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어쩔 수가 없다>
1. 최근 화제가 되었던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가 개봉했다. 실직자의 기이한 행동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허상과 냉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이 영화는 외국에서 상연되었을 때 압도적인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잘 나가던 한 제지업계 중견기술자의 실직은 단순히 수입이 끊겼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경제적 수입은 자본주의적 질서 속에서는 생존을 위한 최후의 방어망이자 자신의 실존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것은 자신 뿐 아니라 가족을 책임진 가장에게는 존재의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실직’은 인간의 정상적인 사고마저 파괴한다. 오로지 자기 생존이라는 이유로 끔찍한 폭력과 살인까지 합리화시키는 기묘한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는 제목 그대로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한 인간의 파괴행위에 대한 자기방어적 논리에 대한 회의적 고발이자 이익의 수요자에 속했들 때 동조하게 되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폭로이기도 하다.
2. 25년 이상 제지업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중년의 사내는 갑작스럽게 해고를 통보받는다. 행복했던 가정의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사내는 취업을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그 과정에서 그는 극단적인 결정을 실행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취업에 방해되는 경쟁자들을 제거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영화는 경쟁자들에 대한 살해행위를 블랙 코메디적으로 묘사한다. 결국 3인을 제거한 그는 취업에 성공하여 성공에 대한 만족감으로 영화는 막이 내린다. 취업을 위해 살인을 불사하는 것에 대한 황당함과 불쾌감은 영화 내내 지배하는 감정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최선을 다해 영화 속 인물의 행위에 정당함을 부여하기 위해 억지스럽게 전개된다. 사내의 끔찍한 폭력은 가족들에 의해 발각되지만 그들 또한 자신들을 위해 은폐하고 그것에 동조한다. 극단적인 영화적 외형은 불법과 폭력의 승리요, 극단적인 가족이기심의 사랑스러운 연대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통해 감독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자본주의적 사회에서 벌어지는 인간성의 왜곡이며 극단적 이기심의 발산일 것이다. 어떤 죄책감도 없이 취업에 성공하자 만족스럽게 회사를 걷는 사내의 모습이 그것을 상징한다. 세상의 어떤 질서도, 세상의 어떤 변화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곳에서 나와 내 가족이 생존할 수 있는 공간만 주어진다면 어떤 행위도 나에게는 정당화한 것이다.
3. 전문가들의 영화평은 좋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유사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자본주의적 사회의 폐해를 냉소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였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영화적 장치를 통해 극적 몰입을 높였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기생충>에서도 살인에 이르는 과정적 묘사를 통해 폭발성 있는 위험을 묘사했다면, <어쩔 수가 없다>또한 살인에 대한 냉소적이지만 매력적인 하나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감독들은 이 사회의 비극을 조명하고 거대한 구조적 악에 대한 위험을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기생충>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얻었지만, 이 작품에서는 더 큰 불편함을 감지한다. 자본주의적 질서 속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지극히 왜곡된 변호의 감성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내의 행위를 변호하기 위한 수많은 장치가 동원되었고 비록 이탈적 행위임에도 잘생기고 멋진 남녀의 행위를 통해 그것에 대한 충격을 완화시키고, 어쩌면 아무리 잘못된 행위라도 가족을 위한 헌신이라면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착각까지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4. 분명 영화는 ‘도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적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복잡하면서도 기술적인 영화적 문법을 통해 다양한 해석과 이해 때론 논쟁까지 불러일으켜야 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렌즈를 통한 접근은 불가능하며 다양한 시선과 방식을 통한 인간의 복합적 성격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분명 <어쩔 수가 없다>를 보고 자본주의적 질서 속에서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경제적 비극의 실체에 대한 명확한 동감을 표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의 폭주를 통해 또 다른 갈등과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이면적 의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수용한다고 해도 영화가 끝났을 때 닥쳐오는 불쾌감을 피할 수 없다. 고발하려고 했던 주제들이 오히려 합리화되어 마무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과 생존을 위해서는 어떤 것들도 허용되며, 그것이 가족과 연결된다면 그 강도는 더욱 커지며, 가족은 아무리 큰 악행이라도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연대하여야 한다는 결론만이 자각되기 때문이다. 몇 번 다시 본다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상태로는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을 몇 번씩 본 사람으로서 그의 새로운 작품은 조금은 아쉬웠다. 그리고 이병헌에 대한 지나친 찬사는 이 작품에서는 적용되기 어려울 듯하다. 영화적 기술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의 대사는 많은 부분에서 명확하게 표현되지 않고 뭉개져 들리기 때문이다.)
첫댓글 뭐 어쩔 수 없는 것이 어디 한두 가지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