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연휴에 잠시 틈을 내어 가까운 초등학교 교정을 둘러보기로 하고 매동초등학교와 사월초등학교에 가보았다.
두 학교 모두 둘레에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는 바람에 세워진 학교이다. 매동초등학교는 매장 문화재 때문에, 사월초등학교는 비탈진 곳이라 공사에 힘이 들었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두 학교 모두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 지은 느낌이 들었다.
특히 사월초등학교는 야산 비탈에 의지해서 지은 만큼 앞뒤 건물 배치와 동선 조절에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1층 현관 입구를 들여다보았더니 매우 넓은 공간을 확보하여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사월초등학교에 심겨진 나무 중에 특이한 나무는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을 반기는 층층나무이다. 비교적 물기가 많은 깊은 산에서 주로 자라는 층층나무가 이곳에서 제대로 된 거목으로 자랄 수 있을 지는 의문스럽지만 속성수이고 순백(純白)의 꽃이 아름다운 만큼 한번 시도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층층나무는 가지가 층을 이루어 돋는 것에 근거한 이름인 만큼 단계를 밟아야 하는 세상살이의 이치를 배우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믿어진다. 그 아래에 층층 꽃을 심으면 더욱 조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학교 뒷산에 올랐다. 이삼십 년쯤 되어 보이는 리키다소나무와 아카시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암반층이 두꺼워 빗물이 제대로 스며들지 않는 토양에 이 정도나마 큰 키를 이루고 있는 것이 대견스럽다.
산을 한 바퀴 돌아 경산 쪽으로 접어들었다. 좀대 숲이 보인다. 대숲이 보이면 그 아래에는 오래된 마을이 숨어있을 것이었다. 예상대로 오래된 마을이 있고 뒷산에는 고려시대에 높은 벼슬을 지낸 교하 노씨(交河 盧氏) 집안의 묘가 보인다. 동쪽을 향한 산등성이에 안정되게 자리 잡고 있는 품이 서툰 눈에도 명당으로 보인다.
묘 둘레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둘러 서있다. 장구하고 기품 있는 품새가 매우 고아(高雅)하게 여겨진다. 마을에 들어서니 울타리로 심은 사철나무, 측백나무, 향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모두 상록수이다. 이 나무를 심었을 때에 이 마을에는 매우 의욕적인 지도자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아파트 개발의 열기에 밀린 탓인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또 인상적인 것은 벚나무 거리이다. 산 중턱까지 길을 내고 양쪽으로 벚나무를 심어 그야말로 무릉도원을 꿈꾸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벚나무 줄기에는 피목(皮目)이 잔잔한 미소를 띠고 나를 반긴다.
피목은 나무껍질에 가로로 난 숨구멍이다. 이 나무의 피목은 비교적 작아 보인다. 그만큼 나무가 늙었다는 증거이다. 피목은 어린 나무일수록 크다. 어린 나무일수록 숨쉬기도 왕성하기 때문이다.
잎의 크기도 어린 나무일수록 크고 늙은 나무일수록 좁아진다. 대신 늙은 나무는 잎의 수가 많아진다. 사람과 하나 다를 바 없다. 노인이 될수록 숨을 약하게 쉬는 대신 자주 쉬게 되고 체구 또한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마을 뒤에는 오래된 살구나무도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이 나무 밑으로 모여들곤 하였을 것이다. 속은 썩어 가는데 아직은 꽃눈을 밝힐 수 있다는 듯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큰 나무일수록 가운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심재(心材)부분이 죽어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심재 부분은 수분이 적어 단단하고 뒤틀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무의 위용을 유지하는 구실을 한다. 심재 부분이 숨 쉬지 않는다 하더라도 겉 부분의 수관 활동이 5%만 살아있으면 나무는 전체가 살아있는 것으로 대접받는다.
그 5%만으로도 생장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어쩌면 큰 나무는 이처럼 죽음과 삶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거대수로 존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나무들이 자신의 귀한 생명을 가다듬고 자신만의 꽃을 피우기 위해 겨울을 이겨내고 있듯이 우리의 교육도 역경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