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엽 사진전
변경 邊境
지리적 변경, 심상적 변경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변경
10.1 ~ 10.13
사진위주 갤러리 - 류가헌
*
그 순간은 지나가지만, 이미 출력이 되었다
‘저항은 영(零)으로, 강요된 침묵으로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항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 만약 이루어진다면, 작은 승리가 있다. 그 순간은, 다른 순간들처럼 지나가겠지만, 지울 수 없는 가치를 얻는다. * 그 순간은 지나가지만, 이미 출력이 되었다.’
존 버거가 한 이 말을, 사진가 이상엽의 이번 전시작 <변경邊境>에 관한 내러티브가 된다.
이상엽은 비무장지대인 DMZ부터 제주도 강정마을과 연평도 NLL, 4대강 건설 현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재개발지역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현장’들에 어김없이 있어왔다. 존 버거 식으로 말하자면 ‘영으로, 강요된 침묵으로 떨어지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알지 못해서 지나치는, 혹은 알기 때문에 피하려고 하는 이 모든 변경들의 의미와 풍경을 자신의 시선 안에, 카메라 앵글 안에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렇게 10년의 시간 안에서 그가 목도한 모든 순간들은 지나갔지만, 그러나 다시금 존 버거의 표현에 빗대자면 ‘이미 출력되었다.’ 이상엽의 아홉 번째 개인전 <변경邊境>을 통해 보여주는 사진들은 바로 그렇게 ‘출력’된 결과물의 총합인 것이다.
알다시피 ‘변경(邊境)’은 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 땅을 가리키는 말이다. 넓은 의미로는 지리적인 경계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경계까지를 포괄한다. 지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중심에서 멀리 가장자리로 쫓겨 점차 잊혀져가고 어두워져가는 곳이 변경이다.
비무장지대라는 지리적 변경을 다룬 2010년의 개인전 <이상한 숲 DMZ>이 서곡이었다면, 그때로부터 더욱 심화 확장된 총합이 바로 이번 전시 <변경邊境>이다. ‘눈에 보이는’ 변경을 찾아 시작했던 작업이 점차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 현실 속에 존재하는 변경으로 옮아간 것이다. 지리적 가장자리는 아니어도 이미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변경화 되어버린 지역들, 즉 서울의 재개발지역을 비롯하여 4대강 개발 지구까지가 ‘심상적 변경’이라면, 비정규직노동자들, 거대 자본에 쫓겨 설자리를 잃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가장자리로 존재하는 변경이 ‘신자유주의적 변경’이다.
이처럼 지리적 변경, 심상적 변경, 신자유주의적 변경이라는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뉜 전시 사진들은, 사진설명을 보지 않고는 현장과 그 사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들을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거나 기묘하다. 다큐멘터리 사진이면서도 단순한 기록사진이 아니라, 그 모든 변경의 현장에 치열하게 카메라를 들고 뛰어들며 스스로를 ‘늘 찍고 쓴다’고 말하는 사진가 이상엽의 사회의식과 심상이 오버랩 된 때문이다. 각각의 현장이 다르지만 ‘변경’이라는 점에서는 일관되듯, 세상의 모든 ‘잊혀져가고 어두워져가는’ 가장자리들이 지니고 있을 법한 냉혹하면서도 쓸쓸한 서정을 품고 있다.
‘저항의 본령은 어떤 대안, 좀 더 공정한 미래를 위한 희생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아주 사소한 구원이다. 문제는 이 ’사소한‘ 이라는 형용사를 안고 어떻게 시간을, 다시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서두의 문장과 이어지는 존 버거의 이 말은, 앞으로 사진가 이상엽이 이어나갈 삶 또는 그 삶과 분리되지 않을 사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상엽 사진전 <변경邊境>은 10월 1일부터 13일까지 갤러리 류가헌에서 볼 수 있다.
■ 작가소개
이상엽 Lee Sang Youp
다큐멘터리사진가. 프레시안 기획위원,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 한겨레신문 등에 칼럼을 쓴다. 늘 찍고 쓰는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삶의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뛰어 들지만, 기실 홀로 오지를 떠도는 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여전히 기록의 힘을 믿고 있다. <레닌이 있는 풍경>, <파미르에서 윈난까지> 등을 쓰고 <이상한 숲, DMZ> 등을 전시했다. 네이버 '오늘의 포토', 한국판 <내셔날지오그래픽> 심사위원 등을 지냈다.
개인전
2004년 <머나먼 실크로드> 수유+너머, 서울
2005년 <아시아> 브레송, 서울
2005년 <아시아 공감>전 네이버 사이버전시
2007년 <중국 1997~2006> 갤러리 나우, 서울. 고토 갤러리, 대구. 영광갤러리 부산
2007년 <레닌이 있는 풍경> 아트비트 갤러리, 서울
2008년 <청계의 나날들> 대안공간 건희, 서울
2008년 <인 투 핫 라이트> 갤러리 루, 서울
2010년 <이상한 숲 DMZ> 갤러리 류가헌, 서울
단체전 참여
2000년 <젊은 사진가전> 대구시민회관
2004년 <동강 사진 페스티발> 다큐멘터리사진가 33인전, 영월
2005년 <동감> 4인의 이주노동자전, 서울시청 앞, 서울
2005년 <아시아전> 김지하 '생명포럼' 주간 파주 출판단지 아시아센터
2005년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광주문화예술진흥원 구 전남도청
2006년 <얼굴의 시간, 시간의 얼굴 >대안공간 휴 홍대앞
2007년 <전쟁표면> 평화박물관 스페이스 피스, 인사동 서울
2007년 <가장 먼 여행> 디자인센터, 부산
2008년 <사랑>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서울
2008년 <섬> 광주미술관 인사동, 서울
2009년 <Earth Alert: Photographic Responses to Climate Change> 대림미술관, 서울
2009년 <Earth Alert: Photographic Responses to Climate Change> 주영문화원, 런던 영국
2009년 <무고한 세계: the Innocent World> 광화문 야외전시장, 서울
2009년 <Vietnam-Korea Friendship Photo Exhibition> 혁명박물관, 베트남
2010년 <과거로부터 온 선물> 주영한국문화원, 런던
2010년 4대강 기록 사진전 <강강강강> 류가헌, 서울
2010년 <한점 사진전> 류가헌, 서울
2010년 <강운구를 핑계삼다> 류가헌, 서울
2012년 <여수 엑스포 아트페스티벌> 전남 여수
2013년 <창원아시아미술제> 경남 창원
저서
2000년 < NO WAR NO CRY> (기획, 공저) 가각본
2002년 <고선지> 문화부특별선정 E-BOOK 시리즈, 와이즈북토피아
2002년 <동티모르> 문화부특별선정 E-BOOK 시리즈, 와이즈북토피아
2003년 <실크로드 탐사> 인문학 시리즈 ‘탐사와 산책’ 20, 생각의 나무
2004년 <낡은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기획, 공저) 청어람 미디어
2005년 <이미지프레스 01 풍경, 여행하는 나무> (기획, 공저) 청어람미디어
2005년 <그곳에 가면 우리가 잊어버린 표정이 있다> 동녁
2005년 <대담,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사진) 휴머니스트
2006년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2> (기획, 공저) 청어람미디어
2006년 <이미지프레스 02 사람, 사람들 사이로> (기획, 공저) 청어람미디어
2006년 <신 실크로드> 한국언론인협회
2007년 <중국 1997~2006> 눈빛
2007년 <내 삶의 마지막 노래를 들어라> (사진, 공저) 이른아침
2007년 <레닌이 있는 풍경> 산책자(웅진 임프린트)
2007년 <윈난, 고원에서 보내는 편지> (기획, 공저) 이른 아침
2008년 <청계의 나날들> 이른아침
2008년 <몽골, 초원에서 보내는 편지> (기획, 공저) 이른 아침
2008년 <이상엽의 재밌는 사진책> 이른아침
2009년 <당신은 바보 아니면 도둑> (기획 사진) 해피 스토리
2009년 <DMZ, 유럽행 열차를 기다리며> 플래닛미디어
2010년 <노회찬, 진보의 재구성> (사진) 꾸리에
2010년 <사진가로 사는 법> 이매진
2011년 <사진, 강을 기억하다>(공저) 휴머니스트 아카이브
2011년 <흐르는 강물처럼>(공저) 레디앙
2011년 <파미르에서 윈난까지> 현암사 (문광부, 전국도서관 협회 올해의 우수문학도서 선정)
2012년 <사진으로 읽는 뉴 실크로드 I II> 한국언론인협회
2012년 <스테판 에셀의 분노한 사람들에게> (사진) 뜨인돌
2013년 <그대, 강정> (사진, 공저) 북멘토
■ 작가노트
변경을 찾아서
변경. 변경은 내 안에 있었다. 멀고, 황량하고, 긴장이 느껴지는 변경. 변경은 머나먼 저곳에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풍경 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변경은 공간적으로만, 즉 지상에만 구축되는 것은 아니다. 변경은 내러티브를 통해 사람들에게 공통의 경험, 역사적 기억에 관한 의식을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관행과 담론 속에서도 구축된다. 그 변경을 가장 발견하기 쉬운 곳은 남한의 북쪽 비무장지대다.
군사분계선 남북으로 2킬로미터씩. 거대한 벨트를 형성한 이곳이 우리의 상식적인 변경이다. 하지만 이 비무장지대가 비무장은 커녕 거대한 무기 집합소임을 안다. 우리는 철조망과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을 보며 변경을 실감한다. 멀리 민간인 들어 갈 수 없는 비무장 지대 안은 자연의 장벽처럼 느껴진다.
모든 변경은 역사적이며 인위적이다. 어떤 경계들은 바다나 사막, 산맥, 강과 같이 분명한 지리적 특징에 따라 정해졌기 때문에 ‘자연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경계들은 역시 역사적으로 구축된 것이며 우연적인 것이다. 자연적 국경은 허상이다. 최근에 정치권에 쟁점이 되었던 NLL은 어떤가?
해상에 그어진 북방한계선(NLL)은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변경이지만 그 선이 마치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불가침의 신성한 선으로 인지된다. 여기서 변경 연구의 핵심어, 지리적 신체, 국민-국가 개념이 암시하는 것이 있다. 즉 시간의 경과 속에서 지속되는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통합된 영토적인 단위를 말한다. 국민-국가라는 유기적인 신체의 그 어떤 부분이라도 절단하는 것(자연적 경계를 침범하는 것)은 인체의 일부를 절단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것은 신체의 나머지를 영구히 불완전하게 방치하는 상실로 이해된다.*1 마찬가지로 물속 깊이 잠겨있는 이어도 역시 암초가 아니라 현실의 영해 기준이 된다.
내셔널리즘과 국민성이라는 언어는 하나의 국민과 세계의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 심리적인 장벽을 만든다. 경계를 분명히 하는 일은 타자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이런 이분법은 타자에 대한 불필요한 적대감을 유발하고, 상상된 국민에 부합하는 특징의 정체성이나 집단 사람들을 주변부적이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 국민성이라는 것은 국경을 초월해 상호 이해의 길에 장애를 만들고 개인들에게 하나의 국민국가에 헌신할 것을 강요함으로써 작동한다. 그것은 고립적이고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2
나의 작업은 우리 눈에 보이는 변경을 찾아 비무장지대와 서해 5도 제주도 강정까지 이어졌다. 우리 눈에 변경처럼 보이지 않지만 실제 변경화 된 곳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2009년 철거민들이 죽었던 용산도 그 변경 중 하나다.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들이 경찰과 대치하다가 5명이 불에 타 숨진 사건이다. 경찰도 한명 사망했다. 이 사건이 벌어진 이유는 용산개발이라는 거대한 자본의 투기적 폭력이라는 점에서 명확하다. 용산의 재개발지역은 변경이며 그들은 게토의 디아스포라들이다. 그들은 개발에 혈안되어 있는 자본들에게 변경이며 타자들이다.
4대강은 또 어떤가? 5공화국 이후 잦은 개발로 몸살을 앓는 강을 대대적으로 정비한다면서 속으로는 대운하의 거대 토목공사를 벌였다. 20조원이 넘는 세금이 투입되었고 소수의 건설마피아들이 이 돈을 챙겼다. 흐르지 못하는 강은 썩어갔고 강 주변에서 살던 이들은 쫓겨났다. 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사는 이들에게 이곳은 변경이었고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까지는 돌아보는 이가 없었다. 우리 안의 ‘심상적 변경’들은 이렇게 자본이라는 구심력에 의해 굴종해갔고 저항이라는 원심력 속에 사라져갔다.
우리 사회의 변경화 작업은 비단 땅과 바다, 재개발지역과 강을 넘어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이다. 국가와 자본을 그렇게 이야기 했다. “사용자에게는 비용절감 및 노동인력조정의 신축성을 제공해 주고, 근로자에게는 시간 스케줄, 능력, 기술수준에 따라서 근로할 수 있게 해주며, 국가경제 전반적으로는 노동의 효율적 이용과 생산성의 향상을 꾀할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 어디서도 이런 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비정규직노동자는 사회 안 어느 곳에 존재하더라도 변경화 됐다.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떠돌아야 했으며 점점 더 가난해졌다. 그들은 더 이상 생산의 주체가 아니었으며 미래를 꿈꿀 수 없었다. 최초의 불안정성은 차츰 무겁게 심연으로 가라앉아 더 이상 중심과 변경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사회전체를 유동하게 만든다.
따라서 변경은 끊임없이 늘어난다. 땅에서도 확대되고 사회에서 발생하며 우리의 마음에서도 피어난다. 질서라는 것을 본질로 여기는 중앙은 끊임없이 확대되는 변경을 통제하려 한다. 중앙은 예측가능하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확실성을 원한지만 그것은 변화가 없는 죽은 세상이다. 따라서 지금 자본과 권력이 통제하는 중앙은 외견상 질서정연해 보여도 진짜 세상을 갈구하는 변경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중앙의 구심력을 약화시킨다.
변경은 밖으로 튀어나가려 한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이다. 시간의 화살은 모든 것을 질서에서 무질서로 바꾼다. 하나의 세계가 다원적인 세계로 진화한다. 변경은 무질서의 세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자궁이다.
주) *1 테사 모리스-스즈키, *2 크리스 윌리암스
**** 원문자료/갤러리 류가헌*****
첫댓글 지난 봄에 저희 사진가회에 초대되어 <사진 찍고 글쓰기>를 강의하셨던 이상엽 사진가입니다.
늘 찍고 쓰며 기록의 힘을 믿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개인전을 축하합니다.^^
반갑네요^^
가봐야겠어요~
좋은소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