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24일 저녁
우리는 다섯번째 후원회원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가졌다. 후원회원을 위한 작은 음악회는 니르바나 필이 그동안 펼쳐온 무대에 비해서는 형편없이 작아서 말도 안되는 아주 볼품 없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이 곳은 겨우 사십명이 들어차면 꽉 차고 마는 그런 식당이었다.
시작은 이렇듯 작고 초라했지만 한 해를 마무리 한 그 끝은 굉장했다. 년말의 바쁜 일이 꼬리를 물고, 시간의 짬은 조금도 내기 힘들어서 차일 피일 미루어지기만 한 송년음악회였다. 더구나 17일로 잡혀있던 송년음악회의 날짜가 불교역사 기념관 홀의 스케쥴로 24일로 미루어진 터였다.
누가 감히 크리스마스 이브날 불교 음악행사를 개최할 생각이나 하였을까? 우리도 처음에는그런 생각은 가져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날짜는 그날 밖에 없는 부득이한 일이었다.
강단장과 여러 임원들과 상의한 끝에 결국 그 날짜에 음악회를 갖기로 결정한다. 불자들에게 있어서 아기예수님의 탄생과 함께 세계 평화를 기원해 볼 수 도 있고..
하지만 음악회 날짜가 차츰 다가오자 불안에 휩싸인다.
"그냥 하자구요. 손님이 적으면 적은대로 ..."
강단장은 그렇게 말한다. 나도 "그래요. 꼭 청중이 많아야 되는 건가요? 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분들을 모시고 한 해를 보내면서 그동안 밀어주신 보답을 해드리면 되는거지요.." 했다.
한 백여명쯤 오실까? 아니지 조금은 더 오실지도 몰라!
하루종일 여러곳에서 그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다.
우리 집에서는 정원님과 자하님이 손님을 위한 김밥말기에 분주하고 금장사 화엄장학회 분들은 샌드위치를 만들고, 은평법당 식구들은 과일을 그리고 음악회 총 감독이자 강단장은 연주에 몰두하셔야함에도 불구하고 밤새 호박죽을 끓여냈다.
무대에서는 어린 은평법당 친구들의 고사리 손들이 활을 잡고 리허설에 분주하고, 니르바나 필 단원들도 크리스마스 이브날의 송년음악회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나는 이곳 저곳의 현수막 설치와 피로연 장소를 둘러본다. 우리 임원들과 유불동 부처님나라의 회원들이 맡은 곳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음으로 전파한다!"
말을 이렇게 해놓으면 간단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 일이 도무지 쉬워보이지 않는다. 그 가르침은 배우기는 어렵지 않아도 실제로 해보이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하루 하루 사는 일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우리네의 삶이다. 그러나 그 삶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누구나 안다. 하루 하루의 삶들이 모여서 우리들의 인연을 이루고 그 인연을 바탕으로 우리들은 새 인연을 만든다. 그 인연들은 때로는 얼굴을 맞대기 싫은 악연도 만들고, 옆에 없어서는 안될 정도의 가까운 인연도 만든다.
그 가운데 어느 인연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들의 책임이다.
밤이 되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윽고 240석의 객석은 모두 차고 서서 보는 손님들이 늘어가고 요한 스트라우스의 박쥐 서곡으로 후원회원을 위한 송년 연주회의 막이 올랐다.
밖은 몹시 춥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작은 손길의 여운거사와 덕운거사는 밖에서 손님들을 기다린다. 그 두분들은 노숙자와 외국인 노동자, 혼자사는 노인들을 위해 상담과 음식을 늘 만들어 보내드리는 모임의 대표이면서 우리 후원회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다.
학식과 사회적 지위가 대단하심에도 직접 추운 곳에서 사람들의 안내를 손수 해주시고 있는 것이다.
임익선(바리톤) 님과 박정희(소프라노)의 백학, 오 사랑하는 아버지, 바람에 부는 산사들의 노래들이 이어지고 12월 24일의 밤은 무르익어간다.
이날은 어쩌면 지선이의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지선이는 아직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 아이는 게다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 지선이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는 강단장의 노고를 넘어서 지선이가 보여주는 음악에의 열정에 사람들은 눈시울을 적시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늘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동한다. 더구나 나 보다도 더 어려운 환경에서 꽃피우는 열정을 보면 더욱 그렇다.
지선이는 아직 어린 꼬마에 불구하지만 우리들에게는 큰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다. 누구나 지선이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녀가 더욱 성장하여 세계적 바이올리스트가 되기를 말이다.
니르바나의 꿈은 이런 아이들의 꿈에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삼년을 넘게 은평법당의 어린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는 강단장은 언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삼천배를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요."
삼천배는 몹시 어렵다. 마음을 먹으면 못할 것이 없지만 대부분의 불자 가운데도 삼천배의 절을 하신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일주일에 한번, 그녀는 삼천배를 하는 마음으로 아들들의 레슨을 담당한다. 그 아이들이 오늘 드디어 무대에 선 것이다.
음악은 사람들의 정서를 맑게 해준다. 우리는 슬픔과 번민, 화냄, 그리고 서운함, 명예, 갈등, 부의욕망등등으로 대립과 갈등 속에서 산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우리네 삶을 대표할 수 있을까?
우리들의 삶은 사랑과 평화 그리고 따스함, 열정, 부드러움, 맑음 이런 것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우리들의 삶과 너무 멀어서 오늘 이 저녁 이 자리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다. 나이와 직업, 성별을 떠나서 모두가 같은 마음이 되어서 말이다.
이날 우리는 특별한 레퍼토리 하나를 집어넣었다. 이 날 사회를 보아주신 진명스님은 불교방송에서는 한번도 방송되지 못한 금지곡이라고 설명을 넣어주셨다. 그것은 다름아닌 막스브루흐의 콜 니드라이(신의 날, 하나님의 날)이란 곡이었다.
정선이의 첼로 독주곡으로 시작된 이 곡은 정선이의 탁월한 연주로 매우 돋보였던 작품이었는데 다름아린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런 곡이었던 것이다.
이곡은 히브라이의 옛성가인 '하느님의 날'이란 뜻의 [콜 니드라이]란 선율을 변주곡 형식으로 꾸민 환상곡이이지만 이 선율은 지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교의 가장 귀중한 속죄를 위한 날 저녁에 교회에서 부르게 되는 특별한 성가였으므로 이 곡에는 종교적인 정열이 넘치고 있다.
이 곡은 동양적 우수와 달콤한 낭만적 서정이 돋보이는데 그것은 아마도 이 곡을 작곡할 당시인 1881년, 브루흐가 43세때로서 이때 브루흐는 간신히 노총각을 면하여 소프라노 투체크와 결혼하기 전년 쯤에 작곡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때의 사랑의 감정이 신앙의 깊은 정서에 스몄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불교는 지금 25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음악을 별로 갖고 있지 않다. 우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안고 살고 있음에도, 음악적으로는 그것을 표현해 내는 깊음은 별로 없는 것이다. 니르바나의 꿈은 그것을 실현해 내는 일이다.
그 음악적 실천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이 밑바침된 기독교의 곡은 수를 셀 수도 없이 많다. 우리는 그 곡이 비록 기독교적 신앙을 기초로 하고 있음에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부처님의 사상, 그 가르침, 그리고 제자들인 스님들과 우리 재가 우바새 우바이들이 그것을 안고 이 고단한 삶을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조그마한 도움이 되길 바라는 것이 바로 니르바나 필 하모닉의 꿈이다.
어린이 불교 오케스트라. 청소년 불교 오케스트라, 챔버 등등의 작은 모임들이 많이 많이 생겨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금생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오늘 그 날을 위해 많은 분들이 오셔서 격려를 해주시고 이 날의 즐거움을 안고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얼굴들을 바라보았다. 너무도 맑고 깨끗한 그 얼굴들을,..
날이 밝도록 밤을 이루지 못할 감동을 안고 지샜다. 니르바나 필 하모닉을 위해 애써주신 여러분들과 그 날 날씨가 몹시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객석을 모두 채워주신 스님들과 후원회원 여러분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린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서암 합장
첫댓글 니르바나 필하모닉 후원자의 밤입니다 후원자가 많을수록 불교 관현악단이 살아 납니다
우리 은평법당 법우님들이 얼마나 거룩해 보이던지..단쟝님의 속을 그렇게 썩이면서 또한 매서운 꾸중도 눈물 쏙 날만큼 맞았지요..닐바나오케스트라~~얼마나 소중한 분들인가요! 우리 불교계 전체가 당근 후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정말 애많이 쓰셨습니다! 올해는 모든 것이 풍성한 한해가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