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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의 명소 황산,항주 여행기
1. 여행을 준비하며
올 해로 4번째인 무한산악회의 해외여행은 작년 여름휴가 때 다녀온
베트남. 캄보디아 여행 이후 공론화 되어. 올 1월부터 예약을 시작했지만
지원자가 부족해 내가 다니는 현대중공업 통신망인 오피스에 실례를
무릅쓰고 공개 모집을 한 결과 10여명, 박의선 부회장님 가족이 6명,
허충회 전부회장님과 이옥례님, 배영남님 일행이 등이 참가해 26여명의
인원을 모집하는데 성공했고 급기야는 지인들을 대상으로 여행을
권유하면서 어렵사리 35여명의 적정 인원이 확보되었다.
인원 확보를 위해 상당한 힘을 투여한 결과이기도 하다.
여행사 마다 견적을 낼 때 제시한 조건은 먹고 자는 것은 추가비용이
들라도 최상으로 하도록 견적을 받았는데 여행사 마다 거의 같은
가격대였다. 공통경비 예산을 확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행사 편리대로 하게 되면 그곳의 특미를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줄어 들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우선 적극적으로 접근하던 모 여행사를 우선권으로 두고 본격적인
계약준비를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비행기표 때문이다.
당초 4박5일 이었던 상해코스는 비행기 사정으로 그냥 지나가는 들러리
코스였음을 정밀 검정 과정에서 알아냈다.
하루를 할애하여 임시정부 청사, 공원, 고층건물 관광이 고작이다.
그때까지 유력하게 추진을 했던 여행사가 낮은 가격과 비행기표를
확보하지 못해 포기를 했으나 다행히 견적에서부터 50여개의 비행기
좌석을 미리 확보한 후 선택의 희망을 갖고 추진을 해오던 신나라
여행사를 대상으로 추진을 했다.
비행기 삯이 오를 예정 전인 3월23일을 목표로 일정을 변경하는 변화를
꾀하고 회원들을 모집 했다. 여행비 67만원도 우리가 제시한 조건에
맞추려면 32명이면 어려운데 50명이 되었기에 여행사로서는 수지면에서
가능했다.
주변에 참으로 싼 가격의 여행상품이 많았다. 함정이 있다. 상품의 질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평균가격으로 가격을 정하고 더 낮은 가격으로
접근해 온 여행사는 과감하게 배제했다.
10여일을 남기고 여행사실이 백방으로 알려지면서 추가 회원 5명이 더
왔지만 비행기 좌석을 구하지 못해 결국 포기를 해야 했다.
50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제반 준비를 시작,
설명회를 개최하고 안내 홍보를 하는 등 모든 준비를 마쳤다.
大인원이 간다고 걱정이 많은 김초자님의 성원에 힘입어 박옥희 총무와
함께 문어 안주에다 김치 등 제반 밑반찬과 안주를 부족함 없이 넉넉하게
준비를 하느라 참으로 노고가 많았다.
기장까지 가서 문어를 사고 진공포장도 하고.. 하여간 정성으로 준비
해온 그분들의 정성이 마음에 걸려 여행 내내 남은 음식을 들고 다니는
수고를 감수했고 급기야는 그것들을 알차게 다 소비를 했다.
사실을 잘 알면서도 왜 이런 것을 준비했냐고 선동조로 말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해 할 수 없었다.
2. 장도에 오르며
방어진에서 8:30에 출발한 김해공항 가는 버스가 출발 하면서 여행은
시작 되었다.
부산에서 탑승하는 3명을 제외하고 가는 도중 강종수 직전회장님의 인
사와 전반족인 일정계획을 발표했고 중국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사전에 Study한 내용을 중심으로 설명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계의 중심에 서겠다는 중화인민공화국은 남한의 100배, 한반도의 44배
크기로 사회주의 국가로 철처한 규율속에서 운영하고 있는 나라다.
56개 민족이 살고 있고 94%가 한족이다.
한족은 1명, 그외는 2명의 자녀를 둘 수 있고 월급은 평균 30만원 수준.
점심식사를 위해 준비 해 온 주먹밥과 김이 상큼하게 구미를 당기며
맛이 있었다. 버스안에서 먹든 그 찰밥으로 된 주먹밥이 추억스럽다.
저마다 부푼 여행의 꿈을 마음과 가방에 가득 담고 13시에 김해공향을
이륙을하여 1시간 40분 만에 항주국제 공항에 안착을 한 일행은 본격적인
항주 여행을 시작했다.
상해에서 특별히 초빙한 교포 3세인 미모의 아가씨 김은희양의 가이드의
인사가 반갑다. 30세 외동 딸로 아직 미혼이다.
중국에서의 가이드는 인기직업이다.
한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가이드는 월급이 없고 팁제도 이기에
그들은 참으로 열심히 설명을 하여 팁을 많이 받거나 쇼핑에 인원을
동원하는 것을 통해 벌충을 하고 있다고 한다.
3. 항주 서호에서 뱃놀이를 하다.
上有天堂 下有蘇杭’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고
했다. 퇴근시간이라 붐비는 도로를 타고 중국 10대 명소인 서호를
향하면서 40여분 동안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진다. 항주는 중국 인구의
70% 농업인구 및 농가 중에서 가장 부자가 많은데 이유는 국가에서
70%를 수매 해 주는 유명한 브랜드인 용정차를 재배하기 때문이라 한다.
한국의 보성차와 자매결연을 맺은 이 차는 국차로 각광을 받고 있다.
농업인구가 많아서 그들의 국민 총생산은 우리의 1/10 수준이다.
항주는 23개 성 중에 하나인 절강성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형 농업도시다.
온화하고 따뜻한 기온으로 인해 3모작을 하고 있는데 1모작은 유채꽃
농사다. 2층집 농가가 즐비한 시내에는 대련에 이어서 중국에서 두
번째로 잘 정비된 녹화사업과 지천에 환한 유채꽃이 만발하여
흐드러지게 자라고 있었다.
비가 많이 오는데 폭우가 아닌 보슬비 수준의 비가 220일 이상 내리는
이곳은 그런 자연환경에 잘 어울리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 습기
때문에 1층은 주차장, 주방, 창고로 활용을 하고 지붕은 냉장고나 난
방이 필요가 없어서 굴뚝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호텔에 냉장고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다.
사각형의 옥상에 옥탑방이 눈에 띄었는데 조상의 위폐를 모시는 곳이라
한다. 묘지가 불허되고 있는 중국은 납골당에서 5년간 모셨다가 의무적
으로 없애는데 항주의 부농들은 지붕에 조상의 위폐를 모신다 한다.
중국의 엄마 강은 황하강 이지만 항주의 엄마 강은 전단강이다.
그 강을 지나고 긴 농가를 벗어나 서호로 향했다.
-서호의 뱃놀이용 소형 배-
중국 10대 관광지는 만리장성, 계림, 황산, 대만의 일월당 등이고
서호는 그중 하나다.
이곳 농민들이 투자하여 만든 터널을 지나자 서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서호는 항주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유명한
미인 서시(西施)를 기념하는 의미로 서자호(西子湖)라고도 불린다.
서시는 중국4대 미인 중의 한 사람으로 호수가에서 빨래하는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지 않고 가라앉았다고 하여
침어(沈魚)의 미인으로 불린다. 서호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 싸여있으며
호수에는 소영주와 밤7시가 되면 쇼를 한다는 호심정과 완공돈 등 3
개의 섬이 떠 있다. 총 면적이 61㎢이고 그 중 수역 면적은 5.7㎢이고
수심은 3m도 안되는 평지형 호수이지만 강 바닥은 뻘로 이루어져서
매우 위험하단다.
-서호-
낚시와 빨래와 수영을 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배도 작은 통통배
수준인데 오염방지를 위해 모터로 운행을 한다. 전단강 물을 끌어들여서
33일 마다 한 번씩 호수물을 바꾸는데 이곳은 수양제가 만든 북경과
항주간의 1,944km 경항대운하와 닿은 곳이기도 하다.
고기는 밑바닥의 풀이 자라는 것을 막기 위해 초어를 양식하고 민물조개를
양식하며 연꽃을 재배하며 호수를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에 호수 깊은 곳에 다섯 개의 구멍이 뚫혀서
15야 밝은 달을 볼 수가 있다는 삼담인월이라는 석탑이 눈에 띄었다.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소동파가 조성하였다는 길이 1.5km
제방(蘇堤)을 따라 유람선 선착장으로 다시 돌아 왔다.
중국돈 일원짜리 지폐에 삼담인월이 찍혀있을 만큼 유명한 곳이다.
금방이라도 침어의 여인 서시의 그림자가 나타날 듯 호수의 수면은
거울같이 맑고 잔잔하였다.
안개가 끼었을 때나, 달 밝은 밤, 또는 일출 때 가장 아름다운 서호의
자태를 볼 수 있다고 하나 우리에게는 그런 여건을 가질 수가 없었다.
유람선을 타고 1시간 가까이 서호를 한바퀴 둘러 보았으나 서호의
참 멋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을 가지지 못해 소문과는 달리 흡족한
기분을 주지 못하고 마음 한 구석이 비어 있는 느낌이었는데
내려서 직접 보지 못한것에 불만을 토로하는 한 아주머니의
마음을 이해 할 법도 했다.
멀리 산 위에 영화 ‘청사’의 주인공 백구렁이 백소정(왕조현 분)이 금
산사의 주지 법해에 의해 갇혔다던 뇌봉탑이 보인다. 전설이 깃든
뇌봉탑의 전경을 서호와 함께 카메라에 담았다.
순금으로 만든 지붕꼭데기가 빛나 듯 보인다.
-13층 육화탑-
시간에 쫓겨 빠른 걸음으로 항주의 마지막 여행지인 육화탑을 찾았다.
육화탑은 항주시의 남쪽 교외 전단강가의 월륜산에 있는 육각형 모양의
13층 탑이다. 북송 개보(開寶) 3년(970년)에 전단강의 대역류를 막기
위하여 당시의 건축계의 거장 유호(喩皓)가 목경삼수(木經三首)를
근거로 하여 설계하고 세운 탑이라고 한다. 탑의 높이는 59.89m이고
외관은 13층이나 내부는 7층으로 나선형 계단을 이용하여 올라 갈 수
있게 해두었다고 한다. 탑에 올라가지는 않았으나 육화탑이 서 있는
곳에서 바라다보는 전단강과 4층 대교의 전망이 좋았다.
저녁은 부농과 습기가 많은 영향으로 외식문화가 활발한 항주에서 했다.
안주로 좋은 동파육과 초어 그리고 영계로 만든 거지닭고기가 나오는
특식을 했다. 동파육은 북송시인 소동파가 즐겨 먹었던 음식인데 돼지
비개다. 초어는 귀하고 비싼음식이라 한다
특식을 위해 계약당시 공동경비 중에서 일부를 부담하는 조건으로 나온
특식이었는데 회원들이 미리 알게 되면 혹시나 실망을 할까 염려가 되어
개괄적인 사실만 발표를 했다.
하여간 특산 음식을 선택하기 위해 여행사에서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지만
회원들 각자의 음식에 대한 만족도는 자신들만 알고 있으리...
위 : 동파육, 아래 : 거지 닭
밤새 황산으로 가기 위해 3.5시간 고속도로를 달렸다.
한적하고 어두운 암흑지대를 달리는 53인승 버스는 간격이 좁아서 좀
불편했다. 듬직하고 조심성이 많은 기사양반의 안전 운행으로 밤 11시경
황산에 도착하여 4성급으로 고급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가이드가 황산전문인 현은준 군으로 바뀌었다. 25세의 억센 사투리를
상요하는데 이곳의 밤 문화를 탐방하기 위해 우수호와 현지가이드를
꼬드겨서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거리로 나섰다.
예정에도 없던 일인데 몇몇 산우들이 우연하게 합류를 했다.
문이 잠긴 거리의 상가들을 지나 택시를 타고 한국인이 경영하는 꼬지
음식점으로 갔다.
돼지고기를 꼬지에 꼽아서 바베쿠 구이 형태로 연탄불에 굽어서 1만원
짜리 50도 중국술을 마시며 그곳의 생활상을 엿보았다. 한국 가이드들이
주로 찾는 그곳에는 중국식 밤 문화가 용트림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4. 황산을 오르다.
황산을 오르지 않으면 산을 논하지 말라고 했던가.
밤새 요란한 빗소리가 났다하니 우중속의 황산을 볼지도 무른다는
우려를 안고 비가 내리는 호텔을 나섰다.
일년중 220일은 비가 온다니 말이다.
-비치계곡 앞에서-
황산은 우리의 읍크기의 자그마한 농촌마을이다.
황산시내에서 황산풍경구까지는 1시간이나 걸리는 꽤 먼 거리였다.
가는 도중 채소밭과 차밭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여기서 생산되는 차가 황산 모봉차(毛峰茶)인데 중국 삼대 명차에
속한다고 한다.
황산에 오르기 전에 오전에는 두 곳을 먼저 들렀다.
-안개낀 목장에 말이 노닌다-
화산미굴과 비취계곡이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달리다 넓은 벌판에 말들이
풀을 뜯고 기척에 병풍처럼 둘러 선 산들이 안개에 갇혀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인력거를 타고 500여 미터를 지나자 출렁 다리가 보이고 봄꽃이 만발한
골짜기를 지나쳤다. 이곳의 꽃들은 날씨 탓인지 멋이 없어 보인다.
100여 미터를 더 지나니 거대한 동굴이 가로 막고 선다.
화산미굴인데 40여분을 구경할 만큼 거대한 굴이었다.
-인력거, 500m 이동하는데 인당 1,000w이다-
1960년대 한 농부가 발견한 이 동굴은 약 1,700년 전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발견된 석굴이 36개 중에서 가장 큰 석굴로
면적은 12,600m2, 굴 내부의 최고 높은 곳은 30m나 된단다.
산악지대라서 군데가 주둔했을 거라는 추측만 되고 있다.
2001년 5월 20일에 강택민 주석이 참관한 후 화산석굴(花山石窟)을
수수께끼 미자를 써서 화산미굴(花山謎窟)로 고쳤다 한다.
-화산미굴로 가는 출렁 다리의 전경-
시간이 더 지나자 비는 그치고 맑은 햇살이 기분을 맑게 했다.
그 햇살 고운 하늘을 바라보며 무한산악회가 가는곳에는 비가 그친다는
전설을 이어갔다. 운인지 하여간 비는 멎고 햇살이 났다.
황산을 오르는 워밍업으로 6km 길이의 비취계곡을 탐방했다.
밤새 내린비로 개울물이 불어나 물소리가 요란하고 강 주변에는
초대형 대나무가 산능성이에 가득 했다.
물맛이 좋고 청결했다. 1시간 가까이 도보로 움직였다.
성적이 우수한 중국의 유명대학교 출신 남녀 24인을 특별히 이곳으로
초청하여 데이트를 시켰는데 그중에서 10쌍의 부부가 탄생했다 해서
데이트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한다.
-비치계곡 상류의 모습-
여행사에서 비옷과 지팡이를 찬조해 주었다.
여행경비는 깎는 것이 아닌데 경쟁을 하느라 낮은 가격에 책정 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고, 몇 번이나 찬조까지 해주니 미안했다.
오는 도중에 비단을 만드는 공장 견학을 했다. 누에에서 잉태되는
비단의 묘미에 아내에게 줄 스카프를 샀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모습-
이제 황산으로 가기 위해 버스는 왕대나무 숲이 우거진 산비탈 길을
굽이굽이 돌아 황산을 오르는 운곡 삭도장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북해구역에 있는 운곡령 휴게소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여전히 햇살이 비춰 주지만 가끔 먹구름이 지나갔다.
우리나라 절 입구의 간판처럼 거대한 황산의 입구가 나타나고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20여 미터를 올랐다.
수많은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50인승 케이블카, 황산에는 이런 곳이 세군데 있다-
기다림이 끝나자 케이블카가 당도했다.
요금 약 8,000원 왕복 16,000원 황산관광비 약 20,000원 일본인이
만들었다는 케이블카 를 타고 황산으로 오르는 8분간이 황홀했다.
웅장한 자태를 보여는 첫 눈 맛이 괜찮았다.
아래쪽 등산로가 확연히 보이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눈에 띄자 저절로
걷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황산의 낮은 지역은 대나무 숲이 울창하고 고지 대는 소나무가 가히
일품이라 한다.
8분 후 백아령에 도착해 너무도 황홀한 풍경을 감상했다.
한국에서 화물로 부쳐온 문어와 김치가 걸림돌이 되어 짐꾼에게 맡겨
3만원을 주고 호텔로 미리 보냈다.
황산은 중국 10대 관광지 중 하나로 1990년 12월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제일 높은 연화봉(1860m)을 위시하여 72봉이 연이어 있는 산괴(山塊)
로 아름답고 수려한 산세로 중국인들에게 제일의 명산으로 손꼽히고 있다.
-서부대협곡 계단에서-
등소평의 지시로 설계 및 조사에 12년, 작업을 하는데 9년 도합 21년에
걸쳐 완공했다 한다.
운곡령에서 광명정 까지 가파른 길을 올랐는데 약 20여분 걸렸다.
황홀한 황산의 모습이 보이자 안개가 산을 덮어 버린다. 기쁨은
순식간에 안타까움으로 변해 우울함을 잉태하게 했다.
안개가 빠르게 움직이며 산허리를 감고 돈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이슬비가 내려 산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안개 속에서 바라본 절경은 그런대로 운치가 있었다.
산자락을 굽이굽이 휘감아 도는 안개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감탄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꿈속을 걷듯이 걸으며 황산이 주는 향연을 만끽하고 있다.
-높이 21m의 비래석-
손오공이 하늘을 날다 복숭아를 먹다가 던진 것이 바위가 되었다는
비래석은 높이 12m의 거대한 바위로 하늘을 향해 호소를 하고 있는
듯 했다. 남자는 왼손, 여자는 오른손으로 바위를 세번 만져야
소원이 성취 된다고 한다. 4번은 아이를 잉태 한다는 말에 웃음이 난다.
마지막 코스인 배운정의 황홀한 바위를 보니 황산이 왜 유명한지를
알것 같고 솟아 올라 멋을 구가하는 대자연의 조화에 감복만 했다.
-황산의 짐꾼-
두 시간 가까이 걷는 도중에 대나무 반으로 쪼갠 것 두개를 붙인 막대를
어깨에 걸고 앞뒤 끝에 허리가 휠만큼 무거운 짐을 달아 메어 나르는
짐꾼들을 여러 번 목격했다.
대부분 산 위의 호텔이나 식당에서 쓸 식료품과 일용품을 나르는 고
용된 직원들이다.
그들의 고통스러운 얼굴표정 힘들게 하고 사실인지 모르지만 그러한
직업을 얻기 위해서 많은 뒷돈이 들어간다 했다.
황산에는 짐꾼도 있지만 노약자를 위한 들것 의자도 있었다.
집이 없는 가마 같은 것으로 가운데에 의자를 놓고 두 사람이 메고
다니는 것으로 중국에서나 볼 수 있는 색다른 발상이 며 하루 이용에
중국 돈 550원이라고 했다.
배운정의 멋진 모습이 안개속에서 유별히 눈에 띈다.
-배운정 부근의 선경-
짙은 회색 안개를 몸에 안고 서해대협곡으로 갔다.
그림에서나 볼 수 있었던 수려한 풍경이 황홀하게 했다 안개 때문에 다
보는데도 한계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감동을 받았다.
안개 속에서 꿈을 꾸듯이 서있는 저 무릉도원. 내일 아침 여건이 되면
다시 오기로 하고 숙소가 있는 북해관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인간이 만든 오묘한 길과 계단이 바위와 안개 그리고 소나무와
어우려져서 한편의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중간에 서있는 단결송을 보았다.
1개의 가지에서 2개로, 2가지에서 4개로, 4가지에서 8개식으로 총
56가지가 뻗어있는데 강택민 주석이 보고 중국의 56개의 소수민족과
닮았다고 하여 단결송이라고 명명했다 한다.
안개속에 묻힌 소나무가 운치있게 표출되고 있다.
-강택민이 명명한 단결 소나무-
저녁식사가 끝나자 애써 가져온 문어를 안주로 식당을 대여하여 1시간
가까이 피로연을 가졌다. 저마다 우울했던 마음을 위로하며 맥주와
소주 그리고 중국술로 한 잔을 했다.
위하여를 외치며 여행의 맛을 돗구는 파티를 열었다.
특히 3조는 한국인 특유의 즉석 흥행을 즐기며 늦은 밤의 소야곡을
울리며 즐겼다.
-사랑의 언약 자물쇠-
현지 가이드인 연변 총각의 코고는 소리가 자장가로 변해 잠 못 이루는
밤을 만든다. 밤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잠을 뒤척이다가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밖을 둘러보았다.
아 ! 어두운 하늘에 빛나는 초롱초롱한 저 별들의 합창.
급히 옷을 입고 사람들을 깨웠다.
하나 같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깨어있었다.
10여명의 사람들을 대동하고 1시간 걸리는 서부대협곡으로 향했다.
어둠을 뚫는 숨소리가 가빠지고 일출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서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대부분 한국사람들이고 중국인들도 많다.
중국인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어둠을 뚫고 황산을 오염을 시킨다.
사랑의 결연을 다지며 쇠로된 열쇠를 걸어 둔 난간이 이채롭다.
-새벽에 본 서부대협곡-
30분 만에 협곡의 끝자락에 당도했다. 여명이 떠오르는 6km 협곡은
아직은 잠을 자듯 조용하다.
숨 가쁜 시간이 흐르자 여명이 밝아오고 그 아래서 펼쳐지는 너무도
황홀한 저 모습. 사진은 조명이 약해 잘 찍히지 않는다.
한 동안 숨을 죽여 그 맛을 보아야 했다. 눈 맛이 너무도 좋다.
햇살에 얹혀서 모습을 드러내는 산수는 정말 신비롭기만 하다.
경치는 그들의 말 그대로 천하제일의 선경이었다.
눈길 주는 곳마다 모두가 아름다운 한 폭의, 잘 그린 산수화였다.
어떤 표현으로도 형요하기 어려운 것이 이럴때이다.
싱의 손으로 빚은 듯 오묘하고 신비스럽기만 한 산의 모습이 너무
황홀하고 멀리 비래석과 연화봉의 멋이 다가 온다.
-서부 대협곡의 가파른 암석에 자라는 수십년 된 소나무-
공작새를 닮은 기이한 소나무가 있어 카메라에 담았다.
한 기둥에서 갈라져 쌍둥이 형제처럼 사이좋게 자란 두 소나무를
團結松이라고 하고,
바위에 붙어 가지를 하늘에 늘어뜨린 소나무는 迎客松이라 하였다.
지나가는 길에 허리를 구부린 체 서있는 나무는 陪客松이라 하였다.
-유명한 일출의 명소인 사자봉에서 본 일출 광경-
일출을 보러 사자봉 까지 갔던 일행이 돌아오는 시각에 맞춰서 당도했다.
식사를 마친 후 짐을 챙겨 하산하기 위해 20여분 걸어서 케이블카가
있는 운곡령으로 갔다.
마지막 사진을 찍고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
아름다운 절경에 도취되어 마음이 흐뭇하고 즐거움이 저절로 인다.
저 무릉도원을 배경으로 일행은 몇 번의 단체사진을 촬영함 후 아쉬운
마음 가득안고 아름다운 황산을 두고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을 시작했다.
-명대 거리-
황산시내로 다시 돌아온 일행은 황산시내에 자리한 명대 옛 거리에
들렀다. 동서로 길이가 1.5km 정도의 거리로 명 청 때 상업이 흥하던
거리로 그 명성을 유지하려는 듯 옛날 상점의 분위가 그대로 남아있다.
거리 양편으로 줄지어 있는 수십 여개의 상점에는 문방사우, 서화골동,
한약, 차, 도자기 등 다양한 중국 전통 물건들이 준비되어 있었으나
대부분 조잡하고 볼품이 없는 상품들이다.
깨로 만든 과자를 한 봉지 샀다. 그것이 가장 마음에 맞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문화의 차이와 수준을 어느 정도 이해를 해애 할지 망설여진다.
5. 항주 영은사와 송성쇼에 매료되다.
버스로 4시간의 달림 끝에 다시 항주로 돌아 왔다.
사회주의 규율에 엄격한 기사의 행동 자세가 감동적이었다.
시속 80km 고속도로 곳곳에 속도계가 설치되어 있어 달릴 수도 없다 한다.
다른 지역에서 온 버스는 위반을 해도 추적이 어려워 마구 달렸다.
성질 급한 한국 사람들은 그것도 불만인지 투들거린다.
늘 비교에 익숙한 우리의 성격탓인지 만만디의 중국인과는 차별이
되고 있음을 감지 했다.
집나오면 고생이란 말이 실감이 난다.
-유채꽃 밭, 온 천지가 유채꽃 밭이다-
오는 도중 곳곳마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꿀을 따다가
버스 앞 유리에 부딪힌 벌들이 죽으면서 터트린 꽃술이 참혹했다.
길고 먼 달림 끝에 항주에 당도하여 첫 날 시간에 쫓기어 주차장까지
갔다가 못 본 영은사로 향했다 중간에 의무적으로 들러야 하는 매점도
기본 벌금을 물리면서 추가로 강행한 것이다.
하여간 시간을 아껴 줄것을 간곡히 요청했는데 어떤 상홍이 될지를 몰라
말은 못하고 그저 기다림으로 일관했는데 이런 이유에서 였다.
강력한 나의 요청과 여행사의 힘이 작용하여 어렵사리 영은사를 갔다.
-영은사 입구의 비래봉과 동굴. -
영은사(靈隱寺)는 항주 서북쪽에 위치해 있고 비래봉(209m)을 마주하고
있다. 거대한 바위인 비래봉 중턱에는 72개나 되는 석굴과 바위에
10~14세기경에 조각한 석불 330여 개가 산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인
자한 관음보살상이 있고 우스꽝스러운 배불뚝이 달마상도 있었다.
영은사는 동진시대에 인도 승려 혜리(慧理)에 의해 지어졌으며,
선종 10대 사찰 중의 하나 이다.
천왕전에는 운림선사(云林禪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청대 강희
황제의 자필이라고 알려져 있다.
강희 황제가 남쪽지방 을 순찰하던 중 북고봉에 올랐는데, 구름이 자욱하
고 안개가 덮인 곳에 영은사가 있는 것을 보고 이 네 글자를 생각해
냈다고 한다. 신선이 숨어있는 곳이라 했다.
중국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고 불교는 전체 신앙인의 약 3% 수준이라 한다.
이곳은 수도하는 절보다도 관광객 유치를 위한 절에 가까웠다.
천왕전에 들어서니 무시무시한 사천왕상이 있었다.
하나 같이 한쪽 발을 들고 앉아있는 모습이 특이했다.
대웅보전은 높이 33.6m나 되고 중국 저명한 건물 중 하나로 보전 안에는
24.8m의 여래불상이 있었다. 대웅전 뒤에는 설산에서 수도하는 피골이
상접한 석가모니를 맨 위로 하여 각각의 위치에 500보살의 모습이
새겨진 조각상이 있었다.
부처상 옆에는 영양과 원숭이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불가에서 고기를 안
먹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두 번째로 좋아한다는 웃는 얼굴로 배가 나온 달마대사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중생의 모든 나쁜 일을 자신이 받아들이다 보니
배가 불렀다고 껄껄 웃는다.
오백나한전실에 들렸더니 동으로 만든 504명의 보살들을 모시고 있었다.
-영은사 내부-
이곳은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위대한 보살들을 모신 곳인데,
그 숫자가 무려 504명이나 된다고 한다. 오백나한 가운데서도 중국인에게
가장 추앙받는 인물이 바로 신라인 지장보살 김교각 스님이다.
지장보살을 포함한 네 보살은 별도 공간을 만들어 다른 보살들과 달리
특별히 모시고 있었다. 김교각 스님은 신라 성덕왕의 맏아들로 24살
때인 719년 당나라로 건너와 75년 동안 수도 교화하다가 99세(794년)
때 입적했는데, 중국에서는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으며 '김지장'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중국인들 사이에선 김지장 보살에게 와서 기도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영은사를 찾는 불자들이
빠뜨리지 않고 찾는다고 한다.
지금도 안휘성 구화산 화성사 육신보전의 등신불로 남아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이 먼 이국인 중국에서 세계의 모든 불자들에게 추
앙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게 해 주었다.
-송성 쇼 제1막의 화려한 장면-
야행은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저녁식사를 할 차례다.
호텔입구에는 결혼식을 위해 신랑신이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의 혼인풍습은 규모도 크다.
8자를 좋아하는 중국인들 답게 우리돈으로 부주는 4,6,8만원이고
조사는 3.5.7만원 이라 한다.
신랑이 거의 다 준비를 하고 식은 보통 밤 6시에 한다.
신랑신부는 친구들과 밤새도록 놀다 다음날 신혼여행을 가는데
하여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 간다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계약당시에 특별하게 주문을 한 특식을 하러 이곳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식당으로 갔다.
단체이고 사전에 맞춤식 예약이 안 되면 어려운 특식이다.
여행사의 기본에다 공동경비를 보태서 만든 음식인데 순차적으로
11가지의 음식이 나왔다.
중국 음식이라서 그런지 만족하지는 않았어도 늘 먹는 음식인데
이곳에서 가장 선호한다는
특산음식을 먹는 것도 여행의 가장 큰 일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송성 쇼-
송나라시대의 성인 송성에서 이곳 항주의 전설과 사랑을 각본한 쇼가
너무도 화려하게 펼쳐진다. Acctive하게 움직이는 무대가 인상적이다.
800억을 들여 지었다는 화려한 무대를 꽉메운 가운데 4편으로 나누어
펼쳐??다. 화려한 의상과 무대장식이 황홀하기만 하다.
과히 중국다운 맛을 풍기는 쇼였고 그들의 문화성을 엿보이게 했다.
막 판에는 한국의 관광객을 의식하여 아리랑을 주제로한 무대가 한동안
펼쳐졌다.
감동적이었다. 이것이 애국이 아닌가 싶었다.
-송성 쇼-
런던에서 파리에서 스위스에서 로마에서 호주에서 뉴질랜드에서
터어키에서 이집트에서 내가 갔다 온 그들 나라에서 꼭 한국 음악이
나오는데 아리랑과 모 가수가 불렀던 만남이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 순간 아, 나는 과연 자랑스러운 한국인이구나
하는 인식을 느꼈는데 중국 항주에서의 감흥도 그러했다.
단체로 발마사지를 받았다.
우선은 단체다 보니 시설과 품질면에서 동남아의 그 어느곳 보다도
우수했고 서비스도 탁월했다. 스
스로 잠이 올 만큼 시원하게 마사지를 받고 공항이 가까운 호텔로 돌아
오기 위해 40분을 달렸다.
자정이 가까워 온다. 모두들 피로에 겨워 잠을 청하는데 마지막 날
밤이라고 나서기도 그래서 일찍 잠을 청했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순간 긴장이 풀리고 피로가 엄습한다.
최선을 다한 여행이었고 나름대로 최상의 여행이라 자부해 보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열길 물속이라 섣불리 판단하기도 어렵다.
신복로타리에서 따끈한 점심을 함께하고 헤어지면서 나눈 악수. 어느새
진한 정이 들었음을 몸소 체험했다. 긴 여운이 남긴 여행이었다.
6. 에필로그
수 없이 나들이를 한 적은 있었지만 대 인원을 대동하고 황산을 다녀온
것이 안도감을 갖게했다. 여행에 참가한 산우들의 진지함과 성원이 있
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신나라여행사와의 유연성 있는 계약을 한 것이
주효 했다.
상호 Win-Win으로 합작했는데 여행사의 전폭적인 지원과 협찬이
감동적이었다.
하마트면 대상에서 제외 될 수도 있었던 여행사가 호평을 받는 이유는
고객 감동의 서비스를 표출 시켰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유럽여행시 마다 엄격하게 선택했던 여행사임에도
과단하게 후위에 포진시켰던 여행사 였는데 운좋게 선택 된것도
인연이 었다.
-박의선 부회장 내외-
리더로서 여행사에 무리한 요구를 많이 한 것이 미안할 정도로 관리를
잘 해 주었다. 하나라도 더 구경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몇가자를
더보는 기회를 포착한 것도 좋았다.
10년의 관록답게 사장이 일선에 나서서 이끌어 준, 보편적으로 하청인
현지 가이드의 독단을 무마시키고 고객의 요구에 적극 부응한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자랑 같지만 어쩌면 리더로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 여행에
세심한 검토를 했다.
많은 여행경험을 바탕으로 처음부터 여행사와 맞붙어서 요구사항을
반영했고 날씨 마저 호응을 해 주는 바람에 무사히 좋은 여행을 마칠
수가 있었다.
-강종수 직전회장 내외-
젊은 가이드와 특히 상해에서 초빙한 소져(아가씨) 가이드의 맨트가
마음에 들었다.
나와 한방에서 잤던 25살 총각 가이드의 풍부한 지식전달이 인상적이었다.
맏며느리 답게 음식이 남을 정도로 풍부하게 준비를 해준 김초자님의
도움도 좋았고
-허충회 전 부회장-
내일 같이 함게 걱정을 해준 강종수 직전 회장님과 안영환, 박의선,
이성희 부회장님 특히 허충회 전 부회장님의 말없는 성원이 힘을 실어
준 여행이었다.
-황산에서 하산하는 길에 마지막으로 찍은 단체사진-
아쉬움도 많았다. 사전에 알릴만큼 알렸음에도 자신의 불만사항을 남을
빙자해서 표출시키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해가 되지만 숲을 보고 판단을
못한 것이 조금은 심했다 싶다.
군중은 조그마한 선동에도 쉽게 흥분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길 양편 낭간에 마주 보고 앉아 막대기로 반주를 맞추어 가이드의
노래를 듣던 그 추억을 비롯하여 황산에서 잉태한 기억들은 영원한
웃음으로 남으리라.
-황산 순회후 후미를 기다리며 총각가이드의 노래를 듣다-
여행은 휴식을 위해 해야 하는데 우리는 산악인 답게 짧은 시간동안
너무 빡빡한 일정으로 움직였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전체적인 결론은
인화와 협조 그리고 함께 움직여준 조직력과 무한산악회라는 브랜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여행이었다.
-중국의 주유소는 유별나게도 크다-
일상으로 돌아와 산을 애호하며 모든이와 친숙함을 이어가는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
혹여나 본의 아니게 여행으로 인해 가슴앓이가 있었다면 넓은 아량으로
이해를 당부 드린다. 다시금 함께한 50인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김학준 부회장 내외-
무한이란 이름으로 함께한 제4차 해외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황산은 천하제일의 선경이었다.
눈길 주는 곳마다 모두가 아름다운 한 폭의, 잘 그린 산수화였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은 우리네 모습도 저 선경처럼 아름다우리....
-필자-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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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중국 황산 탐방기 실감있게 잘 보았읍니다. 누구나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산이며, 요번에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다음 기회에 베낭여행으로 한번 가볼까 계획중입니다. 지도 편달 있으시길......
꼭 한 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와우^^**쫀덕쫀덕한 글 넘 잘 감상했슴다.꼭 한번가보고싶은는데 덕분에 잘댕기왔슴니당 수고마니마니하셨어요 복받을겨대장님은^^**행복했슴니다
에궁.....중국황산 못가서 가슴알이를 많이하였는데....다음엔 갈수있으려나??? 댕겨오신 분들은 좋겠슈.....^^
화려한 문제로 생동감 있게 표현해주신 황산 여행기 잘보고 갑니다 정말수고 하셔습니다..../
늘 고마움을 주고 가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