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산 전자제품의 사용설명서를 읽다가 참을 수 없는 갑갑증을 느꼈다. 우리말로 풀이한 내용인데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터넷 시대, 영어 사용이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한글 홀대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우리 한글이 오늘날 처하게 된 어려운 상황과 왜소해진 풍모를 생각하면 우리 삶의 일그러진 단면을 웅변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언어를 통해 개념을 갈무리하고, 언어를 통해 사유를 확장함으로써 인류는 발전해왔다. 제도권 교육에서 유독 읽기와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경우 그 밑바탕에 한글이 놓여 있음은 더 적을 필요도 없다.
미국에서는 청소년들의 기초학력 부진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 가운데 ‘읽기’에서 기초학력에 미달한 비율이 초등학교 4학년생의 36%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 미국과 동급의 학생들 가운데 읽기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미국의 약 10분의 1 수준인 3%에 못 미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나는 그 이유가 한글이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운 데 있다고 생각한다.
한글연구가 김명호에 의하면 정보가 빛의 속도로 전달되는 오늘날, 같은 정보량이면 어느 문자를 사용해도 전달 속도는 같으므로 정보 전달의 속도 차를 만드는 것은 ‘문자로 정보를 만들어내는 속도’라고 한다. 그런데 음절문자(音節文字)인 중국어나 일본어는 음소문자(音素文字)로 바꾸어 표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알파벳이나 한글에 비해 정보를 만드는 속도가 현저히 느릴 수밖에 없다. 또 알파벳과는 달리 한글은 자음 기호와 모음 기호가 두 손으로 나눠지기 때문에 문자를 입력하는 속도에서 큰 차이가 발생한다. 휴대전화 문자를 애용하는 엄지족의 경쟁력도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이처럼 우수한 한글임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르게 훼손되고 있다. ‘Hi Seoul’ 같은 국적 불명의 말이 버젓이 시청 앞 광장에 내걸린다. 정부에서도 한글 훼손의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지난 7월 28일 국어기본법을 발효했다. 그 가운데는 한글을 보전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의 의무를 천명한 내용도 들어 있다. 그리고 공공기관에 국어책임관을 두고 국어상담소를 지정할 수 있게 한 것도 한글 사랑의 진전된 내용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문제는 국어기본법의 이런 규정이 한낱 권장사항이라는 데 있다. 이는 정부가 과연 한글을 진정으로 진흥할 생각이 있는지를 의심케 하는 부분이다. 예산의 증액도 없고, 관련단체에 대한 지원도 없이 무슨 일을 하자는 것인지 절로 의구심이 든다. 각 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설립하고 있는 영어강습 학교 한 곳의 설립 예산에도 못 미치는 예산으로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민족의 영혼이 담겨 있는, 문화의 저장고라고 할 수 있다. 우리처럼 언어 약소국에서는 자기 언어, 자기 글을 제대로 알고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제일 방법론이다. 이런 말이 ‘민족 우선’의 배타적 사고 같은가? 언제 우리가 우리의 언어를 통해 민족정체성을 함양해 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리고 우리 민족이 그 정체성을 이용하여 이민족을 지배하고 그 민족의 언어를 말살하고자 한 적이 있었던가?
언어는 그 민족의 삶을 지배한다. 바른 우리말, 우리글 사용이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민족중흥의 길이다. 아무리 세계화라고 해도 민족국가를 성큼 뛰어넘어 범지구적 연대를 말하는 것은 이상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정은숙 글에서 -
*** 징검다리 생각 ***
우리는 주로 말을 통해서 자기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한다. 글은 문자언어인기 때문에 언언인 것이다. 물론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에 속한다.
그런 언어를 우리는 유난하 홀대한다. 인터넷의 기하급수적인 보급으로 우리의 언어는 급속도로 황폐해지고 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외계어가 활개친지 오래이고, 상스러운 말은 이제 생활화될 정도이다. 중고생들의 잀아적인 대화를 들어보면 욕에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는 '댓글'이라는 것에는 참다운 언어를 테두리를 벗어난지 오래다. 그래서 인터넷에 올리는 말의 '실명화'가 거론되기도 한다.
선진국에서는 학력의 기본인 '3R -읽기, 쓰기, 셈하기' 저하 때문에 비상 가동이 된지 오래다. 프랑스는 국어 수업시간을 늘리고, 미국은 기본학력의 저하에 부드러운 교육이 경교육으로 유턴하고, 일본도 연교육에서 경교육으로 선회하고 있다. 독일도 기본학력의 저하에 비상등이 켜졌다.
우리의 교육은 아직도 선진국에서 시행착오를 일으킨 교육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이해찬 세대도 그렇고, 수행평가도 그 예 중에 하나다.
흔히 자조적으로 하는 말중에, 우리의 교육은 '5수'가 문제라고 하기도 한다.
수학능력평가(수능), 수학여행, 수행평가, 수요자 중심교육 등.
말은 바로 마음이고 정신이고 영혼이고 그 사람의 인격의 잣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말을 하고 싶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말한다고 다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의미 없는 소리가 된다.
말에는 그 사람의 사유체계가 담겨져야 하고 그의 영혼이 담겨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