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태평터미널에 방문했던 기억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다.
오래된 빨간색 벽돌 건물에 칠판으로 만들어진 시간표가 인상적이었다.
창문, 문틈과 같은 시설들이 옛날 학교와 비슷하게 생겨서,
학창시절의 추억이 샘솟는 학교라는 제목을 붙일 만큼 뇌리에 강하게 박힌 곳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다시 한번 찾아가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두 번째로 이 지역에 왔었던 2011년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이곳을 패스했고,
그 뒤로는 좀처럼 갈 기회가 생기지 않아 추억 속의 장소로만 남았었다.
그러다가 10년이 지나서 다시 기회가 생겼다.
인상 깊었던 장소에 다시 발을 들여 추억을 곱씹을 기회 말이다.
수도권 터미널 업데이트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태평과의 훈훈한 추억을 더듬어보려 다시 한번 안부인사를 하러 갔다.
꼭 10년 만에 다시 태평터미널을 찾았다.
10년 전 게시물을 되짚어 보니 지금의 내가 봐도 재밌는 비유와 문구가 가득하다.
그만큼 당시에 태평에서 느꼈던 인상이 무척 강렬했다는 뜻일 테다.
태평터미널은 경기도에서 보기 드문 버스터미널 중 하나이다.
대형 버스터미널 아니면 소규모 정류장이 대부분인 수도권에서,
전형적인 지방 시골 버스터미널 모습을 간직한 몇 안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곳도 10년 전과 비교하면 많은 부분이 바뀌어 있었다.
그동안 리모델링을 했는지 승차장 바닥, 창틀, 의자 등이 모두 교체가 되었다.
처음에 이곳을 찾았을 땐 학교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10년이 지나고 보니 이제는 학교라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위치가 달라져서일까,
이런 낡은 건물을 점점 보기가 힘들어져서 일까,
아니면 나이 먹고 감성이 메말라서일까...
다음 장면을 보기 전까지는 정확한 이유를 잘 몰랐었다.
대합실을 보고 나니 왜 이전과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건물만 그대로 놔뒀을 뿐 모든 게 이전과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짙은 갈색 창틀, 칠판 시간표와 알림판, 텅 빈 실내에 양동이 두 개를 받쳐놓았던 대합실은,
주황색 의자와 TV, 은색 창틀, 하얀 바탕의 시간표 등으로 싹 바뀌어 있었다.
이러니 학교에 온 것 같다는 감상평은 과거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그저 깔끔하고 아담한 터미널의 이미지로 딱히 인상 깊게 다가오지 않는다.
적당한 비유를 하고 싶어도 맞는 단어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나마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면 시간표가 이천터미널과 똑같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태평이 이천 생활권이라지만 엄연히 여주 소속인 지역인데도,
이천 시간표를 벤치마킹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태평터미널 시간표는 서울행을 제외하면 상당수가 이천터미널과 겹친다.
동서울, 수원, 인천행 정도가 이황리-장호원-감곡행으로 계통이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세 노선을 제외한 모든 노선은 국도 위주로 운행된다.
이천 경유 / 미경유 노선의 특징이 완전히 상반되는 면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인구 및 수요에 비해 노선이 굉장히 발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지방 대다수 시골터미널과 다른 점이다.
이 정도 규모의 소규모 터미널에서 동서울행이 무려 20분 간격으로 다닌다는 것은,
아무리 장호원, 감곡 및 군단 효과를 받는다 한들
자체 수요가 어느 정도 받쳐주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배차간격이다.
이렇게 다양한 노선망과 군인, 학생, 노인 위주의 적절한 수요는
태평터미널이 지금처럼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태평터미널은 지자체, 기업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터미널이다 보니,
개인(소유주)이 돈이 없었다면 절대로 리모델링은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건물 밖으로 나와 읍내를 잠시 바라보았다.
터미널이 바뀐 이상으로 읍내의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이전에는 전형적인 면 단위의 정비 안 된 시골 마을이었다면,
지금은 깔끔하게 정비되어 보다 도시적인 느낌이 강해졌다.
실제 이곳은 지난 10년 사이에 여주군 가남면 → 여주시 가남읍으로 등급이 바뀌었다.
등급이 높아진 만큼 그에 맞는 옷차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마침 사진을 찍는 도중에 천안에서 여주로 가는 시외버스와 마주쳤다.
하루에 한 대뿐인 노선인데 정말 운 좋게 만났다.
하루에 한 대뿐인 그 노선은 태평버스정류소를 들어가지 않고,
어찌 된 일인지 위 사진의 노상 정류장에서 잠깐 멈춰 섰다가 출발을 하였다.
태평버스정류소는 학교와 같은 매력은 간데없이 사라졌지만,
본연의 역할에 여전히 충실하면서 오랜만에 건넨 안부인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로 인해 안도감이 들고 마음이 태평해질 수 있었다.
터미널 폐쇄 및 노선 감축이라는 흉흉한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와중에도,
꿋꿋이 별 탈 없이 안정적인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자, 이제 다음에 찾을 곳은 과연 안정을 찾았을까,
걱정 반 기대 반 가득한 마음을 안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첫댓글 여주시 가남읍 태평리 버스터미널의 모습 오랜만입니다.
잠시 들렸다가 가는 곳이지만, 3번국도간 이동객이 꽤 많은곳이죠.
감곡발-장호원-태평리-동서울행은 변함없이 잘 유지되는것으로 보이네요.
동서울-감곡 노선이 주력이니까요~ 시/군 중심지를 지나는 노선이 아닌데도 20분 배차라는 사실이 위력을 증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여주의 유일한 읍이죠. 동서울에서 감곡행타면 아미리 하이닉스에서 제일 많이내립니다. 태평리수요는 그렇게 많지는 않쳐.
그렇군요~ ㅎㅎ 하긴 하이닉스 비즈니스 수요가 가장 많을 수밖에 없겠네요.
동서울 노선의 경우 토요일 오전 수요가 상당한데 태평리 수요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본인이 토요일 장호원에서 08~09시 대 버스를 이용하면 상승대 군인 10명 이상 타고, 태평리 손님 10명 이상 타면 정작 하이닉스 손님은 타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동서울에서 하이닉스 손님들이 아침에 많이 내릴지 몰라도 퇴근시간대에는 동서울 올라가는 수요가 반토막 났습니다. 하이닉스 셔틀관광버스가 부발역까지도 모셔다 주거든요.
터미널 바깥에서 하차하고 가는 버스를 보아하니 하루 2번 다니는 천안출발 여주 노선이네요. 오후3시 5분~10분 사이에 찍으신거 같습니다. 여주가는거야 시내버스가 많으니 굳이 터미널 들어올 필요가 없죠. 차량번호가 6058호라 써 있는거 보고 알았습니다. 여기 카페 회원이신 경기배돌이님이 스페어로 승무하십니다.
지역 주민으로서 해주실 수 있는 자세한 말씀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태평리 수요가 과연 동서울행 20분 배차를 할 정도로 많은가 의문이 살짝 있었는데, 감곡 장호원 상승대 수요가 합쳐진 것이라고는 해도 만석이 될 정도면 비중이 상당하다는 점은 확실하군요. 하이닉스 쪽은 부발역이 있으니 이전보다는 크게 줄어드는 게 당연하겠고요. / 천안발 여주행 노선만으로도 시간을 예측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 말씀을 듣고 나서야 정확히 몇시에 갔는지 기억이 나네요.
태평터미널이 여태 이천 시내에 있는 줄로 알았는데 여주에 있는 터미널이었군요. 중간정류소 역할을 하는 터미널치고 타고 내리는 사람이 적지 않아 보였는데 터미널이 유지되는 이유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동서울행이 20분 배차면 시외버스라는 점을 감안했을때 정말 좋은 배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구는 적지만 자체 수요가 꽤 되는 모양입니다. 동서울행 배차는 이천터미널과 맞먹을 정도이니 경이로운 수준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