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관련 각종 서류 폐기도
불법파겨 증거인멸 행위는 작업표준서와 사양식별표 바꿔치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5월 9일 대전지방노동청 천안지청에서 A하청업체에게 온 출석요구서를 업체 사장이 협력지원팀의 H대리에게 보고했고, 6월 21일 H대리는 업체에 찾아와 안전협의회 회의록, 시말서, 안전보건 합동점검 추진 계획서, 안전보건 관리업무 계획서, 안전화, 귀마개, 피복 신청서 및 지급대장, 안전, 보건 계약서, 일일 안전점검 순찰표, DR TRIM 발생현황, 월 이종, 미장착 관리표, 토크 관리대장, 키퍼일지, 업무 분담표(총무, 소장, 반장, 조장) 등 불법파견 관련 서류를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B총무는 7월 28일에 지방노동위 관련 각종 폐기서류를 확인하고 정리했다고 수첩에 적었다. 금속노조는 H대리와 B총무가 벌인 일을 “원청인 현대차가 아니라 하청업체가 각종 인사, 노무, 안전보건 등을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속이고, 불법파견을 은폐하기 위한 행위를 지시하고, 이에 따라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자료들을 폐기한 것”이이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고용노동부의 여러 조사요구에 대해 사내하청 업체가 현대차 협력지원팀에게 일일이 보고와 확인을 통해 지시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B총무의 수첩에 따르면 지난 8월 31일 지방노동위 조사관이 B총무에게 2010년, 11년 채용공고가 있으면 팩스로 보내달라고 하자, B총무는 H대리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H대리가 보내주라고 하자 보내줬다. 9월 7일엔 지노위 조사관이 2010년 사업소득세 납부서류를 요청하자, H대리가 2011년 5월 종합소득세 영수증을 보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 사내하도급 실태조사 신뢰성 바닥으로
B총무의 수첩은 지난 해 고용노동부가 대법 판결이후 진행한 사내하도급 실태조사 결과의 신뢰성에 타격을 줄 전망이다. 이 실태조사에 따라 마련된 사대하도급 노동자 보호가 포함된 비정규직 종합대책 역시 사업주에 편향 됐다는 것을 반증하게 돼 노동계의 반발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 24일 사내하도급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서 기아차 소하리 공장. GM 대우, 르노 삼성자동차 3개 사업장 모두 불법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당시 노동부는 “점검을 완료한 GM대우,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 르노삼성자동자는 원·하청근로자의 작업내용이 구분되고, 작업공정이 분리되어 혼재작업을 하지 않는 등 적법 도급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 대법원이 불법으로 본 가장 중요한 이유인 업무지시나 근태관리에 누가 영향을 미치는 가를 두고 노동부는 “실제 노무지휘권 행사는 직접 사내하도급업체에서 행사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대법원은 사업주가 위장도급의 전형으로 내세운 현장대리인(사내하청 업체)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내렸다. 대법의 판단은 도급사 현장대리인이 업무지시를 전달했어도 실질적인 원청 사용주의 역할을 누가 했는가를 봤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따라서 B총무의 수첩은 실질적인 원청 사용주의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애초 노동부나 검찰이 불법이 오간 행위를 적발할 의지만 있었다면 B총무의 수첩이 아니더라도 방법은 많았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계에선 검찰이 현대자동차 협력 지원팀 관계자나 하청업체 사장 이메일만 압수수색 했어도 광범위한 증거조작 행위 자료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엄정한 수사를 촉구해 왔다. 이미 2005년 불법파견 수사 때에도 이메일이나 사내인트라 넷으로 광범위하게 주고받은 증거자료가 나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합동취재팀=윤지연, 심형호, 김용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