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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7 지하철 에피소드 입상작 연재 : ② 최우수상 '나의 비밀 이야기' - 정유진
AM7은 창간 7주년을 기념해 서울사이버대학교 후원으로 지난 한 달간 진행한 '제6회 지하철ㆍ전철 에피소드 공모전'에서 본상을 받은 수상작들을 21일부터 매일 1편씩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래 작품은 최우수상을 수상한 정유진씨의 '나의 비밀 이야기' 입니다.
나에게는 비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사소한 것인데도 내 마음속에 너무 깊이 묻어 두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너무 깊이 숨겨 두어서 잊을 수도 없게 되어버린 이야기가 있다.
몇 년 전에 내 일생을 통틀어 가장 더웠던 여름이 있었다. 오랫동안 내가 살던,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던 나의 집을 잃고 상자 같은 조그만 집에서 맞은 첫 번째 여름이라서 더욱 더 더웠을 것이다. 부도가 나서 사업을 접고 나니 당연한 절차인 듯 찾아온 병마와 싸우는 틈에 빚이 커지고, 시달리고 시달리던 끝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조그만 집으로 숨어들었을 때는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숨이 트였었다. 그러나 그 평화도 잠시, 나는 모든 의욕을 잃고 숨만 겨우 쉬는 시체가 되어 갔다. 죽음만이 내게 남은 희망이었으니 초기 암을 발견해준 의사를 원망했고, 모르고 있었다면 지금쯤 죽을 수 있었으련만 방정맞게 건강검진을 해버린 나 자신을 몹시 원망했다.
그런 여름 어느날 밤에 나는 더 이상 숨 막히는 열대야를 못 견디고 집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부산 지하철 3호선 수영 종점 부근의 서점에서 더위를 식히며 책을 읽다가 서점 주인에게 미안해서 책 한권을 사들고 역 대합실에 앉아 있었다. 하루 종일 달구어져서 불가마 같은 집에 들어가기가 정말 싫어서, 그래서 혼자서는 별로 타본 적이 없는 지하철을 타 볼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당시의 나에게는 대단히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첫째 낯선 사람들이 마주보게 만든 좌석에 앉는 것도 자신 없는 일이지만 그 사이에서 뭇시선을 받으며 서 있을 일도 엄청나게 난감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기계치인지라 자동승차권 발매마저 자신이 없던 지하철 초보 승객이었으니까. 러시아워는 지난 시간이라 조용해진 역 구내의 분위기에도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어렵사리 승차권을 구입하고 더듬대며 전동차를 탔을 때 생각보다 승객이 적었다. 그곳에서 나의 인생이 바뀌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내 인생의 전환은 개통한지 얼마 안 된 지하철 3호선에서 시작된 것이다. 종점인 대저역까지 책을 읽으며 돌아올 요량으로 둘 곳 모를 나의 시선을 책에다 꽂는데 건너편 라인에 앉은 네 명, 중년 아줌마들의 소란 때문에 책을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분들이 전혀 나를 의식하지 않았기에 나의 시선도 자유로워졌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분들은 부산에 돈 벌러 나왔다가 퇴근하는 대저 아줌마들이었다. 딸이 사줬다는 옆 친구의 신발이 예쁘다고 벗겨서 신고 양끝에서 끝까지 워킹하는 아줌마 때문에 나는 빵 터졌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웃어보긴 처음이었다. 그리고 정착역 멘트 성대모사, 영어멘트모사, 이웃마을에 사는 시숙의 성대모사까지 이어져서 나는 쉴 새 없이 웃었다. 그분들은 마주 앉아 웃어대는 낯선 관객인 나를 보면서 더욱 신명이 나는지 더욱 리얼한 개그들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 에피소드의 결정판은 그 후에 있었다. 경로석에 앉아서 구경하시던 한 할아버지께서 아줌마들에게 어느 마을에 사는지 물어보시더니 성대모사한 그 시숙의 친구라고 밝히셨다. 그 순간부터 갑자기 얌전해진 제수씨 아줌마 때문에 나는 웃음을 참기 위해 혀를 깨물어야 했다.
그 날 다시 수영역으로 돌아올 동안 나는 책을 한 페이지도 읽지 않았다. 그 대신 그 짧은 시간에 지하철이라는 대중교통수단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에서 말끔하게 벗어났다. 그 이후 나의 행동반경은 작은 집이 아니게 되었다. 자유롭게 이용할 교통수단이 없어서 죽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 텐데도 지하철을 잘 타게 된 것이 마치 살 길이 터진 것 마냥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아갔다. 어쩌면 나는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정말은 죽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무의식 속에, 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숨겨져 있어서 그 순간을 기회로 삼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의 공간이동능력이 내 삶의 반경이 되기도 한다면 자가용차가 없고 택시를 줄곧 탈 형편도 안 됐던 그 때의 내 삶은 내 방이나 내가 사는 동네를 벗어날 수 없었다. 움츠러진 내 몸과 마음이 빚어내는 악순환의 끝은 어디였을까?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낯선 사람들의 코앞에 서있는 것 보다는 더 엄청나게 비참하고 끔찍스러웠을 것이다.
지금 나는 나름대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지하철 계단을 잘 오르내리려고 이십년 넘게 신던 하이힐 대신 운동화를 신게 되었고 운동화에는 어울리지 않는 공주 패션도 안하게 되니 세상이 다 편해졌다. 운동부족으로 노인처럼 흔들거리던 두 다리는 튼튼해져서 그 덕분에 건강을 되찾았다. 휴대폰에 달고 다니는 각종 교통카드를 액세서리쯤으로 알았다가 나도 달고 다니게 되었는데 급기야 요즘에는 3만원 보충을 한 달에 두 번이나 하게 되는 메트로 마니아가 되어버렸다.
이런 나를 두고 나의 큰언니는 ‘인간이 다 돼간다’라고 하시고 동생들과 조카들은 ‘진화했다’라고 놀린다. 그런데 나는 ‘아니다’. 나는 산송장이었다가 지하철 덕분에 새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 여름에 나를 사람들 사는 세상으로 온전히 편입시킨 건 그동안 내가 쌓았던 지성도 이성도 아니었고, 종교도 혈육도 아니었으며, 오직 지하철 3호선에서 만난 대저아줌마들이었다.
찬송가를 켠 녹음기를 목에 매달고 흰 지팡이를 짚은 시각 장애자를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만난 곳도 지하철이다. 적으면 적은대로 서로 나누어야 할 이웃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예전에는 그렇게 가까이 만날 기회가 없었다. 이제는 외출할 때 반드시 천원짜리를 챙긴다. 불법인 줄은 알지만 만원도 아닌 천원이 필요한 이웃이 바로 내 곁에 있다면 나는 그 천원짜리를 사용한다. 내가 이렇게 지하철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지하철도 내 사랑을 받고만 있지는 않았다.
아주 피곤한 어느날 발견한「최단환승지점」표시는 내가 몹시 배려 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며 나를 기쁘고 행복하게 해주었다. 가끔씩 발밑이 무서웠던 승강장에도 펜스를 설치해 주고 거기에 시까지 적어놓아 전동차를 기다리는 시간들을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지하철에 대해 불만 사항을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게 ‘없다’라고 말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지하철의 긍정적인 시너지에 합류해서 새 삶을 얻은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
첫댓글 사람냄새나는 재미난 지하철이야기 잘보고 갑니다..
웬지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네요....^^
찾아주시고 댓글주시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