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의 니즈를 읽는 법(이정일, 작가)
1.차이_
나는 성도들의 마음속에 기억되는 설교를 전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나는 이런 욕심을 유튜버나 웹소설 작가를 보면서 배운다. 그들은 한 명의
구독자, 한 번의 클릭을 얻기 위해서 고민하기 때문이다. ‘범 내려온다.’에
붙은 높은 조회 수를 보면서 엔터테인먼트에서 이렇게까지 레벨이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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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는가 생각한다. 동시에 왜 이것이 설교로는 연결되지 않을까 고민한다.
드라마 작가 중 스타작가가 있다. 박 지은 작가인데 가장 최근에 터진
작품은 ‘사랑의 불시착’이다. 물론 그 이전에 집필한 작품들-‘푸른 바다의
전설‘, 별에서 온 그대, 역전의 여왕, 내조의 여왕, 넝쿨째 굴러온 당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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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히트했다. 코믹과 멜로의 적절한 배합으로 배우들의 매력을 한껏
살려주는 캐릭터 설정 능력이 탁월하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배우들의
매력이 섞여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매번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낳았다.
‘사랑의 불시착’은 북한 장교와 남한 상속 녀 사이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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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개연성은 떨어지지만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힘은 크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북한을 선택하되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았고, 서민들의 생활을
리얼하고 인간애 넘치게 묘사했다. 한마디로 북한이야기인데 웃기고 재미있다.
이런 접근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 시청자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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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인기를 누리는 상품이나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소비자와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이 힘이 무엇일까를 고민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뭔가를
주려고 하면 심리적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설교는 작위적인 가르침을 남긴다.
반면 드라마는 인간다운 여운을 보여준다. 헌데 교회 문을 나서며 잊히는
가르침과 달리 인간다운 여운의 엔딩을 본지 한참 후에도 마음에 남아 있다.
이런 차이를 설교는 고민해야 한다.
2.니즈(needs)
좋은 책을 읽을 때보다 한발 앞선 사람이 있음을 발견한다. 나는 이런 발견을
니즈를 통해서 한다. 니즈는 수요공급에서의 수요(demand)와 구분하여
쓰이는 마케팅상의 용어다. 점잖게 들리지만 실제로 니즈는 상대방의 필요를
뜻하는 요구사항이다. 니즈를 간파하는 일은 모두의 관심사다. 이런 니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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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에게도 비슷한 요구를 한다. 니즈는 설교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준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 것을 요구한다. 설교를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예측 가능한 사실을 소홀히 하면 치명적인 실수가 될 수 있다.
설교 학 수업을 들으며 대가들의 설교에 나타난 특징들을 배웠겠지만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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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교재 몇 권을 읽는다고 터득되지 않는다. 실제로 설교는 신학, 성서,
신앙생활 같은 여러 사실들을 연결하고 다루는 일이다. 문제는 여러 사실들이
연결 될 대 성도들의 니즈와도 맞닿아야 한다. 그것도 확실하게 말이다.
강단에서 설교를 전할 대 졸고 있거나 지루해하는 성도들의 면면을 볼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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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이 하얗다. 무언가 내 머리를 쾅 치고 지나간 것 같았고, 그 순간 나는
얼굴이 붉어지고 어깨까지 따끔거릴 정도의 부끄러움을 느낀다. 무엇이 문제
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루한 것은 지루한 것이다.
삶도 지루하고 무료한데 설교까지 지루해지자 성도들의 표정이 바뀌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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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교회가 약해졌지만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평가 기준은 내려가지 않았다. 설교에 대한 평가 기준도 마찬가지다.
삶의 문제만큼 대답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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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어떻게 답변하는 지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성도들의 높은 기대치
앞에서 설교자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치열하게 공부하거나
적당히 체면치레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3.원츠(want)와 니즈(needs)
프로이트 정신 분석학에서는 인간의 내면을 무의식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마케팅에서는 이것을 원츠와 니즈라고 표현한다. 정신분석학으로
설명이 복잡해지기에 마케팅 관점에서 설교와 연결시켜본다. 원츠와 니즈는
눈에 안 보이는 숨은 욕구다.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동화‘괭이부리 말 아이들’
에 나오는 어린 숙자의 속마음으로 설명해 본다.(중략)
4.넷플릭스, 웹툰, 웹소설_
우리는 소라게 같다. 어디에 살든 무엇을 하든 우리의 필요를 더 잘 만족
시켜주는 것을 만나면 다른 껍질로 옮겨간다. 요즘 성도들은 넷플릭스로
갈아타고 있다. 그래서 설교자는 넷플릭스를 상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인기 있는 TV드라마나 영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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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로 공급하는 업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대와 붙으려면 상대방의
강점이 뭔지를 알아야 한다.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넷플릭스가 설교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지만,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리스도인이 성도답게 존재
할 수 있는 공간이 확연히 적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때 가상공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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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나’를 지켜낼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같이 느껴졌다. 적어도 영화를
보는 동안만큼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속 세계가 진짜 현실 같이 느껴졌다. 이런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소설과 웹툰이 보여준다. 스토리텔링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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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하고도 오래된 생존의 기술이다. 이야기 속 세상은 유쾌하고 변화무쌍
하고 짜릿 하다. 작가는 주인공을 천당에서 지옥까지 내몰며 악당과도 겁
없이 상대하게 만든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극한 상황까지 밀어붙인다.
독자는 자신이 현실에 맞닥뜨리는 것과 비슷한 문제들을 멋지게 해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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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을 보면서 이야기의 마법에 빠져든다. 김언수의 ‘설계자들’을 읽은
그리스도인은 드물 것이다. 살인청수업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을 대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져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소설에 보면 ‘추’라는 킬러가 여자를 살려 주면서 사창가로 돌아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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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여자는 돌아갔다. 돌아가면 죽는다는 걸 알았고
사창가를 역겨워했지만 바깥세상이 주는 두려움이 역겨움보다 더 컸기 때문
이다. 소설 속 여자처럼 우리 역시 고통 받고 갈등하지만 다수는 자기가
무엇 때문에 고통 받고 갈등하는지 잘 모른다. 작가는 그런 모호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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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를 이야기로 써봄으로써 그걸 한 번 살아본다. 독자 역시 그런 인생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봄으로써 여자가 그곳을 역겨워하면서도 다시 그곳
으로 돌아간 속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 산당을 없애지 못한 속내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스도인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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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살인, 알코올 중독, 가정 폭력, 포르노가 소재인 범죄소설을 회피할
것이다. 하지만 범죄소설이라도 좋은 소설은 악에 대해 우리가 막연하게
갖고 있던 생각을 뒤흔든다. 우리를 둘러싼 진짜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사는 게 힘들면 기도하지만, 교회 밖 사람들은 하는 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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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풀리자 평생 삼재려니 생각하며 버틴 외외수처럼 소설 속 여자처럼 살아
간다. 그런 삶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나는 순수문학을 공부했기에 웹툰과
웹소설을 잘 몰랐다. 하지만 청년들이 성경은 안 읽어도 ‘신의 탑’같은 웹
툰을 읽는 것을 보고 놀랐다. ‘신의 탑’은 창세기10-11장에 나오는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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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더 많은 인물이 나오고 레위기보다 더 복잡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데
독자들이 매료되었다. 이게 웬일인지 싶어 나도 읽어보았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너무나 강렬했다.
5.설명과 묘사_
여행의 기쁨은 사소한 발견으로 가늠된다. 나비 한 마리, 풍경하나, 파도치는
모습, 깨진 담벼락 틈에 난 풀에도 기쁨이 숨어 있다. 이런 디테일이 모여서
문장이 될 때 여태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기쁨을
성도들은 설교자를 통해서 느끼고 체험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성도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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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는 언제나 높으면서 설명은 싫어한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나 웹툰의
어법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묘사는 풍경, 상황, 심리, 감정묘사가
있는데 이중 감정 묘사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 감정 묘사는 작가의 감정이
아니라 책속의 인물이 느끼는 감정이다. 묘사에선 아는 만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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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인물을 전달하려면 그가 던졌을 시선이나 생각이나 감정도 느껴야
한다. 등장인물이 건조한 인물이라면 묘사도 건조할 것이다. 설교에 묘사가
덧붙여지면 설교는 풍성해진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힘을 갖게 된다.
작가는 일상의 이야깃거리를 포착하는데 이게 중요하다. 이야깃거리를 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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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 대 남들과 다른 관점이 있다면 이것은 좋은 묘사를 만들어내는 토대가
된다. 작가는 그리움을 추상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역, 철길, 접힌
우산, 비, 그리고 처마 끝에 서 있는 사람 같은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그리움에
걸 맞는 이미지를 모아서 그림을 그려내듯이 써내려간다. 이런 묘사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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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감, 진정성이 높아진다. 요즘 대세는 유튜브와 넷플릭스이다.
영상은 감각적이고 빠르게 오감을 자극한다. 하지만 영상이미지도 담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찰라 같은 순간에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나
감정이다. 이것을 묘사가 보여준다. 작가는 묘사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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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들인 시간만큼 독자는 더 오래 깊이 생각하고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독자 역시 작가처럼 섬세한 시선으로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본다. 닮아가는 것이다.
6.설교의 시선_
작가는 이야기의 전개에 큰 공을 들이지만 무엇보다 첫 문장에 공을 들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 문장을 읽는 찰라 같은 시간인 0.2초 동안 독자는 더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첫 문장에서 독자의 니즈를 만족 시켜주지
못하면 그 순간 끝이다. 아무리 흥미로운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어도 허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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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시인은 단어의 선택과 배열을 고민한다. 독자의 감수성을 자극해야
그가 쓴 시가 독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설교자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겠지만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이 설교를 성도들이 듣고
기억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이 설교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도를 설득할 수
있을 테니까.
7.느낌_
공교롭게도 글쓰기 관련한 책을 서너 권(디퍼런트, 글쓰기 공중부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서른, 내 인생의 책 쓰기) 읽고 있었는데 이 아티클
하나가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어줬습니다. 글쓰기의 핵심인 묘사에 있어
‘아는 만큼 보인다. ‘ 오늘 밤 쉬 잠이 들 것 같지 않습니다.
산전수전 공중전 리스펙트!
2021.3.17.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