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하고 조용한 산행, 빼어난 풍광을 곁들인 산행을 선호하는 대부분의 산꾼들은 주말 산행지로 해안가나 심산유골의 명산들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도시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민초들이 늘 그런 산만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 시가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산들도 충분히 한나절 산행지로는 훌륭한 역할을 한다. 부산 산꾼들이 금정산 백양산 장산 달음산 등을 찾는 것이나 대구 시민들이 팔공산 앞산 비슬산 등을 즐겨 찾는 것, 창원 시민들이 무학산 천주산 정병산 등을 찾는 것이 모두 같은 이치다.
◇ 대구 명소 수성못서 출발하는 14.5㎞ 코스
| |
| 대구 용지봉 정상부 부근을 오르고 있는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 뒤쪽 멀리 길이 5㎞에 달하는 기다란 능선이 수성못까지 맞닿아 있다. 용지봉~병풍산 코스는 시가지 능선산행의 묘미를 잘 드러내는 편안한 산행지다. |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이번 주 대구의 숨은 명산으로서, 시가지 산행지로도 시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용지봉(龍池峰·634m)~병풍산(屛風山·568m) 코스를 답사했다. 굳이 부산에 비유하자면 성지곡수원지에서 곧장 오를 수 있는 백양산 같은 곳이라고 할까. 어쨋든 이 코스는 완만한 경사의 능선길을 편안하게 걸으면서 봄기운을 흠뻑 받을 수 있는 도심지 능선산행지로 권장할 만하다. 수성못을 둘러싼 용지봉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빼어나고 대구와 경산의 시경계선에 위치한 병풍산의 부드러움이 함께 녹아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코스의 총길이는 14.5㎞ 정도. 다소 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급경사 구간이 없고 방화선 역할을 하는 능선의 평탄한 길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다. 산행시간도 휴식 등을 포함해 5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수성못 남서쪽 모퉁이 등산로 입구~법이산 봉수대~배드민턴장~애기봉~용지봉 정상~백련사 갈림길~진밭재~감태봉~광산고개~병풍산~비내고개~상원리 버스정류장 순.
◇ 널따랗고 편안한 능선길 연속… 걷기도 수월
| |
| 용지봉으로 통하는 넓고 편안한 능선길.(왼쪽), 애기봉 정상 부근의 고리 모양 소나무. |
벚꽃이 어느새 끝물에 접어들고 있지만 들머리인 수성못 일대는 봄이 한창이다. 80여년 전 민족시인 이상화 선생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한탄했던(별도 박스기사 '떠나기 전에' 참조) 바로 그 무대이건만, 세월이 흘러 세상이 바뀌니 이제 이곳에도 봄은 오고야 말았다. 수성못 남서쪽 모퉁이 도로 건너편에 화장실과 등산안내도가 구비돼 있는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오른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 군락지 사이로 산행로가 잘 다듬어져 있다. 시민들이 즐겨 찾는 유원지 인근 산행지인 까닭에 일반 등산로에 비하면 '고속도로' 수준이다. 소나무 사이에서 청설모 한 마리가 먹이를 갉아먹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중간 중간 마을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많지만 줄곧 능선길만 타야 한다.
| |
| 법이산과 애기봉 사이 전망대에서 본 대구 시가지. |
30분가량 여유 있게 걷다보면 어느새 작은 봉우리에 오른다. 삼각점이 있는 법이산(333.9m)이다. 오른쪽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대구 달성군에서 청도 팔조령터널 쪽으로 뻗은 시가지가 훤하고, 가창면과 그 서쪽의 대구 앞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50여m 가면 법이산 봉수대. 조선시대때 군사용 목적으로 사용된 봉수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계속 능선길을 따른다. 10분 후 만나는 우측 전망대에서 주변 풍광을 다시 한 번 살핀 후 길을 재촉한다. 도심지 능선산행로 답게 인근에서 산책을 겸해 나온 사람들이 많다. 30여분 진행하면 배드민턴장이 있는 체육시설을 지난다. 여기서부터는 서서히 경사도가 높아진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진달래 능선을 이어가면 마치 고리 모양으로 비틀어진 신기한 모양의 소나무에 탄성을 지르게 된다. 이윽고 용지봉 아래 봉우리인 애기봉(556.0m)에 닿는다. 눈앞에 우뚝한 용지봉 정상부에는 팔각정 전망대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10여분이면 오르는 용지봉 정상에서는 무려 5㎞에 달할만큼 길었던, 지나온 능선길이 모두 드러나고 그 우측 끝의 수성못과 수성구 일대 시가지, 대구 앞산(658.7m), 산성산(653.4m), 대덕산(600m) 등이 시원하게 파노라마를 그린다. 용지봉 정상부는 사방이 시원하게 트인 빼어난 조망처다.
◇ 사방 탁트인 조망… 대구 시가지가 한눈에
| |
| 크고 작은 바위와 진달래가 이어지는 능선길. |
길을 재촉해서 진행 방향으로 5분만 내려서면 백련사갈림길을 지난다. 이정표 상 병풍산 진밭골 방향으로 직진, 계속 큰 능선을 따른다. 방화선을 위해 조성된 능선길이 하도 널찍해서인지 산악오토바이 동호인 한 명이 거센 엔진소리를 뽐(?)낸다. 산악오토바이 역시 동호인이 꽤 되는 취미 생활의 하나라고 하겠지만 산행객에게는 썩 반가운 손님은 아닌 것이 사실이다. 거의 평탄하다고 할 수 있는 능선길을 40분쯤 가면 사거리인 진밭재.
◇ 광산고개부터 대구 - 경산 경계길 구간
| |
| 이번 코스 마지막 봉우리인 병풍산 정상 오름길. |
왼쪽 길은 대구의 대표적 오지마을 중 하나로 알려진 진밭골로 가는 길이다. 일단 직진, 10분 후 대덕산 갈림길에서 오른쪽 경사로를 오르면 또 한 차례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2분만 가면 산불감시카메라가 서 있는 감태봉(578m). 살짝 오른쪽으로 돌아보면 용지봉이 우뚝하고, 왼쪽 멀리로는 경산 성암산이 눈에 든다. 이어지는 능선길을 살짝 내려서면 5분 뒤 사거리를 지나고, 다시 5분 후 광산고개 삼거리. 대구시와 경상북도 경산시의 경계선에 위치한 이 고개는 달성의 주석광산 인부들과 경산 지역 주민들이 넘나들던 고개였다고 한다. 왼쪽으로 가면 성암산까지 이어지지만, 취재팀은 오른쪽에 솟은 병풍산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조금 가파른 길을 10여분 오르면 병풍산 정상. 잠시 숨을 돌린 후 15분쯤 내려서면 임도가 개설된 비내고개에 닿는다. 대구 달성군 가창면과 경산시 남천면 사이의 오래된 고갯길이다. 직진하면 팔조령까지 갈 수 있는 길이지만, 취재팀은 오른쪽으로 임도를 따라 하산한다. 40여분 천천히 내려오면 종착지인 상원리 버스정류장에 닿는다.
# 떠나기 전에
- 저항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무대
| |
| 수성못에 설치돼 있는 이상화 시인의 사진과 시. |
이번주 용지봉~병풍산 산행의 들머리 역할을 하는 수성못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조성된 곳이지만, 현재는 대구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서 사랑 받는 곳이다. 대구시가 1983년 유원지화했고 2007년에는 못 가운데 전국 최대 규모의 음악분수가 설치됐으며, 수성구 측이 총 65억 여원을 들여 2010년부터 3년여의 공사를 벌인 끝에 지난해 11월 생태휴식공원으로 재탄생시켰다.
총면적 21만8000㎡, 저장수량 70만t 규모인 수성못은 일본 아이치현 기후시 시장을 역임하고 개척농민으로서 1915년 대구에 정착한 일본인 미쓰사키 린타로가 수성들의 잦은 가뭄 및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1925년 조성한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예산에다 사비까지 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민족시인 이상화(1901∼1943)는 이듬해인 1926년 6월 '개벽'에 발표한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통해 일본인의 저수지 조성 의도에 대해 비판한다. 과연 조선 사람들을 위한 조성인가 하는 것이다. 수성못은 바로 이 유명한 저항시의 배경이 된 곳이다. 한편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대구 둔동지가 수성못의 전신이며, 일제강점기에는 이를 확장했을 뿐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교통편
- 수성IC에서 내려 앞산순환로로 갈아타야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수성IC에서 내려 톨게이트를 지난 후 좌회전, 다시 경기장네거리에서 우회전한다. 1.2㎞ 이동 후 범안삼거리에서 범물동 방면으로 좌회전, 1.1㎞ 가다가 앞산순환로 삼덕톨게이트를 지난 후 2.4㎞쯤 직진한다. 범일초등학교 앞에서 범안로3길을 따라 우회전해 500m쯤 가서 수성못 방면으로 좌회전, 2㎞가량 이동하면 수성못에 닿는다. 산행 들머리는 수성못 남서쪽 모서리 인근이다. 산행 후 차량 회수를 위해서는 날머리인 상원리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야한다. 가창2번 버스는 오후 3시50분, 5시5분, 6시20분, 7시40분(시내 교통 상황 따라 변동 가능성 있음) 등에 있다. 택시를 부를 경우 요금은 7000원~8000원가량 나온다. 이 버스는 대구역까지 간다.
문의=생활레저부 (051)500-5151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