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단월드는 인생의 파트너 입니다.'
몸에서 계속 사인을 주다!
"나의 29년 지기 성공파트너"
1987년 단월드 평생회원 14기로 입회한 박영화님(52세), 전 법원 부장판사 역임, 현 변호사
단월드와 함께 한 인생이 어느덧 20여년이 지났습니다. 25년 전 당시 베스트렐러였던 '소설丹'을 읽고 단전호흡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86년 단학선원(단월드의 전신)에서 주최하는 단학공개강연회'에 참석을 하게 되었고, 그때 진동수련을 하면서 기운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판사였던 저는 모든 상황을 객관화 하고, 의심해야 했던 직업의식에 제가 체험한 기운과 진동을 쉽게 믿지 못했습니다.
'아마 분위기상 홀려서 그랬을 거야...'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강연회에 다녀 온 후 집에서 혼자 해보는데도 기운이 느겨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의심하고 여러 날을 혼자 해보았죠. 그래도 계속되는 체험으로
'아! 단학이란 것에 진짜 무언가가 있구나!'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당시 직업상 늘 시시비비를 가려야 했고, 또 오랜 시간 앉아서 근무해야 했기에, 스트레스와 허리통증이 이루말할 수 없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도 누워서 읽을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진동과 지감수련을 하면서 허리 통증이 몰라보게 호전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하기 위해 단월드를 찾았었죠.
수원 지방법원에서 근무했을 당시, 수원에는 센터가 없었습니다. 당시는 수련을 좋아하는 평생회원들이 뜻을 모아 센터를 개설하고, 공동으로 운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수련생 한 분이 장소를 제공하였고, 저도 함께 수원센터 개설에 참여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월드가 얼마나 좋은지, 당시 제 한달 월급을 다 털어 간판도 설치하고, 제 아내도 커튼부터 집기를 모으면서 센터 인테리어에 공을 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 월급이 50만원 정도였는데, 거금 100만원으로 평생회원에 가입했습니다.
그 당시는 평생회원이 지금처럼 평생 동안 관리 받는 회원의 개념이 아닌 단월드의 주인이 되는 그런 의미였습니다.
20여 년을 함께 하면서 함께 수련하던 이들 중 지금은 덕망 있고 존경받는 단월드 지도자로 성장하신 분도 계시고, 수련하면서 건강과 행복을 되찾게 된 이들의 모습은 숱하게 봐왔습니다. 그렇게 세계적인 건강기업으로 성장한 단월드를 보면서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특히 변화를 느끼는 것은 거리마다 단월드 간판이 정말 많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프로그램도 단전호흡에서 세계인에게 통하는 뇌교육으로 발전했고요.
그 동안 법원에 근무하면서 법원 내 단학통호회를 개설하여, 동료 판사들과 수련을 함께 하기도 했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까지 센터 수련은 저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단월드가 세상을 밝히는 정신문화 기업으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후원하겠습니다.

첫댓글 저도 단월드를 만나고 나서 인생이 바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저도 하루빨리 그런즐거움을 느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