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올레길 4코스/제주올레/올레길/올레4코스/표선/남원]
우중의 제주 올레 4코스, 비가 와도 나는 걷는다 by 미상유
제주도에서 머문지 8일째 되던 날.
제주도의 아침은 뿌연 안개로 자욱했다. 그리고 비가 왔다 그쳤다를 계속하고 있었다. 간밤에 천둥 번개도 제법 친 모양으로 아침 먹을 때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어제 쉬었으니 오늘은 꼭 걸으리라 했는데 비가 오니 걱정이 된다. 비가 그칠지도 모르니 우비를 배낭에 넣고 우선 버스를 타고 표선 해변으로 향했다.
3코스를 다 걸은 후에 촬영한 3코스의 끝지점이자 4코스의 시작점. 표선해비치 해변의 당케포구다.
4코스는 표선해변에서 부터 남원포구까지 이어지는 해안 올레와 오름과 중산간 올레가 섞여 있는 다채로운 올레이다.
총 길이가 22.9km로 가장 긴 올레였기에 하루를 쉬며 체력을 비축 했었다.
그런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다행히 표선에 도착했을 땐 비가 거의 그쳐 있었다.
비는 그쳐도 하늘은 여전히 흐리고 파도는 거세다.
그냥 돌아 갈까? 하는 마음이 한 귀퉁이에서 뭉게뭉게 연기처럼 피어 오른다.
포기하자는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파란 화살표를 방향등 삼아 걷기 시작했다.
파란화살표가 표시하는데로 걷고, 눈에 띄지 않을 쯤 다시 나타나는 파란 화살표를 보며 또 걷다 보면 올레길의 끝이 나온다.
회사 생활을 막 끝내고 도망치 듯 내려 온 제주도. 처음 목표가 올레길 완주였기 때문인지 길을 표시하는 파란 화살표와 파랑주황리본에만 집중하게 된다.
올레길을 걷는 내내 제주 올레에 취해 있으면 좋으련만 제주도를 느끼는 것도 잠시 잠시 나중엔 파란 화살표에 취하고 만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아쉬운 일. 조만간 다시 방문 할 제주 올레길에선 온 종일 올레길 그 자체에 취해 걸어 볼 요량이다.
검은 바위가 죽 늘어선 제주도의 바다.
1코스 끝의 광치기 해변도 그렇지만 이곳도 검은 바위로 이루어져 무척 쓸쓸하게 보인다. 날씨는 흐리고 파도가 거세니 더욱 고독한 풍경이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는 그곳에~~
라는 가사가 생각 난다.
그 바위 틈새에 유채꽃 하나가 수줍게 피어 있으니 눈에 확 띈다.
안개가 자욱해 한라산이 보이지 않지만 한라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갯늪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면 보이는 등대 하나. 커플티를 입은 커플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하하호호 하며 등대와 바위 위를 뛰어 다닌다.
출발지에서 이곳 까진 한시간 남짓한 거리인데도 날씨가 흐리고 피로가 쌓여서 그런지 무척 피곤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잠시 자리에 앉아 쉬어 가기로 했다. 눈 앞에 주황색 화살표와 파란색 화살표가 스쳐 지나간다.
파란색 화살표는 올레길을 정주행하는 화살표이고 주황색 화살표는 올레길을 역주행하는 화살표이다.
올레길을 모두 걷고 나면 반대로 다시 한번 걸어 보고 싶은데 언제쯤 그 날이 올까?
귤인지 천혜향인지 모를 오렌지류 과일 하나. 어제 서귀포 향토 오일시장에서 산 것이었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과수원 주변이나 길가에 유인 혹은 무인으로 한라봉이나 천혜향 등을 한봉지 한봉지 담아 팔기도 한다.(주로 시중에선 팔지 않는 비품이다.)
무인 가판대에서 2천원을 통에 넣고 한봉 집어 들기도 했는데 10여개 남짓한 B품 과일 중에서 두개가 유자여서 실망한 기억이 난다. 까는데 뭔가 이상했지만 한입 베어 물곤 상큼하게 고개를 마구 흔들었던 기억. 유자가 섞인 것이 고의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다. 고의가 아니라고 믿는 수 밖에.
작년 올레 길을 걸으면서 실수 한 것이 하나 있다. 백킬로미터를 넘게 걸어야 하면 가장 편하고 적합한 신발을 신어야 하는데 이땐 엉덩이를 힙업 시켜주는 운동 신발 스케쳐스 쉐이프업을 신고 걸었기에 더욱 힘이 들었던 것 같다.(특히 계단이나 오름을 오를 땐 아주 대단했다.)
바닥이 푹신해 물집이 잡히는 일은 없었어도 근육이 꽤 고생 한 듯 싶다. 돌아와서 이틀을 내리 숙면 취하고 온몸에 알이 배겨 제대로 걷지 못한 걸 보면 말이다.
걷다 보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내리더니 이내 쏟아 진다.
폭우를 뚫고 길을 한번 정도 잃었다 겨우 다시 올레길로 진입해 비도 피할 겸 눈에 띈 첫번째 식당으로 들어 갔다.
한 대접 가득 나온 전복죽. 그런데 영 만족스럽진 못하다.
뭍에서 건 제주도에서건 먹어 본 전복죽 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곳은 시흥해녀의 집이었다. (전복죽 중에서 말이다. - 사실 시흥해녀의 집도 시판 전복죽 중에선 맛이 있지만 전복죽 자체가 (나에겐) 그리 맛있는 음식은 아니니…….)
흑돼지 두루치기는 2인분 이상만 주문이 된다고 하여
포기를 하려다 난 포기를 모르는 남자란 사실을 상기하곤 그냥 2인분을 주문했다.
맛은 뭐, 놀랍게도 흑돼지의 향이 가득한 떡볶이 맛이었다.
사실 4코스 중간에 밥을 먹을 곳은 미리 정했었었다. 뚝배기가 유명한 식당이었는데 이곳을 나서서 100m 더 가자 눈에 띄었다.
속이 좀 쓰렸다.
중산간 올레로 접어 드니 다행히 비가 조금 그쳐 부슬부슬 짙은 안개 처럼 내렸다.
비옷은 땀과 비로 축축해져 있어 벗고 시원한 비를 맞으며 올레길을 걸으니 기분이 참 좋아진다.
우중의 올레란 이런 기분일까?
비가 제법 세차게 오는 날이라 그런지 올레길 초반에 보이던 사람들은 어느새 보이지 않고 몇 시간째 아무도 보지 못했다.
세상에 홀로 남아 길을 걷는 듯한 기분 좋은 고독함에 취한다.
그리고 나타난 오름. 올레 4코스 중간 지점인 망오름이다.
사실 이 날 비도 많이 오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중간에 버스를 타고 돌아 갈까 몇 번이나 망설였었다.
그래도 길을 걸으니 다리가 아프긴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안개가 자욱한 숲 속을 걷는 기분은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생경함과 익숙함, 그리고 차분하고도 정신적으로 촉촉해 지는 느낌이었다.
망오름을 한걸음 한걸음 올라 한걸음 한걸음 내려 가다 보니 어느새 4코스의 끝이 보인다.
누군가 말 했던 그 말이 떠 오른다.
한걸음 한걸음, 매번 단 한걸음만 걸으면 어느새 목적지라고.
이번 4코스는 좋기도 했지만 육체적으론 꽤 힘들었던 구간이었다. 22.9km를 9시에 걷기 시작해 오후 6시에 도착했으니 점심 먹고 쉬었던 시간을 빼도 8시간 남짓 걸었다.
힘이 든 만큼 꽤 뿌듯하기도 하다.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 비슷 한 감정이 올라온다.
그런데 앉아만 있다 걸어서 그런지 위 부분이 배 밖에서 만져도 매우 딱딱하다. 약국에 갔더니 피로하거나 무리를 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하여 약을 두가지 사서 다시 민박으로 돌아 갔다.
= 제주 올레길 이야기 8번째 예고!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
4코스를 걸을 때 무리를 해서 일까? 다음 날은 도저히 걷을 수 없었다. 아니 걷기 싫었다.
그래서 6코스를 걸으러 갔다 그곳의 중식 맛집인 아서원에 들러 짬뽕과 짜장면과(드디어 표준어가 된 짜장면에 만세!!) 탕수육 3종 세트의 미식 여행에 허우적 거렸다.
그 이야긴 곧, 다음 시간에.
<제주도 올레길 4코스 표선 남원 올레 정보>
- 패스포트 스탬프 확인 장소 중간 : 토산 남쪽나라 횟집 종점 : 남원포구
- 올레 4코스 시작점 가는 법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제주-표선간 시외버스(번영로 경유)를 타고 제주민속촌박물관에서 내려 해수욕장 쪽으로 1분 정도 걸어가면 시작점이 보임
- 올레 4코스 맛집 다미진 횟집(시작점 당케 포구에 있음) 남쪽나라 횟집(<- 원래 가려고 했었던 곳으로 뚝배기 등이 훌륭하다고 함) : 해병대 길 지나서 코스 내 있음
- 제주 올레 공식 사이트: http://www.jejuoll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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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맛있는 남자이야기 by 미상유 원문보기 글쓴이: 미상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