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16:17-20).
본문은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입니다. 사랑과 우정이 넘치던 문안 부분(3-16)의 분위기와는 달리 갑자기 주제(主題)가 바뀌기 때문에 당황하게 되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바울 서신의 정석과도 같은 순서입니다.
사도는 서신을 끝마치기 전에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 내에 이단과 거짓 교사와 사탄의 침투를 막기 위해 엄한 경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도 말씀을 마치기 전에,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 6:10) 하고 경계합니다. 고린도전서에서도,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하고 다정한 말씀을 한 다음에,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 지어다”(고전 16:20-21) 하고 엄한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밀레도에서 행한 고별 설교에서도,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행 20:29-30) 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도 베드로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하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구약성경 아가서에서도 사랑을 노래하다가,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아 2:15) 하고 말씀하는데, 사도는 지금 포도원에 침입하는 여우를 경계하고 있는 셈입니다.
①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17) 합니다.
㉠ 17절은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로마서를 끝마치기 전에 마치 길 떠나는 부모가 자녀들에게 문단속, 불조심을 잘 하라고 당부하듯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내에는 화평이 있지만, 교회 밖에는 이 평화를 파괴하려는 사탄의 음모가 틈을 엿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②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하고 말씀합니다.
㉠ 여기서 말씀하는 “교훈”이란 복음진리인데,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는 자”란,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자들을 말합니다. 초대교회에 침투했던 거짓 교사들을 보면 영지주의자, 도덕 폐기론자, 그리고 유대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 이런 자들은 교회 밖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침입한 거짓 교사들입니다. 고린도교회, 갈라디아교회, 골로새교회 등이 “분쟁”하게 된 원인이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현대교회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문맥에서,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20) 말씀함으로 분쟁을 일으키는 배후 조종자는 사탄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서는 뱀을 통하여 침투했던 것입니다.
③ 그래서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17중) 합니다.
㉠ “살피라”는 헬라어 스코페인은 “주시하라, 경계하여 보라”는 말로 우리는 대뜸 주님께서 경계하신 산상 수훈을 상기하게 됩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5-20) 하십니다.
④ “저희에게서 떠나라”(17하) 합니다.
㉠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16)는 말씀은 참 형제지간의 아름다운 교제요, “저희에게서 떠나라”는 말씀은 거짓 형제에 대해 단호한 절교를 의미합니다. 목회서신에서도,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 하고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 이단에 대한 성경적인 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단호한 바가 있는데, 왜냐하면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딤후 2:17)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디도서 3:10절에서는,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말씀하고, 요한이서에서는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니라”(요이 1:10) 하고 경계합니다.
⑤ 왜냐하면 “이런 자들은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18) 하기 때문입니다.
㉠ 이점에서 유념해야할 점은 이단 사상은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계시록 16:13절에는,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합니다. 영적 전쟁은 “말과, 영”이 함께 역사하는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미혹하는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해도, “공교한 말, 아첨하는 말”에는 악령이 함께 함으로 듣지 않은 것만 못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와는 뱀의 유도하는 질문에(창 3:1) 대꾸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상대해 주다 보니까 그럴듯한 말과 감언이설에 순진한 자들이 미혹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⑥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18상) 합니다.
㉠ 이런 뜻입니다. 형식적(形式的)으로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믿는 것 같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혹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용적(內容的)으로는 사도가 1-11장까지에서 증거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고후 4:4)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들이야 말로 그 누구보다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잘 섬기는 사람들인 줄로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⑦ 이 같은 자들은,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18하) 합니다.
㉠ 빌립보 교회에 보면 편지에서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8-19) 하고 개탄을 합니다. “배만 섬긴다”는 말은 물질적인 욕심을 가리킵니다. 사도는 눈물을 흘리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 목회서신에서도,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딛 1:11),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딤후 2:18) 합니다.
⑧ 이점에서 참 목자와 거짓 목자가 무엇에 의하여 분별(分別)이 되는가를 말씀드려야만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경계가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것인 양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목회서신에서, “네가 진리(眞理)의 말씀을 옳게 분변(分辨)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 하고 말씀합니다.
㉠ 첫째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느냐” 여부에 있는 것입니다. 참 교회와 거짓 교회의 표지도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느냐 여부에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우리는 수다(數多)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混雜)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7) 합니다. 사도 당시에 벌써 “수다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였다면, 그로부터 2천년이 경과한 현대교회는 어떠하겠는가? 이점을 부지런히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⑨ 사도는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19하) 하고 말씀합니다.
㉠ 이 세상 풍조는 정반대입니다. 악을 행하기에는 지혜가 최고도로 발달하고 있습니다만, 하나님을 아는 진리에 대해서는 점점 미련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가 하는 점입니다. 다윗은 시편 12:1절에서,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하고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순진하고 순수한 성도와 목회자가 점점 끊어지고 없어져서, 만나기가 어려워가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⑩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20상) 하고 말씀합니다.
㉠ 사도는 “사탄”을 거론합니다. 마귀에 대한 경계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사도가 바로 바울입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보다도 사탄에게 속은 뼈저린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마귀”라는 말입니다. 불신자들만이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그러합니다. 아예 마귀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사도는 로마교회를 향해서 “사단을 너희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하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펴서”, 저희에게서 떠나야하는 것은 로마 성도들이 행해야할 책임이요, 배후 조정자 사탄을 발등상 만드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인류의 시조를 미혹하여 타락케 한 현장에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 3:15) 하고 선언하신 바가 있으십니다.
㉢ 사망의 권세를 잡은 사탄은 십자가 사건, 즉 주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사건을 통해서 이미 상한 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편 110:1절에는,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완전히 발등상이 되는 날은 주님의 재림의 날인 것입니다. “속히 상하게 하시리라”, 즉 속히 오시리라는 말씀입니다.
㉣ 사도는 또다시 “평강의 하나님”(20, 15:33)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평화의 왕”이 오시기 전까지는 죄와 전쟁이 끝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적자 사탄이 발등상 되는 날,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한, 진정한 평화는 올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