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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방지 클럽
김 이 연
냉수욕과 하제(下劑)와 기도를 권장하기도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죽겠다고 말한 사람은 결코 죽을 수 없다는 것과, 한번 자살을 기도했던 사람은 다시는 자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카페 〈지평선〉에 보이는 사람이 거의 정해져 있다. 한 달 수입이 사백만 원이 넘는다는 정형외과 의사인 한 박사, 그의 동창생인 점술가, 즉 철학자 해범 선생, 그 역시 예측할 수 없는 월수로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버스 차장만큼의 수입도 안되는 판화가 신 화맥, 직업은 창녀이지만 정신만은 여왕 못지않은 성희, 검정고시로 교사가 되어 만년 평교사인 김 선생
과 그의 전처――지금은 이혼하여 혼자 살고 있는 민식이엄마, 마지막으로 항상 말이 없는 남자 준식이 있다.
직업도 가지각색이고 조금도 어울릴 조건이 없는 사람들이 아무런 약속도 없이 꾸역꾸역 모여드는 것은 단 한 가지 막연하지만 무언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카페 〈지평선〉은 언제나 열려 있다: 그곳에 들르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들를 수 있다.
낮고 높은 의자, 편안하거나 불편한 의자, 하다못해 국민학교 교실에서 주워온 듯한 의자도 있다. 그 의자들은 모두 아늑한 분위기를 더했다. 눈에 거슬리
는 게 없다.
자기가 앉고 싶은 의자에 앉아서 마시고 싶은 차를 마신다. 가스레인지에는 항상 큰 주전자에 물이 끓고 있다. 선반에 있는 병을 집어다가 타먹도록 되어 있다.
다만 그 가격을 적어놓은 쪽지가 선반에 붙어 있다. 그 옆에 돈바구니가 있다. 거기다가 던져넣기만 하면 된다. 가끔 여자아이 하나, 에이프런을 아주 장난스럽게 와고 나타나서는 마신 컵을 거둬간다. 그 아이의 얼굴에는 그려붙인 듯한 미소가 있고 입은 벙어리처럼 벌리고 있지만, 말하는 걸 본 일이 없다.
아무도 그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카페 〈지핑선〉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성희다.
간판도 없는 지하 카페는 어울리지 않게도 두터운 카핏이 깔린 계단으로 내려가야 한다.
성희는 술집을 차려볼까 하고 가게 자리를 물색하던 중 그 지하 카페를 발견했다.
문을 밀고 들어갔을 떼, 실내의 조명이 지나치게 밝아서 멈칫 문앞에서 동작을 멈추었다.
아무도 없다. 성회는 가만히 들어가 한참 서 있다가 국민학교 교실에 놓였던
의자에 엉덩이를 붙여보았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실내를 둘러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곳이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였더니 음악도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주전자 물이 끓고 있고,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긴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 앉아서 눈에 띄는 걸 구경하며 주인을 기다렸다. 끝내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서른 평 정도 지하의 한 방이었는데, 성희가 찾고 있던 가게 자리였다.
안으로 통하는 벨이라도 있을 것 같아 아무리 찾아보아도 눈에 띄지 않았다.
가스레인지 앞에 작은 메모판이 보인다. 〈손수 만들어 드시지요.〉라는 메모와 차를 만드는 분량이 적힌 메모판이었다.
생강차 한 잔을 만들어 마셨다.
이상하게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옛날에 다니던 국민학교 교실에 와서 앉은 것처럼 세월을 거꾸로 되돌아간 기분이 될 수 있었다.
생강차 값을 적힌 대로 돈바구니에다가 넣고 밖으로 나갔다.
다음날 성희는 그곳으로 가보고 싶은 충동으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주인이 대체 누구일까. 어제만 환각으로 나타난 장소였을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다시 그곳으로 갔다. 그대로 카핏이 깔린 계단이 있었다.
환각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여긴 어떻게 된 곳인가, 성희는 겁먹은 가슴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역시 빈방이었다. 여전히 주전자의 물이 끓고 있었다.
또다시 초등학교 의자에 앉았다.
생강차 가루가 든 병이 크게 다가왔다. 차를 마시면서 어제보다 더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돈바구니에 돈을 넣으며 들여다보았다. 빈 바구니였다. 분명히 돈을 걷어가는 사람이 있는 게 분명했다. 말하자면 주인이 있는 카페였다.
음악을 흘넣어주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어쩌면 이곳에 앉은 성희를 감시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니, 함께 차를 마셔도 좋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성희는 밖으로 나가 주간지 한 권을 사왔다. 그것을 다 읽도록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성희는 문득 여기서 자살을 해도 좋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남의 가게이지만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로서 산속보다 더 아늑했다.
오후 세시쯤에 문이 열리고 성희가 기다리던 주인 준식이 나타났다. 준식은 은박지에 싼 샌드위치를 들고 들어와 커피 한 잔을 타 마셨다. 성희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는 걸로 보아 주인이라는 걸 짐작했을 뿐이다.
그는 온몸이 푹 파묻히는 의자를 차지하고 낮잠을 잠깐 잤다. 한 삼십 분 숙면을 하는 것 같았다. 잠을 좀처럼 이룰 수 없는 성희는 그가 다시 자는 모.습을 보며 깊고깊은 골짜기로 떨어져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혹시 여기 주인이세요?”
“댁은 왕년의 인기배우 성희씨 아닙니까?”
그는 성희의 질문엔 대꾸도 없이 마주 물었다.
성희는 고맙고 반가왔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인 양 그는 갑자기 바짝 가까와졌다.
“아직도 아름다우시군요.”
그말은 수없이 많이 들어온 말이었다. 그건 동정이며 비웃는 말이라는 걸 성
희는 잘 알고 있었다.
한때, 성희는 세상이 좁다고 느낀 정도였다. 명성은 물론 돈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들어왔다. 다 귀찮으니까 잠이나 실컷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 탄식했다. 그 탄식을 누가 들었는지 성희는 잠만 자고 또 자도 하루가 잘 기울어지지 않는 지루한 나날을 살고 있다. 지루하다고 느끼는 건 잠깐이고 어떻게든지 살아보는 데까지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게 가끔 자존심 상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걸 자존심이라고 내세울 수도 없을 만큼 가엾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사람이 성희의 앞에 나타나면 정상에 섰던 화려했던 과거로 되돌아간다. 관객과 배우의 관계를 되살릴 수 있었다. 그때는 성희의 표정은 아주 거만해지고 어깨를 좁히고 턱을 올린다. 지금은 비록 만원 미만짜리 창녀로 전락해 있다 해도 머리는 그 높은 환상의 세계를 헤맨다. 폐허로 남은 파리의 카페에서 샹송을 부르는 가수의 조국처럼 황폐한 그 여자의 인생이었다.
성희는 생강차 한 잔을 더 타서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배우가 자기를 좋아해
주는 팬에게 차 한 잔을 사주는 기분으로 가볍게,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건넨다.
“드세요, 저는 생강차를 아주 좋아하죠. 매콤한 맛도 좋지만 독점욕이 강한 이 향기를 좋아해요. 마치 나를 닮은 듯하니까요.”
성희가 건네는 생강차를 마시면서도 그는 아무말도 없이 성희를 따스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성희는 그 얼굴에서 섬뜩한 수많은 관객의 얼굴을 만났다.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돌아서버린 많은 관객의 잔인함을 발견했다.
성희는 기가 푹 죽어버리고 한쪽 구석에 있는 국민학교 의자에 돌아와 앉았다. 낯선 공간에 두 사람뿐인데도 그것도 남녀가 그렇게 앉았는데도 아무런 열
이 생기지 않았다. 그는 쉴 만큼 앉았다가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성희는 그 카페를 비워두고 다른 곳에 간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아니, 다른 곳에 갈 데도 없었다.
삭윌세로 든 단칸방과 연탄불이 꺼졌을는지도 모르는 온돌, 그것도 비닐로 덮인 습기찬 방이었다. 한구석에 요강을 넣어두고 살고 있었다. 아니면 한밤중에도 주인집 하루를 거쳐서 물소리 요란한 간이수세식변소로 가야 했다. 요즘 들어서는 하룻밤에 세 번, 네 번 정도 소변을 봐야 하는 습관이 들었다.
병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그저 습관으로 넘기면 성희는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병원에도 갈 수 없을 바에는 그게 현명한 생각이었다.
성희는 단칸방의 요강을 생각하니까 또다시 변소에 가고 싶어졌다. 음악이 방을 지키고 성희는 밖으로 나갔다. 기다란 복도 끝에 까만 타일바닥이 깔려 거울처럼 비치는 변소가 있었다. 분홍빛 휴지가 걸려 있었다. 잔뜩 말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역시 빈 방광이었다. 한참 앉아 있어도 한 방울 없다. 머리끝에서 천정까지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귀로 들어 기억할 수 있는 바이올린 선율을 콧노래로 불렀다. 노랫소리가 커지는 것도 모르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성희는 주간지에 있는 인생상담 페이지를 다 읽은 뒤에 일어섰다. 옷을 정리
하고 문을 밀었다. 우뚝 밖에 서 있는 남자와 맞닿았다.
황급히 화장실을 빠져나와 카페 〈지평선〉으로 도망쳤다. 지하에 있는 어느 사무실의 사원이겠지 하고 마음을 놓는데, 문이 열리며 그 남자가 따라들어왔다.
“바이올린이 좋습니다.”
“바이올린이요?”
성희는 자기가 콧노래로 부른 바이올린곡 브람스를 말하는 줄 알지만 성희는 모르는 체하고 되물었다.
아뭏든 여기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란 아주 기이한 존재들이라고 한끝을 접어도 별로 틀리지는 않았다. 정상적인 사람과 마주보고 말하는 것처럼 말을 주고받았다가는 바보가 되고 말 것이다.˙
“나는 정형와과 의사요. 지평선을 처음으로 찾아낸 사람이죠.”
“내가 제일 먼저 찾아냈다고 알고 있는데요.”
성희는 국민학교 의자에 앉았다.
거울을 꺼내며 돌아앉는다. 눈가에 손가락을 대고 늘어진 살갗을 펴보았다.
“이 주름을 없앨 수 있어요?”
“무료진단입니까?”
“그럼 진찰료를 지불할까요?"
“그건 농담입니다. 어디 좀 봅시다. 연세가 어떻게 되었지요?”
성희는 나이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나이를 대지 않아서 진단을 받을 수 없다면 할 수 없다.
한 박사는 왕년의 미인이 이렇게 초라하게 늙을 줄을 몰랐다는 듯 동정어린 시선으로 성회를 보았다. 그길로 성희는 밖으로 나가버리고 며칠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성희의 얘기가 화제가 되었고, 카페 〈지평선¡〉에 모이는 사람들의 가슴에 진한 자국을 남긴 사람이 되었다.
성희가 명륜동 산동네에 그것도 삭월세방에서 연탄을 세어가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 사람이 있다. 연탄가스로 중독이 되어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제자
의 집을 찾아간 김 선생은 그 아이의 엄마가 성희라는 걸 알고 놀랐다.
연탄가스죽독이라는 가난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가정이란 점에서 양보를 했을 뿐이다. 김 선생은 검정고시에 낙방하고 연탄가스 중독에 걸려 잠들어버리는 것이 훨씬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연탄난로를 피우고 방문을 꼭꼭 닫고 잠들었던 과거를 되살렸다. 젊음의 죽음이 최상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던 터였다.
그러나 성희는 죽어버리기엔 너무 나이가 많아서 아름다움을 선택하기엔 시기를 놓쳐버린 느낌이 들었다. 거기엔 아름다움보다는 저주의 느낌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눈을 감은 채로 아이의 학부형으로서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무척 노력했다. 그러나 죽음이 당연하게 찾아왔을 때에 그것이 더럽거나 불편한 상태 일까봐서 겁이 났다.
성희는 불편한 죽음에 대하여 항상 걱정이었다. 만약 길에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 가운데에 널부러져 있는 교통사고라든지, 목욕 중에 벗은 채로 쓰러지든지 하는 상태 말이다.
그렇게 되면 더러워진 내의를 다른 사람이 보게 될 것이고, 게다가 죽으 자가 왕년의 인기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소문을 퍼뜨릴 것이다. 죽은 뒤에까지도 부끄러움이 계속된다면 그건 차라리 자살만도 못하다.
“거기서 만나죠.”
돌아누워 있는 성희에게 김 선생은 들어도 그만 듣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듯 중얼거리고 나가버렸다. 그에게는 이미 자살미수자로 들켜버린 셈이었다. 언젠가 카페 <지평선〉에 갔을 때 주전자의 물을 따로다가 그 순서가 엉키어서 그의 옆에서 기다렸던 기억이 이세상일로 살아나왔다. 사람들 누구나 살고 있을 가치가 있는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기희가 거기에서 만나게 될는지도 몰랐다.
성희는 한가닥 가는 거미줄 같은 희망을 잡고 이세상을 다시 일어났다. 현기
증을 일으키며 죽음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정신과 고통스런 육체의 기억이 엇갈리는 감정으로 성희는 빈사상태였다.
거기에 가면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이 분명히 있었다. 한동안 실어증으로 멍하게 앉아 있는 아이가 미워서, 아니 가여워서 성희는 밖으로 쏘다녔다. 마지막으로 성회는 죽을 셈치고 몸을 팔았고, 그 돈으로 콩나물을 사고 쌀을 샀다.
쌀봉투를 안고 성희는 카페 〈지평선〉으로 내려갔다.
이곳이 성희가 발견한 장소 중에서 가장 아늑한 곳이었다. 알 수 없는 생기의 바람이 있었다.
그날도 역시 텅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게 좋았다. 숨어 있는 것처럼 아늑했다.
오랜만에 커피를 마셨다. 알콜중독자가 입원 후에 알콜을 마셨을 떼처럼 머리가 핑 돌았다. 머리를 벽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을 잔다면, 고요한 죽음이 성희를 잠재워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겨우 죽음의 늪에서 빠져나온 날 오후에도 성희는 성공하지 못했던 죽음에의 도전에 대해서 미련을 놓지 않았다. 잠시 머리를 가라앉히고 커피잔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시간이 두시쯤이라 언제나 나타나는 말없는 남자가 내려왔다. 은박지에 샌드
위치를 싸들고 나타났다.
“이런 게 우리집 서재에 있읍니다. 오래된 신문이었는데 거기에 영화광고가 있었지요.”
그가 말하리라고는 예상도 못했기 때문에 성희는 얼른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감았던 눈을 뜬다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혹 눈에 눈곱이라도 끼어 있지나 않을까 염려되었다.
성희는 그대로 눈을 감은 채로 약간 어깨를 움직였다.
“이런 광고였읍니다. 가슴을 드러내고 허벅지를 다 보여주는 그런 사진이었읍니다. 아름답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지난날을 기억해내기 위해서 행복한 자료였다고 할까요? 한번 안 보시겠읍니까?”
“지금의 저와 무슨 상관있다는 겁니까? 나는 지금 늙은 여자로 하루 살아가
기가 힘들어서 헉헉대는 여자에 불과한데요.”
그다음엔 그는 조용했다. 말하기 힘든 사람하고는 말하기 싫은 사람이다. 어쩌다가 처음으로 말을 걸어본 것인데 역시 본 위치로 되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벽에 못을 박는 소리가 머리를 때렸다. 실제로 머리에 충격이 왔다. 견디어내지 못할 만큼 못질이 계속되었다. 성희는 벌떡 일어났다. 돈바구니에다가 커피값을 던져넣고는 밖으로 나가려 했다. 거의 동시에 못 치는 소리가 멈추며 성희의 팔을 붙드는 손이 있었다.
“잠깐만 더 기다려주시면 끝나는데요. 미안합니다. 난 판화를 그리는 엉터리 화백입니다. 신이라고 합니다. 제가 차 한잔을 더 살 테니까 나하고 말씀 좀 나눕시다.”
성희는 신 화백이 하도 허겁지겁 붙잡는 걸 보고 웃음이 나왔다. 정서불안이거나 다소 비정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정식으로 인사한 적도 없는 남자가 이
처럼 피부를 맞댄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세상에서 정상적인 사람은 얼마 있지 않다니까.
성희는 말없이 그가 잡아앉히는 대로 의자에 눌러앉았다.
신 화백은 다시 벽에 못질올 했다.
아홉 번 만에 못 박은 일을 끝내고 종이에 잘 포장된 그림을 풀어서 걸었다.
“바로 걸었나 좀 봐주시겠소?”
성희에게인지 샌드위치를 먹던 준식에게인지 애매하게 부탁했다. 그 사람도 성희도 다 그 그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꽃과 가위 그리고 물방울이 맺힌 유리컵이 그려져 있었다.
“꽃꽂이협회 간판 같군요.”
그 사람이 입에 잔뜩 샌드위치를 물고 말했다.
꽃꽂이는 생명의 영원한 휴지작업이다. 아니 꽃꽂이는 생명의 절단작업이다.
꽃꽂이는 아름다움의 순간을 정지시켜보는 작업이다. 보다 오래 보다 인상적으로 효과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나누자는 것이다.
신 화백의 꽃과 가위와 유리컵과의 그림하고는 아무 연결도 없는 꽃꽂이를 두고 말씨름을 하는 어리석음을 세상일이라고 설명한다면 진정으로 웃을 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신 화백이 그린 판화의 꽃은 붉은 피였고, 가위는 생명의 절단이며, 유리컵은 물로 씻어지는 인간의 발자취를 의미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
이상하게도 벽의 구석에 걸려 있는 판화의 존재가 이 카페를 무겁게 눌렀다. 성희는 그림을 전혀 볼 줄 모르지만 아름답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충분하다고 신 화백은 일그러진 입으로 파이프를 물며 만족해 했다.
이런 그림이 어째서 한 장도 팔리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성희에게 반문했다. 이 사람도 밥먹기 어렵겠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성희는 그의 그림을 다시 봤다.
꽃꽂이 간판을 그리니까 안 팔리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혼자서 피식 웃었다. 기껏 생각해낸다는 것이 그런 것이라니. 성희는 아무 쓸모도 모르는 여자임을 깨닫는다. 옷이나 벗고 몸이나 팔 줄밖에 없는 여자로 있는 게 좋았다.
그는 벽에 걸린 판화에다가 정가를 붙였다. 십만 원이라고. 그리고 그 옆에다가 괄호를 하고 한정작품이라고 썼다. 얼마든지. 찍어낸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사연이었다. 한 장이건 두 장이건 그림이 팔리지 않을 게 뻔했지만 그는 그것에 희망을 걸었다.
정형외과 의사가 시계처럼 나타났다. 신문 한 장을 들고 옷깃에 묻은 먼지를
털며 들어섰다. 그가 나타나면 실내는 인간들이 인간의 물리적인 상태로 돌아갔다. 구성 원소로 되어 있고, 그 요소들 사이의 구조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에 따라 그 형태가 다른 인간이 된다는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없다.
수술대 위에 누운 인간은 회전통 속에서 털이 벗겨지고 내장을 다 드러내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월수 사백만 원이란 게 공연히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 잔인함에 대한 대가였다. 사형장의 집행인의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았나. 그러나 그들은 간단한 그리고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 집행하도록 얼마나 노력하는지.
그는 성희의 주름진 눈가를 유심히 보았다. 성희는 살짝 고개를 돌려서 그의
시선 밖으로 도망쳤다.
“며칠 오시지 않으셨더군요. 무슨 일이 있으셨읍니까?”
“아뇨. 그저 먹고살기 바빴지요.”
정형외과 의사는 카운터 뒤에 두었던 가방을 옮겨왔다. 그림자 하나 생기지
않는 밝은 방 가운데에다가 가방을 열었다. 반짝이는 스테인레스 기구들이 나왔다. 깔아놓은 초록색 보자기에 던져지는 기구들은 수술기구들인 것 같았다.
성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좀 도와주시겠소?”
샌드위치를 먹던 말없는 준식에게 소독된 장감을 건네주며 부탁했다.
“난 아니요.”
그 남자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럼 신 화백은 어떻소?”
성희는 의자에 비스듬히 앉은 채로 눈까풀을 찍어올리는 수술을 받았다. 성희는 얼굴을 수없이 뜯어고치면서 일생을 보냈다. 볼에도 주사를 놓아서 꺼진 볼을 살려놓았고 코도 깎고 입술도 잘라냈다.
써억써억 눈밑 까풀이 잘려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성희는 정형외과 의사와 신 화백의 잡담을 들었다.
한참만에 김 선생의 목소리도 보태졌다. 그들의 화제는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한 사람으로 집중이 되어 있었다. 전직이 의사인 남자의 얘기가 분명했다. 지금 현재 성격이상자인 남자지만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걸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모양이었다.
어떤 이유인지 희미한 음성으로 들렸다 끊어졌다 했지만 수술에 관한 얘기라는 것으로 좁혀졌다.
수술이 끝날 때쯤에는 성희의 청각도 바테리가 다 나간 라디오의 소리처럼 들렸다.
사백만 원이란 월급을 쓸 데가 없어서 고민이라는 정형외과 의사는 차값도 남의 것을 내줄 줄 모른다. 그대로 저금통장에 쌓이는데 이제는 사는 게 아무 재미도 없어졌다는 말을 했다.
사는 물건마다 써보지도 않았는데 신형이 새로 나오고 그럴 때마다 바꾸는 것도 바보스럽고 결국 그의 집 서랍은 골돌품가게 같았다. 그러다 보니까 자기는 뒤떨어진 세상을 절름거리며 살고 있는 인간으로 초라해진다는 말이었다. 그가 호소하는 이유있는 고백은 그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의 아내는 십년을 입은 오버코트가 버리기 아까와서 기다렸더니 유행이 다시 돌아와서 다시 입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잠옷은 한 달에 한번이나 빨아입을까, 도대체 잠을 잘 때엔 입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해지지가 않는다. 그러니 새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마 십년은 넘은 옷이다.
낡은 것만 집안 가득히 차 있는 집에서 살맛이 안 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낡은 물건들을 모두 김 선생한테 싸게 불하하고 다시 장만하는 게 좋은 방법이 아니겠냐는 말이 나왔다.
김 선생은 양장점 하는 민식이엄마한테 이혼당하고 허허로운 아파트로 쫓겨났다. 아직 숟가락도 사지 않고 밖에서 사먹고 살고 있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훨씬 마음이 가라앉아서 이젠 밤에 울지 않는다고 했다. 가구 같은 것을 장만하고 다른 여자를 얻어오든지 길에서 붙잡아다가 며칠 데리고 살든지 해야겠다고 별렀다.
안주머니에서 낡은 저금통장을 꺼냈다. 정신없이 뛰어나오면서도 이 통장만큼은 챙겨들고 나왔으니 이걸 본능이라고 하는 모양이라고 껄껄댔다. 그 얼굴에 선량함이 역력했지만 여자들의 취미는 도시 알 수 없어서 까다롭고 사나운 남자에겐 붙어살지만 순해빠진 남자는 반드시 배신을 당한다.
그러고도 동료 여선생들에게 민식이엄마가 경영하는 양장점을 소개했다. 여자 혼자서 살아가려니 얼마나 고생이 많겠느냐고 안쓰러운 표정까지 덧붙였다. 저 사람이 바보인지 천사인지 알 수 없다면서 그가 말한 민식이엄마가 하는 양장점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들도 언제인가 이혼을 당할 경우 혼자 살 수도 있다는 생각흘 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김 선생이 보냈다면 싸게 해주고 외상도 기분좋게 끊어주었다.
그래서 궁합이라는 게 있다는 말이 옳은 게라구 쑤근댔다. 뭔가 안 맞길래 멀쩡한 사람들이 헤어지지 않겠냐는 말들이었다.
성희가 희복될 시간쯤에 춘식이 다시 나타났다. 낮에 본 인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나타났다. 밤거리에 건들거리며 걸어다니는 건달 같다고 해도 그 분위기가 정확하지는 않다.
“어메? 좋아?”
아마 성희의 수술결과를 묻는 것 같았지만 정형외과 의사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성희의 환부를 들춰보았다. 마치 회진 온 의사 같은 손맛이었다.
성희는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진짜 선생님 같으시네요. 누구세요?”
“나요 ? 돌파리의사요. 죽지 못해서 살고 있는 의사지요. 낮엔 샌드위치나 먹어치우면서 설계사무실을 지키고 밤엔 이 카페의 바텐더요. 낮엔 차를 팔지요.”
“내가 너무 늦은 시간까지 있었나보군요. 어떻게 가죠?”
“여기서 밤을 새워도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나는 저 카운터 뒤로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까요.”
“선생님 이 이 카페의 주인이시군요? 주인이랄지 놀이터에 놀러 나온 아이 랄지 그런 겁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저하고 함께 놀고 있는 친구인 셈이지요.”
“선생님이 이렇게 말 잘하는 남자인 줄 몰랐어요. 그런데 낮엔 왜 말씀이 통
없으세요?”
“야행성 동물이니까요.”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이 웃어댔다. 성희는 따라 표정만 웃는다. 웃으면 안된다고 했지.
카페 〈지평선〉의 주인 준식은 본래 정형외과 의사인 한 박사의 선배로 같은 전문의였다. 이젠 의업을 집어치우고 빌딩업을 하고 있다. 이 빌딩이 병원 건물로 사용하려고 설계하여 아버지가 물려준 것이다. 지금 카페로 열어놓은 이방은 원래 술을 좋아하던 아버지가 홈바로 설계하여 앞으로 외로운 직업인이 될 아들이 쉴 수 있는 장소로 호화롭게 꾸며주었던 곳이다.
처음으로 그가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고 처음으로 집도한 것이 바로 그의 누이동생이었다. 간단하고 쉬운 쌍까풀수술이었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보다 잘해야겠다는 의욕이 지나친 탓인지 수술이 실패하고 그 결과 누이동생의 눈이 완전히 닫히지가 않았다.
누이동생은 그 수술을 비관하고 학교도 집어치우고 집 안에 틀어박혀버렸다.
폐쇄된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그는 누이동생 의 고민이 커갈수록 죄책감이 더욱 커졌다. ,
눈을 뜬 채로 잠을 자야 하는 여자, 그것도 미혼이고 감수성이 강한 나이에 그런 충격올 이겨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안식구들과도 잘 안 만나려고 피하는 누이동생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무거운 쇠사슬이었다. 다행인 것은 책을 좋아하는 성미라 종일 책을 읽고 시간을 보내주는 게 그지없이 고마왔다.
그 사건 이래로 그는 정형외과 의사가 된다는 걸 완전히 포기하고 누이동생이 읽는 책을 함께 읽고 대화를 전화로 나누었다. 그게 그의 일과였다.
그게 삼 년이나 계속되던 어느 날, 그는 그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십자가를 지듯이 생을 청산한다면 누이동생이 용서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 새삼스럽게 용서를 받고 싶어질까. 그건 강요였다. 일방적인 횡포였다. 아무리 누이동생이 오빠를 용서해야 된다고 마음먹지만 그건 불가능하다는 절 알고 있었다.
그런 해방감을 찾아서 그는 세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다. 그때마다 실패했고, 그 사건을 가장 슬퍼하는 사람은 누이동생이었다. 죽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나지
만 오빠를 위해시 죽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오빠는 그 마음을 모르느냐면서 구슬프게 넛두리를 늘어놓곤 했다.
그러나 그 넋두리가 원망의 소리로 높아질 때 그는 그 소리에서 행방되고 싶은 생각이 더욱 고조된다. 뜬눈으로 잠을 자는 여자의 인생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준식은 더욱 어두운 곳으로, 더욱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카페 〈지평선〉도 그의 나음을 잘 말해주는 곳이다. 지평선은 뒤로 조금만 물러나면 숨어버릴 수 있다. 그러다가 조금만 앞으로 나와도 클로즈업된다. 그는 어두운 곳으로 숨어버리고도 싶지만 클로즈업되는 걸 몹시 좋아했던 성격의 남자였다.
밤에는 그런 남자가 나마난마. 낫에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은 남자로 죽어버린 듯이 지내고 있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존재하는 셈이다.
“어쩔 것입니까? 몇가지 가구들을 싼값에 넘기고 새 인생을 사시지요?”
김 선생이 낡은 저금통장을 보여주며 다가갔다. 거기서 십 퍼센트는 소모품을 사도 된다는 예산올 세웠다.
낡은 가구들이 한 박사의 병올 그대로 전염하듯 김 선생의 마음을 병들게 할는지도 모른다. 이혼의 늪에서 더욱 무서운 의욕상실까지 얻어진다면 그건 벼랑에 몰려가 떨어져 죽는 야생쥐 같은 꼴이었다.
“그리고 저 그림은 얼맙니까?”
김 선생은 신 화백에게 묻는다.
“주시는 대로 받습니다. 어차피 안 팔리는 그림이잖습니까?”
“아닙니다. 내 일생에 그림을 사는 것도 처음이려니와 그림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내 인생에 플러스의 에너지가 된다면 그 어떤 약보다도 좋은 게 아닙니까?
수면제보다도 벼랑에서 떨어지는 용기보다도 좋은 것이지요.”
그날로 팔릴 그림이라면 못올 깊이 박을 필요가 없었다는 후희가 온다. 못을 깊이 박은 것 때문에 그림을 팔 수 없다는 이유가 되었다.
“그림을 벽에 붙여둔 채로 사고팔면 되지 않소?"
말없이 앉았던 카페의 주인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중재했다.
그 그림은 팔 그림도 못되는데다가 김 선생이란 남자는 이혼하여 텅빈 아파트에서 마누라도 없는 주제에 그림은 무슨 그림이냐고 덧붙인다면 그 의미가 명확해질 것이다. 벽에 걸어둔 채로 홍정이 월 수 없으므로 그림은 그대로 남았다.
결국 신 화백은 돈 한 푼 없는 가난한 화가로 주저앉았고, 김 선생은 남이 쓰다버린 낡은 가구를 잔뜩 주워다가 집안에 채워놓고 발 디딜 자리도 없는 청승맞은 홀아비로 돌아가고 말았다. 다시 카페 안은 푹 가라앉은 공기가 감돌았다.
성희는 눈을 감은 채로 한 박사에게 물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어요. 어떻게 가죠?”
“될 수 있으면 움직이지 말고 안정하는 게 좋은데, 구태여 가야 한다면 내 차로 모셔다드리죠.”
“아닙니다. 이분의 집은 내가 잘 알고 있읍니다. 우리 학급의 학부형이거든요.”
“그렇게 되던가요?”
한 박사가 양보했다.
그렇지 않아도 낡은 차가 타인만 태우면 엔진이 꺼지든지 잡소리가 난다든지 말썽을 피웠다. 언제나 손님을 모시고 들어가는 날엔 아내가 잠들어 있다든지, 아니면 아내가 샤워중이든지 하는 일이 생기는 게 한 박사가 타고난 팔자였다.
“그렇군요, 그렇지만 김 선생님께 이런 신세까지 지고 싶지 않아요. 걸을 수
있는지만 봐주세요.”
“눈은 완전하게 감기는군요.”
먼곳 카운터에서 준식이 말했다. 누구인가 아까부터 말하고 싶었던 말을 그 자신이 꺼낸 셈이었다.
김 선생은 성희를 부축하고 나갔다. 빨리 구했구나 하는 시선이 그들의 뒷모습에 박혔다.
그들이, 알아차린 것처럼 김 선생은 성희를 자기의 텅 빈 아파트로 데리고 갈 것이 분명했다. 성희는 쌀을 더 살 수 있을 것이고 불편한 죽음이 오는 것을 오늘밤만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옷을 벗기고 검시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쌀을 조금 더 살 수 있다는 것은 기분좋은 삶으로 며칠 더 연장될 수 있는 약속이나 같은 것이었다.
카페 〈지핑선〉의 준식은 바구니에 있던 돈을 모조리 거두어 추렸다.
“신 화백의 그림을 여기에 걸어두기로 합시다. 매일 여기 돈바구니에 모이는 돈을 가져가시오. 그림값이 될 때까지 말이오.”
그동안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림값이 될 때까지 살아 있어야 했다. 살아 있어야 할 숙제가 된다. 따라서 가페 주인은 그림값을 다 갚을 때까지 이 가게를 열어야 한다.
한 박사는 새 가구를 고루려고 가구점엘 다니는 동안 살맛이 날 것이고, 그동안만큼은 퇴근시간 훅에 남아돌아가는 시간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자살은 차가운 휴식이다.
“이런 얘기 들어보았읍니까? 가난한 자를 위하여 자선쇼를 베풀었지요. 어떤 쇼였는가 하면 공개자살올 할 테니까 입장료를 내시오. 그 입장료로 가난한 사람을 도울 것이요, 라는 광고를 냈읍니다. 커다란 운동장에서 어떤 방법으로 자살을 했는지 그것까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 목을 매달아 죽었을 거라고 짐작됩니다. 그 입장객이 만원이었다 맙니다. 공개자살이라면 사람들은 저지시키는 게 선이라고 생각하겠지요. 그건 자기자신올 위한 자기미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자기자신은 잘 알 겁니다.”
“재미있는 말씀이십니다. 공개자살이라. 그 옛날 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을 난
왜 몰랐을까요? 자살할 자격도 없는 놈이 아닌지도 모.르겠군요.”
“진 한잔 드시겠읍니까?”
팔린 그림을 위해서 신 화맥은 술을 사기로 했다.
-끝-
2015년 3월 26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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