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를 다시 만나지 못한 채, 방학이
끝날 무렵에 나는 성 00시로 갔다. 부모님 두 분이
함께 오셔서 갖은 세심함을 있는 대로 기울여 나를 어느
김나지움 선생 댁인 소년 하숙집에 맡기셨다. 그때 나를
어떤 일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놓았는지 아셨더라면
부모님은 놀라서 굳어졌을 것이다. 시간이 가면서
내가 좋은 아들, 쓸모 있는 시민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나의 본성이 다른 길들로 밀려갈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부모님의 그늘, 정신의 그늘 속에서 행복하려
했던 나의 마지막 시도는 오래 걸렸고, 가끔
성공하는 듯도 했지만 결국은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
견진성사를 마치고 나서 방학 동안에 내가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던 묘한 공허와 고립감(후에
이런 감정을 어떻게 또 알게 되었던가, 이 공허,
이 엷은 공기를!)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지 않았다.
고향과의 이별은 이상하도록 쉽게 이루어졌다. 더 슬프지
않아 사실은 부끄러웠다. 누이들은 이유없이 울었다. 나는
울 수 없었다. 내 자신에 대해서 놀랐다. 늘 감정이
풍부한 아이였는데, 그리고 바탕에 있어서 꽤 선한
아이였는데 지금 나는 완전히 변해 버렸다.
바깥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관심도 없이 행동했으며
여러 날을 자신의 내면에 귀기울이고, 강물 소리를,
거기 내 마음속 지하에서 출렁이는, 금지되어 있는
어두운 강물 소리를 듣는 데만 열중했다. 지난 반
년 동안에 나는 매우 빨리 자랐다. 그리하여 키가 훌쩍
크고, 마르고 미완성인 채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소년의
사랑스러움은 내게서 완전히 사라졌다. 사람들이 나를 별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나 자신도 느꼈으며 스스로도
자신을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 막스 데미안에 대한
커다란 그리움을 자주 느꼈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를 미워도
했으며 몹쓸 병처럼 떠맡은 내 삶의 빈곤화의
책임을 그에게 돌리기도 하였다. 하숙집에서
나는 처음에는 사랑받지도 주목받지도 못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나를 놀리다가, 그 다음에는 나로부터 물러났으며
나에게서 음침하고 패기 없는 사람, 불쾌한 괴짜를
보았다. 그런 역할을 하는 자신이 마음에 들어, 나는
그 역을 더 과장했으며, 고독 속으로 칩거하였다.
남몰래 자주 비애와 절망의 좀먹히는 발작에 짓눌렸는데도
그 고독은 바깥에서 보면 지극히 남자답게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견고해 보였다. 학교에서는 새로운 비축없이
집에서 쌓았던 지식만 소모해 나갔다. 이 학급은
전에 다니던 학교에 비해 약간 진도가 뒤처져 있었고,
나는 내 또래들을 다소 경멸적으로 어린아이들로
보는 습관을 길렀다. 한 해 남짓 그렇게 지나갔다.
방학이 되어 처음 집으로 다니러 왔을 때도 새로울
게 없었다. 기꺼이 다시 떠났다. 십일월
초였다. 날씨가 어떻든 짧은 산책을 하며 생각에
잠기는 습관이 들었다. 그런 산책길에 자주
희열 같은 것을 맛보았다. 우수와 세상에 대한 경멸과
자신에 대한 경멸로 가득 찬 희열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
저녁 축축하고, 안개 낀 어스름에 도시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거닐었다. 시립 공원의 넓은 가로수 길이 완전히
버려진 채 나를 부르는 듯했다. 길에는 낙엽이
두껍게 쌓여 있었고, 나는 어두운 쾌락을 느끼며
낙엽들을 바로 헤집었다. 축축하고 쌉쌀한
냄새가 났다. 멀리 있는 나무들이 안개를 뚫고
유령처럼 커다랗고 희미하게 불쑥불쑥 나타났다.
가로수 길 끝에서 나는 어정쩡하게 멈추어
서, 검은 이파리 속을 응시하며 그 축축한
부패와 사멸의 향기를 탐닉하며 들이마셨다. 나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응답하며 그 향기를 반겼던 것이다.
오, 삶의 맛은 얼마나 김빠졌던지! 곁길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깃 달린 외투를 입은 사람 하나가 다가왔다.
나는 가던 길을 그대로 가려고 했다. 그때 그가 나를 불렀다.
“어이, 싱클레어!” 그가
따라왔다. 우리 하숙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학생,
알폰스 벡이었다. 나는 그를 보는 것이 좋았고, 그에 대해
아무런 반감도 없었다. 그가 다른 모든 후배들한테나 나한테나
늘 비꼬는 듯한 말투에 아저씨답게 군다는
것 외에는. 그는 곰처럼 힘이 세다고 알려져
있었다. 우리 하숙집 주인도 꼼짝 못하게 제 손 안에
넣었다는 것이었다. 인문 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많은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여기서
대체 무얼 하지?” 더 큰 사람들이 이따금씩 자기보다 어린
애들 중 하나에게로 다가올 때의 어투로 그가 붙임성
있게 물었다. “자아, 어디 내기해 볼까, 너 시를
지었지?” “그런 생각 안했는데”나는 무뚝뚝하게
잘랐다. 그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내 곁에서 걸으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내가
전혀 익숙지 않은 방식으로였다. “두려워할
필요 없어, 싱클레어, 내가 이해를 못할까 하고 말이야.
사람이 이렇게 안개 속을 걷는다면, 이렇게 가을
생각에 잠겨서 말이야, 그럼 뭐가 있는 거야. 그럴
때는 즐겨 시를 짓지. 난 벌써 알고 있어.
물론 죽어 가는 자연에 대하여 그리고 자연과 닮은
잃어버린 청춘에 대하여 시를 짓지. 하인리히 하이네를
봐” “난 그렇게 감상적이지 않아”하고
내가 막았다. “그럼 좋도록 하지! 그렇지만
이런 날씨에는 내 생각에는 말이야, 술 한 잔 아니면
그 비슷한 것이 있는 조용한 장소를 찾는게 낫겠어.
같이 가지 않겠어? 나는 지금 아주 아주 외롭거든.
싫은 거야? 네가 굳이 모범생이고자 한다면, 이봐,
너를 유혹할 마음은 없어.” 그 뒤 곧 우리는
어느 조그만 교외 술집에 앉아, 품질이 수상한
포도주를 마시며 두꺼운 유리잔을 부딪쳤다. 처음에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건 뭔가
새로운 것이기는 했다. 나는 술에 익숙지 않은 터라,
곧 몹시 말이 많아졌다. 내 속에서 창문 하나가
활짝 열린 듯했다. 세계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끔찍하게 오래 나는 영혼에 관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가! 나는 상상의 날개를 펴기
시작했고, 그 한가운데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화젯거리로 내놓았다. 벡은 즐겁게 내
말에 귀기울였다. 마침내 누군가가 내 말에 귀기울이고,
그에게 내가 무언가를 주는 것이었다! 그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를 굉장한 녀석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는 이야기하고
싶고 뭔가를 전하고 싶은 고이고 고인 욕구를 실컷
쏟아내는 기쁨에, 인정을 받는다는 기쁨에, 연장자에게서
다소 인정받는다는 기쁨에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그가 나를 천재적인 멋들어진 녀석이라고 불렀을
때는 그 말이 감미로운 독주처럼 영혼 속으로
번졌다. 세계는 새로운 색깔로 불타고 있었다. 생각들이
수백개의 철철 솟는 샘에서 나와 흘러갔다. 속에서
정기와 주정의 뜨거움이 활활 타올랐다. 선생님들이며
친구들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했는데, 서로 근사하게 통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리스에 대해서 그리고 이교에 대하여
이야기했고, 벡은 나더러 사랑의 모험에 대하여 무조건
털어놓게 했다. 그런데 그 점에서는 내가 함께 이야기할
게 없었다. 경험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야기를
들려줄 아무 경험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마음속에서
느끼고,, 구성하고, 상상의 날개를 편 것, 그것은
불타듯 내 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술로도 풀리지
않았으며 전달할 수 없었다. 여자에 대해서 벡은 훨씬 더
아는게 많았다. 그리고 나는 열이 올라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들에 귀기울였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나는 거기서
들었다. 결코 가능하다고 여기지 않았던 것이 밋밋한 현실
속으로 들어왔고 자명해 보였다. 알폰스 벡은
아마 열여덟 살일텐데 벌써 경험이 많았다. 그 가운데는
소녀들과의 일이 이러저러하다는 것도 있었다. 소녀들은
자기들에게 아첨하고 예절 바르게 구는 것만 바라는데
그거야 실로 근사하지만, 진짜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큰 성공은 나이든 부인들에게서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문구점을
하는 야겔트 부안, 그 부안히고는 이야기가
통하는 것 같으며 그 가계 계산대 뒤에서 벌써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는 책에서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완전히 매료되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무튼, 나라면 야겔트 부인을 곧바로 사랑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어쨌든 그것은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거기에는 내가 한 번 꿈꾸어 본 적도
없는 원천이, 적어도 좀더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솟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딘가 틀린 대목이 있기는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맛은 내가 생각했던 사랑의
맛보다는 보잘것없고 일상적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현실이었다. 삶이고 모험이었다. 그것을
이미 경험했고, 그것을 당연한 일로 보는 사람이
내 곁에 앉아 있었다. 우리들의 대화는
약간 수준 낮은 것이었고, 무엇인가가 빠져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천재적인 작은 사나이가 아니었다.
아직 그저 어른의 말에 귀기울이고 있는 소년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몇 달 동안의 나의 삶보다는 근사했고
낙원 같았다. 그 밖에도 술집에 앉아 있는
것부터 우리가 이야기 하고 있는 것까지 그 모든
것이 내가 비로소 서서히 느끼기 사작한
대로, 금지된 것이었다. 엄격하게 금지된 것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 가운데서 뜨거운 감정을 맛보고 혁명적
파격을 맛보았다. 그날 저녁을 지금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 둘이, 느지막이 흐릿하게
타고 있는 가스등을 지나, 서늘하고 축축한 어둠
속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취해 있었다. 근사하지는 않았다.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또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하나의 매력, 감미로움이 있었다.
그것은 반란이며 비의였다. 삶이며 정신이었다.
나보고 머리 꼭대기에 피도 안 마른 초보라고 호되게
욕하면서도 벡은 나를 용감하게 떠맡았다.
나를, 절반은 떠메고 집으로 데리고 갔다. 집에 와서는
열린 복도 창문으로 나를 살짝 집어넣고 자기도
그렇게 숨어 들어왔다. 잠깐 죽은 듯
잠을 잔 후 나는 고통스럽게 깨어났다. 술이 깨고 보니,
멍한 고통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낮에 입었던 셔츠를 아직도 입고 있고, 내 옷가지며 신발은
바닥에 널려 있고 담배 냄새와 토사물 냄새가
났다. 두통과 메스꺼움과 심한 갈증 사이에서
내가 오래 직시하지 않았던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고향과 부모님 집, 아버지, 어머니, 누이들과 정원이
보였다. 조용하고 아늑한 내 침실이 보였다. 학교와 시장
광장이 보였다. 데미안과 견진성사 수업 시간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환했다. 모든 것이 흐르는
광채로 에워싸여 있었다. 모든 것이 놀라웠다. 신성하고
깨끗했다. 그리고 모든 것, 모든 것이 어제만
해도 몇 시간 전만 해도 나의 것이었고, 나를 기다렸는데
지금은, 지금 이 시각에는, 타락하고 저주받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나를 밀쳐내고 있었다. 구역질을 내며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가장 먼 유년의 황금빛 정원들까지 되돌아가 부모님으로부터
경험한 모든 사랑스럽고 친근한 것, 어머니의 입맞춤
하나하나, 성탄절 하나하나, 집에서의 경건하고 환한
일요일 아침 하나하나, 정원의 하나하나,
이 모든 것이 황폐화되엇다. 모든 것을 내 자신의 두 발로
짓밟아 버렸던 것이다! 지금 추적자가 와서 나 묶어서
인간 폐물이며 신전 모독자라고 교수대로
데리고 간다면, 나는 동의하고 기꺼이 따라갔으리라.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르고 합당한 처사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내면의 모습이 그랬던
것이다! 빙빙 돌며 세상을 경멸하던 나! 정신에
있어서 자부심이 충만했고 데미안과 생각을 함께
했던 나! 나의 모습이 그랬다, 취하고 더럽혀지고
구역질나고 비열한 인간 폐물이자 잡놈, 야비한 충동의
기습을 받은 살벌한 야수였다! 모든 것이 정결함, 광채
그리고 우아한 사랑스러움인 저 정원에서 온 내가,
바하의 음악과 아름다운 시를 사랑했던 내가! 아직도 속이
메스껍고 격분한 내 귀에 자제력 없이 멍청하게
헉헉 터뜨려대는 취한 웃음 소리가 들렸다. 그게 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고통들을
겪는 것에는 상당한 쾌감이 있었다. 그토록 오래
내가 맹목적이고 둔감하게 웅크리고 있었기에
그토록 오래 내 마음은 침묵하고 가난해져
구석에 앉아 있었기에 그리하여 이러한 자기 고발,
이 전율, 이 모든 영혼의 불쾌한 감정도 환영받았던
것이다. 감정이 있었다! 불꽃이 솟았다. 그 속에서
심장이 경련하였다! 나는 비참의 한가운데서 해방이자 봄같은
그 무엇을 혼란스럽게 느꼈던 것이다. 밖에서
보면 그동안 나는 착실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처음으로 취한 것이 곧 처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술집 출입이 잦았고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그런데 가담하는 학생들 가운데 나는 제일 어린 축에
들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끼워주는’어린애가
아니라 주모자요 스타였다. 유명한, 대담무쌍한 술집 출입객이었다.
나는 다시 어두운 세계, 악마 소속이었고, 그 세계에서
나는 명사였다. 그러면서도 기분은 참담했다.
나는 자신을 파괴해 가는 방탕 속에서 살아갔다. 학교에서는
지도자이자 굉장한 녀석으로, 대단히 위트 있는
녀석으로 인정받았던 반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두려움에 가득 찬 영혼이 불안으로 퍼덕이고
있었다. 어는 일요일 오전에 어느 술집을 나오다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눈물 흘렸던 일을 지금도 기억한다. 환하고 즐겁게,
갓 빗질한 머리에 일요일 정장을 차려입은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보잘것 없는 술집의
더러운 테이블, 맥주가 쏟아져 고인 곳에서,
내가 전대미문의 냉소주의로 내 친구들을 놀리고 놀라게
하는 동안에도, 실제로 나는 내가 냉소를
보내는 모든 것에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마음속으로
울며 내 영혼 앞에서, 내 과거 앞에서, 우리
어머니 앞에서, 신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한번도 내 동행자들과 하나가
되지 않았다는 것, 그들 가운데서 늘 외로웠고
그래서 그렇게까지 괴로웠다는 것,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술집의 영웅이었지만 아주 거친
것은 심정적으로 경멸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총기가 있었고 선생님들, 학교, 부모, 교회에
대해 나의 생각을 이야기할 때는 패기를 과시했다.
직접 하지는 못했지만 음담패설도 태연히
들었다. 그러나 내 패거리들이 여자들한테로 갈 때 함께
간 적은 없었다. 나는 혼자였고 사랑에
대한 타는 그리움으로, 절망적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하는 말을 누가 들으면
나는 분명 후안무치한 향락자였을 텐데, 그 누구도
나만큼 쉽게 상처받지 않앗고 그 누구도
나만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런 저런 때 양가
소녀들이 귀엽고 깨끗하게, 환하고 우아하게 내 앞에서
걸어가는 것을 보아도 그들은 나에게 놀라운,
깨끗한 꿈이었다. 나보다 천 배는 더 선하고 너무 깨끗했다.
한동안 나는 야겔트 부인의 문구점에도 갈 수 없었다.
그 여자를 보고, 알폰스 벡이 그 여자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하면 얼굴이 빨개졌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 새로운 친구들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외롭고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그만큼
더 나는 거기서 떨어져 나오지 못했다. 술 퍼마시고 허풍치는
것이 나에게 그때 즐거운 일이기나 했는지 그것도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 마시는 일에도 결코,
번번이 고통스러운 결과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일종의 강압같았다.
나는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을 했다. 달리 나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오래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웠다. 늘 거기로 마음이 기울었다고
느끼는, 그 많은 부드럽고, 부끄럽고, 은밀한 감정의
내습이 두려웠다. 그토록 자주 엄습하는 연연한 사랑의
생각이 두려웠다. 내게 가장 결핍된 한
가지, 그건 친구였다. 내가 바라보기를 아주 좋아하는 두셋의
친구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은 착한 사람들에 속했고,
나의 악덕은 오래전부터 이미 그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피했다. 모든 학우들에게서 나는
두 발 밑의 땅이 흔들거리는, 희망 없이 노는 학생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나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나는 몇 차례 엄하게 벌을 받았고, 최종적으로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만 남았는데 그건 내 쪽에서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내 자신도 알고 있었다. 나는 벌써
오래전부터 더 이상 좋은 학생이 아니었다. 퇴학당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는 느낌으로 근근히
건들건들 헤쳐가고 있었다. 신이 우리를
외롭게 만들어 우리들 자신에게로 인도할 수 있는
길은 많이 있다. 그런 길을 그때 신이 나와 함께 갔던
것이다. 악몽과도 같았다. 더러움과 끈적거림 너머로,
깨진 맥주 잔과 독설로 지새운 밤 너머로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주문에 걸린 몽상가가, 추하고
더러운 길을 쉬지 않고 고통당하며 기어가는 모습이. 공주님을
찾아가는 길인데, 오물 웅덩이에, 악취와 쓰레기
가득한 뒷골목에 박혀 있는 그런 꿈들이었다. 내 형편이
그랬다. 그다지 세련되지 못한 이런 식으로 나는, 외로워지도록,
그리고 무정하게 환히 웃는 문지기들이 지키고 있는 잠긴
낙원의 문 하나를 나와 유년 사리올 세우도록
정해져 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향수의 눈뜸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하숙집 주인의 편지로 경고를 받아 성 00시에 처음
나타나 느닷없이 나를 마주했을 때만 해도, 나는 놀랐고
움칫했다. 저 겨울 끝무렵 아버지가 두번째로 오셨을 때
나는 벌써 냉혹하고 무관심했다. 아버지께서 욕을
하시다가 애원을 하시다가 어머니를 상기시키셨을
때도 모른 척했다. 아버지는 마지막에는 몹시 격분하여,
내가 달리 안 된다면, 수모와 창피를 무릅쓰고
학교에서 나를 끌고 나와 감화원에 처넣겠다고 하셨다.
그러시라지! 그때 아버지가 떠나시자 마음이 안됐었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셨다. 나에게로 오는
어떤 길도 찾아내지 못하셨다. 그리고 어떤 때는 일이 그렇게
된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내가
무엇이 되건 나로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특별하고
별로 곱지 못한 식으로, 술집에 앉아 의기양양하게
굴면서 나는 세상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내 나름의 저항의 형식이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을 망가뜨렸고, 이따금씩은 내 일을 대략 이렇게 보았다.
세상이 나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나
같은 사람들에게 줄 좀더 나은 자리, 좀더 높은 과제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이제 나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망가지는
거라고. 세상이 손해를 보겠지 뭐. 그 해의
성탄절 휴가는 즐겁지 않았다. 나를 다시 보았을
때 어머니는 놀라셨다. 더 키가 컸고, 살은 늘어지고
눈 가장자리에 염증이 난 내 마른 얼굴은 잿빛이고
황폐해 보였다. 콧수염이 돋기 시작한데다 얼마 전부터
쓴 안경이 나를 그들에게 더욱 낯설어 보이게
만들었다. 누이들은 뒤로 물러나 킬킬거렸다. 모든
게 유쾌하지 않았다. 서재에서 나눈 아버지와의 대화가
씁쓸하였으며 유쾌하지 않았다. 몇몇 친척들의 반가워하는
인사도 유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성탄절 저녁이
유쾌하지 않았다. 성탄절이란 내가 태어난 이래,
우리 집에서 가장 성대한 날이었다. 잔치 분위기,
사랑과 감사의 저녁, 부모님과 나 사이의 유대를
새롭게 하는 저녁이었다. 이번에는 모든 것이 다만
마음을 짓누르고 당황하게 만들 뿐이었다. 여느 때처럼
우리 아버지는 벌판의 양치기에 관한 복음서를 읽으셨다.
‘그들은 바로 그곳에서 양떼를 지켰다.’ 여느 때처럼
누이들은 환히 웃으면서 그들의 선물을 늘어놓은
탁자 앞에 서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음성은
즐겁지 않았고, 얼굴은 늙고 짓눌려 보였으며, 어머니는
슬퍼하셨다. 그리고 나에게는 모든 것, 선물과
덕담, 복음서와 크리스마스 트리 그 모두가 거북하고
또 원하지 않은 것이었다. 후추와 꿀이 든 랩
케이크에서는 달콤한 냄새가 났고, 그보다 더 감미로운
추억의 뭉게구름이 콸콸 흘러 나왔다. 전나무는
향기를 냈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저녁과 휴일의
나날이 어서 끝나기만 바랐다. 온 겨울이
그렇게 갔다. 바로 얼마전에 나는 교무회로부터 심각한
경고를 받았다. 퇴학의 위험이 임박해 있었다.
오래는 걸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럼, 좋으실대로,
나야 별로 이의가 없었다. 막스 데미안에게는
특별한 유감이 있었다. 그를 그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성 00시에서의 학창시절 시초에 두 번
편지를 썼지만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방학
때도 찾아가지 않았다. 가을에 알폰소
벡과 만났던 그 공원에서 초봄에 있었던 일이다.
어떤 소녀가 내 눈에 뜨인 것은 가시나무 울타리가
막 초록이 되기 시작했을 때였다. 꺼림칙한 생각과
근심으로 가득 찬 채 나는 혼자 산책하고 있었다.
건강이 나빠진 데다 그 밖에도 지속적으로
돈에 쪼들렸기 때문이다. 학우에게 빚을 지고 있었는데,
집으로부터 또 조금 받아내 자면 필요 불가결한 지출을
꾸며내어야만 했는 데다가, 몇몇 가게에 담배값이나
뭐 그 비슷한 물건들의 외상도 불어가고 있었다.
이 근심이 몹시 심각해지지야 않겠지만. 머지않아
여기 있는 것도 끝이 나고 내가 물 속으로
들어가든지 교화 기관으로 보내지면, 이 몇
가지 소소한 일들도 결코 문제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내내 그런 아름답지 못한
일들과 똑바로 대면하며 살았고 그것들에 시달렸다.
그 봄날 공원에서 나의 시선을 몹시
끈 소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키가
크고 날씬했으며, 멋진 옷차림이었고 영리한 소년의
얼굴이었다. 첫눈에 곧바로 그녀는 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유형으로 나의 상상력을 바쁘게 했다. 그녀는
나보다 별로 나이가 더 들어 보이지 않았지만, 훨씬
성숙하고 고상하고 윤곽이 뚜렷하고, 벌써
완전히 숙녀였다. 그러면서도 내가 지독하게 좋아하던 오만과
소년다움의 흔적이 얼굴에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마음을 빼앗긴 여성에게 접근하는 것에
성공한 적이 없었는데, 이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인상은 이전의 모든 여성들보다 더 깊었고, 이번에
빠진 사랑이 나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강력했다.
갑자기 다시 하나의 영상이 존경할, 드높은
영상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아, 그런데 나의 내면에서는
그 어떤 욕구도, 그 어떤 충동도 외경과 숭배만큼
깊고 격렬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주었다. 단테는 읽지 않았지만 베아트리체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어느 영국 그림에서 봤는데, 그 복제품을 내가
간직하고 있었다. 그 그림은 영국 라파엘 전파의
소녀상으로 팔다리가 몹시 길고 날씬하며 얼굴도 작고
길었으며 두 손과 표정은 영혼이 깃들이 분위기로
표현되어 있었다. 내가 사랑했던 날씬한 자태와 소년다움을
보여주고 있고 영혼이 깃들인 분위기를 얼굴에 조금 띠고
있었어도 나의 아름다운 젊은 소녀는 그 소녀상과
아주 똑같지는 않았다. 베아트리체와
단 한마디도 말을 나눈 적은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시 나에게 지극히 깊은 영향을 주었다.
자신의 영상을 내 앞에 내세워 보여준 것이다. 나에게
성소를 열어 주었다. 나를 사원 안의 기도자로 만들었다.
그날로 나는 술집 출입과 밤에 나돌아다니는 일로부터
멀어졌다. 나는 다시 혼자 있을 수 있었다. 다시
즐겨 책을 읽었고, 즐겨 산책하였다. 나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충분한 조소를 받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숭배해야 했다. 다시
하나의 이상을 가진 것이었다. 삶은 다시 예감과
비밀에 찬 영롱한 여명이었다. 그 점이 나를 조소에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 나 자신에게로 편안히
안착했다. 비록 오로지 존경하는 영상의 노예이자
봉사자가 되어서라도. 얼마만큼의 감동
없이는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없다. 나는 더없이 열렬한
노력으로, 부서진 삶의 한 시기의 폐허들로부터 자신을
위하여 ‘환한 세계’하나를 지으려 다시 노력해 봤다.
다시 나는 내 속의 어둠과 악을 떨치고 완전히 빛
속에, 신들 앞에 무릅 꿇고 그대로 머물려는 단 하나의
욕구 속에서 살았다. 하여튼 지금의 이 ‘환한 세계’는
어느 정도는 내 자신의 창조였다. 어머니에게로 그리고
책임없는 아늑함 속으로 다시 도망쳐 가고 기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에 의하여 창안되고 요구된 새로운
예배, 책임과 자기 기율이 있는 예배였다. 내가 시달렸으며
자꾸만 도피했던 성 문제는 이제 이 성스러운
불 속에서 정신과 기도로 승화되었다. 캄캄한것은
아무것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어떤 추한 것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신음하며 지샌 밤들도,
방종한 영상들 앞에서 뛰던 심장의 고동도, 금지된
문 앞에서의 도취도, 육욕도. 그 모든 것 대신 베아트리체의
영상으로 나는 나의 제단을 세웠다. 그리고 자신을
그녀에게 바침으로써 자신을 정신에 그리고 신들에게
봉헌했다. 어두운 힘들에서 내가 뺏어낸 삶의
몫을 나는 환한 힘들에게 제물로 바쳤다. 나의 목표는
쾌락이 아니라 정결함이었다. 행복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정신성이었다. 이 베아트리체 예배는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어제만 해도
조숙한 냉소주의자였는데, 나는 지금 성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지닌 사원의 하인이었다. 나는 내가 익숙했던 평범한
삶을 떨쳤을 쁜만 아니라, 모든 것을 바꾸려고 했다.
모든 것에 정결함, 고귀함, 품위를 부여하려
했다. 먹고 마시면서도 말을 하고 옷을 차려입으면서도
나는 그 생각을 했다. 냉수욕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심하게 자신을 다스려야 했다. 진지하고
품위 있게 처신했으며, 몸을 꼿꼿이했고, 나의
걸음걸이를 좀더 느리고 품위있게 했다. 구경꾼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내면에서
그것은 모두 예배였다. 이 모든 새로운
연습들 중 하나가 내게 중요해졌다. 거기에서 나의
새로운 신념을 위한 표현을 찾아낸 것이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영국 베아트리체
상이 저 소녀와 충분히 닮지 않았다는 데서 시작된
일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그녀를 그리고
싶었다. 아주 새로운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나는 얼마
전부터 갖게 된 내 방에 아름다운 종이, 물감과
붓을 모아들였고, 팔레트, 유리잔, 도자기 접시, 연필을
가지런히 해놓았다. 그 중에는 크롬옥시드 그린이 있었다.
그 불타는 초록 물감이 처음 하얀 작은 접시에서
빛을 발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얼굴을 그리는 것은 어려워, 우선 다른
걸로 시험해 보았다. 장식품, 꽃 그리고 작은 상상의
풍경, 예배당 곁에 선 나무 한 그루,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있는 로마의 다리를 그렸다. 때로는 이 장난 짓에
완전히 정신없이 빠져들어, 크레파스를 선물받은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했다. 마침내 나는 베아트리체를
그리기 시작했다. 나뭇잎 몇 개는
완전히 실패하여 버려버렸다. 때때로 거리에서 마주쳤던
그 소녀의 얼굴을 떠올려보려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잘되질 않았다. 마침내 나는 소녀를
그리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얼굴 하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환상에 따라, 시작만 해놓고는 붓 가는 대로,
물감과 붓에서 저절로 나오는 선에 따라 그렸다. 거기서
나온 것은 꿈꾸었던 얼굴이었다. 별로 불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즉시 시도를 계속했다. 새로운
종이 한 장 한 장이 그 무엇인가를 더 분명하게 말했다.
비록 결코 실물에 가깝지는 않아도 그 유형에는 가까워져
갔다. 나는 점점 더 몽환적인 붓놀림으로
대상이 없는, 장난 같은 더듬음에서, 무의식에서
나오는 선을 긋고 면을 채우는데 익숙해져 갔다.
마침내 어느 날 거의 의식 없이 얼굴
하나를 완성했는데, 전에 그린 것들보다 더 강하게
나에게 말을 던져 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 소녀의
얼굴은 아니었고, 결코 그럴 수도 없었다. 무엇인가
다른 것, 무엇인가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가치가 덜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녀의
얼굴이기보다는 오히려 청년의 머리처럼 보였다.
머리카락은 나의 예쁜 소녀처럼 환한 금색이 아니고
불그스름한 기운이 도는 갈색이었고,
턱은 강하고 윤곽이 뚜렷했으며, 입은 붉게 꽃피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다소 뻣뻣하고 가면
같았지만, 인상적이고 신비스러운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완성된 그림 앞에 앉아 있자니, 기이한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내게 일종의 신상 혹은 성인의 가면처럼
보였다. 절반은 남자고 절반은 여자, 나이가 없고,
의지가 굳세면서도 몽상적이며, 굳어 있으면서도
남 모르게 생명력 있어 보였다. 이 얼굴은 나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그것은
나의 일부였다. 나에게 요구를 내세웠다. 그리고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누군가와 비슷했다. 그때부터
그 초상이 한동안 나의 모든 생각을 따라다녔고 나의
삶을 함께 했다. 나는 그것을 서랍에 감추어 두었다.
아무도 그것을 훔쳐보고 그걸로 나를 비웃게 해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혼자 내 작은 방 안에 있을 때면
곧바로, 나는 그 그림을 꺼내어 들여다보곤 했다.
저녁에는 마주 보이는 침대 위쪽 벽지에 핀으로 붙여놓고,
잠들 때까지 바라보았으며 아침이면 나의 첫
눈길이 거기로 갔다. 바로 그 시절에
나는 어린아이였을 때 늘 그랬듯이 다시 꿈을 많이 꾸기
시작했다. 여러 해 동안 꿈을 꾸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꿈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전혀 새로운 종류의
영상들, 그리고 자주 또 자주 그 초상이 꿈속에서 떠올랐다.
살아서 이야기하며, 친절하거나 혹은 적대적으로,
어떤 때는 얼굴을 찡그렸고 어떤 때는 무한히
아름답고, 조화롭고, 고귀했다. 그리고
어느 아침, 그런 꿈들을 꾸다 깨어났을 때, 나는
갑자기 그 그림의 실체를 알아보았다. 그 그림은 참으로
기막히도록 친숙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나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어머니처럼, 아득한 시절부터 내내 나를 향해져 있었던
것 같았다. 가슴이 뛰며 나는 그림을 응시하였다.
숱 많은 갈색 머리카락을, 절반쯤 여자의 것인 입술을,
특별하게 밝은(저절로 그렇게 말랐다)뚜렷한 이마를,
그리고 점점 더 분명하게 인식을, 재발견을, 앎을 느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얼굴 앞에 서서 아주 가까이에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크게 뜬, 초록빛 도는 굳은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오른쪽 눈이 다른 쪽보다 약간 더 높이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 오른쪽 눈이 찡긋했다. 가볍고 섬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찡긋했다. 그리고 이 찡긋거림으로써
나는 그림을 알아보았다. 어떻게 내가
그걸 이렇게 늦게야 비로소 찾아낼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데미안의 얼굴이었다. 후에 나는 이
그림을 내 기억 속에서 찾아낸 데미안의 진짜 표정과 자주
비교했다. 비슷하기는 해도 똑같은 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데미안이었다. 언젠가 어느 초여름 저녁,
태양이 비스듬히 붉게, 서향인 내 창으로 비쳐들고
있었다. 방 안은 어스름해졌다. 그때, 베아트리체,
혹은 데미안의 초상을 창살이 교차하는 창문
가운데에 핀으로 꽂아놓고, 석양이 거기로 비쳐들면
어떤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은 윤곽이 흐릿해
졌지만, 불그스름하게 테 둘린 눈, 환한 이마와
진홍의 입이 종이 면으로부터 튀어나와 속속들이
야성적으로 작열하였다. 빛이 사라지고 나서도 오랫동안
나는 그것을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차츰차츰
이것은 베아트리체도 데미안도 아니며 나라는
느낌이 왔다. 그 그림은 나를 닮지 않았으며 그럴
리도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삶을 결정한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내면, 나의 운명 혹은 내 속에 내재하는
수호신이었다. 만약 내가 언젠가 다시 한 친구를
찾아낸다면, 내 친구의 모습이 저러리라. 언제 하나를
얻게 된다면 내 애인의 모습이 저러리라. 나의 삶이
저럴 것이며 나의 죽음이 저럴 것이다. 이것은 내
운명의 울림이자 리듬이었다. 그 몇 주 동안
나는 책을 한 권 읽기 시작하였는데, 전에 읽은 모든
것보다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중에도 책을 그렇게 경험한
일은 드물었다. 어쩌면 니체나 그랬을지. 그것은
노발리스의 책으로 편지와 잠언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 중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모든 것이 말할 수
없이 나를 매혹시켰고 긴장시켰다. 잠언 하나가 아직도
생각난다. 그 잠언을 펜으로 초상화 밑에 적어놓았다.
‘운명과 심성은 하나의 개념에 붙여진 두 개의
이름이다’ 그 말을 내가 그때 이해했던 것이다. 베아트리체라고
부른 소녀는 여전히 자주 마주쳤다. 이제는 아무런 동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늘 한 가닥 부드러운
일치감, 한가닥 감정 넘치는 예감을 느꼈다. 넌 나와
연결되어 있어. 그러나 네가 아니고, 네 영상만 말이야.
넌 내 운명의 일부거든. 막스 데미안에
대한 나의 그리움이 다시 거세어졌다. 나는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몇
해째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꼭 한 번 방학
때 그를 맞닥뜨렸다. 이 짧은 만남을 내
기록에서 일부러 빠뜨렸다는 것을 지금 알겠다. 그것이
부끄러움과 허영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는 것도 알겠다.
만회해야겠다. 한 번은 방학중에, 권태롭고
늘 다소 피곤한 얼굴로, 즉 술집을 드나들던 시절의 얼굴로
고향 도시를 어슬렁거리며, 산책용 지팡이를
빙빙 돌리며, 속물들의 변함없이 똑같은, 경멸스러운
늙은 얼굴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때 내 옛 친구가
마주 오는 것이었다. 그를 보자마자 나는 움칫했다.
그리고 번개처럼 재빨리 나는 프란츠 크로머를 생각했다.
데미안이 그 이야기를 정말로 잊어버렸기를! 그에 대해
의무를 지고 있다는 것은 무척 불쾌했다. 사실
정말이지 멍청한 어린애들 이야기였다. 그래도 마음의
빚이 있기는 했다. 내가 그에게 인사하려는
것인지 아닌지, 데미안은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내가
될 수 있는 대로 태연하게 인사를 하자,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다시금 그다운 악수였다! 그렇게 굳고,
따뜻하고 그러면서도 서늘하고, 남자다웠다! 그는
주의 깊게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너 컸구나,
싱클레어” 그 자신은 전혀 달라 보이지 않았다.
똑같이 나이 들고, 똑같이 어렸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는 함께 어울려
산책을 하며 온통 소소한 일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했고, 그 당시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언젠가 몇 번 편지를 썼는데
답장은 못 받았던 생각이 났다. 아, 그가 그것도
잊어버렸으면 좋을 텐데, 그 멍청한, 멍청한 편지들을!
그는 거기에 대해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당시에는
베아트리체도, 초상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
내 황량한 시절 한가운데 있었다. 교외에서 나는 그에게
함께 술집에 가자고 했다. 그가 따라왔다. 떠벌리면서
나는 술 한 병을 시키고, 따르고, 잔을 부딪치며 대학 생식
음주 관습들에 익숙하다는 것을 과시했다. 첫 잔을
단숨에 비우기도 했다. “술집에
많이 가는 구나?”그가 나에게 물었다. “아,
그래”내가 굼뜨게 대답했다. “달리 무얼 하겠어?
그게 결국은 그래도 늘 제일 신나는 일이잖아.”
“그렇게 생각해? 그럴 수도 있겠지. 그것에도
아주 멋진 면이 있긴 해. 도취, 바커스적인 것!
하지만 내 보기에 그런 멋진 요소는 술집에 많이
앉아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아. 바로 술집 출입이야말로 뭔가 정말 속물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래, 하룻밤, 불타는 횃불을
들고, 제대로 된 멋진 도취와 비틀거림으로! 그거야
좋지. 하지만 그렇게 홀짝홀짝 한 잔 또 한
잔을 마셔대는 것은 아마 진짜가 아닐걸? 이를테면
저녁이면 저녁마다 단골 술집 식탁에 앉아 있는 파우스트를
상상할 수 있겠어?” 나는 마셨고 적의에
차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렇지만
누구나 파우스트 같은 사람은 아니지”하고 짧게 말했다.
그는 약간 어리둥절해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웃었다. 예전의 신선함과 우월함을
보이며. “자, 무엇 하러 그런 걸
가지고 너와 다투겠니? 아무튼 술꾼이나 방탕아의
삶은 아마도 나무랄 데 없는 시민의 삶보다 생기있겠지.
그런데, 언젠가 읽었는데 말이야, 방탕아의 삶은
신비주의자를 위한 최고의 준비의 하나라는군. 예언자가
된 성 아우구스틴 같은 그런 사람들이 늘 있기도 하고 말이야.
성 아우구스틴은 한 때 향락주의자이자 방탕아였지”
나는 미심쩍었으며 결코 그로부터
훈계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권태롭다는
듯 말했다. “그래, 누구든 자기 취향에 따르겠지!
털어놓고 고백하면, 나는 예언자나 그런 무엇이 되는
일 따위에는 전혀 관심 없어” 데미안이 가느스름하게 뜬
눈으로 알겠다는 듯 나를 쏘아 보았다. “이봐
싱클레어”그가 천천히 말했다. “너한테 유쾌하지
않은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었어. 아무려나 어떤 목저긍로
네가 지금 네 잔을 마시고 있는지, 그것은 우리 둘 다 알
수 없어. 하지만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고 있어.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미안하지만 난 집에 가봐야겠다.” 우리는
짧은 작별을 했다. 나는 몹시 기분이 언짢은
채 그대로 앉아 내 잔을 다 비웠다. 술집을
나설 대 데미안이 벌써 계산을 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이 나를 더욱 화나게 했다. 내 생각은
다시 이 작은 사건에 머물렀다. 내 생각은
데미안으로 가득 찼다. 그가 저 교외 술집에서 한 말들이,
기이하게도 신선하게 고스란히 다시 내 기억 속에
떠올랐다.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창문에 걸려 있는 이제는
완전히 빛이 사라진 그림을 쳐다보았다. 빛이
사라졌는데도 나는보았다. 두 눈은 아직도 활활 타고
있었다. 그것은 데미안의 시선이었다. 혹은 내 속에 있는
사람, 모든 것을 아는 그 사람이었다. 데미안이
얼마나 그리웠던가?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는 연락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건, 아마도 지금은 어딘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것, 그의 김나지움 시절이 끝나고 나서 그
어머니가 우리 도시를 떠났다는 것 뿐이었다. 크로머와의
이야기로 돌아가기까지 나는 내 마음속에서 막스
데미안에 대한 모든 추억을 찾았다. 얼마나 많은
것이 그때 다시 울리기 시작했는지. 그가 언젠가 나에게
해준 말이나 그 밖의 모든 것이 오늘까지도 의미가
있었고, 당면 문제였으며, 나에게 관계되었다!
그다지 즐겁지 않았던 우리들의 마지막 만남에서
그가 방탕자와 성인에 대하여 말한 것도 갑자기 내
영혼 앞에 환하게 떠올랐다. 나에게도 꼭 그렇게
된 것이었을까? 나는 취기와 더러움 속에서, 마비와
상실 속에서 산 것이 아닐까. 마침내 새로운 인생의 충동으로써
바로 반대의 것이, 정결함에의 욕구, 성스러움에의
동경이 내 마음속에서 살아날 때까지? 그렇게 계속
기억을 따라갔다. 벌써 오래전에 밤이
되었고 바깥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에서도 빗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마로니에 나무들
밑, 그가 언젠가 프란츠 크로머 때문에 나한테 캐어묻고
나의 첫 비밀들을 알아맞혔던 때였다. 하나하나가 나타났다.
학교 길에서의 대화들, 견진성사 수업 시간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막스데미안과의 맨 마지막 만남이 떠올랐다. 거기서는
무엇이 문제되었던 것인가? 나는 얼른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천천히 생각했다. 그 생각에 완전히
침잠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떠오른다. 그것도.
우리들은 우리 집앞에 서 있었다. 그가 나에게
카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알려준 뒤였다.
거기서 그는 우리 집 현관문 위에 붙어 있는, 밑에서부터
위쪽으로 넓어지는 마감석이 속에 새겨진, 오래되어
마모된 문장에 대해서 말했다. 그는 말했었다.
그 문장이 흥미롭다고, 그런 것들에 유의해야 한다고.
그날 밤 나는 데미안과 문장 꿈을 꾸었다.
문장은 끊임없이 모습이 바뀌었다. 데미안이 그것을 두
손에 들고 있었다. 작고 회색인가 하면, 거대하고 여러
색깔이다. 그러나 데미안은 이것이 그렇지만 언제나
똑같은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나에게 억지로 문장을 먹였다. 그것을 삼키자, 삼킨
문장이 내 속에 살아 있어, 나를 다 채우고 안에서부터
나를 파먹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져 나는
엄청나게 놀랐다. 죽음의 두려움에 가득 차 나는
펄쩍 뛰어 일어나며 잠에서 깨었다.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한방중이었다. 방 안으로 비가
들이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창문을 닫으려고 일어났다.
그러나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무언가 환한 것을 밟았다.
아침에 보니 그것은 내가 그린 그림이었다.
그림은 종이가 축축해져서 방 바닥에 놓여
있었고 불룩하게 뒤틀려 있었다. 마르라고
그림을 압지 사이에 끼워 무거운 책 속에 퍼넣었다. 다음날
다시 찾아보니, 말라 있었다. 그러나 그림이 달라져
있었다. 붉은 입이 바랬고 약간 좁아져 있었다. 이제
완전히 데미안의 입이었다. 새 종이에
문장의 새를 그리기 시작했다. 새가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이제는 똑똑히 알 수 없었고 거기서 몇가지는 내가
아는 바로는, 가까이에서도 이제 잘 알아볼 수 업기도 했다.
문장이 낡은 데다가 자주 페인트를 덧칠했기 때문이었다.
그 새는 무엇인가의 위에 서 있거나 아니면 앉아
있었는데, 어쩌면 한 송이 꽃 아니면 광주리나 둥우리,
혹은 화관 위였는지도 모른다. 그걸 더 신경
스지 않고, 뚜렷한 표상을 가진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명확하지 않은 욕구에 따라 나는 즉시 강한 색채로
시작했다. 새의 머리는 내 도화지 위에서 황금빛이었다.
기분 내키는 대로 계속해서 며칠 내로 완성시켰다.
이제 그것은 날카롭고 대담한 매의 머리를
가진 한 마리 맹금이었다. 그의 몸 절반은
어두운 지구 땅덩이 속에 박혀 있는데, 커다란
알에서부터인 듯 땅덩이에서 나오려고 푸른
하늘 바탕 위에서 애쓰고 있었다. 그림을 꽤 오래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점점 더, 마치 내 꿈
속에서 나타났던 색깔 있는 문장인 것 같았다. 데미안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나로서는 불가능했던 것 같다.
설령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알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당시에 내가 매사를 그렇게 처리했던
것과 똑같이 꿈같은 예감에 사로잡혀, 일단 보내고
나서 그림이 그에게 닿든 안 닿든 간에 그에게 매를
그린 그림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겉봉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내 이름도 쓰지 않았다. 가장자리들을
조심스럽게 잘랐고, 커다란 종이 봉투를 사서 그
위에 내 친구의 예전 주소를 적었다. 그리고는 보냈다. 시험이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여느 때보다 더 학업을 위해
공부해야만 했다. 내가 형편없는 방황을 갑자기
청산하고부터 선생님들이 너그럽게도 나를
다시 받아들이셨다. 당시도 나는 훌륭한 학생은 아니겠지만,
나도 또 다른 누구도, 반 년 전에 나에게 벌로 내려졌던
정학 처분이 누가 봐도 잇음직한 일이엇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도 이제는 비난도
위협도 없이 다시 전 같은 어조로 편지를 쓰셨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에게나 그 누구에게 어떻게
나에게 변화가 일어났는지 설명할 충동을 느끼지
않았다. 이 변화가 우리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소망과 일치한 것은 우연이었다. 이 변화는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로 데려간 것이 아니었다. 나를
그 누구에게도 접근시키지 않았다. 나를 오직 더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그 어딘가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데미안을, 먼 운명을, 내 스스로야
몰랐다. 그 한가운데 있었잖은가. 베아뜨리체로 일은
시작되었으나, 얼마 전부터 나는 그림 그려진 종이를
그리고 데미안에 대한 나의 생각들과 더불어 살고
있었다. 얼마나 완벽하게 비현실적인 세계
속에서 살고 있었는지, 바아뜨리체마저 시야에서
생각에서 까마득히 사라졌다. 내 꿈들, 내
기대들, 내 내면의 극심한 변화에 대해 나는 아무에게도
한마디도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설령 그렇게 하고자
했더라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그걸 원할 수 있었겠는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내가 그린
꿈 속의 내 친구를 찾아 날아가고 있었다. 너무 놀랍게도
나에게로 답장이 왔다. 학교 우리 반 교실
내 자리에서, 한 번은 쉬는 시간이 끝난 뒤
다음 수업이 미처 시작되기 전에 쪽지 하나가
내책에 꽂혀 잇는 걸 발견했다. 그것은 우리
반 학생들이 수업 시간중에 몰래 서로 쪽지
편지를 보낼 때 흔히 접는 것과 똑같이 졉혀 있었다. 내가
놀랐던 건 다만, 누가 나한테 그런 쪽지를
보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어떤 학우와도
그런 식으로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야
끼지 않을 테지만, 그 어떤 학생다운 장난을 하자는 것이겠거니
하고 족지를 읽지도 않은 채 앞쪽 책속에 끼워 넣었다.
수업 도중에 우연히 그 쪽지가 다시 손에 들어왔다. 종이를
만지작거리다 아무 생각 없이 펴게 되었는데 그안에
몇 마디 말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위로
한 번 시선을 던지고는 말 하나에 사로잡혀 버렸다.
놀라 읽었다. 그사이 나의 가슴은 운명 앞에서, 큰
추위가 닥친 때처럼 오그라들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이
글줄을 몇 차례 읽은 뒤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어떤 의심도 불가능했다. 이건 데미안이
보낸 답장이었다. 나와 그 말고 그 새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없었다. 내 그림을 그가 받은 것이다.
그는 이해하였고 내가 풀이하는 것을 도운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서로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것은 압락사스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는 말이었다.(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수업을
조금도 듣지 못한 채 그 시간이 갔다. 다음 시간이 시작되었다.
오전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그 시간은 젊은 보조
선생님 담당이었다. 대학을 갓 졸업했는데, 그렇게
젊다는 것, 그리고 우리들에 대해서 거짓 품위를 보이려
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우리들의 호감을
산 분이었다. 우리들은 그 플렌 선생의
지도로 헤로도투스를 읽고 있었다. 이 강독은 내가
흥미를 가진 몇 안되는 과목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정신이 딴데 팔려 있었다. 기계적으로
책을 폈으나, 번역을 따라가지 않고 내 생각에 빠져
있었다. 아무려나 나는 데미안이 그때 종교 수업
시간에 말했던 것이 얼마나 옳은지 이미 몇차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사람이 충분히 강렬하게
소망하는 것, 그것은 정말 이루어졌다. 수업중에
내가 아주 강렬하게 내 자신의 생각에 열중하고 있으면,
선생님도 나를 그대로 내버려둘 만큼 열중해
있으면, 나는 조용히 있을 수 있었다.
그렇다, 산만하거나 졸고 있을 때는 선생님이 갑자기 거기
와 계셨다. 여느 때 나도 겪던 일이다. 그러나
정말 생각하고, 정말 침잠해 있을 때, 그럴 때는
지켜져 있었다. 뚫어질 듯 바라보는 일은 나도
벌써 시험해 보았고 믿을 만한 것임을 알았다.
그때 데미안과 만나던 시절에는 되질 않았었는데,
이제는 자주, 시선과 생각으로 아주 많은 것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도 나는
그렇게 앉아 헤로도투스로부터 그리고 학교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 선생님의 목소리가
번개처럼 내 의식을 치고 들어왔다. 화들짝 깨어났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내 곁네 바싹 다가와
서 계시는 것이었다. 내 이름을 부르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나를 보시지 않았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때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 목소리는 커다랗게 (압락사스) 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처음 부분은 내가 듣지 못했는데 폴렌 선생은
계속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저 종파의 세계관과 고대의
신비주의적인 합일을, 합리주의적인 관찰의 입장에서
보듯이 그렇게 단순하게 상상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의미의 학문이란 고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대신 아주 고도로 발달되었던, 철학적
신비주의적 진실들을 다루는 연구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부분적으로는, 아마 자주 사기와 범죄로도 이어지는
주술과 게임도 나왔습니다. 주술에도 고귀한 유래와 깊은
사상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앞서 예로 들었던 압락사스
학설도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이 이름을
그리스의 주문과 연관지어 일컫습니다. 오늘날도
미개 민족들이 믿고 있는 마술 부리는 악마의 이름쯤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압락사스는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을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과제를 지닌 어떤 신성의 이름쯤으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 조그만 학식 많은 분은
섬세하고도 열정적으로 계속 이야기를 해나갔다.
주목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압락사스라는
이름이 더 이상 나오지 않자, 나의 주의력도
내 자신 안으로 가라앉았다.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한다)는 말의 여운이 귀에 남아 있었다.
여기서 나는 연결시킬 수 있었다. 그말은 우리 우정의
맨 마지막 시절 데미안과 나누었던 대화들에서 친숙한
것이었다. 데미안은 당시에 말했었다. 우리는 아마도
우리가 존경하는 신 하나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는 함부로 갈라놓은 세계의 절반만 나타낸다고
(그것은 공식적이고, 허용된 (환한) 세계였다). 그러나
세계 전체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악마이기도 한 신 하나를 갖든지,
아니면 신에 대한 예배와 더불어 악마에 대한 예배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압락사스는 신이기도
하고 악마이기도 한 신이었다. 한동안
나는 아주 열성적으로 계속 그 자취를 찾았다. 진전은
없었다. 압락사를 찾아 온 도서관을 성과없이 뒤지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기껏해야 손 안에 든 돌
한나에 머물러 있는 진실만을 찾아내는 식의 직접적이고
의식적인 탐구에 나의 본질이 깊이 열중하지는 못했다.
얼마 동안 내내 그토록 열중히 존중했던
베아트리체의 영상이 이제 서서히 가라앉았다. 아니면 오히려
천천히 나로부터 떠나갔다. 점점 더 지평선에 접근해
가서, 더 그림자 같고, 더 멀어지고, 더 빛 바래 갔다.
이제는 영혼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제
특이하게 나 자신 속으로 자아넣은 현존 속에서,
내가 몽유병자처럼 영위하고 있는 현존 속에서,
새로운 형성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삶에의 동경이,
아니 그보다는 사랑에의 동경이 내 안에서 꽃 피었다.
그리고 한동안 베아트리체 숭배를 통해 해소되ㄹ
수 있었던 성욕이 새로운 영상과 목표를 요구하고
있었다. 아직 여전히 그 어떤 성취도 이루지 못했다. 동경을
기만하고 내 친구들이 그들의 행복을 찾는 그런 소녀들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것은 나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불가능했다. 나는 다시 심하게 꿈을 꾸었다. 그것도
밤보다 낮에 더 많이, 상상들이, 영상들 혹은 소망들이,
내 안에서 솟아올라 나를 바깥 세계로부터 분리시켰다.
현실의 환경보다 내 마음속의 이 영상들, 이 꿈들
혹은 그림자들과 더 현실적으로, 더 생생하게 교류하며
살았다. 특정한 꿈, 혹은 거듭 나타나는
환상의 유희 하나가 나에게는 극히 중요해졌다.
이 꿈,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불길한
꿈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내가 부모님 댁으로 간다.
현관문 위에는 문장의 새가 푸른 바탕 위에서
노란색으로 빛을 내고 있다. 집 안에서는 어머니가
나를 향해 오신다. 그러나 내가 들어서며 어머니를
포옹하려 했을때, 그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물이었다. 키 크고 힘있는 인물, 막스
데미안이나 내가 그린 그림과 비슷한데도, 또 달랐다.
그리고 힘이 있는데도 완전히 여성이었다.
이 인물이 나를 자기에게로 끌어당겨 전율을 일으키는
깊은 사랑의 포옹을 했다. 희열과 오싹함이
뒤섞였다. 나를 포옹한 인물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너무 많은 추억, 내 친구 데미안에 대한 너무
많은 추억이 유령처럼 서려 있었다. 그 인물의 포옹은
모든 경외심을 배척했으나, 그럼에도 축복의 희열이었다.
자주 나는 깊은 행복감을 느끼며, 죽음의 두려움과 격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무서운 죄악에서 벗어나듯
이 꿈에서 깨어났다. 다만 서서히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이 완전히 내면적인 영상과
바깥으로부터 내게로 온, 찾아야 할 신에 대한 신호 사이에서
하나의 결합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결합은 그
후 더 긴밀해지고 더 내밀해졌으며 나는, 내가
바로 이 예감의 꿈속에서 압락사스를 불렀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희열과 오싹함이 섞이고, 남자와
여자가 섞이고, 지고와 추악이 뒤얽히고, 깊은
죄에는 지극한 청순함을 통해 충격을 주며, 나의
사랑의 꿈의 영상은 그러했다. 그리고 압락사스도
그러했다. 사랑은 이제 더이상, 처음에 겁을 먹고
느꼈던 것처럼 동물적인 어두운 충동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또한 더 이상 내가 베아뜨리체의 영상에다
바친 것 같은 경건하게 정신화된 숭배 감정도 아니었다.
사랑은 그 둘 다였다. 둘 다이며 또 훨씬 그 이상이었다.
사랑은 천사상이며 사탄이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였고, 인간과 동물, 지고의 선이자 극단적 악이었다.
이 양극단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운명으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을 맛보는 것이 나의
운명으로 보였다. 나는 운명을 동경했고, 운명을
두려워했지만, 운명은 늘 거기에 있었다. 늘 내위에
있었다. 이듬해 봄에 나는 김나지움을
떠나 대학으로 가게 되었다. 아직 어디서 무얼 해야
할 지 몰랐다. 코 밑에는 작은 수염이 자랐다. 나는
성인이었다. 그렇지만 완벽하게 무력했고 목표가
없었다. 단 한 가지, 내 속의 목소리, 그 꿈의 영상만
확실했다. 그 영상의 인도에 맹목적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임무를 느꼈다. 그리고 날마다 나는 반항했다.
내가 돌았나보다고 때때로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은 걸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해내는 것은 나도 모두 할 수 있었다. 약간 열심히
애쓰면 플라톤을 읽을 수 있었고, 삼각법 과제를
풀거나 화학 분석을 따라갈 수 있었다. 단
한 가지만 나는 할 수 없었다. 내 안에 어둡게 숨겨진
목표를 끌어내어 내 앞 어딘가에 그려내는
일, 교수나 판사, 의사나 예술가가 될 것이며,
그러자면 얼마나 걸리고, 그것이 어떤 장점들을
가질 것인지 정확하게 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려내는
일, 그것은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그런
무엇이 될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내가 그걸 안단
말인가. 어쩌면 나도 찾고 또 계속 찾아야겠지.
여러 해를, 그러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고,
어떤 목표에도 이르지 못하겠지. 어쩌면
나도 하나의 목표에 이르겠지만 그것은 악하고,
위험하고, 무서운 목표일지도 모른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자주
나는 내 꿈속 강렬한 사랑의 영상을 그려보려 했다.
그러나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성공했더라면 나는
그 그림 종이를 데미안에게 보냈을 텐데. 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알 지 못했다. 내가
아는 건 오직, 그가 나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뿐.
언제 그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베아트리체 시절의
저 몇 주일, 몇 달의 다정한 안정이 오래전에 사라졌다.
하나의 섬에 도달했고 평화를 찾아냈다고 그때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늘 그랬다. 하나의 상태가 나에게 좋아지자마자,
하나의 꿈이 내게 편안해지자마자, 그것은 어느새 벌써
시들고 흐려졌다. 부질없다. 그 뒷모습을 보며 탄식함은!
나는 이제 가라앉지 않은 욕망, 팽팽한 기대의 불
속에 살고 있었다. 그것은 자주 나를 완전히
난폭하게 미치게 만들었다. 꿈의 여인의 영상이 자주
살아있는 연인의 모습보다 더 똑똑하게 눈앞에 보였다.
내 자신의 손보다 훨씬 더 똑똑하게, 그 영상과 더불어
나는 이야기 했고, 그 앞에서 울었고, 거기서부터
도피했다. 나는 그것을 어머니라고 부르고 그 앞에서
눈물를 흘리며 무릎 꿇었다. 연인이라고 불렀고 모든
것을 이루어주는 그 성숙한 입맞춤을 예감했다. 그것을
악마며 창녀, 흡혈귀며 살인자라고 부르면, 그 영상은
더할 나위없이 애정어린 사랑의 꿈으로 파렴치한 황음으로
나를 유혹했다. 그 무엇보다도 그 영상에게는
지나치게 선하고 귀하지 않았다. 그 무엇도 너무
나쁘고 저열하지 않았다. 온 겨울을 나는 묘사하기
어려운 내면의 폭풍속에서 보냈다. 외로움에는
오래전부터 익숙해 있었다. 외로움은 나를 짓누르지
않았다. 나는 데미안과, 새와, 내 운명이자 내 연인이었던
위대한 꿈속의 영상과 함께 살았다. 그 안에서
살기에 충분했다. 모든 것이 위대함과 광대함을 지향하고
있었고, 모든 것이 압락사스의 암시였다. 그러나 이 꿈들
중 어느것도 나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어느 것도 내가 부를
수는 없었다. 그것들이 와서 나를 가졌다.
나는 그것들의 다스림을 받았다. 그것들에 의해 살았다.
바깥으로는 내가 아마 안정되어 있었을 것이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것을 내 학우들도 알아서
내게 남모르는 존경을 보내어, 자주 나의 미소를
자아냈다. 원한다면 나는 그들 대부분을 아주 잘 꿰뚤어볼
수 있었고 이따금씩 그렇게 해서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었다. 다만 내게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드물게 생기거나, 전혀 생기지 않았다.
나는 늘 나에게 열중해 있었다. 늘 나 자신에게,
그리고 이제 마침내 한 번 인생의 한 토막을
살아보기를, 나에게서 나온 무엇인가를 세계
안에다 주기를, 세계와 관계를 가지고 싸움을 벌이게 되기를
열렬히 갈망했다. 이따금씩, 저녁에 거리를 걸을 때
그리고 초조로 자정까지도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
때, 그럴때 나는 이따금씩 생각했다. 지금,
바로 지금 틀림없이 나의 연인이 내게로 오고
있을 거라고, 다음 모퉁이를 지나고 있을 거라고, 그 모든
것이 때로는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워 죽어버릴 작정도
했었다. 당시에 나는 흔히들 말하는
대로 우연에 의해서 특이한 도피처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런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거기로 인도한
것이다. 두세 번 시내를 오가는 길에 어느
교외의 자그마한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 소리를 들었다.
거기 머물지는 않았었다. 다음번에 지나갈 때, 그
소리를 또 들었다. 그리고 바하가 연주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문으로 갔다. 문은 잠겨
있었다. 그리고 골목에는 거의 사람이 없어 교회
옆 방구석에 앉아 외투 깃을 세우고는 귀귀울였다.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은 오르간이었다.
그런데 연주가 놀라웠다. 최고도로 개인적인 의지와
끈질김의 표현이어서 마치 기도처럼 들렸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연주하고 있는 사람은
그 음악 안에 보물 하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을 얻듯 이 보물을 얻어내려고
구하고, 가슴 뛰고, 애쓰고 있다고. 나는, 테크닉면에서는
음악을 별로 많이 이해하지 못하지만 바로 이런 영혼의
표현은 어린 시절부터 본능적으로 이해했으며
내 마음속에서 음악적인 것을 자명한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음악가는 이어서 현대음악도
연주했다. 레거의 곡인 것 같았다. 교회는
거의 완전히 어두웠다. 다만 아주 엷은 빛줄기 하나가
바로 옆 창문을 뚫고 들고 있었다. 음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 다음에는 이리저리 거닐고 있자니 마침내
오르간 연주자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보다 나이가
들었어도 아직 젊은 사람이었다. 체격이 다부지고 땅딸막
하였는데, 힘차면서도 내키지 않는듯한 걸음으로 급히 그곳을
떠났다. 그때부터 이따금씩 니는 저녁시간에
그 교회 앞에서 앉아 있거나 오락가락했다. 한 번은
문이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오르간 연주자가 높은
곳에 매달린 빈약한 가스등 불빛 속에서 연주를 하는
동안, 나는 떨면서도 행복하게 반 시간을 교회
회중석에 앉아 있었다. 그가 연주하는 음악에서
내가 들은 것은 그 사람 자신만이 아니었다. 그가
연주하는 모든 것이 자기들끼리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듯했다. 남모르는 연관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연주하는 모든 것에 신앙심이
담겨 있었다. 헌신적이고 경건했다. 그러나 교화
가는 사람들이나 목사님들처럼 경건한 것이
아니라 중세의 걸인 순례자처럼 경건했다.
모든 종파를 초월하는, 세계 감정에의 남김없는
헌신으로 경건했다. 바하 이전의 대가들, 그리고
옛 이탈리아인들의 음악이 노련하게 연주되었다.
그리고 모든 연주곡들이 한결같이 같은 것들을 말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 음악가의 영혼속에 담긴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움, 더없이 열렬한 세계의 포착,
세계와의 가장 난폭한 재결별, 자신의 어두운 영혼에
대한 절실한 귀기울임, 헌신에의 도취와 경이로움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한번은 교회에서 나오는 오르간
연주자를 몰래 따라 갔는데, 멀리 도시 외곽의
작은 선술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마음에 맞서지
못하고 이끌린 듯 그를 뒤따라갔다. 거기서
처음으로 그 사람의 모습을 똑똑하게 보았다. 작은
술집 한 모퉁이에 있는 주인 맞은편 테이블에, 머리에는
까만 펠트직 모자를 쓰고, 포도주를 한 잔 앞에 놓은
채 그는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 같았다. 못생겼고, 약간 거칠었으며, 탐색적이고,
완고하고, 고집스럽고, 의지에 차 있었다.
그러면서도 입 주위는 부드럽고 어린아이 같았다.
남성다운 강함은 모두 눈과 이마에 모여 있었다.
얼굴의 아래 부분은 여리고 미완성이었다. 자제되지 않고
부분적으로는 약간 약했다. 우유부단함이 여실히
보이는 턱은, 이마나 시선과는 대조적으로 소년다웠다
자부심과 적의에 찬, 짙은 갈색 눈이 호감을 주었다
. 말없이 나는 그 맞은편에 앉았다. 술집에는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쫓아 버리려는
듯이, 그는 나를 쏘아 보았다. 그렇지만 나는 버텨냈으며
마침내 그가 우악스럽게 툴툴거릴 때까지 눈을
떼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빌어먹게 쏘아본단 말요, 나한테 원하는 거라도
있소?” “선생님한테 원하는 건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벌써 선생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데요”
그가 이마를 찌푸렸다. “그래,
음악 팬이오? 음악에 얼빠지는 것이 난 구역질나는데”
나는 놀라 물러서지 않았다. “벌써
선생님 음악을 들었습니다. 저 바깥 교회에서요” 내가
말했다. “아무튼 귀찮게 해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선생님 곁에서 어쩌면 무얼 찾아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뭔가 특별한 것,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제 말은 전혀 듣고 싶지 않으신
것 같군요! 저는 선생님께 귀기울이는데요.
교회에서 말입니다” “난 언제나 문을 잠그느데” “최근에
그걸 잊어버리셨습니다. 저는 안에 앉았구요. 보통
때는 바깥에 서 있거나 방충석 위에 앉아 있습니다”
“그래요? 다음번에는 들어오시구려, 안은
한결 따뜻하오. 그럴 때는 그냥 문을
노크하시오. 노크는 힘차게 해야해요. 내가 연주하는 동안은
하지 말고. 자 시작합시다. 무슨 말을
하려 했소? 아주 젊은 사람이로군. 아마 학생이거나
대학생이겠군. 음악가요? ” “아뇨. 음악을
즐겨 듣습니다. 그러나 그냥, 선생님이 연주하시는
것 같은 거요. 아주 절대적인 음악을요. 거기서는
한 인간이 천국과 지옥을 흔들고 있다고 느껴지는
그런 음악을요. 음악이 몹시 좋아요. 음악은 별로
도덕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도덕적이지요. 저는 도덕적이지 않은 무엇인가를 찾고 있습니다.
저는 도덕적인 것에는 늘 시달렸거든요. 자신을 잘
표현할 수가 없는데요. 아시죠, 신이면서 동시에
악마인 신이 있음에 틀림없다는 것? 그런 신이 있었다지요.
그런 이야길 들었습니다” 음악가는 넓은
모자를 약간 뒤로 젖히고 검은색 머리카락을
넓은 이마로부터 흔들어 쓸어냈다. 그러면서 나를
꿰뚫듯 바라보며 테이블 넘어 나에게로 얼굴을 숙이는
것이었다. 나직하면서도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조금전에 말한 신의 이름이
뭐요?” “유감스럽게도 그 신에 대해서는
거의 모릅니다. 사실 이름밖에 몰라요. 그 이름은
압락사스입니다” 음악가는 미덥지 않다는
듯 주위를 둘러 보았다. 마치 누군가가 우리를
엿듣기라도 하듯이. 그러더니 나에게로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그러려니 했소.
당신은 누구요?” “저는 김나지움 학생입니다”
“압락사스는 어디서 알았소?” “우연히
알았습니다” 그는 테이블을 쳤다. 그의
술이 잔에서 넘쳤다. “우연이라구?...
멍청한 소리 하지 말아, 이 사람아! 압락사스는 우연히
알게 되는 게 아니야. 알아두게. 압락사스에 대해 더
이야기를 할테니. 난 압락사스에 대해 좀 알거든” “그가
입을 다물고 자기가 앉은 의자를 뒤로 밀었다.
잔뜩 기대에 차서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서는 아니고 다음번에
그때 들으시오” 그러면서 그는 벗어
놓은 자기 외투 호주머니를 뒤져, 군 밤 몇개를
내게로 던졌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서 먹엇고 매우 만족했다. “그러니까!”
그가 한참 뒤에 나직이 말했다. “어디서 알았소,
그에 대해서?” 나는 망설이지 아노고 말했다.
“저는 혼자였고 어쩔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 예전의 친구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아는 게 많다고 생각했던 친굽니다.
무언가를, 새 한마리를 그려 놓았거든요. 지구를 뚫고
나오려는 새였습니다. 그 그림을 그에게 보냈습니다. 얼마
뒤, 이제 답장을 받으리라고 기대도 안하게
되었을 때 쯤, 쪽지 하나를 손에 받았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라고요” 그는 아무 대꾸가 없었다.
우리는 밤 껍질을 벗겨 포도주에 곁들여 먹었다. “한
잔 더 할까?” 그가 물었다. “괜찮습니다.
술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는 다소 실망하여
웃었다. “좋으실 대로! 난 술을 좋아하지.
난 여기 좀더 있을테니 먼저 가보시오!” 그 다음번
오르간 음악이 끝난 뒤 그와 함께 걸었을 때, 그는
별로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어느 오래된
골목 안, 낡았지만 위풍 있는 집 위층으로 인도해 올라갔다.
커다랗고, 다소 황량하고 지극히 볼잘것 없는
방안으로, 거기에는 피아노 한대 외에는 음악과 상관있어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편, 커다란
책장과 책상이 있어 무언가 학자의 방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책이 참 많으시군요!‘ 나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 일부는 우리 아버지 장서요. 아버지
댁에 살고 있거든. 그래, 젊은이, 난 아버지 어머니
집에 살아. 그러나 자네를 부모님께 소개할 수는 없어,
나의 교우관계가 여기 집안에서는 큰 존중을 못 받거든.
나는 버려진 자식이오, 아시겠지. 우리 아버지는 빌어먹게
존경할 만한 분이시지, 이 도시에서 유명한 신부님이고
설교자시지. 그런데 나는, 바로 환히 알아두시도록
말하자면, 그 분의 재능 있고 장래가 촉망되는
아드님이시고, 그러나 궤도를 벗어나 어느 정도 돌아버린
아들이지. 나는 신학도였는데 국가고시 직전에 그놈의
답답한 대학을 그만두어버렸오. 사실 개인적인 연구를
얘기한다면, 나는 여태도 신학도인데 말이오. 때에
따라 사람들이 어떤 신들을 그때그때 생각해
내었는지, 그것이 나에게는 늘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소.
그 이외에 나는 지금 음악가이며, 곧 자그마한 오르간 연주자
자리를 얻게 될 것 같소. 그러면 나도
다시 교회에 돌아가게 되는 거지“ 나는
꽂힌 책들을 작은 스탠드의 약한 불빛이 비쳐주는
데까지 죽 살펴보았다.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책 제목들이 보였다. 그 사이 그 사람은 벽 곁 방바닥 캄캄한
데 엎드려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이리
와보시오” 그가 한참 뒤에 말했다. “우리 지금 철학 좀
해봅시다. 철학한다는 건(아가 리 닥치고 배깔고 엎드려
생각하기) 라고 하오” 그는 성냥을 켜서 그의
앞에 있던 벽난로 속 의 종이와 장작에 불을
지폈다. 불꽃이 높이 솟았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불을
쑤석였다. 나는 그 곁, 낡아 올이 풀린 양탄자
위에 드러누었다. 그는 불을 응시했다. 불은 내 마음도
끌어당겼다. 우리들은 말없이 아마 한 시간은 배를
깔고 타닥거리는 장작불 앞에 엎드려,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싯싯거리고 가라앉아 휘어지고 가물거리고 움칫거리다
마침내는 사그라진 조용한 화염 속에서 잦아드는 모습을
바라 보았다. “배화는 인간이 창안해
낸 것 중 가장 멍청한 짓만은 아니었어” 그는 혼자서
한번 웅얼거렸다. 그 밖에는 우리들 누구도 한마디도 말이
없었다. 굳어진 눈으로 불을 응시하며 꿈과
정적 속으로 침잠하며, 연기 속에서 어떤 영상들을
보았고 재 속에서도 영상들을 보았다. 한 번은 내가
화들짝 놀랐다. 함께 불을 보고 있던 그 사람이 이글거리는
불 속에 송진을 조금 던졌던 것이다. 조그맣고 날렵한
불꽃이 솟았다. 그 속에서 나는 노란 색 매 머리를
가진 그 새를 보았다. 꺼져 가는 난롯불이
황금빛으로 작열하는 실 가닥을 한데 모아 그물로
만들었다. 문자와 영상들이 나타났다. 문득
정신이 들어 상대방 쪽을 바라보자 그는 턱을 두
주먹 위에 놓은 채, 몰두하여 신들린 듯 재 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 가야겠는데요”
내가 나직이 말했다. “그럼, 가시오.
또 봅시다”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등불이
꺼졌기 때문에 어두운 방과 어두운 복도며
계단을 간신히 지나, 그 저주받은 낡은 집을 더듬어
나왔다. 거리에서 멈추어 그 낡은 집을 쳐다보았다.
어느 창에도 불빛이 없었다. 주석으로 만든
작은 문패가 문 앞의 가스등 불빛 속에서 반짝였다.
(수석 신부 피스토리우스)라고 적혀 있었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혼자 내 작은
방에 앉아 있을 때 비로소, 내가 압락사스에 대해서도,
피스토리우스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듣지 못했으며
우리가 주고 받은 말이 열마디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집을 찾아갔던
것에 아주 만족했다. 게다가 그 다음번에는 아주 뛰어난
오래된 오르간 작품인 북스테우데의 파사칼리아를
들려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나는 몰랐지만,
내가 그와 함께 벽난로 앞 그의 침울한 은둔자
방의 바닥에 누워 있던 그때 오르간 연주자
파스토리우스는 나에게 첫 수업을 해준 것이었다.
불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 나는 기분 좋았다.
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내 안에 잠재되어 있었지만
사실 한 번도 보살핀 적이 없었던 내면의 성향들을
강화하고 확인시켜 주었다. 차츰 내게는 부분 부분 그것들이
명확해졌다.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나는
때때로 기괴한 형태를 가진 자연물을 바라보는
버릇이 있었다. 그냥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유한
마력, 그 얽히고 설킨 깊은 언어에 깊이 몰두하여
관찰했다. 고목처럼 드러난 길다란 나무 뿌리, 암흑
속의 색색깔 광매, 물 위에 뜬 기름 얼룩, 유리에 난 금-
그런 것들이 종종 나에게 커다란 마력을 발휘하였다.
특히 물과 불, 연기, 구름, 먼지, 그리고 눈을 감으면
보이는 아주 특별하게 선회하는 색 얼룩이. 피스토리우스를
처음 찾아간 뒤 며칠동안 그런 것들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왜냐하면 그 이후 내가 느낀
활기와 기쁨, 내 감정의 고조는 그대로 드러난 불을 오래
응시한 덕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불을 응시하는
것은 이상하게도 기분 좋고 풍요로워지는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내가 그때까지 본래의 삶의
목표로 가는 길에서 찾아낸 얼마 안 되는 경험들에
이 새로운 경험이 추가되었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 비이성적이고, 얽히고 설킨,
기이한 자연의 형태들에 몰두하는 것은 우리 내면에서,
이 영상을 이루어지게 한 우리 내면의 의지와의 일치감을
낳는다.- 우리는 곧 그 일치감을 우리들 자신의 기분으로,
우리들 자신의 창조로 여기려는 유혹을 느낀다-
우리는 우리와 자영 사이의 경계가 흔들리고, 흐려지는
것을 보고, 분위기를 알게 된다. 그
분위기 속에서 우리 망막 위의 이 영상들이 바깥의
인상들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내면의 인상에서 비롯된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 어디에서도 이런
연습에서처럼 간단하고 쉽게 발견해낼 수 없다. 우리가
얼마나 창조자인지, 우리 영혼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세계의
끊임없는 창조에 관여하는지를. 우리들 안에서 그리고
자연 안에서 활동하는 것은 오히려 똑같은 불가분의
신성이다. 바깥 세계가 몰락한다 하여도 우리들 중
하나는, 그 세계를 다시 세울 능력이 있다. 산과
강, 나무와 잎, 뿌리와 꽃, 자연의 모든 영상이 우리들
마음속에 미리 만들어져 있어서 영혼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영혼의 본질은 영원이며, 그 본질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본질은 대개
사랑하는 힘과 창조력으로 느낄 수 있도록 주어진다.
몇 해가 지나서야 나는 어느 책에서
이 관찰을 뒷받침할 여러 근거들을 발견하였다. 즉
많은 사람들이 침을 뱉어 놓은 담벼락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훌륭하고 깊이 자극을 주는지에 대해서
언젠가 이야기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축축한 담벼락에
있는 그 얼룩들 앞에서 그는 피스토리우스와 내가
불 앞에서 느낀 것과 똑같은 것을 느꼈다.
우리들이 다음번에 함께 있게 되었을 때 그
오르간 연주자는 설명했다. “우리는 우리의
개성의 경계를 늘 너무나도 좁게 긋고 있어! 우리는 늘,
우리가 개인적인 것이라고 구분해 놓은 것,
상이하다고 인식하는 것만 개성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총체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 하나하나가
말이야. 그리고 우리 몸이 진화의 계보를,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훨씬 멀리까지, 자신 안에 지니
고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도 일찍이
인간 영혼들 속에 살았던 모든 것을 지니고
있지. 그리스인들이나 중국인들에게서든 아프리카
토인들에게서든 일찍이 존재했던 모든 신과
악마, 모두가 우리들 속에 있어. 거기 있는 거야. 가능성으로,
소망으로, 탈출구로, 인류가 멸종하고,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상당한 재능을 지닌 어린아이 하나만
남는다면, 이 아이는 사물들의 전체 과정을 다시
찾아낼 거야. 그애가 신이 되어 수호신, 낙원,
계율과 금기, 신약과 구약, 모든 것이 다시 만들어질
수 있을 거야” “좋습니다” 내가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어디에 개인의 가치가 있습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우리들 속에서 이미 완성된
상태로 가지고 있다면 왜 우리는 아직도 죽는 거지요?“
“그만” 페스토리우스가 격하게 외쳤다. “세계를
그냥 자기 속에 지니고 있느냐 아니면 그것을
알기도 하느냐, 이게 큰 차이지. 미친 사람이 플라톤을
연상시키는 생각을 내놓을 수 있고, 헤른후트파 학교의
신앙심 깊은 조그만 학생이 영지파나 조로아스터에서
나타나는 심오한 신화적 연관을 창조적으로 숙고할
수도 있어. 그러나 그들은 세계가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은 몰라. 한그루 나무거나 돌인 거지. 기껏해야
동물이고. 그 사실을 모르는 한에서는 말이야. 그러나
이런 인식의 첫 불꽃이 희미하게 밝혀질 때, 그때
그는 인간이 되지. 자네는 그렇다고
모두를, 저기 거리를 걸어다니는 두 발 달린
것 모두를, 그들이 똑바로 걷고 새끼를 아홉 달 뱃속에
품고 있다고 해서 인간이라고 여기지는 않겠지?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물고기거나 양, 버러지거나
거머리인줄은 아시겠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개미들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별들인지! 자아, 그들
하나하나 속에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지. 그러나
각자가 그 가능성들을 예감함으로써, 부분적으로는 심지어
그것들을 의식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비로소 그 가능성들은
자기 것이 되는 거라네” 우리의 대화는
대략 이런 식이었다. 대화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
전적으로 놀라운 것이 나오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모두가, 가장 진부한 대화도, 나직하고 꾸준한
망치질로 내 마음속의 한 점을 계속 두드렸다. 모든 대화가,
나의 형성에 도움이 되었다. 모든 대화가 내 허물을
벗는 일에, 알 껍데기를 부수는 일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화 하나하나에서 짓부수어진 세계의
껍데기를 뚫고 마침내 나의 노란색 새가 머리를
조금 더 높이, 조금더 자유롭게 쳐들어, 그 아름다운
맹금의 머리를 불쑥 내미는 것이었다. 빈번히
우리들은 서로의 꿈을 이야기했다. 피스토리우스는
꿈 풀이를 할 줄 알았다. 놀라운 예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내가 날 수 있는 꿈을 꾸었다.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어느정도 큰 도약으로
대기를 가르고 내던져졌다. 이 비상의 느낌은
기운을 복돋우는 것이었으나, 내가 의지도 없이 위태로운
고공을 홱홱 날게 되자 그것은 곧 두려움으로 변했다.
그러나 호흡을 멈추었다가 한꺼번에 힘껏 토하는 식으로
나의 상승과 하강을 조절할 수 있다는 구원같은 발견을
했다. 그 꿈에 대해 피스토리우스는 말했다.
“자네를 날게 만든 도약, 그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우리 위대한 인류의 재삼이지. 그것은
모든 힘의 뿌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지. 그러나
그러면서도 곧 두려워져! 그것은 빌어먹게
위험하지!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렇듯
차라리 날기를 포기하고 법 규정에 따라 인도 위를
걷는 쪽을 택하지. 그런데 자네는 아니야.
자네는 계속 날고 있어. 유능한 젊은이에게 합당한
대로 말이야. 그리고 보게. 자네는 놀라운 것을 발견하네.
자네가 점차 그 주인이 된다는 것을 말이야. 자네를
계속 낚아채 가는 커다랗고 알 수 없는 보편적인
힘에다가 하나의 섬세하고 작은 자신의 힘이 더해지는
것을 발견하네. 하나의 기관, 하나의 방향키 말일세!
이건 대단한 거야. 그것이 없다면 그냥 공중에 떠 있을
테지. 미친 사람들이 그렇듯 말이야. 자네에게는 인도를
걸어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보다 더 깊은 예감이
주어졌어. 그러나 거기에 맞는 열쇠와 방향 키가
없어. 바닥 없는 곳으로 솨악 빨려들고 있지.
그러나 자네는 말이야, 싱클레어, 자네는 그
일을 하고 있어! 그런데 어떻게냐구? 그건 자네가
아직 전혀 모르겠지. 자네는 그것을 새로운 기관, 즉 하나의
호흡조절기를 가지고 하고 있어. 이제 자네의 영혼이
근본에 있어서 얼마나 (개인적) 이지 못한가를
알 수 있을 거야, 이런 조절기를 고안해 낸
게 자네의 영혼은 아니니까 말이야. 조절기란 새로운
게 아니야! 그것은 일종의 차용이지.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하는 거야. 그것은 물고기의 평형 기관-
부레지. 실제로 부레가 동시에 허파여서 상황에 따라서는
정말로 숨 쉬는데 부레를 이용하는, 진화가 덜 된 희귀한
물고기 몇몇 종류가 오늘날에도 있지. 그러니까 자네가
꿈에서 날 때 비행용 기포로 사용한 허파와
한 치도 안 틀리고 똑같이 말이야!” 그는
나에게 동물학 책가지 한 권 가져와 그 진화가 덜 된 물고기들의
이름과 도판도 보여주었다. 나는 마음속에서 한 가닥
특이한 전율을 느끼며 진화의 초기 단계에서
나온 기능 하나를 생생하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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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새로운 것을 알아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내면의 변화를 자신도 모른다는 것,..그러한 변화를 타인들이 먼저 발견한다는 것,.어른이 된디는 것이 징?하다는 느낌으로 다가들던 때가 어렴풋이 생각나는 대목이네요...-.-+
의식의 흐름을 명료하게 들여다 보는일 그래서 눅눅했던 젊은날의 초상은 어쩌면 비상을 위한 추락이었는지 모릅니다 데미안님 반갑습니다
우리를 속이는 모든것을 아는 한사람...그는 누구인가?????신.....????? 나 자신???? 어른이 된다는것....에 대한 내 환상은 그 당시의 연결고리에서 떨어져나오고 싶은 열망이였던듯...뎀님...아침이 좋은 날들입니다^^*^^*건강과 미소를 기도합니다^^*아르페지오님두요^^*_
아르페님, 청마루에 오신 것 보고 인사를 해야했는데,..이렇게 서재 오시니 너무 반갑습니다..그 느낌가지도 우리 뜨락님들의 감성의 다름없음에 더욱 반깁니다..오래 머물러 이 뜨락이 마음으로 소통하는 친구였으면 좋겠습니다..송화님,..마음 보입니다..나날이 그리 쉽지마는 않다는 것도요..미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