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근청정
사람의 신체 전부를 가르켜 ’사대육신‘이라 한다. 사대는 부처님께서 설정하신 이 몸이 구성하고 있는 네 가지 원소 즉 흙, 물, 바람, 불의 기운을 말하며, 육신은 눈, 귀, 코, 혀, 몸, 뜻 등 몸의 전체 구성 요소를 말한다.
네 가지 원소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잘 운전되고 여섯 감관(눈, 귀, 코, 혀, 몸, 뜻)이 고장을 일으키지 않고 제 역할을 충실히 하면 건강이 유지되고 생이 즐겁게 전개된다. 그러나 저마다 감관이 고장나고 사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몸이 병들고 눈이 흐려지고 귀가 들리지 않게 되는 등 불편한 몸이 된다.
인간이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는 이 사대육신의 원활한 작용이 꼭 필요하다. 만약 사대육신의 원활한 작용이 없으면 삶이 고통스럽기는 말할 것도 없고 즐거움도, 보람도,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하는 무의미한 삶이 되고 만다.
나이를 먹으면 사대육신의 기능이 점차 저하되고 고장 나는 부분도 생기게 되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게 되고, 보고 싶은 책도 보기에 어렵게 된다. 옆 사람과 대화하는 데도 먼데 사람과 이야기하듯 소리를 크게 질러야 한다.
어느 날 저녁 평소처럼 뉴스를 들으며 한참을 의자에 앉아 있는데 의자에서 자꾸 또닥또닥 소리가 났다. 의자를 앞으로 당기고 뒤로 밀어서 소리가 안 나게 했지만. 소리는 계속 났다. 동작을 멈추고 가만히 들었더니 의자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귀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로부터 그 소리는 멈추지 않고 거의 몇 달이 지나도록 계속 이어졌다. 병원을 여러 군데 가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보고 침도 맞아보고 했지만. 도무지 차도가 없었다. 낮에는 그래도 이런저런 일에 신경 쓰는 바람에 소리에 휩쓸려 지내다 보면 소리가 덜 들려 고통이 덜한데 밤에는 소리가 크게 들려서 잠을 편하게 잘 수도 없었다.
특별히 귀가 고장 날 만큼 힘든 일도 하지 않았고 별다른 충격도 받지 않았는데 그냥 절로 느닷없이 생겨난 병이다. 어떤 의사는 말하기를 「세상에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병이 더 많고 나을 수 없는 병이 더 많다.」고 했다.
나이를 먹어서 생겨난 병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병을 치료하려고 병원에 오는데 병을 고칠 수 없다고 하면 병원에 올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했더니 아주 귀찮은 듯 퉁명스럽게 약이나 먹어보라 했다.
건강한 몸은 생을 즐겁고 보람되고 성취감 있게 한다. 사람에 살아가는데 절대적인 요소다. 몸이 불편하거나 고장 난 부분이 많으면 생은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만사에 의욕이 없게 된다.
’육근청정 사대강건(六根淸淨 四大康健)‘은 아침마다 예불 드리는 행선축원에서 드리는 기원문이다. 육근청정은 당연히 눈이 청정해지고, 귀가 청정해지고 혀가 청정해지고, 감촉과 코와 생각이 깨끗해지기를 비는 뜻이고. 사대강건은 몸의 네 가지 원소가 서로 조화를 잘 이루어 건강해지를 비는 뜻이다.
절에 있는 스님들 모두가 그러하기를 빌고 절에 다니는 모든 불자들이 그러하기를 빌고 나아가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청정한 정신과 맑고 건강한 몸 되기를 기원하는 축원문이다. 결국은 인간의 행복은 건강으로부터라는 말이 된다.
건강한 몸이 이루어지는 데는 생물학적으로는 건강한 유전자를 받아 태어나는 것이 우선이며, 식생활의 적절한 조절과 영양분의 고른 섭취가 중요하다. 또 부지런히 운동하고 규칙적 생활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그럼에도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신경 써도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늙음으로 해서 겪게 되는 노쇠 현상이다. 이는 불가항력의 법계의 법칙이다.
어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 노쇠라면 당당하게 의연하게 맞아야 한다. 오히려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해서 나를 편하게 하고 주변에게도 좋은 기억을 남기도록 해야 한다. 더 너그러운 모습으로 더 용서하는 얼굴로 뒷 사람의 육근청정 사대강건을 빌어주는 노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