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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계곡 내의 금란정 약간 위쪽 아래인 무릉반석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봉래 양사언(楊士彦)(1517~1584)의 글씨로 전해지는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 >이라는 초서(草書) 12자의 석현과 함께 각 시대의 명인들의 필적들이 현자되어 있고 부근에는 금란계원명이 함께 새겨져 있다. 이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이라는 석각은 무릉계곡의 신비한 경치를 노래한 내용으로 양사헌의 글씨로 추정되고 있는데, 양사언은 초서(草書)와 대자(大字)를 특히 잘 써서 안평대군, 김구(金絿), 한호(韓濩-한석봉)와 함께 조선전기의 사대 명필 중 한 사람으로 손꼽이는 인물이다. 그 아래에 '옥호거사서신미(玉壺居士書辛未)'라고 쓴 7자의 옥호를 옥대라고 볼 수 있으나 정확하지 않다.
1963년 최만희(崔晩熙)가 쓴 [진주지(眞珠誌)]에 '우리나라 선조 때 봉래 양사언(蓬萊 楊士彦)이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 12자를 석각하니 필세(筆勢)가 날아 움직이는 것과 같이 가히 용이 폭포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과 다툴만하다.'라고 기록하였다. 따라서 양사언의 글씨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나 다른 견해로는 이조원(李肇源)(1758~1832)의 호가 옥호(玉壺)이므로 그가 쓴 글씨라고 하나 신빙성이 적다. 또 다른 견해로는 1750년에 삼척부사로 와서 2년 동안 있었던 옥호자 정하언(玉壺子 鄭夏彦)이 쓴 글씨라는 견해가 있다. 정하언은 어제 편제(御製 扁額)와 창경궁 편액(扁額)을 썼을 정도로 글씨가 뛰어났다. '옥호거사서신미'라는 7자에서 신미년은 정하언 부사가 재임기간인 1751년과 일치하고 있다.
[문화제 관광]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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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란정 金蘭亭 ]의 현판이 한곳이 아닌 여러곳에 걸려 있고, 글씨체도 제각각,
대한제국 광무7년)1903년이면 100년이 넘었다.
[금란계원]이 적힌 편액과
무릉반석의 금란계원과
[홍재문]의 시와
금란지교金蘭之交의 편액이 내부에 걸려있다.
금란정옆 바위에도 금란계원의 이름들..
[두타산삼화사]의 일주문을 지나면
반석교앞 용(해)오름길의 안내판이 걸려 있다.
용오름 길은 삼화동 초입에서 시작하여 용추폭포에 이르는 길이 6km의 무릉계곡을 말한다라고 한다.
고적에 의하면 삼화사 창건 당시 약사삼불(藥師三佛)을 싣고 용이 두타산을 오르던 길이 바로 용오름길이라고 한다. 이 길의 지질
은 화강암 침식과 퇴적 지형으로 바위에 까만 흔적이 용의 흔적이란다.
반석교아래 용오름길 반석에 흐르는 물, 바위에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왕버들나무가 눈낄을 끌고 있었다. 용오름길이라 그런가.
깎아질 듯한 벼랑에 자연스러운 반석은 세월의 흐름을 묻고 있었다. 진달래꽃이 저 벼랑끝에 달려 있는 봄이 오고 있었다.
삼화사의 경내에 들어
동해시
보물 제1277호의 삼층석탑
저 하늘끝 둥그런 정상이 두타산이지 싶다. 아직도 겨울의 옷을 벗지 못한 두타산에는 하얀 눈이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삼화사 삼층석탑의 위용을 더욱 드 높이고 있는 듯하고
왼쪽 어깨와 양손, 몸 아래 부분은 없어졌지만 다행히 얼굴과 상반신 부분은 남아 있어 이를 바탕으로 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하였다는 삼화사의 또 하나의 보물 제1292호인 철조노사나불좌상이 있는 곳, 차마 보기조차 안스러움 마져 느끼는 부처님의 좌
상을 찍을 수 없었다.
최인희 시비인 낙조앞에 서 있었다. 길가 서 있던 이가 묻는다. '최인희를 아시는지요' '잘 모릅니다'란 나의 답에 그는
명함을 건넨다.
그는 재직중 이 무릉계의 반석에 쓰인 암각서가 마모되어 없어질까 염려되어 복사하여 길가에 옮겨왔고, 이 고장 출신의 최인희의
시비가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두타산(높이 1,353m)은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이며 청옥산(높이 1,404m)은 산으로 푸른 옥돌이 나왔다하여 청옥산이다. 두 산은
쌍봉을 이루고 있으니 두타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용오름길을 따라 북동 방향으로 흘러내려 동해시의 전천으로 유입되어 동해로
흐른다.
정상의 높이만큼이나 높고 깊은 무릉계곡의 양사언의 무릉반원의 암각서를 내 마음에도 새길 수 있었다. 무릉반석에 노닐던 신
선들과 같이 나도 오늘은 그곳의 신선이 되었으리라.
올랐던 일행들이 주차장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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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찜해 놓았던 명옥이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정선으로 향했다. 버스는 높고 구불거리는 산길 백복령을 넘고 나팔재산을
넘어 구절리 레일바이크앞 주차장에 도착했으나 시간상 레일바이크를 탈 수 없었고 정선의 스카이워크를 타기로 했다.
스카이워크는 정선 병방산아래
스카이 워크란 583m의 절벽 끝에 11m의 u자형 구조물을 까마득한 벼랑 밖으로 돌출 시키고, 바닥은 투명한 강화 유리로 마감되어
강화 유리 보호를 위한 덧신을 신고 경치를 감상해 보는 곳으로 절벽 끝에서 구름을 걷는 짜릿함을 제공해 주는 곳,
스카이워크이다.
강화위를 걸으면 아찔함과 신선이라도 된 기분까지 느낀다는데 강화위에서 우리나라 한반도 지형의 모양이 산과 내가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하늘을 걸어보고 싶은 스카이워크, 해발 819m의 허공 속 구름 위를 걷는 곳, 병방산 절벽위 하루가 간다. 정선사장으로 옮겼다.
그 이름만큼이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정선시장에 들러 수수부꾸미와 전병에 곁들인 막걸리로 배를 채우고 버스에 올랐다. 저녁
이 오고 있었다.
깜깜한 어둠이 왔다. 신선으로 노닐고 싶었던 하루가 가고 있었다.
첫댓글 무릉계곡, 스카이워크, 용오름계곡, 금란정, 말만 들어도 신선들과 함께 풍류를 즐겼을 두타 청옥으로 날아가고 싶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