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2m 아래… 박수는 안 들려도 배우·연주자와 '교감의 하모니'
"갑자기 세상이 알아봐줘 신기… 그 반응의 정체, 잘 모르겠어요"
"여기에 서면 등 뒤의 관객은 잊어요. 머릿속에는 그날의 공연과 음악·배우 생각뿐이지요. 어느 배우가 지친 것 같으면 템포를 당기고, 펄펄 날 땐 음악으로 눌러줍니다. "무대와 객석 사이,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본 박칼린(Kolleen Park·44)은 더 단호해 보였다. 지난해 TV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서 오합지졸 합창단을 이끌며 주목받은 그는 요즘 밤마다 이 구덩이(pit)에서 150분을 보낸다. 뮤지컬 '아이다(AIDA)'의 지휘자로서다. '칼린 샘'은 "날마다 상황은 변화무쌍하고, 나는 최적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면서 "그게 라이브 공연의 철학이고 하루하루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 ▲ 오케스트라 피트는 지휘자 박칼린의 공간이다. 그는“기침 나올 땐 숨어서 입을 막아야 하고, 몸을 많이 움직이면 관객의 항의를 받는 자리”라면서“공연이 안 좋으면 러닝 타임이 길어지는데 그런 날엔 허리가 더 아프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ojc@chosun.com
'아이다'는 경쟁이 치열했던 연말 뮤지컬 시장의 승자다. 인터파크가 집계한 12월 예매순위에서 4.6%를 점유하며 1위를 차지했다. 4일 '아이다'가 공연 중인 경기도 성남아트센터에서 만난 박칼린은 "오케스트라 사운드 때문에 관객이 보내주는 박수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다"면서 "무대 위의 배우들, 거기서 2m 아래에 있는 연주자들과 눈을 맞추며 교감의 하모니를 뽑아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뮤지컬의 협력연출이기도 하다. 배우들의 동선(動線)까지 다 짜여 있는 디즈니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는 역할이다. 박칼린은 "공연도 생물"이라고 강조했다.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힘을 줘야 하는 부분과 느낌이 조금씩 달라져요. 악보·템포·정서가 무대에서 편안하게 숨을 쉬어야 관객에게 닿을 수 있습니다."
지휘자로서 그는 '아이다' 끄트머리에 나오는 아이다(옥주현)와 라다메스(김우형)의 노래 '복잡한 인생'을 좋아한다. "무덤에 갇히기 직전, 둘이 서로에게 다가가면서 음악이 엄청 크고 느려지는 16마디만 되면 흥분돼요. 그동안 쌓아온 이야기와 정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이 뮤지컬에서 딱 한 곡만 남긴다면 박칼린의 선택은 '모든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였다. "실제로 인생도 그렇다"며 말을 이었다.
"사랑 때문에 어마어마한 힘이 생겨요. 죽을 수도 있고, 사흘 동안 안 자고 일할 수도 있지요. 지구를 돌리는 건 사랑입니다. 난 그래서 더 몰두하기 위해 사랑을 만듭니다. 그 대상은 사람일 수도 있고 강아지, 식물일 수도 있지요."
그의 2010년은 특별했다. CF를 찍었고, 책을 내 인세도 받고 있다. 최근엔 평창동계올림픽 IOC 실사단을 위한 깜짝 공연(?) 연출을 맡아 '아이다' 지휘를 주 2회로 줄여야 할 판이다. 하지만 박칼린은 "그게 무엇에 대한 반응인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계속 극장에 있고 10년 전과 달라진 게 없어요. 금방 지나가겠거니 합니다. 농담 삼아 '뮤지컬계에서는 그동안 왜 나를 안 알아줬을까' 투정하지요."(웃음)
박칼린은 올해 연극 '피아프', 뮤지컬 '렌트'를 연출한다. 여성국극(國劇) 스타 임춘앵(1923~1975)을 그리는 뮤지컬 '춘앵전'도 준비 중이다. '칼린 샘'의 새해 소망은 이렇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다 좋은 일 하길 바라고, 나도 그들에게 그런 박칼린으로 남았으면…. 다짐 같은 건 안 해요. 못 지키면 실망하니까."
▶'아이다'는 3월 27일까지 성남아트센터.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