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김에 마무리 하겠습니다.
미루다간 언제 할지 모르는 관계루~~(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ㅎㅎ)
금성대군신단과 소수서원답사 후기(편의상 부석사와 이렇게 나누어서 올립니다.)
영주답사는 금성대군신단-->점심--->부석사--->소수서원 이렇게 이루워졌는데..
편의상 이렇게 부석사와 금성대군신단+소수서원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영주에 도착하니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빠알간 사과가 여기도 사과~ 저기도 사과~
눈도 호강했지만 배도 만만찬게 사과로 채웠네요^^ 정말 아삭아삭하니 맛이 굿입니다.
금성대군신단 : 단종 복위운동 성지
조선 세조 2년(1456년)에 성삼문 등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어
세종의 여섯째아들 금성대군이 순흥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금성대군신단(사적 제491호) : 단종 복위운동 당시 무참하게 도륙당한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을 비롯한 순절의사들을 제사 지내는 곳이며 현재에도 봄, 가을에 향사를 올리고 있다.
은행나무 한쌍(보호수) : 유난히 은행나무가 많고 물도 곱게 들었다..-->1100년되었단다..
아마 이곳에서 단종복위를 꾀하지 않았을까?
가는 길목에서 만난 할아버지 : 구기자인가?
앉아서 딸 수 있게 나무가 자라줘 할아버지의 수고를 더는 듯 하다.. 색깔도 곱고... 드시고 기운내세요^^
소수서원 표석 : 사적 제55호 - 옆에서 공사중이라 자칫 놓칠뻔했다.. 입구에서~
사백 육십년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최초이 사립대학 - 소수서원
백두대간의 정기를 머금은 소백산자락 영귀봉 아래 위치한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초최의 사액서원으로 신재 주세붕선생이 백운동서원을 창건한데서 비롯되었다.
평소 고려말 유현인 회헌 안향선생을 흠모하던 주세붕이 풍기 군수로 부임한 이듬해인 1542(중종37)
안향선생의 고향에 사묘를 세워 선생의 위패를 봉안 하고 다음해 1543년에는 학사를 건립하여
사원의 체제를 갖춘 것이 백운동서원의 시초이다.
명종 5년(1550) 퇴계 이황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나라에 건의, 왕으로부터 소수서원이란
사액을 받게 되어 최최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립고등교육기관이 되었다.
소수서원 전체사진 : 항공사진아닌 이상 전체를 찍을 수 없어 이렇게 안내책자를 참고하였다.
이렇게 보니 구조를 좀 알겠다.. 소수서원은 자유로운 형식으로 지어졌다.
서원에 웬 당간지주?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제59호) : 통일신라시대 작품.
소수서원터는 숙수사라는 절터라고 한다.. 곳곳에 절터임을 알리는 것들이 남아있다.
소수서원 입구 : 들어가는 입구에 소나무가 너무 멋드러지게 있어 찍어 봄.
매표소에서부터 입구까지 소나무가 멋지게 자리잡고 영귀봉과 영귀천이 서원을 감싸고 있다.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 : 한눈에 봐도 자유자재로 자리잡고 있다.
강학당 :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백운동 현판이 보인다.
전청후실의 특이한 예로서 현판이 걸린쪽이 건물 앞이되며, 건물 바깥에 게첨된 현판(백운동)은 서원의 처음 이름이다.
강학당 : 유생들이 모여서 강의를 듣던 곳이다.(뒤에서 찍음)
사방으로 툇마루를 둘러 놓고 배흘림 기둥 양식이 특이한 구조임. 최최의 사립대학
문성공묘 : 회헌 안향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후에 안보와 안축, 주세붕을 함께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9월 초정일에 제향하고 있다.
담장앞에 숙수사지 목탑 흔적이 남아있다.(무엇인가 고민한 그곳이네요^^이쁜 단풍나무 있던 곳)
강학당 --->직방재--->영정각(앞에서 부터)
앉아서 찍어보니 나름 규칙적이네요^^ 심오한 뜻을 부여하고 싶지만 아는게 없구나~~
일영대 : 일영대는 해시계로 알려졌다.
윗부분 돌에 꽂은 막대기의 그림자가 아랫돌에 드리워지는 것을 보고 시간을 알았다고 한다.
자연석 주춧돌 위에 문지도리석을 올려 놓은 것으로 숙수사의 유적이라는 설이 있다.
영정각 : 회헌 안향선생의 초상(국보 제111호)과 신재 주세붕선생 초상 등 다섯분의 초상을 봉안한 곳이다.
회헌 안향(1243~1306)선생은 도첨의 중찬 등을 거치면서 문교진흥에 진력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이다.
학구재와 지락재 : 유학생들이 공부하던 기숙사 자리로
학문의 숫자인 3을 상징하여 3칸으로 꾸몄다.
학구재와 지락재 : 공부 잘 하라는 뜻으로 건물 입면(立面)이 한자인 工자형으로 지어져 있으며
스승의 그림자를 피해 뒷물림하여여 지었다.---> 좌측이 직방재와 일신재가 있다
(직방재와 일신재 : 이곳은 서원의 원장과 교수가 기거하던 집무실이다.)
백운동 경(敬)자 바위 : 백운동 글씨는 퇴계 이황 선생 글씨로 전해오고,
붉은 색의 경자는 신재 주세붕 선생이 직접 써서 새긴 것으로 신재집에 전해오며
유교의 근본사상인 경천애인(敬天愛人)의 머릿글자이다.
정축지변으로 희생당한 시신이 이 곳 죽계천에 수장되면서
억울한 넋들의 울음이 밤마다 들리자 당시 풍기 군수 주세붕 선생이 원혼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글씨를 새기고 붉은 칠을 하고 정성들여 제사를 지냈더니 그 후로 울음 소리가 그쳤다고 하는 전설이 내려온다.
정축지변(丁丑之變) : 세조 3년인 1456년 수양대군(세조)이
단종임금(노산군)을 내쫓고 왕의 자리에 오르자, 그의 친동생인 금성대군이 반대하여,
이곳 영주 순흥에서 단종복위운동을 펴다 사전에 탄로가 나 많은 이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보너스 : 홍옥으로 답사를 마무리 합니다.
첫댓글 덕분에 기억을 되살리는 훈련을했습니다.
선생님~ 오늘 여행 떠나신다고 하셨죠? 친구분들과 몸도 마음도 즐거이 보내시구 눈과 입 모두 호강시키고 오세요^^ 감기 조심하시구여~~
옛날 고등학생 때 150원 주고 사먹던 기억이... 여행의 정취를 그대로 담아갑니다.
사과값 말씀하시는 거죠?? 하나값이 150원~~~ 쌤 오늘은 2009년과 헤어져야 할 시간~~ 내년에 또 만나요^^ (요 노래가 생각나네요^^) 가족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