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22. 설교문
탁종 3 이 천지간 만물들아
묵상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신앙고백
찬송 356 성자의 귀한 몸
대표기도 이정숙 전도사(염성섭 집사)
성경말씀 이사야9:8~21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無明무명으라 살다가
헌금 460 지금까지 지내 온 것
광고 브니엘 아파트 신축을 위해, 요양원 4층 골조공사 마침.
찬송 543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축도 주님, 일생에 꼭 한번은 내 이기심을 버리고 살게 ~
이번 설날 연휴는 중국 관광객들이 몰려와
고향을 찾아 떠난 텅 빈 서울을 북적북적 채웠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제 중국이 이웃사촌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홀로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저도 설 연휴에 우리 석 권사님 손을 잡고 나들이를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 딸, 아들을 불러 우리 석 권사님이랑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석 권사님 손을 꼭 잡고 가면서
80이 훨씬 넘으신 우리 석 권사님과 머리 색깔이 똑같으니
부부라 생각하겠다고 농을 했더니,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 딸이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빠, 제발 머리 염색 좀 하자고 졸라댔습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찻집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딸, 아들과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참 고마운 것은
1년에 한 두 번 있을 가족 외식에 우리 석 권사님을 모시고 갔는데
우리 딸, 아들은 전혀 어색하게 생각지 않고
우리 석 권사님을 잘 챙겨 드리는 모습이 고맙기만 했습니다.
저는 다시 우리 석 권사님 손을 꼭 잡고 쇼핑을 했습니다.
속옷 집에 들러 팬티 한 셑과 잠옷을 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침해가 너무 심해 항상 옷 보따리 끼고 언제 집에 갈까
기다리고 서 있는 우리 이점숙 집사님 팬티 잠옷까지 사들고 요양원에 왔습니다.
즐거운 나드리였습니다.
행복했습니다.
8절입니다.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9절,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10절,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도다.
11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 운수들을 격동시키리니
12절,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글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찌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13절,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를 치시는 자에게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14절,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15절,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16절,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17절,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 장정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그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저는 매일 새벽 성경을 읽다가 보면 가슴에 경련이 나곤 합니다.
그럴때면 이마에 진땀이 나고 괴롭습니다.
이렇듯 이 말씀을 대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괴롭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경고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이 무섭기만 합니다.
제가 어릴 때 잘못하면 어머님께서는 회초리를 들고
종아리를 걷어 올리게 하시고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셨습니다.
그럴때면 저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어머님께 잘못을 빌었습니다.
다시는 나쁜 짓 않겠습니다.
이렇게 용서를 빌면
어머님도 함께 눈물을 흘리시며 저를 꼭 안아 주셨습니다.
참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와는 반대입니다.
오히려 용서를 빌지 않고 회개할 마음조차 없지 않습니까?
9절,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10절,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도다.
한마디로
내 자존심을 건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벽돌을 무너뜨리면
다듬은 벽돌로 다시 쌓으면 될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뽕나무들이 찍히면
더 좋은 백향목이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마치 모기 배차라고 홀라당 옷 벗고 자는 격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강팍해지고 있습니다.
요즘 TV는 건강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신장암 수술을 받고 났더니 암이 전이되어 간경화에 간암까지 걸린
위태롭게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어찌보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사망 선고를 받은 이 분이 말하기를 전생에 무슨 죄가 있기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씩이나 암에 걸린 것일까?
부모님 원망도 하며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암 걸린 것이 부모탓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주에 하인리히 법칙에 대하여 말씀 드렸습니다.
하인리히 법칙은 1:29:300입니다.
대형 사고로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것들을 사소하게 무시해서
대형사고가 난다는 것입니다.
우리 요양원에서도 매일 작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번 설명절에 우리 어르신들 몇분을 자녀들이 모셔 갔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떡도 가져 오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떡 드시다가 위급한 상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김소분 어르신이 손녀가 가져온 떡을
우리 직원 몰래 드시다가 탈이 난 것입니다.
익산 병원 응급실로 가신 것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겠습니까?
바로 접니다.
12절입니다.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글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이렇게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 하면
전후좌우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한마디로 사면초가四面楚歌입니다.
저도 이렇게 죽을 고비가 있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이렇게 아찔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가 이렇습니다.
부모님께서 늙어서 노환으로 돌아가시면 잘 돌아가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앞집에 형님 장남이 군 제대하자마자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전주 병원에 있는 장례 예식장에 가서 문상하는데
집안 형님이 소주병체 들고 술을 마시며
너무나 괴로우니까 취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스라엘이 망할 때가 아닌데
교만과 오만 때문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13절입니다.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를 치시는 자에게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어떤 모습입니까?
죽게 생겼는데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오만한 행동입니까?
지금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14절입니다.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15절, 16절에
거짓 선지자들 백성들 모두가 미혹케 되어 멸망을 당했습니다.
17절입니다.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 장정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그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지금 우리도 이렇다는 것입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이름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매사에 진실과 거룩을 들먹이면서도
악한 행실을 일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설날에 새벽 3시에 일어나 성경을 읽고
요양원에 달려와서 새벽예배를 드렸습니다.
요즘 우리 박정님 어르신이 비상입니다.
침해가 아주 심해졌습니다.
그러다 식사까지 드시지 못하면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드리는데 박정님 어르신 곁에 따님이 함께 있었습니다.
서울에 사시는 따님이
설을 우리 요양원에서 어머님과 함께 지내시는 것입니다.
저는 감동이었습니다.
서울에 사시는데도 얼굴에 화장을 하지 않은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러면서 어머님 손을 꼭 붙들고
우리 요양원에서 설맞이를 하시는 모습에
오히려 제가 불효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박정님 어르신 따님을 꼭 껴안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님 걱정 마세요.
우리 요양원은 천국입니다.
우리가 잘 섬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365일 쉬지 못할지라도 행복합니다.
다른 이들은 설 명절이라고 동으로 서로 바쁘게 다닐지라도
우리는 나무처럼 항상 제자리에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강해져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할 수 있습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
무명無明이란 싯귀 첫 행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희망을 안고 사는 것은
죽음을 모르기 때문이며,
죽음을 안다 해도
모든 죽음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