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들어 땅을 보라
마치 맞춰놓은 알람 시계가 울리듯 10월 첫 날에 정확하게 가을이 울렸습니다. 하루 아침에 기온이 ‘뚝’하고 떨어졌습니다. 며칠 전까지 무더위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가을을 ‘타며’ 또 살아야겠지요. 가을은 아래로 내려가는 때가 아닌가 합니다. 기온이 그렇고, 나뭇잎들이, 꽃잎들이, 열매들이 저마다 지닌 무게들을 내려놓습니다. 그래서 가을은 가지는 것보다 잃을 줄 아는 지혜를 배우는 때이고, 머무는 것보다 떠날 줄 아는 미덕을 가르쳐주는 때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오늘 편지의 제목을 “눈을 들어 땅을 보라”고 했는데, 찬송가 515장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땅을 본다는 것은 바닥을 본다는 것이지요. 내 마음 바닥에 붙어서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는 욕심과 허영의 시들어빠진 것들을 떼내는 것이 행복이고 지혜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가을입니다. 내 삶의 가지에 오랫동안 붙어있는 부질없는 감정과 관계들을 떨어뜨려서 얻는 자유를 맛보는 때가 되었음을 가을이 알려줍니다.
정치한다고 떠들고 패거리로 뭉쳐 다니는 사람들도 제발 밑바닥 민심을 살피는 척만 하지 말고 납작 엎드려 눈을 맞추고 귀 기울여야 할 때가 가을입니다. “기는 사람 위에 뛰는 사람이 있고 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지요. 나는 사람이 제일 낫다는 말인데, 기는 사람이 없으면 나는 사람은 누가 쳐다볼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으면 하는 가을입니다.
찬송가 515장 가사입니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소리 들려온다/ 눈들 들어 하늘 보라 어두워진 세상 중에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하늘의 마음을 품고 땅을 보라는 뜻 아니겠는지요. 사람들의 탄식 소리를 크게 듣고 “어찌할꼬”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찌할꼬’ 쓰다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삭개오’라는 사람이요. 뽕나무에서 내려오는 기쁨을 알았던 그 사람.
가을이 주는 울림 따라서 이렇게 써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