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안산 전국여성백일장
우수 / 산문
도시구름
최 현 영
집을 나설 때는 분명 아무런 기미도 없었는데 어린이집에 거의 도착하니까 갑자기 하늘에 시커먼 구름들이 가득 차면서 빗방울이 후두둑 쏟아져내렸다. 방금 전 보고 나온 두시 뉴스 말미의 일기예보에서도 오늘 비온다는 소리는 없었는데,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다섯 살 언이는 나를 보자마자 바람같이 내달려와 내 목에 대롱대롱 매달리며 반가와 했다.
“언이야, 아무래도 조 앞 마트에 들렀다 가야할 것 같아, 내가 우산을 안 가져왔는데 집가지 그냥 걸어가면 우리 비맞은 생쥐같이 되겠다.”
언이는 켈켈켈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 우리 모두 너무 귀엽겠다!”
우산만 사가지고 빨리 나오려고 했는데 언이는 마트 안의 장난감을 몽땅 다 사고 싶어했다.
“예네들 다 우리집에 못 가.”
“왜~애?”
“그러면 우리집이 뭐가 되겠어?”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가 한참 지나 마트 밖으로 나오니 비는 느실느실 내리지만 하늘은 한결 훤해져있었다. 아무래도 우산은 괜히 산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날 필요없는 여분의 우산을 신발장에 하나 더 들인 후 나는 하늘을 유심히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일기예보를 믿느니 차라리 내가 하늘을 보고 날씨를 맞추는 게 더 낮겠다.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서울에서는 너른 창공을 보기 힘들다. 그건 그름도 마찬가지이다, 창틀에 갇혀 있거나 빌딩숲 사이 전깃줄에 잘려 조각난 하늘에 담긴 도시의 구름은 드넓은 대양을 헤엄쳐 다녀야 할 물고기가 어항 속에 갇혀있는 것같이 보였다. 헌데 아파트 모서리에 갇힌 하늘에 잘려 나간 그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름은 거기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제가고 싶은 길을 자유롭게 가고있는 것이다. 도시의 구름이 자연의 구름에 비해 맥아리없고 안쓰럽다고 느껴지는 까닭은 결국 내 시야의 문제이다, 바다구름도, 두시구름도, 산이나 논밭의 구름도 매한가지일텐데, 차이점이 있다면 도시구름은 그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숫자에 비례해서 원망과 불평 불만과 짜증과 조바심과 걱정, 금심을 가득 머금고 있는 건 아닐까? 결국 모든 것들은 내 안의 문제인데 말이다.
아홉 시 뉴스를 골똘히 시청하는 언이가 귀여워 한마디 물었다.
“언이야, 너 저 아저씨 무슨 말 하시는지 다 알아들어?”
“푸틴은 하늘나라에 못 가.”
“왜 애?”
“나쁜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면, 하늘나라가 뭐가 되겠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관찰하고 내가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따라하는 다섯 살 짜리 이 아이가 있는데, 나는 더 이상 일기예보 탓을 하며 심통부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떠한 경우에서든 말이다. 하늘이 좀 흐리다 싶으면, 그리고 흰구름이 다소 회색을 띈다 싶으면 무조건 우산을 챙겨나가기로 결심했다. 해가 나면 양산으로 쓰면 되니가 자외선 차단도 될테고, 만일 비가 오면 젖지 않게 해주니 좋고 말이다. 나의 언행이 우리 아이의 시야를 막는 방해물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