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31.송구영신예배 설교
*본문; 요 15:4~5
*제목; 2024년 내 안에 거하라!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4~5)
1.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가? 이슬람 선교사의 이야기
한 이슬람 선교사의 고백입니다.
이슬람은 기독교 선교가 매우 힘든 지역입니다. 선교사로서 붙잡히게 되면 갖은 고난과 위험을 당한 후에 추방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항상 긴장하며 사는 것이 이슬람선교사의 삶입니다.
그런데 이런 선교사가 가장 두려운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라고 합니다.
핍박과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선교 여정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 가장 두렵다는 참으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참 신앙을 가진 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사는 자만이 알 수 있는 두려움인 것입니다.
사실 신앙하면서 하나님의 교회 안에 제일 무서운 분들이 바로 이런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 분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 임재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막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의 가장 첫 단추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경험하면 ‘주일을 성수하라! 십일조를 하라! 기도를 열심히 하라! 등’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시키지 않아도 더욱 열심히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십시오. 그러면 진정한 믿음이 시작되고, 그곳이 어디나 하나님 나라(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도, 교회도, 세상도,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는 곳이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 됩니다. 아멘!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임재”는 어떻게 하면 느낄 수 있습니까?
이는 어떤 체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이 체험은 상황과 환경에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황이 좋으면, 환경이 개선되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반대가 되면 하나님의 임재를 잊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임재는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이 믿음은 상황과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도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시 23:)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다윗은 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산 것입니다. 그의 삶이 평탄했습니까?그는 평생을 사울의 칼을 피해 다니며, 블레셋에 가서는 미친 척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도 그는 하나님의 동행과 임재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영혼 가득히 “푸른 초장 쉴만한 물 가”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골리앗과의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사울과 골리앗은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승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5)
엘리사와 종이 도단 성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아람군대가 엘리사를 죽이기 위해서 도단성을 애워싸고 있는 것을 그의 종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의 스승을 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었기에 태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왕하 6:15~16)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왕하 6:15~16)
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십시오. 오늘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표현대로 하면 “내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것의 정확한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2. 예수님 안에 거하기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을 이 의미를 매우 정확하게 해석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갈 2:20’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 바로 “예수 안에 사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사시는, 예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너무 간단합니다. 이렇게 안 되는 것은 딱 한 가지 이유밖에 없습니다. 신앙이 힘들고 삶이 힘든 이유도 딱 한 가지 이유입니다. 내가 아직 싱싱하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너무도 쉽습니다. 그냥 주님 따라 이끄시는 대로 흘러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를 보십시오. 종착점에 도착하는 연어도 그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도착한 연어는 거의 죽음 직전에 있는 모습니다. 우리 신앙이 이러합니다.
흐르는 강물에 몸을 내어 맡긴 나뭇잎은 고민도 수고도 없습니다. 그냥 이끄시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맡기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이고, 이것이 바로 예수 안에 있는 것이고, 이것이 믿음과 삶의 행복은 절대적 비결입니다.
정말 헌신적인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칭찬하는 장로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사랑하는 외동딸이 급성 백혈병이 발병합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물론이고, 전교인들이 그녀를 위해서 매일 기도하였지만 결국 1년 만에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자 그 장로님이 장례식장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 딸을 주님께서 완전히 고쳐주셨습니다. 아무런 고통도 질병도 없는 천국으로 이끌어 가셨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바른 믿음의 고백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구역식구들 중 새신자에게 생겼습니다. 그는 평소부터 이런 분이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분의 딸을 고통스러운 질병을 앓게 하고 결국 죽게 했다는 사실이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떠납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장로님은 딸을 잃을 때보다 더 괴로워하며 자책합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님을 찾아가 “사직서”를 씁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장로님은 이미 임직 받을 때 죽으셨다고 고백했는데, 이렇게 자기 마음으로 사직서를 쓰면 어떻합니까? 아직 장로님이 살아계신 것입니까?”
그러자 5분 정도를 고개숙여 가만히 기도하던 장로님이 일어나 인사를 하며 사직서를 가지고 가셨다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더 열심히 사역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죽으면 아무 것도 나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내가 죽으면 모든 일이 주님의 뜻대로 다 이루어집니다.
그 새신자는 며느리를 보았는데, 그만 임신한 쌍둥이가 잘못되어 아기들도 산모도 위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 그 새신자는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회개하며, 아이들을 살려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결국 무사히 출산하고 모든 아기와 산모가 건강하여 지자, 새신자와 아들 내외 그리고 아기들까지 다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내가 죽으면 예수님이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내 안에 거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의 의미입니다.
3. 바울의 일체의 비결
바울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알고 있다고 자랑합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2)
그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내가 죽으면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십니다. 이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니 바울은 어떠한 상황도 이기는 능력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이제 죽읍시다. 그리고 믿읍시다. 그러면 주님 안에 거하고 되고, 예수께서 역사하시게 됩니다. 2024년 표어가 바로 그 의미입니다.
서로 축복합시다! “믿고 죽읍시다. 비로소 승리하게 됩니다!” 아멘.
첫댓글 바울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일체의 비결”(빌 4:12)을 알고 있다고 자랑합니다. “내가 죽으면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십니다. 이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니 바울은 어떠한 상황도 이기는 능력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이제 죽읍시다. 그리고 믿읍시다. 그러면 주님 안에 거하고 되고, 예수께서 역사하시게 됩니다. 2024년 표어가 바로 그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