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영웅 레클리스 최 건 차
오늘은 한국전쟁이 휴전된 7월 27일 유엔 참전기념일이다. 레클리스(Reckless)는 경기도 북부 연천 ‘네바다 전초전’에서 중공군과 싸운 미 해병대 최정예요원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존재다. 레클리스는 본디 몽골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주도 산 암말로 영특하고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다.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아침해’라는 경주마였는데 북한군이 서울에 쳐들어와 경마장이 적의 탱크와 차량 대피소가 되었다. 이에 아침해의 소유주인 김혁문은 지뢰 폭발로 한쪽 다리를 잃은 누이동생의 의족을 만들어 주기 위해 가족처럼 아끼던 그 말을 팔려고 했다. 때마침 고지에 탄약을 나르기 위해 작은 말을 찾던 미 해병이 250달러에 사들이므로 그 운명이 바뀌게 되었다.
전투상황이라 2개월의 작전 적응훈련을 마친 레클리스는 정식으로 미 해병이 되었다. 중공군과 대치 중인 무반동총 부대원들에게 포탄과 탄약 식량 등을 메어다 주면서 부상병을 옮겨와야 했다. 말은 청각이 예민하여 큰 소리에 놀라는데, 레클리스는 적의 포탄이 날아와 터져도 요동하지 않았다. 파편을 맞아 왼쪽 눈 위가 찢어지고 옆구리에 파편이 박힌 상태에서도 임무를 수행하고 고지의 부상병을 데려와 치료를 받게 했다. 그때 레클리스가 없었다면 부상병을 옮길 수가 없어 사망했을 수도 있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고지의 전우들이 포탄이 떨어져 몰살될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지만, 레클리스의 용맹한 활약으로 승기를 잡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레클리스는 포탄 통 4개를 메고 전우들이 있는 고지로 향했다. 전투가 치열할 때는 한 번에 8개 약 100kg가 넘는 포탄을 메고 산 정상에 있는 진지를 오르내렸다. 레클리스는 한번 길을 알려주면 안내하는 이 없이도 혼자서 포탄과 보급품을 옮기고, 부상자가 발생하면 등에 업고 내려왔다. 레클리스는 완벽한 미 해병대원으로 전우들과 함께 싸우고 식사도 같이하면서 샌드위치와 베이컨도 먹고 맥주와 콜라도 잘 마시며 식탐이 대단했다는 것이다. 아침은 주로 모닝커피에 달걀 스크램블과 팬케이크를 먹었고, 초콜릿 바와 사탕 등 씨레이션에 들어있는 것들을 다 잘 먹었다고 한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았던 1953년 3월 28일에는 레클리스의 역할이 더욱 빛났다.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네바다 전초 전투가 사흘간 이어졌다. 하루에 산 정상을 51번이나 오르내리며 약 4톤에 달하는 포탄을 옮겼다. 이 전투에서 사용한 포탄의 95%을 레클리스가 혼자서 감당했다. 그러는 중에 부상을 당해도 치료받는 즉시 복귀하여 포탄과 보급품을 운반하며 부상한 전우를 안전지대로 호송했다. 이런 레클리스의 활약으로 미 해병대는 네바다 전초기지에서 중공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었다. 미 해병대원들은 레클리스에게 크게 감동을 받아 적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1960년 초 나는 미8군 카투사 하사(sgt)로 미군들과 같이 복무했다. 장교로 임관하여서는 전방 근무를 마치고 베트남전에 파병되어 위험한 격전지로 보급품을 실어나르는 임무를 수행했다. 또 미 육군 전투 선박부대에 배치되어 고지전에 버금가는 물가 정글에서 미군들과 같이 전투를 하면서 그들과의 생활이 익숙했다. 말이 한국전쟁 중에 미 해병이 되어 영웅적인 무공을 세웠다는 이야기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특히 그 말에게 입은 은혜에 감사하면서 예우를 극진히 하고 전공을 칭송하는 점을 살펴보면서, 2025년 7월 27일 한국전 휴전 72주년을 맞아 레클리스의 활약상을 조명한다.
한국전쟁이 휴전된 후 1954년 레클리스는 전우들과 함께 미국으로 개선 귀국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입성한 레클리스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고, 1959년에는 미 해병대 하사로 (USMC Staff Sergeant) 정식 진급되었다. 전사자나 부상자에게 수여되는 참전용사들의 최고 권위인 ‘퍼플하트’ 훈장을 2회에 걸쳐 받았고, 한국전 참전 유엔 훈장과 여러 수훈과 표창을 받았다. 1997년 라이프 매거진(Life Magazune)이 발표한 조지 워싱턴, 에브라함 링컨, 마틴 루터킹 등과 함께 미국의 100대 영웅에 선정되었고, 미국 전역 6곳에 레클리스의 동상이 세워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네바다 전초 전투의 현장인 연천에 동상이 세워졌다. 레클리스는 1960년 11월에 명예롭게 전역을 하고 캘리포니아주 펜들턴 해군기지에서 3마리의 자식을 낳고 행복한 여생을 보내다가 1968년 5월에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미 해병대는 레클리스가 죽자 엄숙한 군 장례식으로 기지 내 묘역에 안장했고, 레클리스가 기거한 마구간 앞에 기념비를 세워주었다.
잘 알지 못한 나라 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장병들은 적과 싸우면서 헐벗고 굶주리는 이들과 전쟁고아들을 보살펴 주고 있었다. 수원에 있는 삼일고등학교는 미군이 잠시 주둔했다가 떠나갔을 뿐인데, 신세를 졌다며 지금도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가평에는 캐나다군이 중공군과 싸우면서 많은 희생을 치르고 떠났는데, 그때 제일 먼저 전사한 ‘가이사’라는 병사를 추모하기 위해 그 전우의 이름으로 고등학교를 세워주었는데 그 학교가 현재의 가평고등학교로 지금도 교류되고 있다. 북유럽의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에서는 병원선으로 참전하여, 서울 을지로 6가에다 스칸디나비아 병원을 지어 운영하다가 우리 정부에 넘겨주어 지금은 국립의료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과 참전국들은 고아보육원, 병원, 학교 등을 필요한 곳에 세워주고 지원하면서 우리가 자립하도록 힘을 보태주다가 떠났거나 지금도 협력하며 도움을 주고 있다.
요즘 살모사니 또는 구사토팽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누구를 이용하고 나서 필요가 없으면 버리거나 아예 없애는 짓은 사악한 자들의 수법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중한범죄를 저지른 친중종북주의자가 궤사한 수법으로 정권을 틀어잡고 묘한 짓을 해대므로 나라가 매우 위태로워지고 있다. 짐승은 거두어 주는 이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 공을 세우고 칭송을 받는데, 못된 누구와 그 일당들과 배후 세력들은 우방을 배척하며 정치적 이념으로 국가번영을 해치고 있다. ‘아침해’라는 우리 말 이 ‘레클리스’라는 미 해병이 되어 한국전에서 세운 공력이 떠올려진다. 2025.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