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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실천연대 조작사건 가족대책위 원문보기 글쓴이: 유림엄마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도 결국 우리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한 시대가 마침내 막을 내렸습니다.
2009년은 “죽음의 해”로 기록될 듯 합니다. 용산에서의 학살로 시작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이르기까지, 죽음이 가장 익숙한 일상이 되어버린 한 해입니다. 이젠 슬퍼할 기력조차 없습니다. 그 누구를 탓하는 것도 이제는 지쳤습니다. 그 어떤 죽음도 그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해졌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죽음은 그저 흔한 일상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들은 죽음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웁니다. 특히 지혜로운 이의 죽음은 그의 삶인만큼 값진 유산을 남깁니다.
영결식을 앞두고 고인의 생애 마지막 6개월을 기록한 일기장이 공개되었습니다. 짧은 글들이지만 한 줄, 한 줄이 읽는 이를 숙연하게 합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삶의 문턱을 넘어서는 그 순간까지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했던 고인의 고결한 인품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고인의 말씀처럼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만큼 의미있고 가치있게 살았느냐가 문제”입니다. 고인의 죽음이 그의 삶만큼 값진 것은 그가 생의 마지막까지 의미있고 가치있게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란 당신의 지론을 그 어떤 젊은이보다 치열하게 실천한 이는 다름 아닌 고인이었습니다. 고인은 생전에 민주주의의 발전과 민족의 화해를 위해 많은 공적을 남겼지만 그를 더욱 및나게 한 건 화려한 과거의 공적이 아니라 외로운 말년의 투쟁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거나 노벨상을 받는 건 다른 이들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이후에도 “독재자”와 맞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어떻게 보면 상투적일 수도 있는 이 문구가 가슴 깊이 와 닿는 것은 전혀 상투적이지 않았던 고인의 삶 때문일 것입니다. 고인은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했고 “역사는 발전한다”는 신념을 실천했습니다. 멋진 말을 남기는 건 쉽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살아서 빛나고 의로운 자는 죽어서 빛납니다. 살아서도 그 어떤 정객보다 빛났고 죽어서도 그 어떤 대통령보다 빛나는 고인의 생은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이었음에 분명합니다.
고인께서 좀 더 우리의 곁에 계셨더라면 독재정권과의 싸움이 좀 더 수월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분의 한 말씀 한 말씀이 우리에겐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빈 자리는 결코 허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인께서는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김. 대. 중. 그는 6.15와 함께 영원히 겨레의 곁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죽은 “협력”이 산 “압박”을 녹이다.
비범한 이는 죽음조차 예사롭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극한 정성이면 하늘도 감동한다”더니 고인의 정성이 하늘을 움직인 듯 합니다.
지난 8월 21일 북한의 “특사 조의방문단”이 남측을 방문하였습니다. 북한 언론이 밝힌 조문단의 정확한 명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임에 따른 특사 조의방문단”이었습니다. 비록 조문이 주된 목적이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가 지금 남측을 방문한 것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8월 4일,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 북미관계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 흐름을 반영하는 듯 8월 1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과 4시간 동안이나 면담하면서 원하는 것을 “다 받아줬다.”고 합니다. 아무리 정세에 둔감한 사람이라도 한반도에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무시하기는 힘든 분위기입니다. 벌써 성급한 정세분석가들은 올 하반기에 북미관계가 “중대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다소 희망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합니다. 올 하반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클린턴씨의 뒤를 이어 클린턴 부인도 평양을 방문할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북한은 양자대화를 강력히 원하고 있고 오바마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요.
지난 8월 20일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는 북한 김명길 유엔대표부 공사를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명길 공사는 다시 한 번 북미 양자대화를 촉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백악관은 연방정부와는 무관한 만남이라며 거리를 두었지만 리처드슨 주지사가 오바마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 후보 중 한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백악관의 성명은 오히려 뉴멕시코 회동에 정치적 무게를 입증하는 듯 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뉴멕시코 회동 하루 전인 8월 19일 클린턴이 오바마를 만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뜻을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백악관은 자세한 설명을 피하고 있지만 “오바마-클린턴 모임”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것”들이 오바마에게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흥미로운 것”들에 대한 오바마의 대답을 들을 차례입니다. 바로 그 대답은 리처드슨 주시사가 김명길 공사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김명길 공사는 ‘오바마의 대답’을 지체 없이 평양에 전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다음날인 8월 21일 “특사 조의단”이 남쪽으로 내려 왔고 같은 날 북한은 ‘12.1조처’를 해제했습니다. 단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 일까요?
그렇게 믿기엔 너무 많은 배가 한꺼번에 떨어졌습니다.
“특사 조의단”의 행보도 “조의”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2010년 고 정주영 회장의 장례 때 북측 조문단은 한나절만 머물고 바로 돌아갔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시정부의 출범으로 남북관계가 다소 냉각됐기 때문에 당시 조문단의 역할이 기대됐지만 조의만 표하고 당국 간 일체의 대가없이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남북관계가 “냉각”이 아니라 “동결”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특사조의단”은 특별한 일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애초부터 1박 2일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조문직후에는 박계동 국회의장을 면담-비록 10여 분간의 의례적 만남이었지만-했고 다음날 예정에도 없이 현인택 통일부장관과 전격 회동했습니다(2MB와 면담할지 모른다는 보도도 있었는데 주말에는 뉴스를 확인할 수 없어 이 글에서는 그 결과를 다루지 못했습니다.) “민주주의 파괴의 주범”과 “남북관계 파탄 주범”을 잇달아 만난 것입니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행보입니다. 이것을 “방문단”의 명칭 그대로 김기남 비서와 김양건 부장이 처음부터 “특사”와 “조의”, 두 가지 목적으로 남측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일각에서는 “조의방문단”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는데 상당히 그럴듯한 분석이라 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임에 따른 특사“의 첫 번째 임무는 바로 ”최고 지도자“의 뜻을 전달하는 것일 테니까요.
누구에게 전달할까요? 첫 번째 친서는 당연히 유가족 몫이고 만일 두 번째 친서가 있다면 그것은 청와대일 것입니다. 과연 친서가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현인택 장관과의 회동이 성사된 시점에서 고려한다면 어떤 형태로 이건 청와대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뜻이 전달되었을 가능성은 높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뜻이 아니라면 김기남 비서는 현인택 장관을 상대하지도 않을 테니까요.
이처럼 지난 한 주 동안 워싱턴과 뉴멕시코, 서울에서 진행된 일련의 “모임”을 종합해 보면 우리는 단 한마디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사롭지 않다” 아직은 명확히 손에 잡히지 않지만 지금 한반도에서 예사롭지 않은 일들이 시작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고인이 우려했던 “3대위기” 중 하나인 “남북관계의 위기”를 2008년 3월 이전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연세대 문정인 교수는 21일 한겨레신문기고에서 “북측의 특사조문단은 김 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라 할 수 있다” 며 “이명박 대통령이 이들을 직접 만나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문정인 교수의 말대로 특사조문단이 김대중 대통령의 ‘마지막 선물’ 인지는 모르지만 이번이 현 정부가 체면을 살리면서 대북정책을 전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리고 만일 청와대가 “영예로운 퇴각”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남북관계는 의외로 급격하게 진전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서리는 조용히 사라지지만 꽁꽁 얼어붙은 강물이 녹을 때는 요란한 소리를 내는 법입니다.
2MB는 북측의 특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선물”이자 평양의 “마지막 선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마도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대화의 문고리”도 잡아보지 못하고 청와대를 떠나는 최초의 직선 대통령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2MB자신은 물론 국민 모두에게 서글픈 일이 될 것입니다.
2MB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언에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좋은 말은 항상 귀에 쓴 법입니다. 단 것을 찾는 건 어린아이나 하는 짓입니다.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가만을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지금 2MB에게 이 보다 더 좋은 충고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이야 말로 역사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광명성이 명박산성을 넘는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북한은 왜 갑자기 2MB에게 손을 내민 것일까요?
클린턴이 평양에 방문 했을 때 보수언론들은 이른바 “통미봉남”의 악령에 사로잡혔습니다. 현정은 회장이 예상외로 큰 선물꾸러미를 한 아름 안고 돌아오자 이번엔 “통민봉관”이라는 귀신까지 불러냈습니다. 그래서 북측의 “특사 조의단”도 “통민봉관”의 뚜렷한 징후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보수언론들의 기대(?)는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북한의 의도는 “통미봉남”도 “통민봉관”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통미통남”, “통민통관”이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잠시 과거를 돌이켜 보지요.
보수언론들은 마치 북한이 먼저 “봉남” 남북대화를 차단한 것처럼 주장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문제는 "봉북“이었습니다. 2008년 3월 말까지 2MB정부에 대해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2MB정부는 남북공동선언들을 공공연히 부정했지만 북한은 2MB에 대한 직접적 비난을 삼갔습니다. 그런데 3월 26일 김태영 합참의장이 느닷없이 북한을 선제타격하겠다고 입장을 밝힙니다. 그리고 통일부장관은 북한이 먼저 핵을 폐기해야 개성공단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사실상의 개성공단의 재검토 선언이었습니다. 북한은 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3월 27일 개성공단에서 ”남측 당국 인원“들은 철수 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북한 매체에서 2MB에 대한 공개적인 비난이 등장합니다. 금강산을 먼저 닫은 것도 2MB입니다. 정부당국은 박왕자씨 피격사건을 이유로 금강산관광을 중단시켰지만 이는 핑계에 불과합니다. 만일 사건의 진상규명이 목적이었다면 정부는 먼저 북측에 진상조사를 요청하고 그 결과에 따라 후속조치를 취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먼저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키고 그 뒤 진상조사를 요구했습니다. 사건의 조사도 하기 전에 처벌부터 한 셈입니다.
이것은 애초부터 정부당국이 박왕자씨 사건을 “봉북”의 계기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12.1조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해 11월 2MB는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통일하는 것이 최후의 궁극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공공연한 대북도발선언입니다. 정부가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개성공단은 북한에 “자유화 바람”을 불어넣는 “공작의 거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남북화해협력의 장”에서 “신냉전의 최전선”으로 “변질˙타락”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실제 그런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북한은 “12.1조처”를 취한 것입니다. 2MB의 발언에 대한 응징의 성격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무게 중심은 “안보”에 더 실려 있었습니다.
이처럼 지난 일년 반을 돌이켜 보면 남북관계의 악화경로는 언제나 2MB정부가 먼저 도발하고 이에 북한이 대응하는 수순이었습니다. 북한의 조치는 대부분 2MB의 반북공세에 대한 대응차원이었습니다. 문제는 “종미봉북”이지 “통미봉남”이 아니었습니다. 북한은 일관되게 “통미통남”을 원했지만 그것을 거부한 것은 오바마와 2MB였습니다. “봉남봉관”은 조˙중˙동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런 정황을 고려하더라도 북한의 갑작스러운 대화공세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 동안 북한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인정을 대화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해왔기 때문입니다. 클린턴의 방북 이후 2MB정부의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 6.15와 10.4선언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전히 대화의 조건은 무르익지 않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파사적인 대화공세로 전환한 것은 내면에서 이미 변화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청와대는 지금 고립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2MB는 지푸라기라도 잡을 태세입니다. 주인의 마음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평양이 청와대에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이제는 2MB가 그 손을 잡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적화”가 아니라 “통일”입니다. “봉남”이 아니라 “통남”입니다. 그 동안 남북관계가 동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2MB가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화가 가능하다면 북한이 굳이 2MB를 피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2MB정권은 친미정권이 아니라 종미, 숭미정권입니다.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은 미친 소의 골까지 파먹을 사대매국세력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의 이익이 곧 자신들의 이익이라고 착각합니다. 이같은 2MB정부의 예속성은 남북관계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한국 정부의 예속성이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과거 남북관계를 돌이켜 보면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북미관계의 “극적 전화”이전에 언제나 남북관계의 “극적 전환”이 선행되었다는 점입니다.
1993년 6월 28일 김영삼 정부는 느닷없이 남북정상회담을 발표합니다. 불과 석 달 전에 남북당국은 “불바다” 공방전을 주고 받으며 거칠게 맞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6월 17일 대통령 특사로 북한을 방문한 카터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교섭이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남북관계는 대반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넉달 뒤 “북미기본합의”가 채택됩니다. 2000년에도 상황은 유사합니다. 2000년 3월까지도 북한 매체들은 김대중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4월 초 갑자기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됩니다. 1999년초까지 남북사이에는 짙은 전쟁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지만 1999년 5월 페리 특사의 방북 이후 또 한 번 남북관계는 대반전되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넉 달 뒤에 “북미공동코뮤니케”가 채택되었고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평양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2007년에는 6월 22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전격 방문하고 두 달 뒤인 8월 초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됩니다. 10월 2일 2차 남북정상회담이 시작되고 10월 3일에는 9.19 공동성명 2단계 조치, 즉 10.3합의가 채택됩니다. 이 같은 정세발전의 유사성이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요? 아니면 신의 장난일까요?
일정한 조건에서 유사한 현상이 반복되는 것을 법칙이라고 합니다. 모든 법칙은 필연성의 표현입니다. 계속 반복되는 우연은 없습니다. 북미, 남북관계에서 유사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내적 필연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필연성을 재일동포 군사평론가 김명철씨는 <김정일의 통일전략>에서 “가위˙바위˙보의 법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한반도 상황은 마치 북한은 보, 미국은 주먹, 한국은 가위를 가지고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을 이길 수는 있지만 한국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스스로의 힘으로 미국을 이기고 미국이 한국을 이기도록 하면 한반도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보수언론들은 이를 “통미봉남”이라며 게거품을 물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통일에 별 관심이 없는 혹은 반대하는 한국 정부를 끌어내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를 “광명성법칙”이라 하고 싶습니다. 바로 그 정세발전의 필연성을 만드는 내적 원인이 “광명성”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글에서 저는 “북한의 장거리 발사체는 북미협상을 급진적으로 촉진한다”는 광명성 제1법칙과 “발사체의 사거리는 특사의 방북속도와 정비례한다”는 광명성 제2법칙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제3법칙을 소개할까 합니다.
광명성 제3법칙은 “북한의 발사체는 북미관계와 동시에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양자는 교차 상승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한반도 정세를 읽는 제 나름대로의 비법을 다 밝혔군요. 이제 글 밑천이 모두 동이 났으니 다른 소일거리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반도 위기의 해소 과정은 매번 전쟁위기→장거리발사체 발사(또는 핵시험)→워싱턴 특사 방북→남북정상회담→평양특사 방미→미 국무장관 방북→미대통령 방북의 경로를 반복해 왔습니다. 물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은 크게 신장되었습니다. 즉 북미핵대결은 순환반복된 것이 아니라 상승반복된 것입니다. 역사는 결코 순환하지 않습니다.
현재 한반도 정세는 위의 경로에서 3단계와 4단계 사이에 있습니다. ‘특사 조의단’이 주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4단계로의 진입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정세의 발전 경로가 마치 법칙적 과정처럼 나타나는 것은 신의 장난 때문이 아니라 미국에 대한 광명성의 절대적 영향력과 한국정부에 대한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때문입니다. 미국은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을 제어하기 위해 협상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북한과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요구는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그것은 북미관계의 정상화와 남북관계의 재정립입니다. 즉 북미수교와 남북통일입니다. 때문에 북미협상 국면이 시작되면 필연적으로 남북대화가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북한이 그것을 원하고 미국이 그것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사냥개는 그저 주인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북한이 갑자기 손을 내민 이유는 바로 미국에 대한 자신감 때문입니다. 그리고 클린턴의 방북은 그 자신감의 직접적 원인입니다.
워싱턴에서 기침을 하면 서울은 감기가 걸리고 워싱턴에 봄이 오면 서울은 곧 여름이 됩니다. 미국이 2MB를 다루기 쉬워하는 것은 2MB가 미친 소의 골을 파먹을 정도로 미국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정부의 예속성은 때론 예상 외의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그것이 ‘광명성’의 힘입니다. “명박산성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담이로다.”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뚫은 ‘광명성’이 명박산성을 못 뚫을 리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변화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역사의 법정에서는 6.15가 승리한다
이제 한반도 질서의 대지각변동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변화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우주로 향하는 ‘광명성’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하나를 지향하는 우리 민족을 그 누구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시간뿐입니다. 올 하반기가 될 지, 내년 상반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6.15시대로의 복귀’는 시간문제인 듯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예언처럼 만일 2MB가 변화를 거부하고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지금부터의 변화는 지난 10년 동안의 변화와는 또 다른 차원의 변화가 될 것입니다. 만일 한나라당 정권 하에서도 6.15가 되살아난다면, 그리고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새로운 발전적 국면에 들어선다면, 한반도에서 반통일세력의 힘은 이전과는 비할 바 없이 약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6.15를 공공연하게 반대하는 목소리는 크게 위축되고 한나라당과 보수세력들의 분열과 대립은 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특히 ‘친이’와 ‘친박’의 갈등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이혼의 명분은 없을테니까요. 2010년 봄은 이별의 계절이 될지도 모릅니다.
민주당의 정치적 지위도 애매해질 것입니다. 한나라당보다 상대적 비교우위에 있던 대북정책의 변별력이 크게 약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나라당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민주당이 더 진보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민주당의 진보화는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정치지형을 좀 더 왼쪽으로 이동시킬 것입니다.
아무튼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앞으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진영에 유리한 정치적 환경이 펼쳐지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현재 2MB와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적 혐오감을 고려할 때 한반도 질서의 대지각변동은 한국의 정치질서를 예측할 수 없는 격동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게 될 것입니다. 다수세력들에겐 안정이 유리하지만 소수세력들에게 변화가 유리한 법입니다.
이제 냉정하고 차분하게 제2의 6.15시대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제2의 6.15시대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오바마와 2MB가 호락호락하게 물러서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습니다. 우리가 미래를 낙관할 만한 근거는 충분합니다. 거기에 우리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한반도의 미래는 훨씬 더 밝아질 것입니다.
9월 17일 결심공판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9월말에서 10월초 사이에는 항소심도 끝날 것 같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당연히 동지들 곁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MB법정에서 상식을 기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으니까요. 아마도 MB법정에서 우리는 또 한번 패배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판결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역사의 법정에서는 이미 6.15가 승리했으니까요. 우리에겐 승리를 만끽할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동안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지만 진짜 수고는 지금부터입니다. 투쟁!
2009. 8. 23
청계산에서
덧글) 이글을 거의 마무리할 즈음 2MB가 북한의 특사들을 만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변화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시작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멀미하지 않으려면 안전띠를 단단히 매야 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