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족작위 프랑스 영국
공작(公爵) 듀크Duc 듀크Duke
후작(侯爵) 마퀴스Marquess
백작(伯爵) 콩트Comte 얼Earl
자작(子爵) 비콩트Vicomte 바이카운트Vicomte
남작(男爵) 배론Baron 바론Baron
성주(城主) 샤틀렌
배신(陪臣) 바바쇠르 바로네트(從男爵)
기사(騎士) 쉬발리에Cheval!ier 나이트Knight
+ 공작이 공국을 다스릴 때에는 대공으로 불리게 된다.영족(領族)은 왕족 중에서 왕과 직계계열이 아닌 핏줄을 말한다.
서양의 작위(爵位)는 중세 및 근대에 귀족의 서열을 나타내던 칭호로서 중세 초기 서유럽의 대국이었던 프랑크 왕국에서 관직으로 존재했던 것이 세습적 봉건귀족제의 발달과 함께 귀족의 계층 서열을 나타내게 되었다.
상급귀족으로서는 헤르초크(公) 팔츠그라프(宮中伯) 마르크그라프(邊境伯) 그라프(伯) 프라이에르 헤르(男:후의 프라이헤르)가 있었으며, 그 밑에 하급귀족으로 라이히스리터(直屬騎士) 리터Ritter(騎士) 등이 있었다.이 제도는 비슷한 형태로 신성로마제국에 전해졌으며, 중세 말기에는 황제나 란데스헤르(王)에 의해 서작(敍爵)되는 위기귀족(位記貴族:서류상 귀족)도 나타났다.
1871년 이후 독일제국에도 계승되어 퓌르스트(侯), 그라프 ·프라이헤르 등의 칭호가 사용되었다. 1918년 공화정 성립 후에는 특권이 폐지되고 작위는 1대(代)에 한하여 성명의 일부로서 사적(私的)으로 사용하도록 허용되었으며 1919년에는 귀족법이 폐지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중세 이후 듀크(公) 콩트(伯) 비콩트(子) 배런(男) 샤틀렌(城主) 바바쇠르(陪臣) 쉬발리에(騎士) 등의 칭호가 있었으며, 또 고등법원의 평정관(評定官)은 매관귀족(賣官貴族)이었기 때문에 시민도 법복귀족(法服貴族)이 되는 사람이 많아 17세기부터는 하급귀족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귀족제는 대혁명으로 폐지되었다가 나폴레옹이 새 제도를 만들어 1814년 왕정복고와 함께 구(舊) 귀족은 칭호를 회복했으나 특권은 되살아나지 못했다. 1870년 제3공화정 이후 습관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영국에서는 11세기 노르만 정복 이후 왕 직속의 가신(家臣)이 듀크(公) 마퀴스(侯) 얼(伯) 바이카운트(子) 바론(男) 등 상급귀족의 작위를 가졌다. 상급귀족의 가신은 바로네트(從男爵) 나이트(騎士)였으며 서(Sir)의 칭호를 붙였다. 상급귀족의 맏아들은 작위를 계승하였으며, 공, 후의 둘째 아들 아래로는 이름 앞에 로드(Lord 장자는 아버지의 작위를 세습)라는 칭호를 붙였다. 자작과 남작의 둘째 아들 아래로는 이름 앞에 오너러블(Honorable)이라는 칭호를 달았는데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1948년 공화정헌법으로 귀족제가 폐지되었으나 작위는 이름의 일부로서 통용되고 있으며, 에스파냐에서는 1948년 프랑코 정권에 의해 귀족제도가 부활되었다.2. 호칭(呼稱)사람들이 성과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 유럽에서도 200여 연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라고 한다.
계급의 높고 낮음이 있었던 시대엔 이름이란 고귀하신 영주나 귀족이나 갖는 것이었다. 따라서 평민들은 "성(性)"을 갖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나중엔 직업이 성으로 변함에 따라 평민들도 성을 가지게 되자 귀족들은 평민과 다른 성을 지녀 구별을 짓도록 “폰(von)"을 붙였다.(리차드 기어가 귀족이었다면 “리차드 폰 기어”로... )게르만의 귀족 - 폰(von)네덜란드의 귀족 - 판(van) 여기는 판이 붙었다고 다 귀족 출신은 아니라고 한다.프랑스의 귀족 - 드(de) 켈트=갈리아 르(le)에스파냐의 귀족 - 데(de)이탈리아의 귀족 - 디(di)귀족들의 호칭에 있어서는 유럽의 역사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만 가능하다.
일단 귀족이란 제도가 생겨나게 된 바탕은 중세유럽에서의 봉건제도로부터다. 봉건제도는 일종의 군사제도다. 각 지방은 스스로 자위권을 행사해야 했기에 귀족들은 일단 지방의 군사적 지휘관이었고 그것을 영주(領主)라고 번역한다.영주는 당연히 영지를 가지고 있다. 귀족들의 성은 그런 이유로 자신의 영지의 이름을 따거나 혹은 귀족들의 성으로 영지의 이름을 정한 것이 뒤에 가면 그 지방의 이름이 되고는 하는 것이다.
프랑스 귀족들의 경우 성 앞에 드(De)라는 것을 붙이는 것은 잘 아실 것이다. 이 드(De) 라는 말은 영어의 of 정도에 해당한다. 프랑스의 대통령이었던 드골의 경우는 “골 지방의... 누구누구...”라는 뜻이 된다. 아마도 드골의 선조는 골 지방의 영주였던 모양이다.
영주라는 것은 작위...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뿐만 아니라 흔히 기사라 불리는 나이트까지도 의미하는 것이다. 영국에서 여왕이 나이트 작위를 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영국에서는 작위를 받으면 Sir를 붙여주는데 그것을 우리는 경(卿)이라고 번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귀족은 영주(領主)라는 개념에서 출발했고, 이것은 군사 조직적인 의미인 것이다. 따라서 귀족들은 기본적으로 기사들이었다. 그러나 후에 국왕이 중앙집권을 강화하면서 왕권이 강화되고 영주가 아닌 관리(관료)로서의 귀족들이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영지(領地)가 없다.
그러면서 지방의 막강한 실력자로서의 영주는 사라지고 그저 국왕의 신하라는 개념의 귀족들이 나타나 결론적으로 '경(卿)'이라는 호칭은 왕이 귀족을 부를 때나, 귀족들이 서로 부를 때나, 평민이 귀족을 부를 때나 붙일 수 있다. 하지만 경이라고 했을 때는 보통 First Name(이름)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Last Name(Family Name; 성姓)을 부를 때는 작위를 같이 부르는 경우가 많다.(샌드위치 백작, 요크 공작 또는 리차드 경, 존 경)+대공(大公)이라는 표현은 일본식 번역이다.(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서양의 역사 대부분이 메이지 시대 일본에 의해 번역되었다.)일본인들이 서양의 역사서와 문학작품들을 번역할 때, 수많은 작은 도시 국가들로 분열되어 있었던 근대 이탈리아와 독일의 정치적 수반을 보통 '대공(大公)'이라 번역했다.
그저 도시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을 가지고 왕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사실상 봉건시대의 영주 정도의 힘 밖에 없는 사람이었기에 적당히 '대공(大公)'이라고 번역했다.또, 공화국 수반을 '대공(大公)'이라 표현하기도 하는데, 생각해 보면 반은 맞는 말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명목상으로나마 공화국(共和國)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의 도시국가들은 봉건제의 잔재가 남아 대부분 왕정(王政)체제였다.예를 들어 중세 시대 유럽 최대의 무역 기지였던 도시국가 베네치아는 완벽한 공화정(共和政)이었고, 독재의 역사도 거의 없었지만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의 거점이었던 피렌체는 형식적으로는 공화정(共和政)이지만, 메디치가에 의해 오래 지배되었고 결국 왕정(王政)으로 흘러갔다. 제노바도 중세 내내 어엿한 공화정(共和政)을 실시하였지만, 나중엔 왕정 비스름하게 되어 갔다.일본인들은 이런 도시국가의 수반을 '대공(大公)'이라고 칭한 것이므로, 생각하기에 따라 공화국 지배자를 대공(大公)이라고 한 들 완전히 틀리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러시아에 의해 통일이 달성되기 이전까지 분열되어 있던 도시국가들이 거의가 왕위를 세습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와는 전혀 개념이 다르다. 더욱 헷갈리게 만드는 것은 일본인들이 이러한 독일의 도시국가들을 흔히 '공국(公國)'이라고 번역하곤 했고, 그 지배자를 '대공(大公)'이라고 번역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러한 표현은 일본 만화에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여기서 '공국(公國)'이라는 표현을 잘 뜯어보면, 본래 중국에서 사용하던 벼슬 이름에서 유래한다. 그러니까 봉건시대의 중국(주:周 - 춘추전국시대)에서 천자는 유력한 제후들에게 추대되었고, 그 제후들은 'OO공', 혹은 'OO후' 등의 관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벼슬 이름은 그대로 그 제후들의 신분을 가리키게 되었고, 봉건시대였으므로 그들에게 주어진 영토를 지배하게 되면서 그 곳을 'OO공국'이라는 식으로 불렀다. 또한 재주 많은 문사나 공신들에게 천자는 'OO백'이라는 벼슬을 내렸다.이런 것들이 일본인들이 유럽의 귀족 명칭을 번역하는데 사용되면서 어처구니없는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다. '공작', '백작', '후작' 등으로 중국식 벼슬 이름에 '-작'이라는 말을 붙여 유럽 귀족들의 신분을 멋대로 번역하였던 것이다.
교황(敎皇)을 '법왕(法王)'이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교황(敎皇)과 추기경(樞機卿)에 대해 '예하(隷下)'라는 존칭을 붙이는 것도 일본식 번역이다.폐하(陛下)는 국왕 또는 황제만을 지칭한다.전하(殿下)는 다른 국가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의 국왕, 또는 권력이 큰 고위 귀족.저하(邸下)는 조선 시대에, ‘왕세자’를 높이어 일컫던 말.예하(隷下)는 가톨릭의 교황(敎皇)과 추기경(樞機卿).성하(聖下)는 가톨릭의 교황(敎皇)각하(閣下)는 고위 관료를 부른다.
귀족의 작위대공(大公:그랜드 듀크Grand duke) 여성형은 그랜드 더치스grand duchess.러시아에서는 그랜드 프린스grand prince, 그랜드 프린세스grand princess(여성형)라고도 함. 국왕과 공작 사이의 귀족으로 통치권을 갖는 신분을 일컫는 칭호. 제정 러시아의 황족을 부를 때에도 이 칭호를 썼다.
서유럽에서 처음 나타난 대공령(大公領)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대공령이다. 1569년에 교황 피우스 5세가 코시모 데 메디치에게 대공이라는 칭호를 내렸고 1575년에 코시모의 아들 프란체스코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승인을 받았다.
대공이라는 칭호는 18세기에 토스카나 공국과 함께 합스부르크-로렌 왕가로 넘어갔다. 나폴레옹 전쟁 때 독일과 동유럽의 판도가 바뀌는 가운데 새로운 대공령이 나타났다. 빈 회의는 나폴레옹이 만든 대공령 가운데 일부(특히 헤센다름슈타트 대공령과 바덴 대공령)를 존중해주었고, 새로이 작센바이마르와 두 메클렌부르크인 룩셈부르크·올덴부르크 대공령을 만들었다. -흔히 황태자가 되지못한 2왕자나 1왕자가 대공의 자리를 많이들 받습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입니다만 왠지 모르게 질투심과 시기심으로 가득한 사람이 이 직위를 받죠. 그래서 이 계급의 사람들이 많이들 들고일어나죠. [왕자리를 내놔라~!!]라면서. 반역을 꾀할만한 힘도, 권력도 있는 자리이니까요. 살펴보면 길시언같은 좋은 케이스도 있지만 이런 사려 깊은 대공은 드물죠.공작(公爵:듀크Duke) 여성형은 더치스Duchess. 유럽 귀족 칭호로서 왕자나 왕 다음으로 가장 높은 직위.(대공 같은 중간 칭호가 있는 나라에서는 예외)둑스(dux)라는 칭호는 로마인들이 영토를 관할하던 고위 군 지휘관들(황제 속주의 총독)에게 내린 것으로, 로마 제국에 쳐들어 온 이민족들이 그 칭호를 본 따서 그들 왕국에서 썼고,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넓은 영토를 가진 통치자들에게 사용하기도 했다. 프랑스와 독일 지방을 다스린 카롤링거 왕조에서는 일찍부터 공작을 임명했으나 후기로 접어들면서 힘이 약해지자 공작들이 점점 왕실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지 못했다. -
공작이란 자리는. 으음~ 일단은 대개의 판타지에서 주인공들이 많이 들르게 되는 공국이란 것이 공작이 다스리는 영토란 점에서 그 의의를 들 수 있군요. 상당한 권력을 가진 위치로 대개 왕자나 왕의 신임 받는 유능한 부하로 많이들 출연합니다. (또는 야심 넘치는 음모가라던가…….) 후작(侯爵 마퀴스Marquess) 여성형은 marchioness. marquis공작과 백작 사이의 서열로, 어원적으로는 변경 영지를 소유하고 있는 백작을 지칭하나 이러한 의미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서유럽에서 카롤링거 왕조의 후작은 국경을 수비하는 임무를 지닌 왕실 관리였다.
이들은 백작은 하나 이상의 영지를 소유할 수 없다는 규정에서 제외되어 그 지위가 공작에 못지않았다. '변경공'(Markherzog)이라는 칭호가 '변경백'(Markgraf)을 대신해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국경의 조건과 국경 자체가 변화함에 따라 옛 경계지역의 중요성이 상당히 감소했다.백작(伯爵:콩트Comte) 여성형은 카운티스Countess 영국에서는 얼Earl이라고 함. 근대에는 후작이나 공작보다 한 등급 낮은 작위이다.
로마 시대의 '코메스'는 원래 황제를 측근에서 모시는 가신이었다. 프랑크 왕국에서는 지방사령관 겸 판사였다. 그 후 백작은 봉건체제에 서서히 받아들여져 일부는 공작에게 종속되었지만, 플랑드르·툴루즈·바르셀로나 같은 일부 백작령은 공작령만큼 넓었다.왕이 봉건제후들에 대한 권위를 다시금 주장한 것은 각 나라마다 시대가 달랐으나 중앙집권화한 근대적 유형의 국가 형성으로 이어졌고, 백작의 정치권력 상실을 의미했다.
그러나 백작이 귀족 계급의 일원으로서 누리던 특권은 계속 유지되었다.-판타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귀족으로 주인공들에게 가장 만만한 귀족이겠죠. 대개의 경우는 한 마을의 촌장 같은 느낌으로 등장합니다. 그리 큰 비중은 없지만 주인공들에게 숙식을 제공한다는 면에선 상당히 중요한 위치죠.
그리고 주인공이 작위를 받게 되면 이 직위가 가장 흔합니다. 역시 만만하다는 것일까요.자작(子爵:바이카운트Viscount) 여성형은 바이카운티세스Viscountess. 카롤링거 왕조 시기의 유럽에서 '비세코미테스'(vicecomites) 또는 '미시 코미티스'(missi comitis)는 백작의 대리인이나 부관으로서 백작의 위임을 받아 공식적인 권한을 행사했다. 백작작위가 결국 세습하는 것이 되자 부관들의 직위도 그렇게 되었다.
예컨대 나르본과 님스, 알비 등지의 자작들은 10세기초에 자신들의 직위를 세습제로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자작들은 한동안 백작의 관리라는 것 말고 다른 지위가 없는 상태였으며, 자신들을 단순히 비세코미테스라고 호칭하거나 자신들의 권력의 원천이 되는 백작작위의 명칭을 가지고 자신들의 칭호를 규정했다.-이것도 어중간한 위치의 직위입니다.
백작과 남작의 사이라, 일단 백작 및에서 일하는 중견급 관리 정도라고 보시면 적당할 것입니다. 판타지에선 씹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남작(男爵:바론Baron) 여성형은 바러니스Baroness현재는 자작이나 백작(자작이 없는 나라들도 있음) 다음 서열이다.
중세 초기에는 서열에 관계없이 국왕에게서 직접 남작령을 받은 영지소유자를 가리켰다. 그러나 점차 큰 세력을 가진 인물, 즉 실력자를 뜻하게 되었다. 자수성가하여 지방에서 세력을 키워 무시할 수없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른바 지반 호족(豪族) 쯤 되는 자들이다.
이탈리아어의 바로네는 ‘자유로운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모든 귀족계급의 하위에 있어 대영주들의 실제적 힘이다. 고급귀족들이 힘을 쓸 때 바로 이들이 경제력과 군사력을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동양 고전의 백성(百姓)은 성을 가진 바로 지방의 행세깨나 하는 호족(豪族)을 뜻하는 것이니 사실상 모든 왕국의 기본이 되는 아주 중요한 귀족인 셈이다.
남작, 바로네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바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가장 하위에 있었다. 이때 민중, 인민은 그야말로 무지렁이니까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었을 것이다.-이것도 상당히 비중이 큰 직위입니다. 대개 남작이 등장한다면 군대의 지휘관이나 대장정도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활약상이 굉장히 큽니다. 주인공의 라이벌이 많이들 이 계급이죠. 영지라고 해야 작은성이나 장원정도의 영지밖에 없기에 상당히 자유스런 직위입니다. 떠돌아다니는 낭만스런 유랑귀족이라면 이 정도가 적당하리라 생각합니다.
위의 내용이 일반적인 판타지 속의 남작이지만 남작은 작위가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실력으로 쟁취하는 겁니다. 물론 1대나 2대로는 무리지만 오랜 기간 한 지방을 위세를 떨치는 가문이 되면 누구나 자연스레 남작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어찌 보면 가장 매력적인 작위이기도 하다.준남작(準男爵: 바러닛Baronet) 1611년 5월 영국의 왕 제임스 1세가 처음 제정한 세습작위. 준남작은 귀족에 속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기사계급도 아니었다. 남작보다 아래에 위치했으나 가터 훈작사를 제외한 모든 기사작위보다는 지위가 높았다.
준남작작위는 부계상속에 의해 세습되었다. 스튜어트 왕가의 왕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자금난에 허덕였던 제임스 1세는 특허장을 통해 '남작과 기사작위 사이에 새로운 작위'를 두기로 결정했다. 자금이 필요했던 표면적인 이유가 얼스터의 주둔 병력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준남작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제임스 1세에게 1,095파운드 (30명의 병사에게 3년간 급료를 지불할 수 있는 액수였음)를 지불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은 곧 폐지되었다. 1619년 아일랜드에서도 준남작작위가 제정되었다. 1624년 제임스 1세는 노바스코샤의 식민사업과 관련해 또다른 작위를 제정할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그가 죽은 후 찰스 1세에 의해 1625년 시행되었다 -작위는 위에서 말했듯이 억지로 맞춰진 직위이기 때문에 그다지 언급하고픈 생각이 없습니다.
정 나온다면 영지는 나 몰라라 하는 남작 때문에 매일 잡다한 일로 분주한 불쌍한 행정관이 좋겠죠.기사(騎士:나이트Knight) (프)쉬발리에Cheval!ier (독)리터Ritter 중세 때 활동하던 직업 기마무사(騎馬武士). 현재는 각종 업적에 대해 수여하는 명예작위[勳爵]가 되었다.
중세에 활동한 초기 기사들은 직업적인 기마전사들로서 일부는 영주에게서 봉토(封土)를 받고 군역(軍役)의무를 제공하던 봉신들이었으며 봉토를 받지 못한 기사들도 있었다. 기사들은 모두 자유민이었으나 항상 자유민만이 기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기사제도가 가장 성행했던 11~12세기에는 봉토수여는 기사작위를 받는 것과 꼭 관련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귀족 사회> 영지의 통치자들은 귀족이라고 부르며, 귀족 사회의 일원이다. 귀족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작위를 왕가, 혹은 다른 주권을 지닌 독립적인 통치자에게서 수여 받은 사람이다. 영지를 잃거나 떠난 영주는 현재의 지위나 재산에 관계없이 통치권을 얻음으로써 작위를 유지할 수 있다.
남작(남작부인)은 최소한 하나의 성채와 이를 지지해 줄 인구가 필요하다. 영지는 남작령이라고 불린다. 추가의 성채를 건설 할 수 있고, 집사가 통치하도록 지정할 수도 있다. 자작(자작부인)은 2개 이상의 남작령, 그들 중에서도 최소한 하나는 남작을 통해서 통치한다. 상위 영지는 특별한 이름을 지니고 있지 않다.
자작은 남작이 될 수도 있으며, 또한 바란다면 그 의무를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 자작은 정복으로 영지를 얻어서만이 백작이 될 수 있다. 다른 방법으로 얻은 영지는 그의 작위를 바꿔주지 못한다. 자작은 집사를 임명할 수 있다. 백작(백작부인)은 정복을 통해 영지를 얻은 자작으로 최소한 3개의 하위 영지를 다스려야한다.
일반 방법으로 다른 영지를 추가시킬 수 있다. 백작은 정복을 통한 영지의 획득으로만 후작이 될 수 있다. 백작은 남작과 집사를 임명할 수 있다. 후작(후작부인)은 정복을 통해 하나 이상의 영지를 얻은 백작이다(백작이 되기 위해 필요한 영지 외 추가로). 어떤 방법으로든 영지를 추가시키면 공작의 직위를 얻을 수 있다.
후작은 남작과 집사를 임명할 수 있다. 공작(공작부인)은 어떤 방법으로든 하나 이상의 영지를 추가시킨 후작이다. 더 이상의 영지를 얻더라도 작위에는 변동을 주지 못한다. 상위 영지는 공작령이라고 불린다. 공작은 각각에 필요한 영지 조건에 부합하는 한은 집사, 남작, 자작, 백작, 그리고 후작을 임명할 수 있다.
비록 작위를 얻기 위한 조건이 충족되었다 하더라도, 자동으로 작위가 수여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상위 영주들에게 이를 임명받아야 한다. <귀족들의 할일> 항상 자신의 영지의 크기와 현재의 인구, 자원, 현재의 재산(현금 포함), 영지의 유지비 등을 일괄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중세 사회에서의 법은 무엇보다도 "군주를 지켜라"이다. 이에 실패했다는 것은 명예, 충성심, 지지, 영지 및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총 수입의 20%를 상위 영주에게 지불하거나 사용해야 한다. 전시에는 군주는 소집령을 내린다. 각 하위 영지는 하위 영주가 이끄는 상위 영지의 군대에 동원하기 위한 병사들을 더 소집해야 한다.
추가로 농민병(수준:형편없음)을 전시에 그 지역을 지키기 위해 모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총 농민의 1/10은 "소집령"에 응하여 군대에 들어온다. 이 숫자는 절박한 상황에서는 2배로 모을 수 있지만, 병사 수준은 "오합지졸"이다. 영주는 오락으로써 토너먼트를 치를 수 있으며, 이로써 자신의 전사들의 강력함을 입증하고 영지내의 만족도를 확립시키는데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자신도 이 토너먼트에 참가 할 수도 있으며 다른 영주가 토너먼트 대회를 열 경우 초대를 받게 되면 대부분 참가에 응한다.
===============
첫댓글 살짝 딴지를 걸자면, "기사"는 귀족의 등위가 아닙니다. 귀족신분과 기사됨은 밀접한 관련이 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 별개에요. 그리고 위의 목록은 그럭저럭 이런저런 작위명을 몽땅 모아놓은 측면이 있는데, 저 중에서 실질적으로 어떠어떠한 귀족의 등위를 사용하느냐는 나라마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습니다.
별로 관련없는 얘기입니다만 드 골의 '드'는 원래 드 골 대통령이 귀족 출신이 아닌데 그저 자부심 혹은 자만심의 표현으로 '드'를 붙여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원래는 귀족들만 '드'를 붙이는 게 맞죠. 대혁명이나 1848년 2월 혁명 이후에는 제한이 없어지기도 했구요. 참고삼아..
비슷한 내용이 인터넷에 이미 있는 것 같은데...
펌글입니다
일본글의 번역글 같은데, 가운데 일본 번역을 비판한 글도 살짝 집어 넣는 등...좀 중구난방이네요. 그냥 위키 검색하면 다 나와요.
그럼 방백은 뭐죠? 더길드라는 게임을 하니까 방백이라는 작위도 있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