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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그 산 아래
이의양 1. 큰 녀석이 입은 붉은 악마의 트레이닝을 가리키며 딸애가 지르는 소리에 김부장은 낮잠에서 깨었다. “엄마, 왜 오빠만 저렇게 고급 트레이닝을 사주는 거야?” “응, 너는 아빠가 사준다고 했잖아. 더 좋은 것으로,” “아빠는 우리 팀이 미국하고 싸워 지지 않아야 사준다고 했는데, 오빠는 그냥 사주고,” 입이 나온 딸은 투덜거리며 김부장을 원망스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내는 어제 마련한 새 수영복을 챙기며 말했다. 근래 뱃살이 늘었다고 쫑알대던 아내는 작년에 다니던 수영장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몸이 불어서 작년에 입던 수영복이 너무 꼭 조여 온다고 새로 산 파란바탕에 빨간 줄이 굵은 대각선으로 그려진 수영복이었다. 김부장은 거슴츠레한 눈으로 아내가 펼쳐서 차곡차곡 접어 넣는 수영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매달려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붉은 악마의 트레이닝을 입은 아들을 보았다. 바람 한 점이 눈앞을 스치는 느낌이 들며 아내의 수영복과 아들의 붉은 티셔츠가 펄럭거렸다. 마당을 쓸고 있는 어머니의 하얀 머리위로 가을바람이 한바탕 스치자, 빨간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지며 마당에서 몰려다녔다. 어젯밤에 시골에 계시는 형수님에게 전화가 왔다. 팔순 가까이 된 어머니가 근래에 들어서 급격하게 노망이 들어가는 것 같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오래 사시지는 못할 것 같으니 시간을 내어서 한번 내려왔다 갔으면 하고 말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의 수영복까지 챙긴 아내는 딸애와 같이 수영장에 간다고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순간적으로 현관문을 통하여 들어오는 바람이 시골의 사립문을 흔들며 지나는 가을바람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시골을 혼자서라도 다녀와야겠다. 형님은 자갈체취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집에도 못 들어오고 쫓겨 다니는 형편이다. 어제 형님과 전화통화를 했는데, 몇 달만 견디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하면서 김부장에게 어머님을 뵙고 오라고 말했다. 네 형제 중에서 큰 형님이 어머니를 모셨는데, 아래의 여동생 둘은 전라도 광주와 인천에 시집가서 살고 있다. 김부장은 대학졸업 후부터 쭉 지금 다니는 건설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형님의 사업이 실패하자 서울로 어머니를 모시려고 했지만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어머니는 떠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 골짜기에서 태어나서 그 골짜기에 사는 아버지에게 시집갔다. 그리고 자식 넷을 다 키우고 이십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 방을 지키고 계셨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그 골짜기는 이 세상 전부였다. 장날에 읍내로 가는 일만 제외하고는 그 골짜기를 평생 동안 벗어나지 않았다. 자식들의 성화에 못 이겨 도시로 올라오면 그 다음날에 곧바로 서둘러 골짜기를 향하여 내려가셨다. 2. 어머니는 새참을 지고 논두렁을 걸어간다. 장마에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개울을 여동생은 건너고 있었고, 아버지는 따가운 햇살 아래서 논의 벼이삭을 돌보고 있다. 종호는 어머니의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개구리가 펄떡 논두렁을 뛰어오르며 발아래에서 숨을 헐떡였다. 종호는 물끄러미 개구리를 내려다보다가 얼른 주저앉으며 두 손으로 탁 덮쳐잡았다. 손 틈으로 개구리의 다리가 삐죽이 힘을 주며 삐져나온다. 종호는 여동생을 힐끗 보고는 개구리를 슬그머니 주머니 속에 넣었다. 어머니는 개울물을 낑낑거리며 건너는 여동생을 향하여 새참을 먹으러 오라고 소리쳤다. 두 손으로 긴 치마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린 여동생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종호는 논두렁을 펄쩍펄쩍 뛰면서 여동생에게 달려갔다. 개울가에 서서 오빠로서의 근심스런 표정을 넌지시 지었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어 잡고 올라오라고 했다. 비틀거리며 겨우 개울을 다 건넌 여동생이 종호가 내민 손을 잡으며 둔덕에 올라서는 순간, 종호는 킥킥거리고 웃었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 넣었던 개구리를 슬며시 잡아서 얼른 여동생의 옷깃 속으로 쏙 집어넣었다. “엄마!” 물컹하며 가슴 속으로 뛰어든 개구리의 촉감에 여동생은 자지러질 듯 소리치더니 그만 풍덩하고 물속에 빠졌다. “히히히~” 종호는 물에 빠진 여동생을 보고 배꼽을 쥐고 막 웃더니 멀리서 일하는 아버지를 향하여 뛰어가기 시작했다. 짓궂은 오빠의 장난에 동생은 물에 흠뻑 젖어서 막 울었다. 어머니는 종호에게 손가락질하며 동생을 데려오라고 소리쳤다. 따가운 여름햇살이 사방에서 빛을 발하고 짙은 초록은 바람에 산들거렸다. 논 뒤로 솟아오른 산에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발아래로 튀는 개구리를 피하며 논두렁을 막 뛰어가던 종호는 비에 뭉그러진 논길의 찰흙에 발이 미끈했다. 그 순간에 몸이 휙 하고 뒤틀리더니 논바닥으로 철퍽 나가떨어졌다. 울던 여동생은 오빠가 논에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까르르하고 배꼽을 쥐었다. 어머니는 쯧쯧 하면서 혀를 찼다. 항상 말이 없는 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3.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것 같은 허전함에 김부장은 정신이 들었다. 아내와 딸은 수영장에 가고 아들 녀석은 게임을 하다가 잘 안되는지 꿍얼꿍얼 거리다가 밖으로 휙 나갔다. 십이 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은 우울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시작한 서울생활이었다. 같은 학교의 후배와 결혼해서 평탄하게 살았다. 남들은 구조조정으로 모가지가 달아나는 위기에서도 김부장은 살아남았다. 그것은 순전히 아내의 덕이라고 봐야한다. 회사의 이사하고 가까운 친척인 아내의 로비로 김부장은 명예퇴직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다. 아내는 배경과 힘이 있는 집안의 막내딸이었다. 남들이 생존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에도 여기만큼은 무풍지대였다. 촌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이만큼의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자체가 하늘이 내려 준 행운 같았다. 그 운명에 감사하듯 견실하게 살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가난했던 시절의 그 골짜기가 신선한 공기를 토하고 있었다. 토담집의 흙냄새 속에서 감자와 옥수수를 가운데 놓고 빙 둘러앉았던 형제들은 아직도 어린 그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고향에서 자식을 서울에 있는 대학까지 보내서 출세시켰다는 말을 아버지와 어머니는 들었지만 항상 담담했다. 봄, 여름, 가을에는 코딱지만한 논과 비탈진 산등성의 밭에 매달렸고 겨울이면 아버지는 읍내로 나가 막일이라도 찾아다녔다. 어머니는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화롯불에 언은 된장찌개가 다 졸아버릴 것만 같아 마음 조였다. 멀리서 시골버스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어머니는 얼른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에 막차에서 내린 아버지는 터덜터덜 눈길을 밟으며 마당에 들어섰다. 둘째인 종호가 공부를 잘하니깐 다른 형제들에게 드는 학비를 아끼고 종호만 서울로 유학 보낸 대범함이 아버지에게 있었다. 종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현장과 서울부근의 아파트건설현장에 매달렸다. 정신없이 일에 매달리다보니 나이는 사십 중반을 후딱 넘기고 오십 줄에 접어들었다. 참으로 인생이란 빠른 것이다. 자기 때문에 대학에도 못간 다른 형제들에게 미안했다. 그 미안함에 보답도 못하고 벌써 초로에 접어들다니...... 김부장은 핸드폰을 들어 아내에게 전화했다. 처갓집이 가까워서 장모님은 자주 뵙지만 고향의 어머니는 벌써 일년 가까이 뵙지 못했다. 시골에 내려간다면 아내의 성질에 난리법석을 피울 것이다. 소문난 잔칫집에 가듯 백화점에 들려 어머니와 형님, 형수와 조카에게 준다고 선물을 잔득 사서 차에 실을 것이다. 또한 시골에 계신 어머니를 보면 다짜고짜로 병원으로 모시고 달려갈 것이다. 어머니의 정서는 역시 그 골짜기다. 먹던 밥이 가장 맛있고, 다니던 길이 가장 정겹다. 뒷문을 열고 멀리 언덕위에 보이는 아버지의 산소를 향하여 고개를 돌리고 임종을 맞을 것이다. “여보세요.” 씩씩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부장은 말을 둘러댔다. “난데, 회사일로 지금 지방에 출장가야겠어. 오늘밤은 그곳에서 자고 내일 저녁에나 돌아올 거야.” “어머나, 그러면 오늘 월드컵 축구경기도 못 보겠네요.” 4. 차는 속초로 가는 국도에서 옆으로 꺾어지며 서석 쪽으로 향했다. 반쯤 열어놓은 차창으로 후덥지근한 바람이 들어왔다. 에어컨을 끄고 왕복 이 차선으로 포장된 도로를 달렸다. 지금 타고 있는 자동차는 서너 달 전에 아내가 친정아버지에게 심술부려서 뜯어낸 돈으로 산 것이다. 건설현장에서 커다란 소음에 거친 자동차만 의지했던 김부장은 지금의 고급승용차가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다. 경운기의 굉음이 들리는 가슴속의 고향, 지금 가고 있는 산골짜기의 신선하고 소박한 공기와 어울리지 않는 자동차라서 그런 모양이다. 한참 달리자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개울이 보였다. 왼쪽으로 가면 구룡령으로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운두령을 넘는 길이었다. 김부장은 구룡령 쪽으로 달리다가 오대산 줄기로 향하는 샛길로 접어들었다.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서 조그만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넜다.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다소곳한 모습으로 고향집이 자태를 드러내었다. 어렸을 때에 형제들이 복작거리며 모여 살던 곳이었다. 집 뒤의 언덕에 있는 아버지의 묘가 보였다. 왜 눈길이 아버지의 산소로 먼저 가는 것일까, 김부장은 차에서 내려 걷다가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별안간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은 거의 오십 년의 세월이 한꺼번에 와 닿아서일까, 부모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종호가 서울에 있을 때에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그 때가 이십년 전이다. 그러니깐 어머니는 안방을 홀로 지키며 이십년의 세월을 아버지의 산소만 바라보고 살은 셈이다. 안방에는 뒤뜰로 난 쪽문이 하나 있었다. 그 문을 열면 언덕위의 아버지 산소가 한눈에 보였다. 자식을 다 떠나보낸 어머니는 매일 아버지의 발끝 가까이 다가가는 꿈만 꾸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말없이 흐르는 강이었다. 안방의 쪽문을 통하여 멀리 보이는 아버지의 산소로 이어지는 강물은 밤마다 흘렀다. 이렇게 어머니는 떠나는 것일까, 생명의 순환이라는 철칙에 얽혀서 어머니는 아련한 저녁노을처럼 먼저 손을 흔들며 떠난다. 부모란 이렇듯 안타까운 세월의 시차를 두고 자식과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들었다. 멀리서 개짓는 소리가 들렸다. 오대산 줄기를 타고 흐르는 바람이 김부장의 어깨를 스쳤다. 수건으로 눈가를 훔친 김부장은 천천히 걸어서 고향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5. 개짓는 소리에 밖을 내다보던 조카는 김부장을 발견하고는 얼른 뛰어 나왔다. 곧이어 형수님이 어머니를 간호하다가 안방 문을 열고 마당에 내려섰다. 김부장은 조카내외의 인사를 받으며 형수님의 손을 덥석 잡았다. 무척 고왔던 형수님이었다. 김부장이 대학시절 때에 집에 내려오면 싹싹한 동작으로 도련님의 식탁이라며 산에서 온갖 나물을 캐어다가 밥상을 차려주었다. 봄날에 날리는 나비처럼 화사한 모습으로 살림을 도맡아 했었다. 그렇던 형수님의 귀밑머리가 하얗게 빛났다. 눈물을 글썽이던 형수님은 김부장의 손을 끌고 안방으로 들어섰다. 어머니는 등을 돌린 채 뒤뜰로 향한 쪽문을 열고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계셨다. 형수님은 큰 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도련님께서 오셨어요.” 야윈 어깨가 약간 흔들리는 것 같더니 어머니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형수님은 어머니의 귀에 대고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도련님께서 오셨어요.” 고개를 든 어머니는 형수님을 한참 바라보더니 두 손을 바닥에 대고 몸을 돌려 앉으며 김부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또 한참을 멍한 시선으로 있다가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물었다. “젊은 양반은 뉘시유?” 김부장은 얼른 고개를 돌려 방문 밖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슴속이 울렁거리며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어머니는 아들을 앞에 놓고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궁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별안간 주머니 속에 있던 핸드폰에서 요란한 벨소리가 울렸다. 딸에게서 온 전화였다. “아빠, 우리가 미국하고 싸워서 일대일로 비겼어. 한국이 지지만 않으면 트레이닝 사준다고 했으니, 비겨도 사주는 것 맞죠?” 잠시 후에 또 전화벨이 울렸다. 아내에게서 온 전화였다. “여보, 지금 일 잘 보고 있어요? 아무래도 당신이 귀여운 공주님에게 비싼 트레이닝을 사주어야겠어요. 지금 보니깐 우리가 축구에서 미국과 비겼어요. 호호, 공주님이 좋아서 죽겠데......호호호,” 김부장은 바쁘니 나중에 통화하자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핸드폰의 전원마저 뺐다. 저녁을 준비한 형수님의 밥상을 받으며 어머니를 이불 속에 눕혔다. 6. 풀벌레소리가 들렸다. 시원한 바람이 뒤뜰을 스치며 방안으로 밀려들었다. 김부장은 혹시 어머니에게 냉기가 들을까봐 뒷문을 닫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문을 열어놓으라고 손짓했다. 아직도 김부장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는 쑥 들어간 눈을 들어서 뒤뜰에 멍한 시선을 놓고 계셨다. 혹시 멀리 아버지의 산소만 바라보는지도 몰랐다. 열일곱 살 때에 이 집으로 시집와 살았으니 족히 육십 년은 넘게 이 방에서 지냈다. 신혼의 꿈도 이곳에서 꾸었으며, 자식도 모두 이곳에서 낳았다. 아버지도 이 방에서 돌아가셨다. 척박한 산속에서 한우물만 파듯 좋으나 싫으나 이 방이 어머니의 전부였다. 김부장이 어렸을 때에 안방에 들어오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쪽문을 열고 마주앉아 계셨다. 흉년에 먹을 것이 없으면 이 곳에 앉아 근심했고, 자식들이 시집 장가 갈 때에도 이 곳에 앉아 혼숫감을 마련할 돈 걱정했다. 그 많은 세월의 사연이 고스란히 뒤뜰에 묻혔다. 그리고 아버지도 먼저 손을 흔들며 저 위에 있는 언덕에 잠들었다. 뒤로 난 쪽문은 이 집안의 전설이었다. 뒤뜰의 장독대 아래로는 파란 이끼가 빛나고 버려진 농기구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무성히 자란 잡초들 틈으로 물기 머금은 개구리가 뛰었다. 김부장은 어머니의 곁에 가 앉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장작처럼 삐쩍 마른 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렀다. “에구구, 시원해라. 나이가 들어서 죽을 때도 넘었는데...... 젊은 양반.” 어머니는 힘없는 다리를 쭉 펴며 말했다. “다리는 자꾸 아파오고 죽지는 않으니 참 속상해. 얼른 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게 해 달라고 하는데, 참으로 죽기도 힘들어......” 눈을 스르르 감는 어머니의 표정이 먼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더듬거리는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김부장의 귓전을 맴돌았다. “젊은 양반이 참 고맙수, 시원해서 잠도 잘 오네...... 히히.” 글 / 이의양 (2002. 7월 초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