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담장 안에 있는 우리는 잘 모르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하루에도 여러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들을 전부, 제대로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몇 가지 정보로 타인을 받아들이고 판단을 내립니다. 그가 어느 지방 출신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어느 학교에 전공은 무엇인지 하는 것들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누군가를 깊이 알아 가면서 인격적인 만남을 바라기보다는, 그냥 자기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정보로 그 사람을 너무 쉽게 판단을 내리면서, 적당히 거리를 둔 채 그냥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죠.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도 그러한 시선으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고 만납니다. 바리사이들은 세리인 마태오를, 민족을 배신하고 돈만을 쫓아 살아가는 파렴치한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또 그와 가까운 사람들 또한 죄인이며 배신자로 결론 내립니다.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대하는 바리사이들이기에 그러니 세리와 죄인과 함께 어울리는 예수님조차도 바리사이는 그들과 같은 부류로 단정지어 버립니다. 그들의 이런 선입관에는 자신들은 깨끗하고 의인이라는 자만심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대구 대현동의 이슬람 사원 건축 문제로 무슬림과 지역 주민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슬람 사원이 들어서면 동네 집 값이 떨어 진다면서 일부 주민들은 돼지머리를 갖다 놓거나, 심지어 공사장 입구에서 돼지고기 파티를 벌이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뉴스였습니다.
저는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이런 경향이 바로 1920년대 초, 갑자기 불어난 조선인들을 좋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던 일본인들을 떠올렸습니다. 조선인들을 향해 마늘 냄새가 나고 불결하며 아무 데나 침 탁탁 뱉는 조선인들, 그리고 ‘독립운동 한답시고 테러나 벌이면서 사람을 죽이는’ 조선인들이라고 삐뚤어진 혐오 감정을 드러내던 일본인들의 시각과 똑같다고 여겼었습니다. 그릇된 우월감, 그리고 근거 없는 공포 포비아...
세리 마태오 집을 찾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싸잡아 욕하며 못마땅해하는 바리사이들의 편협한 사고방식과 잘못된 우월감, 1920년대 일본인들의 혐오 감정 같은 것이 아직까지도 여전히 우리 사회을 지배하고 있음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