯선 백둔리는 전원주택 단지를 만드는지 고요했지만 굴삭기가 여기저기 놓여있고 파헤쳐져 있었다. 주택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이 있거나 돈이 될 만한 터라고 생각되면 자연이고 뭐고 여지없이 개발을 하는 모양이다.
날이 어슴푸레하게 밝는지 마는지 신사역을 출발한 버스가 냉큼 백둔리로 우리를 실어 날랐다
근자 경상도를 다녔던 장거리 산행을 비교하면 쉽게 간 듯 실감이 안갔다
어제는 무슨 이유인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는데 두 세 시간을 잤는지 제대로 산행을 할 수나 있을지 포기를 할까 하다가 옛다 모르겠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그냥 가는 것이다
그저 젊은 열정 때처럼 말이다 인솔자의 안내 멘트에 8시간이라 해서 난 A코스로 갔고 우리 일행은 C코스로 잡았다
어쩌다 보니 후미에 서게 되었다
마침 창곡천 대장님을 비롯하여 4~5명이 함께 올랐다 주거니 받거니 사진도 찍고
겨울산의 묘미를 느끼고 보면서 연인산 소망능선을 오를 때까지는 가팔랐지만 우르르 산꾼들은 말이 없는 대신 묵묵하게 잘도 갔다
연인산은 세 번째 인데 정상석이 달랐다 인솔 대장께서 뭐라고 설명을 했는데 잘 듣지는 못했다 아마도 그 정상석은 아닌 듯 했지만 어쨌든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다가 인증샷은 했고 일행과 만나기로 한 아재비고개를 향해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연인산을 오르고 아재비고개를 가다가 잠시 아이젠을 착용할 때 난 행동식으로 땅콩캬라멜을 후미 일행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지만, 창곡천의 대장은 참 인간성이 좋고 넉넉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산우를 챙기거나 후미를 기다려주고 사진 봉사도 하는 보기 드문 냥반이었다.
기다리기로 했던 일행은 전화를 하니 3봉을 지나고 있단다
아재비고개는 추워서 식사를 못하고, 한들 못 올라 간 다고 최영수대장이 강행을 했단다
잘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재비고개서 식사를 한 탓에 오르락 내리락을 하면서 숨이 가팔라서 발걸음이 더디기도 했고 쌕쌕거리기도 했다
대신 수도권의 근교산행 치고는 해발이 높다고 연인산의 정상이 가까울 무렵에 눈발이 날리더니 유명산을 들어서면서는 상고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창곡천 대장은 연신 감탄사가 나왔고 우리는 덩달아 사진을 마구마구 찍어댔다
그러기를 반복하니 3봉 2봉 1봉 마다 사진을 죄 찍었고, 너무 여유를 부렸던가 날머리 도착 시간이 촉막하여 이내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3봉에 올랐을 때 정상 1봉 밑에서 라면을 끓여먹는다고 했는데 일행은 온데 간데 없고 후미 일행들 또한 하산길을 재촉했다
명지산도 운문산처럼 하산길이 쉽지 않고 너덜길에 낙엽들이 쌓여서 발목 부상이 생길 수가 있어 조심스러웠다
2016년 가을 명성산을 갔다가 너덜길에서 발목 부상으로 꽤나 아팠던 기억이 떠나질 않았다
후미의 일행들 꽤나 재밌는 산행을 나름 했다
창곡천의 대장님이 싸가지고 온 음식들이 하산길 중간에서 펼쳐 놓을 때 마치 뷔페처럼 이거저거 많이도 있었다
그래서 일명 명지산 뷔페산행이라 불렀다
오순도순 나누어 먹어면서 여유롭게 하산을 했고, 난 일행들과 날머리 근처에서 만나 최영수 대장께서 가지고 온 더덕주에 처형이 싸가지고 온 과메기로 하산주를 대신했다
뿌듯하고 보람이 가득한 연인. 명지산의 종주를 마치는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돌아보는 버릇으로 산행버스에 올랐다
이래도 인생 저래도 인생, 푸쉬킨의 말처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것처럼 ; 난 살면서 슬퍼한 적은 한번 둘째형님이 돌아가실 때였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도 슬퍼허지 않았지만 말이다
노여워는 많이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권력과 경쟁 그리고 단과대의 이전으로 혹독한 직업의식이 발동할 때 쓰러질 때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노여워했다
쓰러진 것이 자랑스럽고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터무니 없이 현실에만 충실했다는 사실에 노여워했다
그런 후 나는 엄홍길의 16좌 도전 성공 기념 자유대장정 16좌를 하고 난 후 100명산을 도전하기로 했었다
그것이 도화선이 된 16좌, 100명산 그리고 나의 윤리관들이 혼란스럽게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 연인. 명지산의 종주산행도 추억의 한페이지로 남게 되었다.
2019년 2월 7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