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 거룩한 시간순례
어느새 사순절(四旬節)이 찾아왔습니다. 올해 사순절은 2월 10일(수)부터 3월 26일(토)까지입니다. 사순절은 전통적인 경건절기입니다. 그런 까닭에 너나없이 무엇무엇 ‘하지 않기’를 강조합니다. 물론 ‘하지 않기’보다 ‘더 잘하기’를 선택하는 일도 가능할 것입니다.
예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사순절 순례를 통해 절제와 경건생활로 육신과 영혼을 맑고 참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활은 참회와 금욕, 기도와 구제 등 경건훈련을 통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부활을 준비하려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전통적인 율법의 의무로서 ‘구제, 기도, 금식’(마 6:1-18)을 가르치시면서, 다만 ‘사람에게 보이려는 형식적 태도’를 주의하도록 경계하셨습니다. 사순절에 누구나 평소 제대로 못했던 경건생활을 다짐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현대인이 즐겨 선택하는 경건방식에는 ‘침묵, 절제, 금식’이 있습니다.
‘침묵’은 단순히 말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이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옛 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바로 침묵이었습니다. 침묵은 자신의 몸을 오로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우는 그릇이 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침묵이 실종되었습니다. 스마트 폰을 손에 쥐면서부터 사람들은 더욱 고요함을 참지 못합니다. 사순절은 침묵을 사랑하는 시간이요, 그럼으로써 하나님과 더 가까이 친밀감을 누릴 기회입니다.
‘절제’는 평소 습관을 바꾸어 남 다른 선택을 하는 일입니다. 매번 실패하면서도 자주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일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사순절에 작심하듯 ‘과욕’, ‘과식’, ‘과용’(소비), ‘과오락’ 등 모든 ‘지나침’(過)을 끊습니다. 환경운동 차원에서는 사순절만큼이라도 ‘리모콘 금식’, ‘종이 금식’, ‘소비금식’, ‘탄소 금식’ 등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금식’은 모든 절제 중의 절제에 속합니다. 금식행위는 우리의 몸과 영혼이 연결되어있음을 깨닫고, 주님께 몸과 영을 의탁함으로써 우리의 영성 안에서 몸의 자리를 회복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비록 온전한 금식은 못하지만 간단히 하는 사순절 저녁식사를 ‘콜레이션’(collation)이라고 부르는 전통이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평소에도 금요일 저녁만큼은 육식을 피하고, 소박한 저녁식사 전통을 지킵니다.
사순절은 ‘고난주간’을 거쳐 부활을 향합니다. 경건한 사순절을 경건하게 지킨 사람에게는 부활의 감격이 훨씬 클 것은 자명합니다.
마치 예수님을 등에 태우고 종려나무 행진에 참여한 나귀가 누린 자부심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시작하는 종려주일의 주인공은 나귀였습니다. 나귀에게는 건장한 어깨 사이 가슴 부분에 독특한 검은 무늬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예수님을 겸손하게 섬겼던 나귀의 수고에 대한 보상이라고 여겼습니다. 나귀에게 부여된 명예로운 십자가 표식인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부 암브로시우스는 나귀를 겸손한 인간으로 비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가축에게서 그리스도를 태우는 기술을 배우라. 나가서 배우라. 그리스도에게 네 영혼의 등을 내민 사실을, 그리스도 밑에 있고 세상 위에 서는 것을 배우라.” 무엇보다 보잘 것 없는 나귀를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이렇듯 사순절은 주님과 동행하면서 그런 경건행진을 하는 ‘아픔과 희망’의 절기입니다. 40일 동안 하루하루 대속의 은총에 감사하는 사람, 그것은 믿음의 순례자다운 모습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