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카톡방에 젊은 여성이 브라쟈와 짧은 팬티차림으로 달리기를 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이를 본 어느 여성회원님은 자신의 산악 마라톤 하는 사진을 올렸고, 먼저의 사진은 자신의 기준에는 너무 야하다고 댓글을 달았다. 나이든 사람이라도 남자라면, 표면적으로는 뭣하다는 의견을 내보이면서도, 속마음은 아름답다는 생각을 고수할 것이다.
어릴시절 여름엔 남자들은 런닝에 반바지, 여자들은 긴적삼에 치마를 입었다. 남자가 웃통을 홀랑 벗어도 소 닭보듯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근육이 발달했어도 그걸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남자들은 긴옷을 입고, 여자들은 노출을 많이 하는 것으로 상황이 역전된 편이다. 노출의 목적은 전체적인 조화로움을 나타냄인지, 자신의 신체 특정부위를 드러내 보이기 위함인지 모르겠다. 옷이란 태초에 성경에서는 인간이 죄지음에 의한 부끄러움을 감추겠금 창조주가 하사했고, 이후로는 신체를 보호함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문명이 발달함에 자신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역활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금은 온갖 과학문명으로 신체를 보호받을 수 있으니, 원죄(?)의 굴레를 벗어나 에덴동산 본래의 영역으로 돌아가잔 듯 노출을 즐겨한다.
나는 여름을 싫어한다. 사람들은 시원한 바닷가나 해외여행을 꿈꾸기에 여름이라는 계절이 좋다고 하였다. 내가 여름을 싫어하는 이유는 당연히 더위에 있지만, 중요한 것은 활동의 제한에 있다. 겨울이면 추위에 옷한벌 더 끼어 입으면 보완이 가능하지만, 여름은 그러하지가 못하다. 입으면 덥고 벗으면 강열한 햇볕에 피부가 탄다. 더위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 체온아 올라가면 땀이나고, 행동이 느려진다. 그래서 더운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가난한 현실이다. 나는 그러한 여름을 싫어한다. 더 잘살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행동에 제약을 받는 환경이 싫은 것이다. 선풍기 바람도 싫고, 에어컨은 더욱 싫다. 더위에 지치면 약한 선풍기 바람으로 잠깐을 식힌다. 단군신화 곰의 후예처럼 끈질기게 참아 보는건 어떨까? 반면에 여름 산행은 좋았다. 휴가가 있기에 그랬고, 더운 여름에도 땀흘리고 오른 정상에서의 시원한 바람은 당연히 눈보라보다 더 좋았다. 그렇게 가까스로 지금껏 세상을 살아왔다.
그러나 이젠 휴가를 받을 일도 없고, 구태어 여름 등산에 목적 둘 것도 없다. 그래서 소득없이 치루는 더위와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어느 동물들처럼 여름잠을 자고 싶다는 것이다. 여름잠을 자는 동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름잠을 자는 동물은 열대나 아열대 지방에서 우기와 건기에 적응한 동물이란다. 온대에도 여름잠을 자는 동물은 존재하는데, 달팽이 등은 여름에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껍데기의 뚜껑을 닫고 여름잠에 들어가며, 그밖에 악어·거북·개구리·곤충 등도 여름잠을 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반구에 있는 폐어류는 건조기에 살고 있는 장소의 물이 마르면 물 밑의 진흙 속으로 들어가 여름잠을 잔다. 여름잠을 자는 몇 개월 동안에는 부레로 공기 호흡을 하면서 살아간다. 사막에 사는 뜀쥐 등도 여름잠을 잔다. 무당벌레도 여름이 되면 여름잠을 자다가 가을에 활동하는데 그 이유는 알려져 있지않다.
단군신화 곰의 후예이니 동면은 못하면 여름잠이라도 잘 수 있는 유전적 체질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7,8월 두어 달 노천명의 싯귀처럼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이 아니어도, 인적드문 산골에서 이름없는 나거네되어 여름잠이나 자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